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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성화 2212

LNCK 2009. 12. 2. 22:40

◈생각의 성화부터                             롬8:6~8                                  09.02.01.설교스크랩

                                                                                  *원제목 : 성령으로 승리하며 삽시다.


독일 경건주의자 필립 스패너는 Philip Spener는

‘성경이 반지라면, 로마서는 반지 위의 고귀한 보석이고,

그 중에서도 롬8장은, 그 보석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라고 묘사합니다.



▲저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은 진지한 질문을 드려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가급적 죄를 안 지으며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거룩함의 경지에 머무르며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승리하며 살 수 있을까요?’


▲롬7장은 바울의 탄식

로마서 7장에 보면,

사도바울 같은 성자도 자신의 성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자주 실패했던 쓰라린 경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애쓰고 노력했는데.. 별로 진전이 없었다고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이것이 로마서 7장의 이야기입니다.

겸손해야지 했는데 어느 순간 자기를 과시하게 되었고,

더 착해져야지 했는데, 일을 추진하다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공격 앞에서도 자기감정을 잘 다스리기로 준비했는데도

결국 허점을 또 드러내고 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성화에 대하여 대단히 회의적이고

허탈한 한탄을 토설합니다. 소위 로마서 7장은 거룩한 탄식입니다.


▲롬8장은, 정반대

그런데 로마서 8장에서는 자기 성화의 놀라운 가능성을 선언합니다.

그 원인과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7장의 중심 단어는「나」입니다. 30번이나 반복합니다.

성령님에 관한 언급은 단 한번입니다.(6절)


반면에 8장의 중심단어는「성령님」입니다. 19번이나 강조합니다.

또한「나」라는 언급은 2번뿐입니다. 얼마나 대칭적입니까?


내 힘과 의지로는 무기력하게 실패하지만,

성령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의지할수록 거뜬히 승리할 수 있음을 힘차게 천명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이것이 롬8장의 대 주제입니다.

어떤 분은 로마서 8장은<성령장>이라고 말합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성화와 영광스런 승리를 완성해주신다는 은총의 복음입니다.

21세기 영국의 신학자 John Stott도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이다.

성령으로 생기와 활력을 얻고, 인도함을 받고, 풍성한 삶을 산다.

그러므로 성령 없이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제자도를 생각할 수 없고, 사실상 불가능하다.”


▲롬8장의 시작과 끝(절)

그래서 로마서 8장은 우리가 성령으로 승리하며 살 수 있음을 우렁차게 선언합니다.

1절의 첫 선언부터 웅장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야말로 무죄선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모든 죄가 완전 사면된 것입니다.

집행유예가 아니라, 완전 석방입니다. 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과 자유입니다.


그리고 39절 결론은 더욱 장엄합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절대적 승리선언입니다. 이처럼 로마서 8장의 대 주제는 영광스런 승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찬란한 승리를 보장해주는 최고의 복음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의 승리생활을 어떻게 도와주실까요?


1. 성령님은 타락한 죄성을 이기게 하십니다.

본문 2절은 우리가 죄성을 승리하며 살 수 있는 근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를 타락한 인간성과 죄의 본성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는

신분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성령을 좇아 사는 것'입니다.

 

롬8: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그러니까 이 말씀을 계속 암송하는 중에,

죄의 유혹이 나를 엄습할 때, 이 말씀을 선포하면서, 그 순간을 승리해야 합니다.


갈5:19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이란.. 늘 성령과 동행하며, 성령과 의논하며,

성령의 인도와 지시를 받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성령으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성결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거룩한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 충만함으로 타락한 죄성을 이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2. 성령님은 생각을 거룩하게 다스려 주십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생각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인지과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에 6만 건 이상의 생각을 하며 산다고 합니다.

1.44초마다 한 가지씩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생각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잠23:7절에서는 “사람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대로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미국 교회의 지도자 James Allen은 생각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현재 당신의 모습은 당신의 과거 생각의 결과이며,

미래 당신의 모습은 현재 생각의 결과이다.”


즉 당신의 오늘은 어제 생각한 결과이고,

당신의 내일은 오늘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처럼 생각이 곧 사람됨을 결정합니다.


본문 5절은 단도직입적으로 경고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


인간의 타락한 죄성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게 하고,

거룩하신 성령님은 신령한 생각을 품게 하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바울은 롬8:6~8절까지

육신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을 대칭적으로 설명합니다.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의 생각>

  <성령의 생각>

사망(의 고통)

생명과 평안

하나님과 원수됨

하나님과 평화함

하나님의 법에 굴복 못함

하나님의 법에 굴복/따른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

육신의 욕구에 맞춰져 있다

성령의 욕구에 맞춰져 있다


갈라디아서 5:16~17절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에 속한 사람은 그 중심이

-자기 자신에게 있고,

-정욕에 있고,

-자존심에 있고,

-자기 교만에 있고,

-육체의 욕망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른 생활, 바른 인간관계를 가지지 못합니다.

스스로 고통과 근심을 자초합니다.

이것이 21세기 현대인들의 성격장애 근본요인입니다.


반면에 영에 속한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성령 주도적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현실 위주로 생각하지 않고, 영원한 가치기준과 관점으로 생각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이 보이는 세계를 중시한다면,

영에 속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세계, 곧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갑니다.

즉 육에 속한 사람은 땅의 것을 추구하고, 성령의 사람은 위엣 것을 지향하며 삽니다.(골 3:1)



◑적용 : ‘생각의 성화’


그래서 저는 요즘 ‘생각의 성공’보다 ‘생각의 성화’를 깊이 묵상해 봅니다.

최근 성공적인 CEO들은 사업구상과 비전실현에 있어서 ‘생각의 성공’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각의 성화가 앞서야, 영적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의 길들이기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 로마서 8장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생각을 어떻게 길들이느냐에 따라

육신의 사람이 되느냐, 성령의 사람이 되느냐가 결정된다고 주지시켜줍니다.


인간은 본성적 죄 때문에 마음과 생각을 성령으로 길들이지 않으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더러운 새를 새장 속에 넣거나,

들짐승을 우리에 가두는 것과 같다.”고 찰스 스펄젼은 말합니다.

성령으로 생각을 다스리지 않으면.. 육신의 생각에 종속당합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성령 없이 살수록 마귀의 노리개 감이 됩니다.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가니 완전히 노리개가 되어 버렸습니다.

베드로를 농락했다면 우리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더욱 더 생각의 성화가 필요합니다.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을 따라야합니다.

자기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생각을 품어야합니다.


성령님은 생각이 성화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단, 내가 성령님께 온전히 복종하도록, 내 자신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안 됩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경건의 훈련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매일의 삶이, 자연스럽게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 있도록.. 경건을 훈련합시다.



▲성령님과 동행하려면 늘 기도해야                                    (펀 글)

 

피에트라 수도원의 긴 아침기도가 끝난 후, 풋내기 수사가 수도원장에게 물었지요.

“기도를 통해, 인간 존재가 하나님에게 가까워질 수 있습니까?”


수도원장이 말했습니다.

“답하는 대신 하나 묻겠다.

너의 간절한 기도가, 내일 아침 해를 뜨게 하겠느냐?”


“해가 뜨는 것은 우주의 섭리니까, 제가 기도하지 않아도 해는 뜰 것입니다.”


“그 말 속에 네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 가까이에 계신다. 네가 얼마나 기도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풋내기 수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말씀인즉, 우리의 기도가 쓸모없다는 것입니까?”


“절대 그런 말이 아니다.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해돋이를 볼 수 없듯,

하나님께서 늘 우리 곁에 계셔도.. 기도를 하지 않으면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늘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이.. 성령님과 실제로 동행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얻습니다.

성령님을 가까이서 느낍니다.


......................................... 더 읽으실 분 .............................................


▲어느 신학자는 이런 좋은 도식으로 설명합니다.


God is on me. Jesus is with me. Spirit is in me.

하나님은 내 위에, 예수님은 나와 함께, 성령님은 내 안에!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가 영광스런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초자연적으로 도와주십니다.

특히 성령님은, 죄인 된 우리로 하여금 영광스런 승리자가 되도록

신비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적당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더 큽니다. 


학생들 중에 공부하는 학생과 공부 안하는 학생 중에 누가 더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공부 안하는 학생이 훨씬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학생이 공부하기로 결단하고 실천하면 신기하게 스트레스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런 결단에 없으면.. 놀면서도 자기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스트레스가 커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과

대충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대충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훨씬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 성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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