◈은혜 받은 사람이 넘어지기 쉽다 출17:8~12 09.11.01.설교녹취, 편집
*원제목 : 기도하는 모세의 팔
◑은혜를 받아도, 자기 육신이 처리되어야..
▲아말렉과의 싸움(출17:8~) 직전에 무슨 일이?
즉 출17:1~7절에는, 므리바에서 물이 없어서 백성들이 시험에 든 사건이 나온다.
출17: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결국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반석에서 물을 주시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 많은 ‘육신적 다툼’이 있었다.
백성들이 모세를 돌로 치려고 했고.. 출17:4
백성들이 서로 많이 다투었고.. 17:7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아닌가?’ 시험하기도 했다. 17:7
그런 해프닝 직후에, 아말렉이 쳐들어 왔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육신적으로 서로 다투고 싸울 때
마귀의 세력(아말렉)이 역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귀를 불러들이면 안 된다.
내가 육신적으로 행할 때.. 분노/혈기/정욕/교만/자랑/나태/거짓말 등을 행할 때
그것은 마귀가 틈타는 계기가 된다.
즉시로 마귀가 내 영혼에 전쟁을 걸어온다.
그 전쟁에 지면, 마귀는 나를 죽이고, 도적질하고, 멸망시킨다. 요10:10
그러므로 절대 마귀와의 전쟁에서 지면 안 된다. 내가 비참하게 망한다.
(므리바 물가의 다툼으로, 아말렉을 불러들이는 단초를 제공했지만
모세와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아말렉과 싸워서 결국 이기게 되는데...)
▲2가지 전쟁
<애굽과의 전쟁>은, 적이 등 뒤에 있었다.
적을 안 바라보고, 등 뒤에 두고, 끊어야/도망쳐야 이기는 전쟁이었다.
술집/도박/쇼핑중독의 유혹..
이런 것은 싸워 이기기보다는, 도망쳐서 이겨야 한다.
맞서 싸워서 이기려다가.. 종종 내가 마귀에게 도리어 먹힌다.
그런데 광야 아말렉부터 시작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전쟁>은,
내가 싸워서 쟁취해야 할 싸움이다.
적을 앞에 두고, 내가 들어가서 취해야 될 싸움이다.
내가 피해 도망가야 할 싸움이 아니다.
우리 삶 속에, 내가 끊어버려야 할 것도 있고,
내가 싸워서 취해야할 영역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는 기도와 더불어, 내가 피하지 말고 ‘순종/극복’해야 한다.
내 육신의 혈기/분노/거짓말 등은,
대부분 내가 싸워 극복해야 할 전쟁이다. 피해서는 안 된다.
철저히 대면해서 극복해나가야 한다. 내 육신을.. 내 속에 성령이 싸워 이겨야 한다.
영으로써 육의 행실을 죽이면 살지니 롬8:13
※사춘기를 지나는 자녀가, 부모의 속을 썩일 때,
그것은 ‘피해야 하는 싸움’일까, 아니면 ‘대면해서 싸워 이겨야 하는 싸움’일까?
case by case가 다르겠지만,
내 속에서 성령이 역사하셔서.. 영적권위가 생길 때는.. 내가 대면해서 이겨야 한다.
그런데 내 속에서 혈기가 역사해서.. 분노가 폭발할 때는.. 내가 피해서 이겨야 한다.
▲은혜 받은 사람이 조심해야 한다.
내가 은혜를 받지 않으면, 집에서 화낼 일이 어쩌면 없다.
내가 식구들과 같이 둘러앉아서, 함께 TV연속극을 오래 시청하면.. 화낼 일이 없다.
그런데 내(어떤 불특정인)가 저녁 집회에 가서, 큰 은혜를 받고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까, 그 시간에 식구들이 모두 연속극을 보면서 은혜(?)받고 있었다.
나를 따라서 집회 안 간 것 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참겠는데,
그 귀한 시간에 집에서 TV나 보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도저히 못 참는다.
그래서 내가 화가 나서 ‘마귀 역사’ 운운하며
거실의 TV를 확 꺼버린다. ※관련글 : 혈기인가, 열정인가? (하단에 있음)
이 순간부터 ‘그 의로운 종’이 도리어 마귀처럼 굴기 시작한다.
여러분, 이 순간이, 마귀가 틈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이 때 ‘그 의로운 종’이 자기 분과 혈기를 다스리지 못하면
가정에 <신앙문제로> 큰 분쟁이 생긴다.
그 작은 일로 시작해서.. 큰 상처로 번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은혜 받은 사람이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 사람이 꼭 넘어지기 때문이다. 마귀가 그 사람을 집중공격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성숙하지 못하면), 자기 의분 때문에, 일을 도리어 크게 그르친다.
여러분, 은혜를 받으셔도, 집에 가서 화를 안 낼 정도만큼만 받으시라.
아니면 정말 큰 은혜를 받아서, 집에 가서 그 은혜로 화를 안 내시든지...
그래서 내가 은혜 받고서, 집에 가서 식구들이 보는 TV를 확 꺼버리고,
반발하는 자녀들에게 일장 훈시(잔소리식 설교)에 들어간다.
그러면 아이들이 이렇게 반응한다.
‘내가 교회 열심히 다니려고 해도, 아빠 하는 행동 보니까.. 그 마음 싹 사라진다!’
그러면서 문을 쾅 닫고, 자기 방에 들어가 버린다.
물론 그러는 애들의 잘못도 크지만, 이 이야기의 주제는
‘은혜 받은 사람이, 자기 육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받은 은혜 때문에, 그 의로운 분노(?) 때문에
마귀가 거기에 덥석 올라타서, 아주 안 좋은 결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이스라엘이 모세를 돌로 치려했고,
모세가 물을 주었지만, 그런 백성들에게 일장 훈시하며, 므리바에서 분노했다.
그 직후 아말렉의 공격이 개시되었으며,
모세의 ‘의로운 분노’도 ..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다. 민20:1~13
분노하는 곳에는.. 반드시 마귀가 틈타는데
누가 분노를 잘 하는가 살펴보니까.. 은혜 받은 사람이 늘 분노한다는 것이다.
은혜를 받았지만, 자기 육신이 아직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야 방황은 40년이나 걸렸다.
중생(출애굽)은 금방 일어났지만
가나안(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의 육신이 성화의 과정을 거치는 데는
꼬박 40년이나 걸렸다.
우리가 예수 믿은 이후로도, 은혜 받은 이후로도,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성령충만을 받더라도.. 성화의 과정을 오래 거쳐야 한다.
그래서 점점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다듬어져 간다.
그리고 그 자녀 세대들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다듬어져 갈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다 엎드러지고, 그 자녀 세대가 들어갔지만
길게 보면, 그들이 (자녀 세대를 통해)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해 주실 것이라고 본다.
다윗의 골리앗에 대한 승리가, 이스라엘 전체의 승리였던 것처럼!
아버지 세대와 자녀 세대는, 달리기로 치면, 바통 이어 달리기다.
아버지 세대가 멀리 뛰어줄 만큼, 자녀 세대가 유리한 것이고,
결국 승리는 그 팀(아버지+자녀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영적 전쟁에 있어서 기도의 역할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모세 + 전쟁하는 여호수아
여호수아는 나아가 전쟁을 수행하고, 모세는 산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출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성경에.. 기도만 해서 될 일도 있겠지만,
보통은 기도하면서, 아울러 육신적으로 나가 싸워야 할 일들이 나온다.
이때 기도는.. 나가서 싸울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공급해 준다.
출애굽 할 때, 홍해를 건널 때도,
모세는 일단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다.
출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만 하지 말고,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홍해로 진군해 들어가라고 명하셨다.
: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기도는.. 기도로만 끝나게 하지 않는다.
기도는.. 반드시 액션action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즉,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기도의 힘이다.
▲영적 전쟁은.. 기도가 중요하다.
므리바에서 이스라엘 회중과 모세의 .. 양자의 모두 분노를 틈타서
그 직후에 아말렉 같은 마귀의 권세가 공격을 해 왔는데,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대항해서 전쟁을 하는데,
즉, 오늘날에 마귀의 시험으로 생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내가 백방으로 뛰는데,
백방으로 뛰는 액션만으로는 아말렉 마귀를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호수아처럼 열심히 살지만(전쟁하지만)
인생은 결코 우리 노력으로만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액션 없이 기도만 하는 것’도 위험하다.
그러나 ‘기도 없이 액션만 하는 것’은 전자前者보다 더 위험하다.
전자는 긁어 부스럼은 안 만들지만, 후자는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때문이다.
여러분, 현대 교회는 사탄을 설교하지 않지만,
창세기 처음부터 계시록 마지막까지, ‘사탄’은 성경 각 권에 안 빠지고 나온다.
우리가 액션과 더불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기도를 통해 ‘사탄을 제어하고, 사탄의 훼방을 분별해서 물리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기도할 때,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이겼고,
모세의 팔이 내려왔을 때,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진 것이다.
여호수아의 액션(행동)과 더불어, 모세의 기도가 꼭 있어야 한다.
▲영적인 일은, 기도한 만큼만 된다.
여호수아가 아무리 노력을 했어도, 모세가 기도한 만큼만 되었다.
그것이 목회건, 자녀 양육이건, 영적인 일은.. 언제나 기도한 만큼만 이루어진다.
밀가루 반죽이 아무리 많아도, 기름이 준비된 만큼만 빵을 구울 수 있다.
밀가루 반죽(노력)은 많은데, 기름(기도)이 준비 안 되면, 빵이 구워지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노력이 부족하다고, 노력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노력과 아울러, 기도의 부족을 예민하게 살핀다.
내가 기도하지 않고, 나의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성경의 진리만을 앞세우고 말할 때,
그 진리가 오히려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나의 하나님의 성품을 오히려 파괴할 때가 있다. 비판/자기 의/교만에 빠지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말을 하고, 행하는데..
내가 하나님을 전혀 닮지 않은 모습을 나타내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말렉이 즉시로 틈탄다.
그래서 그런 나를 ‘자기 의’로, ‘교만’으로,
‘비판과 정죄’의 죄로.. 나를 꽈당 넘어뜨린다.
하나님 말씀에 은혜 받은 것 때문에.. 오히려 내가 망하는 것이다.
말씀의 은혜를 받지 않았으면, 차라리 더 좋았을 것을..
(말씀의 은혜를 받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 영적전쟁
말씀의 은혜를 받아도.. 제대로 확실하게 받아서.. 더 겸손한 기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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