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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글 모음 (9) 긍휼사역에 관한 2226

LNCK 2009. 12. 11. 20:12

 

◈조각글 모음 (9)                         마27:24                     모두 스크랩 글



'긍휼 사역'에 관한 조각글 모음

 

 

◑복음서에는 두 개의 대야가 나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쓰셨던 대야이고, 또 하나는 빌라도의 대야입니다.


<빌라도의 대야>는 뭐였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하고서,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자기 손을 씻었던 ‘회피의 대야’였습니다.     마27:24

의인이 죽든지 말든지, 나만 살겠다는 ‘회피, 방관, 이기심’이었습니다.


오늘도 세상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고개를 돌리고, 자기 손만 열심히 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저들의 굶주림과 아무 관련이 없다!’

빌라도와 같은 태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야>는 사람을 섬기고 더러움을 씻어내는 대야였습니다.

누구든 수용할 수 있는 ‘겸손의 대야’였고,

죽음을 앞두고 애끓는 심정으로 사랑했던 ‘사랑의 대야’였습니다.


오늘도 노숙자/행려자/독거노인 사역을 하면서

그들을 씻기시는 분들은

‘예수님의 대야’를 가지신 분들입니다.



◑굶어도 떳떳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중시하는 가치관


<오늘날 노숙자/행려인들 중에.. 많은 분들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1919년 3월 22일, <삼일 만세운동>이 터진 직후, 조선총독부 거물급 관리들은

한국 주재 선교사 대표 9명을 초청하여 좌담회를 가졌습니다.

 

이 좌담회의 목적은, 삼일운동의 근본적 원인을 분석하여

재발을 막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나온 선교사들은, 모두 20년 이상 조선에 살았던 고참들이었고

게일과 마팻은 30년 이상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 선교사들이 의견을 모은 것은.. 한국인의 마음세계(정신세계)는

물질세계를 압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게일 선교사는 이 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조선인은 육신이 편해도 마음이 편치 않으면, 육신의 위안을 큰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고대문화로부터 이어졌고, 그 작용이 복잡합니다.

나는 그 정신세계를 존경합니다.”


평양에서 30년 간 전도한 마팻 선교사는, 이 회의에서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조선인에게 물질보다 중요한 것은 ‘바른 것’, 곧 ‘의’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굶어도 사람답게 대접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른 대접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 회의에서 선교사들이 분석한 것은

조선인은 굶어도 떳떳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미년 만세운동을 일으킨 것은, 물질적으로 보다 나은 생활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굶어도 정의가 강 같이 흐르고

사람답게 대접받는 성경적인 인간 해방을 외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노숙인/행려인들 가운데도, 그 정신세계가 올곧고 꿋꿋하신 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노숙인이라고 혹시 무시했다가는.. 큰 실수 하는 것입니다.  



◑연민과 동정이 있는 어리숙한 사회가 더 좋다


거리에서 만나는 노숙인은 대부분 ‘불쾌한’ 모습입니다.

잔뜩 술에 취해 아무 곳에나 드러누워 자거나 불결한 손을 내밀며

적선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행패를 부리고 욕설을 하는 노숙인을 마주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신앙인의 선행에 대한 ‘의무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느꼈을 것입니다.


어느 교우가, 노숙인 사역을 하는 저를 의식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걸을 하는 노숙인을 돕고 싶은데, 구걸한 돈으로 술을 사서 마신다고 하니

돕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냉정하게 뿌리쳤지만,

죄를 지은 것 같고, 마음 한구석이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네요.”


저는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돕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돕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은 알코올 중독자 노숙인이 술 한 잔을 더 마실 수 있을 만큼

어수룩한 구석도 있어야 하니까요.


그러나 구걸한 돈으로 술을 마시는 노숙인에 대해

마음이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냉정해도 됩니다.

그것도 그 사람을 위한 것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노숙인을..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연민과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내 속에 연민과 동정의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연민’과 ‘동정’에서 출발합니다.

연민과 동정이 없는 사회를 어떻게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파리의 거지


*후원금을 받으시는 분들에게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기도 편지 newsletter를 좀 더 감동적으로 쓰실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거지처럼 구걸해야 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고요.


프랑스 파리에 가면, 누구나 걸어보는 미라보 다리가 있다.

그 다리 위에서 한 맹인 거지가 날마다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런 글귀를 적은 도화지를 들고 있었다.

‘저는 앞을 못 보는 맹인입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하루는, 어떤 노신사가 그 맹인 앞에 멈추더니, 말을 걸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실례지만, 하루에 얼마나 버십니까?”


맹인이 대답했다.

“예, 많이 못 법니다. 사람들이 인색해서 하루에 약 5프랑 정도밖에 법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제가 잠시 도와드려도 될까요?”


그러더니 그 노신사는,

그 맹인 거지가 들고 있는 도화지 위에다가

싸인펜으로 몇 자 적어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기 길을 갔다.


약 1주일이 지났다.

그 노신사가 거지 맹인 앞에 다시 나타났다.

“요즘은 수입이 어떻습니까?”


“선생님, 참 신기하네요.

선생님께서 몇 자 적어주신 그 다음부터는

하루에 50프랑씩 들어옵니다. 수입이 10배나 늘어났어요!”


그 노신사가 몇 자 적어준 내용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아름다운 봄이 왔군요. 그러나 저는 그 아름다운 봄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낭만적인 프랑스 파리 시민들에게

‘저는 앞을 못 보는 맹인입니다. 도와주십시오!’ 라는 글귀보다는


‘아름다운 봄이 왔군요. 그러나 저는 그 아름다운 봄을 볼 수 없습니다!’

라는 약간 시적인 표현이,

그 다리를 산책하던 시민들에게, 더욱 호소력이 있었던 것이다.



◑Thomas a Kempis「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에서 이런 교훈을 줍니다.


“십자가가 올 때 자진하여 그 십자가를 지면.. 그 십자가가 너를 지고(끌고) 간다.

그러나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면.. 그곳에서는 더 큰 십자가가 너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도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사모했지만, 그 중 소수만이 실제로 주님의 십자가를 걸머졌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과 잔치에 함께 하길 원했지만, 그 중 소수만이 주님과 금식하기를 원했다.

 

모든 이들이 주님과 함께 기뻐하길 원했지만, 그 중 소수만이 주님을 위해 고난을 견디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기적에 열광했지만, 그 중 소수만이 십자가의 오욕을 같이 나누었다.”


 

◑전철역 성만찬         


얼마 전의 일이다. 나는 회의 차 지방에 갔다가

밤늦은 시간에, 집 가까이 있는 국철 역에 도착했다.

역 광장으로 내려오니, 참으로 흐뭇한 광경이 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국철 역을 배경으로 숙식을 해결하고 계시는 노숙자분들을 위해

인근 한 교회신자들의 무료급식 봉사가 한창이었다.


저희 수도회에서도 노숙 청소년들을 위해 뭔가 해야 되지 않겠냐는 논의가 있어

저는 한참동안 바짝 다가가서 유심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봤다.


저를 놀라게 한 것은 봉사자들의 일사 분란함이었다. 손발이 척척 맞았다.

배식봉사를 하시는 분들, 뒷정리를 하시는 분들, 질서를 잡는 분들...

아마도 많은 연구와 시행착오, 기도 끝에 얻어진 결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봉사자들이 환한 얼굴과 기쁜 마음으로

봉사에 전념하고 있음이.. 보기에 좋았다.


줄은 모두 세 줄이었다.

첫째 줄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쇠고기 국밥을 나눠드리고 있었다.

저도 ‘한 그릇 받아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냄새가 구수했다.

국밥을 받아든 분들의 얼굴이 일순간 환해졌다.

잠시나마 행복함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그분들에게 그 순간은 아마도 천국을 맛보는 순간이었으리라!


둘째 줄에서는 긴 밤을 꼬박 새우잠을 자야할 노숙자 형제들의

새벽녘 출출함을 달래주기 위해

먹음직스럽고 커다란 빵이 한 덩이씩 나눠지고 있었다.

보너스로 빵까지 받아든 분들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깃들었다.


세 번째 줄에서는 후식으로 커피를 원하는 분들에게 일일이 타드리고 있었다.

노상이었지만, 소박했지만 정성이 담긴 풀코스 서비스를 받은 분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20분 이상 배식하는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저를.. 흘끔흘끔 바라보시던

봉사자 아주머니께서 참다 참다 못해.. 제게 한 소리 크게 외쳤다.


“아저씨, 백날 거기 서 있어봐야 소용없어요. 아저씨도 저 뒤로 가서 줄 서세요!”

‘%*@^~*?’ 


아주머니의 한 마디에 제가 받은 충격이 컸지만

당시 역 앞에서 저는 느낀 바가 많았다.


밤늦은 시간 잠깐이었지만, 역전에서 있었던 그 소박한 행사(무료급식)는

진정 감동 깊은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소박하지만 정성을 다해 준비한 따뜻한 음식들이

세파에 지친 이웃들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사랑과 나눔의 축제,

다름 아닌 최후의 만찬, 즉 미사였다. (가톨릭 신부님의 글)      <이 단락 출처 :   몸에 밴 사랑의 실천


 

.................................... 더 읽으실 분 ..................................



◑‘우리 물터’ 이야기


예전에 있던 본당에서 노숙자와 행려자들을 위해

‘우리 물터’라는 빨래와 목욕 시설을 자그맣게 운영했습니다.

5월에 문을 열었는데, 첫날 할아버지 노숙자 한 분이 방문을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봄날인데도 16가지 옷을 벗으시더군요.

더 기가 막혔던 일은, 바로 그 한 분이 목욕한 물로, 하수구가 막힌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씻을 곳이 없었길래..’ 하는 마음에

이런 시설을 만들기를 잘했구나 싶었습니다.


‘우리 물터’를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한 젊은 친구는, 노숙자로 생활하다가 간신히 신문보급소에 들어가

밤에는 보급소 한구석에서 잠을 자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밤이면 너무나 외로워서.. 차라리 길거리 무료급식을 먹으며

옆의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낫겠다 싶어

다시 노숙생활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 가운데도

이런 분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노숙자나 행려자들을 쳐다보면서

‘왜 저 사람들을 도와주는가? 도우려면

차라리 성실하고 장래가 유망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낫지 않은가?’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도움 받을 자격도 없으니

싹 쓸어다 도시 바깥으로 내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율법사)들은

예수님이 왜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느냐고 못마땅해 했습니다...


가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사람,

깔끔하고, 정결하고, 학식 있고, 제도나 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 가운데

‘저 사람은 왜 죄인들과 어울리느냐?’고 못 마땅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환영하시고

그들과 음식을 함께 나누셨다는 사실을 기억시켜 주고 싶습니다.



◑쇼파 밑의 할머니


저희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양로원에는 스물두 명의 할머니와 수녀 두 명, 주방 자매님 한 명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봉사자들이 오셔서 크고 작은 일을 함께 풀어 나갔습니다.


할머니들은 성격도 다르고 삶의 여정도 달라 다투기도 하고

서로 사랑을 차지하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그중 한 할머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를 좋아하고

무슨 일이건 참견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아침에 잠깐 뵙고 어디에 계신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가출한 것은 아닌지 불안하고 난감했습니다.

면사무소에 연락해서 방송을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도 하고

할머니께서 잘 다니시던 곳을 가 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저는 평소 제가 섭섭하게 해드린 것은 없는지 살펴보게 되었고

왠지 저 때문에 어디로 사라지신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방송을 했지만 소식이 없었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다가 다시 한 번 구석구석 찾아보기로 하고

거실과 소파 밑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소파 밑에 사람 같기도 하고, 물체 같기도 한 것이 있어

손전등을 비추어 보니.. 할머니께서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꼭 끌어안으며

“할머니, 제가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시는구나!” 하면서 한참 안아드렸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특유의 말씀으로 “왜 그려슈?” 하며 빙그레 웃으시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왜 그러슈?” 한마디로

우리의 어수선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잃었던 할머니를 찾은 안도감에, 한바탕 웃으며 모두 모여 파티를 했습니다.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 드릴 때

우리에게 오는 기쁨은 배로 늘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빈곤과 빈부 격차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면, 빈곤 계층이 7백만이나 된다고 합니다.

‘20대 80의 사회’가 의미하는 것처럼

빈곤 문제는 이제 빈부 격차 문제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88만 원 세대’라고 불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

결식아동과 노숙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해외 명품’ 구입을 위한 해외 나들이가 늘어나고

‘1억7천만 원짜리 벤츠’가 홈쇼핑에 등장합니다.


빈곤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70억 인구 중에, 빈곤 상황에 처한 사람이 15억 명을 넘어선다고 합니다.

빈곤 문제는.. 소말리아·북한 등 절대적 빈곤 상태에 처한 나라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남미를 위시하여 아시아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을 보면

100명 중 20명이 영양부족이고,

1명은 빈사상태이고,

15명은 비만이라고 합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간다고 합니다.

비타민 A의 부족으로 3분에 1명씩 시력을 상실한다고 합니다.

세계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5천만 명이 만성 영양실조 상태라고 합니다.


반면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곡물의 4분의 1이

부유한 나라의 소 사료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곡물 값을 유지하기 위해, (남는) 밀을 태우거나 바다에 버린답니다.


미국은 한 해 군사비로 5,287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이크업을 위해서 매년 180억 달러,

향수를 사기 위해 150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내가 한 해 10불이라도 내지 않으면, 위에 언급한 화장품/향수 사는 사람과

'인색하다'는 면에서는.. 전혀 다를 바 없이 똑같습니다.) 



◑외팔이의 감사 (유머)


한 외팔이가 있었습니다. 평생토록 외팔이라고 놀림 받았던 그는

너무 괴로워 자살을 하기로 마음먹고 바닷가에 갔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양팔이 없는 사람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갑자기 궁금해진 그가, 춤을 추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지요.


“아니, 팔이 하나밖에 없는 나도 괴로워서 죽고 싶은데,

당신은 양팔이 없는데.. 뭐가 그렇게 즐거워서 춤을 추고 있습니까?”


그러자 양팔이 없는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너도 똥꼬 한번 간지러워봐라. 임마.”


팔이 하나뿐인 남자는 그 순간 '번쩍' 하는 기분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제 한 팔 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한 팔이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든 것입니다.

 

 

      “3년 만에 쇠고기 국을 처음 먹어 보았어요!”         #2149에서 가져온 글

 

저희가 <사랑마루 사역>을 통해서, 인근 지역에 무료급식을 봉사하고 있습니다.

5시에 준비 팀이 도착하고, 그리고 배식 팀이 6시쯤 도착합니다.

6시 반부터 배식이 시작되고, 8시까지 (1시간 반 동안) 식사 나눔이 있고,

이후에 또 정리하고 준비하는 이런 과정이었습니다.


지난 목요일 아침에 ‘사랑마루’에 한 할머니가 오셨는데

그 할머니가 그날 아침에 무를 썰어 넣은 쇠고기 국을 받아들고 하시는 말씀이

‘3년 만에 쇠고기 국을 처음 먹어 본다’고 하며 울먹이셨다고 합니다.

그 인근에 사시는 독거노인 할머니였다는데요,


여러분 사실 우리 주변 아주 가까운 곳에 이런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주하게 살다보니까

우리 주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잘 모릅니다.

이런 점에서 ‘사랑마루’는 참 잘 시작한 것 같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평소에 여러 가지 이유로 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분들이 아주 헌신적으로 이 일에 앞장을 서시고

또, 우리 성도님들이 함께 동참을 해서 이 사역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 구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