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려면.. 살전5:16~18 09.11.22.설교스크랩/정리
오늘 추수감사주일에 ‘감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사도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우리는 범사에/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현실은, 당장 먹고 사는 일이 힘들어서, 또한 자녀가 속 썩여서.. 불평이 나오는데요?
◑‘범사에 감사’의 선결조건
본문에, 범사(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하기 전에
2가지 권면의 말씀이 먼저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입니다.
저는, 이 2가지의 실천이
범사에 감사하는 삶으로 들어가는 선결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바울사도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치밀한 신학적 구조를 가지고
편지를 썼다고 생각진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항상 기뻐하는 일과 끊임없이 기도하는 일이
범사에 감사하는 일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바울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일과 ‘끊임없이 기도하는’ 일,
이 두 가지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으로 들어가는 열쇠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한 해를 뒤돌아보며, 정리하는 시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하루를 살면서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과연 몇 번이나 드렸었나요?
‘주님, 금년에도 무슨 무슨 일로 인해 주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어떤 어떤 일로 인해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적어도 5번 이상 이 고백을 드리신 분은.. 지금 신앙상태가 양호하다는 신호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것은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감사’ 한 가지만 제대로 되면.. 다른 모든 것은 얼추 90% 다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 항상 기뻐하고/쉬지말고 기도하니까.. 얼추 다 된 것입니다.
그럼 ‘범사에 감사’가 안 되는 분이 혹시 계신다면,
그 원인 2가지를 살펴봅시다.
◑항상 기뻐하라
▲주님의 주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항상 기뻐합니다.
우리는 보통 바라던 것이 이뤄질 때.. 기뻐하고,
내가 바라던 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슬퍼하거나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질 때도 있고,
아무리 원해도 이뤄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 삶에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누리는 기쁨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내 바램과 내 기대입니다.
변덕스럽고 이기적이고 일시적인 내 바램과 내 기대에 따라
기뻤다가/슬펐다가.., 행복했다가/불행했다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내 바램과 내 판단, 그 불완전한 기준을 내려놓고
주어진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 어떤 결과, 어떤 순간에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일은 받아들임의 문제입니다.
▲내게 기쁨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 입니다.
너무나 자명한 사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조차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은.. 냉정하게 말해서..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은 존재입니다.
우리 생명의 처음과 마지막을 우리가 선택하지 않습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탄생으로 태어났고,
피할 도리가 없는 죽음을 언젠가는 맞아야 합니다.
탄생과 죽음 사이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내 계획과 내 판단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도대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을 통해서
내 인생의 행로가 결정되어 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삶은 받아들이지 않을 때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원든/원치 않든.. 기쁜 것이든/슬픈 것이든,
내가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내 삶은 범사에 기뻐하게 됩니다.
결국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이고, 롬8:28
또한 그렇게 합력하여 선으로 이루어질 것을.. 내가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진호를 주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자폐아 수영선수 김진호 군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TV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송하기도 했었는데,
진호군의 어머니가 한 일간지에 수기를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주제와 관련해서 잠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증거를 보여달라고 울고 또 울었는데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다.
진호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동안 두 번이나 초등학교 입학을 유예했고
세 번째 입학통지서가 날아온 뒤 더 이상 입학을 미룰 수 없었다.
입학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했다. 아홉살이나 먹은 진호는
여전히 엄마라는 말도 못할 뿐 아니라 글자도 전혀 알지 못했다.
기도에 매달렸다. 진호가 학교에 무사히 다니게 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드디어 입학하던 날, 담임선생님께 진호에 대해 쓴 장문의 편지를 전해주고 나왔다.
다음날 선생님은
“진호 어머니 얼마나 힘드세요. 어제 주신 편지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했다.
선생님은 내가 교실에 들어가 진호의 수업을 도와주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런데 39일째 되는 날, 선생님이 말했다.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어머니께 수업에 들어오라고 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는 없네요. 저도 점점 불편하고요.
수업 중에도 진호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이제 교실 밖에서 진호를 지켜보는 것이 어떨까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진호가 보여줄 행동이란 불을 보듯 뻔했다.
집에 돌아와 엎드려 울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내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그때 마음속에 음성이 들렸다. 진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그 아이는 내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다.
네 소유라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맡겨준 대로 키워라. 그 아이에게 내 계획이 있다.”
내 입에서 회개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 앞에서 진호를 때렸던 일, 말을 가르치겠다고 회초리를 휘둘렀던 일,
말을 못 알아들어 감정대로 학대했던 일들이 떠오르며
나를 불길에 던져 넣어 태울 것처럼 무섭게 타올랐다.
그러고 보니 자폐를 발견한 후 아홉 살이 될 때까지
한번도 진호를 이해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내가 고통스러워 몸부림쳐왔을 뿐이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뱃속 깊숙이 곪고 아린 고름이 빠져나와 버린 듯 후련했다.
하나님은 먼저 나를 치유하기 시작하셨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감사했다.
샤워를 하면서, 음식을 만들면서, 운전을 하면서, 청소를 하면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기쁨이 충만했다.
그때부터 진호는 더 이상 내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라 나를 구원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나의 삶에도..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어떤 진호’가 있지 않습니까?
사막 같은, 목마름 같은, 고통의 가시 같은 그 어떤 것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어떤 상황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받아들여라! 그리고 항상 기뻐해라!’
사막과/목마름과/고통의 가시는.. 어쩌면 우리를 위한 양식이요 축복인지도 모릅니다.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은 기쁨의 샘입니다.
받아들일수록 기쁨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고통이 있으십니까?
그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 사도바울이 고백한 대로 ‘그 은혜가 내게 족한’ 고통입니다.
미움을 받고 있으십니까?
자기를 저주하는 시므이를 보고, 다윗이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저를 보고 나를 미워하게 하셨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이 그 미움과 저주 때문에 혹시 선으로 내게 갚아주실지 모릅니다. 삼하16:12
이것이 바로 항상 기뻐하는 삶의 비결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다보면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굳이 우리의 보고를 받으셔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리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기도 안하시는 분들이 주로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실제로 우리는 기도할 때
종종 하나님이 모르실까봐 알려드리느라 애쓰는 사람처럼 기도합니다.
혹시 바쁘셔서 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계셔서.. 내가 조바심 나서,
가능한 많이 알려드리고, 가능한 빨리 알려드리려고 정신없이 기도 합니다.
어쨌든지.. 그런데 기도에 대해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우리의 사정을 아뢰어야 하는 이유는 2가지입니다.
▲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끊임없이 자각하기 위해서입니다.
희한하게도 구체적인 삶의 사정을 아뢰다 보면
문제가 정리되고 해결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문제의 근원인 내가 보이게 됩니다. 내가 문제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도대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고주알미주알 아뢰며 기도하는 중에 깨닫게 됩니다.
▲2.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방식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사정을 아뢰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과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임을 깨달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기도 외에 달리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는 방법을 아십니까?
우리는 엉성해도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렇게 기도로 나아오는 우리를..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기도는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하다는 확신에 불탈 때면
매일 1시간 씩, 매주 하루씩, 일년에 한 주간씩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도 합니다.
▲마치는 말
모든 일(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그것은 기쁜 일이든/슬픈 일이든
있는 그대로/내게 주신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즐겁든/괴롭든..
그것을 내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하며..
그 잔을 내가 그냥 단숨에 들이켜 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이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 요18:11
그래서 주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기도하면,
‘내가 발견되어집니다. 내가 깨달아집니다.’
이전에 몰랐던 내가 알게 되어지고,
이전에 미처 회개하지 않았던 죄까지.. 다 고백하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내 입술에서 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주님, (제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을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알고 보니, 이것이 다 주님의 뜻이었군요!’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게 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 부활, 추수, 성탄, 성찬, 장애
※이 3개를 엄격한 순차로 (1→2→3) 보실 필요는 물론 없습니다.
다만 이 3개가 동시적이면서도,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 봐도, 기쁨과 기도가 없이, 범사에(싫은 일까지도) 감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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