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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함께 가자! 2275

LNCK 2010. 1. 22. 14:44

◈일어나 함께 가자!                             아2:10~14                           설교스크랩/편집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에게 구애

아가서는 ‘아름다울 아雅 ’자字를 써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Song of songs’ 라는 뜻입니다.

아가서를 쓴 사람은 솔로몬 왕입니다.

이것을 쓴 시기는 이스라엘이 가장 강대국일 때인 주전 950년 전후로 알려져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사랑하는 여인은 ‘술람미 여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술람미는 헬몬산 기슭의 수넴이란 조그만 동네를 말합니다.


먼저 오늘 솔로몬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하며 청혼을 하는 것입니다.


▲평범한 보통 여인

그런데 왕에게 청혼을 받자면

그만큼 아름답고 품격 있는 여인이 아니겠냐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여인은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여인이 자기 동료에게 하는 고백을 들어볼까요?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검은 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아1:5~6

 

얼굴도 타 가지고 검다 그러지요.

게다가 자기의 그 까무잡잡한 얼굴이라도, 흘겨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지요.


또 뭔가 오빠들에게 미움을 사서 포도원이나 지키고 있던 여자였습니다.

이런 여자에게 어디 아름다울 만한 구석이 보입니까?

이 여인은 정말 평범한,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못한 못난 여인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여인이 솔로몬의 눈에 들었고,

솔로몬은 이 여인이 자기를 따라 오지 않을까 봐 몹시 맘 졸여 하고 있는 겁니다.    주1)



▲이 아가서는 바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또 신약의 개념으로 말씀드리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와의 관계를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 아가서의 말씀이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거기에 내가 빠져 있다면

그 말씀은 우리와는 별개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 이야기고, 우리 교회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가서를 묵상하는 내내 삼중구조로 이해해야만 합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의 사랑의 이야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

그렇게 읽어내야만,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은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되더라도

거기에 나, 또는 교회 공동체 이야기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1. 일어나 함께 가자! (크리스천 자의식)               아2:13

이 말은,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우리끼리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야! 너와 내가 하나가 돼서 뭔가를 해 내자!” 하는 얘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 말씀은 솔로몬 왕이 한 시골처녀 술람미에게 하는 말인데,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감당 못할 하나님이시요,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우리에게 프러포즈 하시는 손을 내 미신 것입니다.

   

그런 분이 8절 말씀대로 ‘큰 산과 작은 산들을 넘어’ 우리에게로 달려오신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자기의 파트너로 여기시고,

즉 자기의 신부감으로 보시고 청혼하러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까닭에 거기엔 우리끼리 하는 외침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묵직한 약속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 회장님이 우리에게 전화해서 “우리 함께 일해 봅시다!”

그랬다면 거기엔 많은 얘기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성도의 자의식 - 성도는 굉장한 신분입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자각은 ‘내가 누군가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를 깨닫는 순간.. 우리의 삶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거지 옷을 입었어도.. 그가 왕의 아들이면, 그의 신분은 왕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평복을 입고 평민처럼 산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낳으셨으면 우리는 신의 아들이요, 신의 딸들입니다.


이런 우리 크리스천의 신분을 나타내는 말 가운데 하나는 ‘상속자’입니다.

‘후사’라고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옷도 허름하고, 사회에서 변변치 못한 지위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상속자’라는 그의 신분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 다른 훌륭한 사람이 아무리 많더라도

반드시 그 상속자에게 상속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평복 속에 감춰진 화려한 신분의 가치를 못 느낍니다. 


그러니까 많은 약속을 보장받고도

실제로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 하고 삽니다.

 

솔로몬의 청혼을 받은 술람미 여인 역시 너무나 엄청난 일이라

처음에는 긴가 민가 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어떤 이들은

매 예배 때마다.. 또는 기도드릴 때마다.. 그 느낌을 받는 이들도 있습니다.↙


내가 너를 구속했고 내가 너를 지명해서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다.   사43:1

내가 너의 이름을 내 손 바닥에 새기었으니.. 너는 내 거다.   사49:16

너를 젖먹인 생모는 혹 너를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거다. 내 것이기 때문이다. 사49:15


여러분 모두가 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발견이 습관처럼 되어야 합니다.

한 번 이 시간, 자기 자신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받은 나!”        



▲2. 주님은 ‘밝고 명랑한 관계’을 원하십니다.   2:11~13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에게, '일어나 함께 가자'고 하면서

그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2:11~13 


아시는 대로 유대 땅은 겨울철이 우기입니다.

해서 비가 그치면 곧 바로 봄입니다.


지금 우리가 읽은 것은 화려한 봄철이 시작될 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일어나 함께 가자’ 하는 것은 모든 게 약동하는 이 계절에

‘우리 결혼식 올리러 왕궁으로 가자’ 하며 신부를 부르는 소리인 것입니다.


거기엔 뭐 하나 어두운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환희가 있고, 명랑함이 있습니다.

 

우리의 반응도 이런 요청에 부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늘 어둡게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두 가지를 병행해서 주시는 이유

하나님은 결코 힘든 채로 우리를 언제까지나 놓아두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늘 형통하게만 하시지도 않습니다.


전도서 7장에 보면, 두 가지를 병행해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7:13~14


만약 사람에게 어느 한 쪽만 계속된다면,

곤고한 날만 계속된다든가.. 반대로 형통한 날만 계속된다든가 하면..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곤고하기만 하면.. 지쳐 죽을 것이고

반대로 형통하기만 하면.. 인간은 금방 타락하기 때문입니다.

형통과 곤고를 병행토록 하시는 것이 사실은 우리를 위한 배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할 일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엔 그 동안 지키신 날들을 되돌아보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께 ‘밝고 명랑하게’ 반응해야 하겠습니다.

사실 성령충만한 성도는 그렇게 반응합니다.

곤고한 날들에도.. 뒤돌아보며..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나에게 무관심 하지 않습니다.

어떤 콩쿨이나 작품 응모에 출품하는 사람들은 늘 비슷한 걱정을 한답니다.

혹 심사위원들이 내 작품을 안 보고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랍니다.


그런데 심사위원들 입장에서는 어떠냐 하면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늦게 들어 온 작품이라도 꼭 본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나중에 보면 꼭 그렇게 항의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자기 작품을 봤다면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류의 걱정은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혹 내 처지를 하나님이 돌아보시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는 않으실까?’ 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 형편을 아신다면 하나님은 가만히 계셔서는 안 되는데..’

그런데 무소식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절대 모른 척 수수방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가서를 보십시오.

술람미 여인에게 보내는 솔로몬의 관심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관심’은

도가 지나칠 정도 입니다.

다만 아직 우리 믿음이 약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오해하고 있을 뿐입니다.


 

▲3.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의 비둘기 같은    2:14

지금 술람미 여인은 어떠냐 하면,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아2:14절에 보면, 술람미 여인은 연약함과 순결함의 대명사인 비둘기로 비유되고 있고,

그 비둘기는 지금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습니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를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아2:14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비록 우리가 죄 많은 죄인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순결하게 봐 주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처지가 지금 누군가 도움의 손길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힘내야 될 것은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가만히 계실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뭔가를 하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

이 아가서는 8장까지로 되어 있는 짧은 성경입니다.

그런데 그 짧은 8장 안에서도 여러 번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2:7

이 말씀이 잊어 먹을 만 하면 또 나옵니다.


자기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왕이 특별히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내 신부가 자고 있으니 원하기 전에는 깨우지 말고 가만히 두라’는 것입니다.

말은 정중하게 부탁한다고 했지만, 왕의 부탁은, 사실은 명령 그 이상입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여기저기 보호망을 쳐 두시고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행여 누군가가 비둘기같이 연약한 우리를 해코지 할까봐

눈을 치켜뜨고 계시다는 겁니다.


이제 그런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 가지 부탁을 하고 계십니다.

사실 말이 부탁이지 사실은 우리를 간절히 사랑하는 고백이나 다름 없습니다.


첫째는, 얼굴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햇볕에 탄 얼굴이 뭐 그리 볼 게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푹 빠져 있습니다.

우리를 보지 않으면 못 견뎌 하시는 것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가 가장 열심을 내야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 얼굴을 주님께 자주 보여 드리는 겁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신부요 연인인 우리와 함께 지내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2:14절 말씀 끝에 보면,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하고 감탄하시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상해 있지 않습니다.


세상 누가 우리를 어떻게 보든지,

하나님만큼은 우리를 여전히 아름답게 봐 주신다는 거지요.

그런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시는데,

우리가 안 보여 드릴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둘째는, 소리를 듣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소리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주님은 우리의 소리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연약한 자들을 위로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소리를 들으십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 때문에 애통해 할 때, 한숨 쉬고 괴로워할 때,

어떻게 할지 몰라 흔들릴 때.. 주님은 우리의 소리를 들으십니다.


여러분이 고난에 처하면 처할수록,

절대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내 소리를 들려드려서 내 존재를 알리는 일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래야 하나님이 뭔가를 일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에,

‘일어나서 주님과 함께 가시는’

‘주님께 더 자주 얼굴을 보여 드리고, 소리를 들려드리기로’

굳게 결심하시는.. 귀하고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 그런데 예수님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가실 수도 있습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관계가 서로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적극적 반응도 매우 중요합니다. 


①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He was about to pass by them  막6:49


예수님이 호수 위로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풍랑에 배가 뒤집힐까봐, 힘들게 노를 젓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스쳐 지나가려고 하시는’ 것일까요?

단박에 배로 오셔서, 노 젓느라 지친 제자들을 도와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이 ‘유령이다’ 그러면서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치자

비로소 예수님은, 배로 오셔서,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②비슷하게 막4:38절에도

풍랑 이는 배 속에서, 예수님은 (모르는 척 하신 것인지) 잠을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하며 소리치자..

예수님은 풍랑을 꾸짖어 잔잔케 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눅24:28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과 동행하면서도

예수님을 계속 못 알아봤습니다.

부활 후에 예수님이 ‘변형’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혼자서 지나가시려’ 했습니다.

그러나 두 제자가 강권하여 ‘우리와 함께 머물자’라고 했을 때

비로소 예수님은 머무셨고, 두 제자는 떡을 떼실 때,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④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유대에 오셨을 때에도,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지만,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옷을 만졌지만,

병이 나은 사람은, 12년 혈루증 앓은 여인뿐이었습니다. 막5:25~34


여리고성에 소경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그 중에 눈을 뜬 사람은.. 소리 지른 바디매오 뿐이었습니다. 막10:46


금년에도 어떤 사람은 ‘술람미 여인’처럼, 예수님과 깊은 친밀함을 누릴 것이고,

어떤 사람은 금년에도 예수님이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릴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과 묵상은 각자 해 봅시다.)                                                  ▣ 사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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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남녀관계란 참 묘한 겁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어울리고,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 커플이 의외로 잘 맺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사랑은 그런 겁니다.

어떤 남자는, 여자가 치약거품을 하얗게 물고 이 닦는데 반해서 결혼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은 어떤 조건이나 소유나 외모 때문에 생기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 속엔 그게 뭔지 모르지만, 그 한 가지 때문에 사랑을 받을 만한 뭔가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사랑 받을 구석이 없다고 미리 단정 짓거나, 비교의식에 젖어서 열등감을 갖는 것은 절대 좋지 않습니다.

건강한 자의식만 가지고 있으면, 어느 날 이렇게 뜻밖의 사람에게 청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