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되다 마5:1-3 -인터넷설교 스크랩, 출처-
▲사람은 누구나 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고 있지요?
행복하게 되려고.. 공부도 하고, 결혼도 하고, 사업도 하지요?
행복하게 되려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지요?
그렇다고 사람이 모두 행복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한 것 같은데.. 불행한 사람도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불행한 것 같은데.. 행복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겉으로 보기에는 불행한 사람 같은 데.. 실제로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행복의 비결 즉 자족의 비결을 인생학교에서 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내가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1~12
우리들도 행복의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주님의 산상 설교를 잘 듣고 마음에 새기면
우리들은 행복의 비결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마5:3절은, 헬라어로는 "Makarioi hoi"로 시작합니다.
영어로는 "Blessed are those"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이러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복 있는 사람은..’이란 말이 문장 제일 서두에 강조적으로 나오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신다’는 강력한 표현입니다. (한국어와 어순 다름)
주님은 우리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오늘부터 새롭게 배우기를 바랍니다.
▲1. 영적 + 육적인 가난을 모두 포함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5:3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영적’으로만 해석합니다.
즉 물질은 얼마든지 많아도.. 마음만 가난하면 된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뿐 아니라, ‘육적 생활’도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눅6:20에서는 주님께서 그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했습니다.
(아예 ‘육적 가난’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마음과 몸은 언제나 함께 갑니다.
마음과 몸에 무엇이 가득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마음과 몸이 비어서 가난하게 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행복론과는 정반대되는 가르침입니다.
이 세상의 행복론은 무엇을 가득히 채운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지식과 재물과 부귀영화를 가득히 채운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난"이 복된 삶의 열쇠요 관문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비우는 것이 복의 기초가 된다고 선언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좋은 복들을 우리들에게 채워주시려고 할지라도
우리들의 마음과 몸이 이 세상의 생각들과 재물과 부귀영화로 가득히 채워져 있으면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묵은 포도주가 들어있는 그릇에 새로운 포도주를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묵은 포도주를 쏟아버리고 그릇을 비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비우는 가난한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2. 친히 가난한 삶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하신 분이
친히 가난하게 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라는 설교는 설교에 그치지 않고,
주님은, 당신의 삶 자체로.. 그 진리가 참 진리임을 웅변해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가난하게 되신 분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8:9
그분은 영적으로만 가난하게 되시지 않고, 육체적으로도 가난하게 되시었습니다.
주님의 삶은 가난 자체였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거처하실 곳이 없으셨습니다.
주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첫 걸음이라고 보여주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한 곳을 읽습니다. 빌2:6-8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분은 친히 자신을 비워 가난하게 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바로 영원히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길임을 보여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주님이 자신을 비어 가난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9~11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리시고, 자신을 비우시고, 친히 가난해 지셨습니다.
그래서 영광의 자리에 이르는 복 있는 자가 되시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버리고 비워야 합니까?
▲3. ‘자기 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비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뜻이 옳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고집합니다.
자기의 습관과 전통과 가치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선하고 착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사울처럼 성도를 핍박하던 사람도, 과거에 자기가 의인이라고 착각했습니다.
눅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도 자기가 의인이라고 착각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의인이라고 착각을 하며,
자기의 의로운 생각을 나타내 보이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람은 ‘자기 의’에 대한 과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것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첫째 걸림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는 첫 걸음은 ‘자기 의’를 버리고 비우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 의’를 버리고 자기를 비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기 의’를 버리고 비우면 비울수록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귀한 종들은 모두 이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명예와 의를 누더기처럼 버리고
자기의 죄를 낱낱이 드러냈을 때, 하늘의 축복이 충만히 임했습니다.
이사야가 화로다 나는 망할 자로다 라고 고백하며 사6:5
자기의 의를 모두 누더기처럼 던져 버렸을 때..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히 임했습니다.
모세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나는 말에 능치 못한 자입니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입니다 라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출4:10~12
예수님께서 내 뜻대로 하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자기의 뜻/고집/의지를 버렸을 때..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이 임했습니다. 마26:39
사도 바울이 자기의 모든 지식과 전통과 종교적 의를 배설물로 여기며 던져 버리고
자기를 죄인 중의 괴수라고 불렀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충만히 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인간적인 것 본래적인 것을 다 비워버렸습니다.
자기 자신을 가난하게 비울 때..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축복이 넘치는 것을
친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로 여기노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노라. 빌3:7~8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기의 본래의 성품이나 인격에 신뢰를 두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위나 재능을 신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가 받은 교육이나 학위 따위를 조금도 자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고백한대로 이와 같은 것들을 분토로 여기고 방해물로 생각하는
"낮아진 마음"의 태도를 말합니다.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 속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만을 의뢰하는 겸손한 마음이 곧 가난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사람을 붙들어주시고 은혜와 축복을 채워주십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는 첫 걸음은.. 자기 의를 버리고 비우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을 버리고.. 자기 집착을 버리고.. 자기 의를 버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첫 걸음입니다.
▲4.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비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돈을 사랑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눅16:14
이것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또 하나의 걸림돌입니다.
예수님은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도 없고
복을 받을 수도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을 향해서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고 부언하셨습니다. *부언 : 덧붙이는 말
그러나 부자 청년은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마음과 몸을 돈에서 비우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므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어서 그 다음에 주님이 하신 말씀이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19:23~24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16:13
성경은 많은 곳에서 재물에 대한 애착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경고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6:10
복 있는 사람이 되는 첫 걸음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비우되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비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비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게 된다고 사도 바울이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비우면 비울수록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성 프랜시스는 자기가 물려 받은 유산과 재산을 모두 버리고
‘나는 가난이라는 여자와 결혼했다’고 선언하며 가난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는 만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복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장기려 박사도 한 평생을 무소유자로 가난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이야말로 만인의 사랑과 칭송을 받는 복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물론 하늘에서는 더욱 더 큰 복 있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말세 교회를 대표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자랑거리는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계3:17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엄한 책망을 들었습니다.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비우는 일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첫 걸음입니다.
▲5. 자기 유익과 행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비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유익과 행복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유익과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자기의 유익이나 행복을 포기하고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의 유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어거스틴은 32년 동안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발견한 다음에야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는데
그 후부터는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에서 떠나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아프리카 주민들의 유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결국 그는 만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 되었고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삶의 기본 원리는 자기의 유익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유익이나 행복을 포기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유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그와 같은 자기 행복 포기의 삶을 이렇게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롬9:3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즉 피의 제사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니.. 빌2:17 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그 길을 걸었습니다.
자기의 행복과 유익을 포기하는 가난한 삶의 길을 걸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그 길을 걸었습니다.
자기의 유익과 행복을 포기하면서, 나환자들의 유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만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복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파송하고, 협력하는 선교사님들도..
자신들의 가장 황금기에.. 이 길을 걷고 계신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 몸의 유익과 행복을 포기하고
자기들의 몸이 병들어도 상관치 않고
자기를 가난하게 비우면서..
자기 유익과 행복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외롭고 힘들지만 이들의 걸음은 복 있는 자들의 걸음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바로 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주님이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
그들은 이 복을, 지금 이미 선교지에서 충분히 누리고 있을 줄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편안하고 따뜻하고 배부른) 여기 한국 땅에서 누리지 못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는 천국이 임하는 복을 말입니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우리도, 그 복을 지금 얼마든지 누릴 수 있습니다.
특별히 자기 유익과 행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비워내고,
이웃과 형제를 위하여, 나 자신을 내어주고 섬김을 삶을 실천할 때 입니다.
금년(12월)이 다가기 전에..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봅시다.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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