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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워 기도하신 이유 2216

LNCK 2009. 12. 4. 23:06

◈밤새워 기도하신 이유                    눅6:12~16                    09.10.29.가톨릭 글 스크랩


 

예수께서 기도하시려고 산에 들어가, 밤을 새우시며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날이 밝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그 중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로 삼으셨다.  눅6:12~19


 

▲1. 예수님이 밤새워 기도하신 이유는?

제자들 중에서 특별히 12사도를 뽑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밤 새워 기도를 하셨다고 복음서는 기록합니다.


‘밤 새워 기도하셨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누구를 뽑을까 고심하셨다는 뜻일까요?

-후보자들을 여럿 공천해 놓고, 어떤 사람이 사도로 더 적합한 사람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셨다는 뜻일까요?


만약 예수님이 그런 식으로 진짜 밤새워 고민하셨다면,

아마 12사도 중 특별히 두 사람 때문에 고민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룟 유다와, 열심당(무장 결사대)출신 시몬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민하시고, 밤 새워 기도하시고 나서

뽑으신 결과가.. 어떻게 보면 썩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당신을 배반할 사람을 사도로 뽑으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열혈당원을 뽑으신 것도..  (하나님 나라는 무력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닌데)

어쩌면 잘못 뽑으신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위와 같은 이유로, 밤을 새우진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 밤새우신 이유를,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성도Saint가 될 자격을 갖추었기에, 예수님께서 성도를 뽑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뽑으셨기에 내가 성도가 되는 것이듯이..


마찬가지로 사도가 될 자격을 갖추었기에, 예수님께서 사도로 뽑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뽑으셨기에 사도가 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적인 은혜’라고 그러죠.


그러므로 밤새 기도하심은..

누가 사도직에 더 적합한지 고르기 위해 고심하신 것이 아니라

(즉 그의 기능이나, 달란트, 혹은 스펙을 뒤척이며 고심하신 것이 아니라)

어떤 제자가 하나님의 뜻인지,

그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고심하셨을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예레미야, 다윗도 비슷한 고백을 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은

모태로부터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여 불러 주셨다고요. 갈1:15, 렘1:5, 시71:6


내가 잘 나서, 지금 내가 이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것을 ‘착각’이라고 합니다.

내가 잘 나기 이전에.. 하나님이 나를 모태에서부터 불러주셨다니까요!



▲2. 진심으로 기도한 다음에 결정한 일은, 하나님의 뜻으로 반드시 믿습니다.

본문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 너무도 간단히 기술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절제된 글입니다.


주님께서는 밤새 기도하시고

내려오셔서 바로 제자들 중에서 12 제자를 뽑으시고

이어서 이제 당신만을 쳐다보는 많은 불쌍한 중생들을 맞이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초점은

당신의 지상 사업 중에서 당신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일,

많은 제자들 중 12 사도를 뽑으시는 그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주님은 밤새 기도하십니다.

밤샘 기도는 번민의 표시일까요?

번민의 표시라면

사도들이 어떤 제자인지를 몰라서 하는 번민일까요,

아니면 어떤 제자인지를 알기에 하는 번민일까요?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뜻’하시는 사람들을 뽑으셔야 하니

그 아버지의 뜻이 어떤 제자들에게 있는지.. 번민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선택이 아버지의 뜻이기를

밤새 간절히 기도하신 것입니다.


저도.. 목회 중에 제일 고민스러웠던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결정입니다.

인사이동의 결정은.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뿐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도 좌우할 것이기에

사람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것은 여간 고민스럽지 않습니다.


그러하기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하기에 또한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경험은

깊이 기도한 다음의 내린 선택은, 어떠한 선택이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시일이 지나서 나중에 보니

혹시 그것이 ‘잘못된 결정’처럼 보이더라도, 저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일이 더 지나고 보면, 결국 그것은 올바른 결정으로 판명 났습니다.


배반자 갸룟 유다의 선택은, 예수님의 잘못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도 같은 믿음을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가져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인사 문제를 결정할 때는,

모두가 하나님께 깊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 이후에,

그 결정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되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나중에 혹시 정말 잘못된 사람을 뽑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사람의 잘못된 인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내 아내와 남편은 내가 눈이 멀어 잘못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자식이 나의 선택이 아니고

내 부모가 나의 선택이 아니듯

 

내가 선택한다고 하는 모든 선택도 나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는 믿음을 가집니다.



▲3. 무명의 사도가 더 많습니다.

사도 시몬과 사도 유다는 예수님의 12제자에 속하는 분들이지만,

아마 가장 무명의 사도에 속합니다.

‘사도’라는 직임이 무색할 정도로.. 무슨 업적이나 공적이 특별히 성경에 없습니다.


시몬 사도는 열혈당원이었다가 주님의 제자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오늘날의 이란) 지방에서 선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註1)


유다 사도는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와 구별하여 ‘다대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예수님의 친척이었고,

유대 지방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12사도의 명단이 나오는데, 대부분 뛰어난 인물들이 아닙니다.

명성이 자자하거나 화려한 경력을 가진 분들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시몬과 유다’ 사도는 알려진 것이 더 없습니다.

업적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알려지는 일 자체에 관심이 없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매사에 나서는 역할보다는, 뒤에서 뒷받침 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12사도들 중에, 드러난 사도는 빙산의 일각처럼 작고,  빌립, 안드레까지 3~5분,

나머지 사도들은, 빙산의 물에 잠긴 부분처럼, 매사에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계시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 성에 성곽은 12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12사도의 12이름이 있더라. 계21:14

그들은 당당히 교회의 기초석 foundation으로 자기의 귀한 사명을 완수한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러나게 일하는 일꾼도 있고, 드러나지 않게 일하는 일꾼들도 있습니다.


주님의 일은,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면 되는 것이지

드러나거나/안 드러나거나.. 그런 일에 너무 관심가지면 안 됩니다.

자기 사명의 길로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무명의 사도들의 삶에서- 묵상해야 할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사도들은, 크게 드러남 없이, 묵묵히 자기 사명을 다 감당하고,

나중에 거의 다 순교까지 했으며,

신약교회의 영원한 12기초석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너는 너처럼 되어라!

어떤 분이 성경을 읽다가.. 굳센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이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저를 아브라함처럼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지요.

그랬더니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네가 아브라함처럼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그러면 너의 하나뿐인 아들을 내게 바칠 수 있느냐?”


그는 사랑하는 외아들을 아브라함처럼 주님께 제물로 바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아니오.”라고 대답했지요. 그리고 계속 말해요.


“주님, 그렇다면 예수님의 으뜸 제자인 베드로처럼 되게 해주세요.”


이에 주님께서는 “그럼 십자가를 거꾸로 질 수 있겠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는 또 생각했지요. 예수님 곁에만 있고 싶어서 베드로처럼 되게 해달라고 했는데,

(사실은 으뜸이 되고 싶어서 베드로처럼 되게 해달라고 했는데)

과연 베드로처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릴 정도로 예수님을 증거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또 바꿨지요.


“주님, 정말로 죄송한데요. 그렇다면 저를 차라리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처럼 되게 해 주세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는 40년 광야 연단을 받을 수 있겠느냐?”라고 묻습니다.

이 역시 할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말이 40년이지, 좋은 환경에서 보내는 것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헤매며 살 수가 없을 것 같았지요. 그래서 그는 울먹이며 묻습니다.


“주님, 그렇다면 저더러 도대체 어떤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까?”


주님께서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셨답니다.


“너는 너처럼 되어라!”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 맞는 고유한 방법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누구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고유한 내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의 능력을 한계 지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 더 읽으실 분 ...................................


 

▲선인장도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가시만 가득 돋친 선인장도.. 때로는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냅니다.

깜짝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 식물원이나 가정에서 선인장 꽃을 보셨겠지요?

어쩌면 다른 꽃들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가시(잎)에서 꽃이 나온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꽃이 더 화려한 것 같습니다.


내 주변에 ‘가시 돋친 사람’도..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사명’이 있습니다.

그가 꽃을 피워낼 때면.. 어쩌면 보통 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도저히 꽃이 필 것 같지 않은 상태에서.. 꽃이 피어나니까요!


오늘 내가

그의 몸에 빼곡히 돋아난 가시를 보기 보다는,

그가 그 가시들 속에서 피워낼 ‘선인장 꽃’을 볼 수 있는 눈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은 불가능하나.., 하나님은 반드시 그렇게 하십니다.



▲쥐가 사는 곳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입니다.

1985년, 어느 탄광에서 일할 때 일입니다.

동료들과 안전등을 비추어 가며 밥을 먹으려는데

맞은편 사람의 등 뒤 기둥 사이로 뭔가 반짝했습니다.


처음에는 유리 조각인 줄 알았는데 움직이더라고요.

안전등 불빛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자세히 쳐다보니, 글쎄 쥐란 놈이 아니겠습니까?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뭐 먹을 게 있다고 이 깊은 곳까지...

내 등 뒤에도 쥐가 있는 듯하여, 옆에 있는 돌을 쥐고 일어나려 했습니다.


그러자 함께 있던 고참 광부가 ‘뭐하려고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저기 쥐가 있다’고 하니, 저보고 ‘그냥 앉으라’고 하더군요.

쥐가 있는 곳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을 뜻한다면서요.


막장에서는, 도시락을 검정 봉투에 넣고 고무줄로 묶어 기둥에 달아 놓습니다.

도시락을 왜 공중에 매달아 놓느냐고요?

9백 미터나 되는 땅속에도 쥐가 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쥐가 막장에서는 환대받습니다.

쥐가 산다는 건 바로 인간이 살 수 있는 또 다른 증표이기 때문이죠.


막장 속에서는 가스 사고가 종종 일어납니다. 석탄은 탄소의 집약체입니다.

그래서 가스가 모여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을 잘못 건드리면 가스 사고로 이어지지요.

그런데 쥐란 영물이 이것을 감지하고 사전에 대피합니다.


쥐는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도시락 일부를 쥐 몫으로 남겨 주었답니다. <이동섭 외, ‘연탄’ 중에서


    우리 주변에 쓸모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오히려 쓸모없어 보이는 그 인간이, 더욱 요긴한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관련글  졸지 않는 임무



註1) 시몬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열심당원이었다. (마10:4, 막3:18, 눅6:15, 행1:13)

'셀롯인'(눅6:15, 행1:13-헬라어)이나 '가나안인'(마10:4, 막3:18-히브리어)이란 말은

모두 그의 별명으로, 그 뜻은 '열심가'라는 뜻이다. 

-그는 예수님의 형제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다. (마13:55, 막6:3)                                                     ▣ 리더쉽,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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