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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전과 개인전 2209

LNCK 2009. 12. 1. 13:28

◈단체전과 개인전                               왕하22:1~20                              인터넷설교스크랩, 편집

                                                                                                             *원제목 : 세기의 이혼 

 

◑본문 설명


▲본문은 요시야 왕의 선정善政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선한 정치

요시야는 남 유다를 B.C.640~609년까지 다스렸고

남유다가 망하기 직전에 통치한 왕입니다.                                          *바벨론 1차침공이 B.C.605

그러다가 B.C.586년(바벨론 3차 침공)에 완전히 망하고, 성전이 불탑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지는 질문은

요시야는 선왕입니다. 남유다를 하나님 뜻대로 잘 다스린 왕입니다.

왕하22: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그런데 왜, 남유다의 멸망을 막지 못했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책을 발견하고 부흥이 일어나다.

그는 성전을 새롭게 수리했습니다.  왕하22:5~6

그러던 과정에서 율법책을 발견합니다. 22:8


역대하34장에 보면, 같은 사건이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법책을 발견한 후, 거국적인 일대 신앙부흥이 일어납니다.


대하34:29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으고


30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다 함께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31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


32 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는 자들로 다 이에 참가하게 하매

예루살렘 거민이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의 언약을 좇으니라.


33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을

다 제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바벨론 포로’라는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돌이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직 허락된 것은, 요시야 왕이, 재앙을 보지 못하고, 평안히 죽는 것이었습니다. 대하34:28


여러분 성경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평가된 왕이

남유다의 20왕 중에서 8왕에게 주어집니다.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아하시야,

아사랴, 요담. 히스기야, 요시야 이런 왕들인데,

이 8왕 중에서 ‘다윗의 길로 행하고’ 라는 평가를 받은 왕이

또 3왕이에요.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그러니까 요시야 왕은,

남북 분열 이후, 적어도 3大 선왕에 손꼽힌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벨론 포로라는 대세를 돌이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하나님은 남유다 백성과 ‘세기의 결별’을 하셨나요? ←설교제목


(앞서 히스기야 왕 때는, 그러니까 80년 전 주전722년경,

남유다가 앗수르의 침공에 풍전등화처럼 망하려고 했을 때는

하나님이 남유다를 지켜 보호해 주셨거든요)


◑1. ‘개인전’도 있지만 ‘단체전’도 있습니다.


육상경기에 개인전이 있지만, 단체전도 있습니다. 바통이어달리기/계주라고 하지요?

수영경기에도 단체전이 있습니다. 4명의 선수가 이어서 수영합니다.

신앙에도 (개인전이 있지만) 단체전이 있다고 봅니다.


▲출애굽 과정은 단체전   團體戰

(개인적 깨달음이지만)

저는 출애굽 백성이 <단체전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고 봅니다.

부모 1세대는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엎드러져 죽었지만,

그 아들 2세대는.. 여호수아를 필두로 가나안에 들어갔잖아요?


그러니까 출애굽 1세대/부모세대는, 단체전으로 가나안에 들어갔다고 봅니다.

단체전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모세도 가나안에 못 들어가고 죽었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지옥 갔을까요? (어떤 분은 이런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약에 보니까, 모세가 변화산에 엘리야와 함께 나타난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증거입니다.

모세가 들어갔다면, 광야에서 모세처럼 죽은 다른 1세대들도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신앙에는 개인전도 있지만, 단체전도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2세대, 그들의 자녀세대가 가나안에 무사하게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역한 고라 자손, 다단과 아비람 등은 못 들어갔겠죠)


만약에 1세대가 광야에서 모두 죽어서 지옥에 갔다면,

그들을 모두 지옥에 보내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 시키셨겠습니까?

물론 부모 세대에서 들어갔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단체전으로, 40년의 연단을 거친 이후에, 자녀 세대에서 승리했습니다.

(가나안에 못 들어간) 모세를 보니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단체전의 원리

①출20:5절에, 하나님은 1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며

자손 3~4대까지 저주를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단체전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의인의 자녀는 걸식함을 보지 못한다고 했지요?  시37:25

단체전도 있다는 것입니다.

 

②우리가 쉽게, 원죄와 자범죄를 말합니다.

원죄는 단체전戰, 자범죄는 개인전입니다.

원죄는.. 내가 안 지어도,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단체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 단체전의 손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볼 때도 있습니다.↙


③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대표성의 원리, 대속의 원리로 설명합니다.

대표성의 원리란.. 한일 축구전에서, 대표팀이 이긴 것이, 한국민의 승리와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대표적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된 것입니다.

신앙에는 ‘단체전’도 있다는 것입니다.

 

대속의 원리란, 나는 pay한 것이 없지만, 누가 내 점심 값을 내 대신 냈습니다.   

그러면 내가 점심 값을 낼 필요가 없지요. 예수님이 내 죗값을 대신 pay하셨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단체전’의 원리가 있습니다. ‘개인전’과 아울러서요!


④하나님은 ‘단체전’으로 부르시기도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란 표현이 성경에 종종 나옵니다.

그들을 ‘한 팀/단체’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럼 왜 요셉이나 유다는 빠졌을까요?

‘아브라함과/이삭과/야곱과/요셉의 하나님’이란 4대에 걸친 표현은 왜 안 나올까요?

제 생각인데.. 아마 너무 길어서.., 그러니까 3대나 4대나 마찬가지인 셈이지요)


▲그래서 요시야 왕이 아무리 선정을 베풀고,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했지만,

앞서 악행을 일삼았던 므낫세/아몬 왕의 실정을 뒤집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단체전에서 패배한 셈이지요.  왕하21:13

요시아 뒤로는 여호아하스(3달), 여호야김, 여호야긴(3달), 시드기야로 끝납니다.

정국이 가장 불안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적용 : 부모가 남길 가장 큰 유산은, 신앙의 유산

다윗은 후대에 ‘다윗의 길’을 남겨 주었습니다. 대하34:2

여로보암은 후대에 ‘여로보암의 길’을 남겨 주었습니다. 왕상15:34, 16:2, 19등


오늘날 유교적 전통의 한국 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재산’을 물려주려 합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의 길’을 물려주는 것은.. 전혀 겁내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을 ‘개인전’만 생각하고, ‘단체전’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범하는 오류인 것입니다.


여러분,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자녀는 부모를 닮습니다.

건강/인격/걸음걸이/성격/습관/생김새/목소리/심지어는 죄성까지 다 닮습니다.

물론 아주 밝고 긍정적인 면도 반드시 닮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야 자녀 세대와 함께 ‘가나안/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출애굽 세대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시야는.. 아무리 선정을 베풀고 정직히 행했지만,

조상이 너무 악하게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에,

그 대세를 돌이키지는 못했습니다.

자기는 잘 뛰었지만, 자기 전후의 주자들이 잘 못 뛰었기 때문이죠.



◑2. (세기의 결별 이유) 하나님과 유다 백성 사이에 공통분모가 없었습니다.


▲세기의 이혼

아주 유명한 헐리우드 스타의 이혼이 아니라

몇 해 전에 다이물러 벤츠와 크라이슬러와의 이혼을 했습니다.


1998년에 아이야 코카의 크라이슬러와 독일의 다이물러 벤츠가 합병을 합니다.

그런데 다시 결별을 했는데,

어느 외국 언론이 ‘세기의 이혼’이라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이물러 벤츠와 크라이슬러가 이혼을 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기자회견을 통해서 밝혀진 가장 두드러진 이유는

‘생산부문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합병의 시너지 효과를 전혀 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구두를 만드는 공장과 핸드백을 만드는 공장이 합병했습니다.

그럴 경우에 가죽을 생산해내는 공장은 하나가 없어져도 된다는 것이에요.

공통부분을 찾아서 줄여가는 것이지요.

이게 합병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다이물러 벤츠와 크라이슬러가 왜 그렇게 합병 효과를 낼 수가 없었느냐?

다이물러 벤츠는 미국시장을 주로 겨냥하면서

고급차를 생산해내는 생산 라인을 갖고 있는 반면에

크라이슬러는 중저가에 속하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공장을 갖고 있었어요.


두 개가 합쳐지니까 규모는 커졌어요. 규모경제는 커졌지만

그것이 오히려 운영하는데 짐만 됐지

어떤 합병효과를 낼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생산 공정에서 공통부문이 없었다는 것이 바로

‘세기의 이혼’ 다이물러 벤츠와 크라이슬러의 이혼의 이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이유로 정말 더 엄청난 ‘세기의 이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선택한 백성간의 결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세기의 이혼'입니다.  

이혼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서로 간에 공통부문이 없었다는 것이에요.


▲하나님 말씀 없이도 잘~ 살았습니다.

요시야가 성전을 수리하게 합니다.

그동안 할아버지 므낫세, 아버지 아몬을 통해서

완전히 배교행위가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까지’ 자행되자

그런 과정에서 성전도 아마 많이 허물어졌을 것입니다. 누가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그 성전을 다시 수리하는 과정에서 율법 책이 발견됩니다.

율법 두루마리가 발견됩니다.

아마 조상의 배교행위가 나라를 뒤덮었을 때,

어느 제사장이 하나님의 율법 책(아마 신명기)을 깊이 숨겨뒀다는 것이에요.


그 오래 숨겨둔 책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거꾸로 말하면,

히스기야 사후 요시야 등장까지 적어도 57년 이상 동안 (므낫세, 아몬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채로 유다왕국이 지속되어왔다는 것이에요.

그걸 드러내 주는 거예요.


율법 책을 발견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은

그 동안, 율법 책 없이도 ‘잘~ 살았다’(비꼬는 말)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지요.

율법 책을 발견했다는 것은.. 그동안 율법 책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이야기예요.

그 존재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뭡니까?


하나님과 남유다 사이에 공통부분이 없었다는 겁니다.

앞서 두 자동차 회사가 결별한 이유가 ‘공통부분이 없었다’는 것인데,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자,

하나님과 그 백성을 연결할 ‘그 어떤 공통부분이 사라졌다’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결국 ‘세기의 이혼’으로 치닫고 말아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연합의 근거는 ‘말씀’

거룩하신 하나님과, 정말 전적 타락한 죄인이 합병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뭐냐?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약시대에는 말씀=예수님=중재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말씀이 사라지면/약화되면/변질되면..,

우리 세대는 물론이요, 다음 세대에 이르기까지.. 아주 힘들게 됩니다.

아니 벌써 지금 우리 세대가..

지난 80~90년대의 고속성장 시절의 말씀유산/신앙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고, 부정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 다이물러와 크라이슬러의 결별의 이유를 꼭 기억하십시오.

그 사이에 공통부문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도,

‘말씀의 공통부분’이 없으면.. 결별입니다.

비참하게 바벨론(죽이고 도적질하는 마귀의)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선포되는 동안은..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이사야59:2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이 백성과 언약을 맺겠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내 영과 너희 입에 두는 내 말이

너희와 너희 자손의 입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그리할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사59:21


이 말씀은, 달리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이것이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이니,

내가 네게 준 말씀이 네 입에 있는 동안,

내 영은 절대로 너희 백성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아래 영문 번역)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는 동안에는,

절대로 하나님의 성령이 그 백성을 떠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하면,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지 않으면, 영도 떠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This is my covenant with them.


My Spirit will not leave them.


Neither will these words I have given you.


They will be on your lips, & on the lips of your children


& your children's children, forever.    Isa. 59:21.    New Living Translation                                    ▣ 기독교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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