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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 속 작은 내공

LNCK 2010. 1. 27. 01:06

◈직장 생활 속 작은 내공                                      모두 펀 글



◑자연이 들려주는 말


(내 내면이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자연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나무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뚝 서서 세상에 몸을 내맡겨라.

관용하고 굽힐 줄 알아라.


하늘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음을 열어라.

경계와 담장을 허물어라.

날아 올라라.


태양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 이들을 돌보라.

너의 따뜻함을 다른 사람이 느끼도록 하라.


냇물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느긋하게 흐름에 따르라.

쉬지 말고 움직여라.

머뭇거리거나 두려워 말라.


작은 풀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겸손하라.

단순하라.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라. <베로니카 A 쇼프스톨


 

◑ 맛을 아는 멋진 사람 

 

'맛을 안다'는 말은 멋진 말입니다.

누군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맛을 안다'고 하는 것은

곧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노래의 맛을 알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음식의 맛을 알고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경영의 맛을 안다면

그것은 이제 안심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상 가운데 있는 은은한 맛을 안다면

그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맛을 아는 사람은

한 가지 맛에 머물지 않습니다.

새로운 맛을 개발하고 꾸준히 노력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과 관계에는

고유의 맛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삶과 하루의 맛을 아는, 멋진 사람이 됩시다. - 정용철 <희망편지> 중에서

 

미술가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인상을 주려면, 붓으로 미친 듯이 그려야 하고,

연주자의 음악이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려면, 신들린 듯이 연주해야 하고,

소설가의 원고가 독자들에게 흥미를 주려면, 쓰는 시간에, 벌써 흥분되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요리사의 음식이 미식가에게 감탄을 주려면, 손놀림에 기spirit가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일을 마지못해 하거나, 성과 채우기 식으로 하면.. 결과는 보나마나 입니다.

일을 하는 과정부터 재미있고, 경쾌하게, ‘그 맛을 음미하면서’ 일해야 하겠습니다.



1993년 경에 나온 <피아노>라는 영화 아시는지요? 

 

페미니즘 영화로 아주 대표적인 영화로서

영화의 배경은 19세기말, 뉴질랜드의 미개척지에 사는 어떤 영국 이민자에게

실어증에 걸린 에이다라고 하는 한 젊은 미혼모가, 시집을 오게 됩니다.

팔려서 와요. 그 아버지가 팔아버렸어요.


그런데 조그마한 그랜드피아노를 하나 갖고 와요.

말도 못하고 15살 때 아기를 낳은 미혼모로서

이 세상에서 억눌리고, 이 세상에서 자기를 표현하지 못하는 (실어증)

그러한 답답한 환경 속에서

오직 피아노만이 이 여자를 표현해내는 유일한 방법이 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시집을 올 때 피아노를 갖고 왔는데

남편은, 피아노를 옮기려면 숲을 지나야 하는데,

그래서 피아노를 옮기기 힘들다고 해변가에 버려버려요.


그러자 그 남편의 친구였던 이주민 남자가 하나 있는데

그 남자가 피아노를 자기 집에다가 옮겨놓고

여자로 하여금 피아노를 치도록 허락하면서

그런 사이에 이 남자와 사랑이 오고가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나이가 많은 신랑이, 이 에이다의 손을 잘라버립니다.

피아노가 유일한 기쁨인 자기의 젊은 아내,

그래서 그 피아노가 있는 집에 가서 피아노를 치다가

그만 그 집의 남자와 정분이 나버리자, 남편에게 젊은 아내는 손이 절단당합니다.


그런데 손을 잘랐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기 수중에 들어오지 않는 그 자기아내를 보면서

아예 여자를, 그 남자에게 보내버려요.


에이다는, 이 사랑에 빠졌던 남자와 피아노를 싣고

이제 배를 타고 나와서 딴 곳으로 가다가

배가 휘청거리면서 피아노가 바다에 빠지는데

피아노를 배에 묶고 있던 밧줄이, 쭉 바다 속으로 끌려가지 않습니까?


그때 순간적으로 에이다는 자기의 발을 그 밧줄에 매어가지고

피아노가 바다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에 딸려 들어가 버리고 맙니다.

죽기로 작정한 거예요.


그랬다가 물속에 들어가서 완전히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에이다가 몸부림을 치면서 물 바깥으로 다시 솟아올라옵니다.

그리고 나중에, 잘려진 손에 쇠로 만든 손가락을 끼우고,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요.


여러분, 이 영화에서 이 버려진 피아노와, 새로 치는 피아노의 차이가 뭐겠습니까?

<처음의 버려진 피아노>는.. 억압되어진 상태에서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자기표현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피아노가 유일한 생의 표현의 분출구였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이제 물속에 빠졌다가 다시 올라왔을 때 <새로 치는 피아노>는..

억압된 상태에서의 유일한 분출구로서의 피아노가 아니라

자유로운 인격으로서, 생에 대한 자발성을 허락받은 인격으로서

자발성에 의해서 선택한 피아노를 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자녀가, 

    성인에게 직장이,

    학생에게 학교가.. 어쩌면 '피아노'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물에 빠질 때, 우리가 물에 같이 빠져 버리잖아요?

 

    그러나 우리가 그런 어떤 눌림과 억압의 분출구로서가 아니라, 내 자아성취의 우상이 아니라,

    완전히 한 번 빠져 죽고 난 다음에, 다시 새롭게 태어나,

    자유한 가운데서, 자발성에 의해서 연주하는 피아노가 좋다는 것입니다.     < 1883  



◑영화 <조스>의 교훈

 

여러분, <조스>라는 식인 상어 영화를 기억하실 것이다.

저 영화는, ‘상어’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사실은 ‘사람’에 관한 영화이다.


그 영화에 3종류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식인상어 사냥꾼 : 사냥해서, 상어를 제거해 주고, 돈을 벌려는 사람이다.

-식인상어 박사 : 상어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지역 경찰관 : 지역 주민을 상어의 위험으로부터 지키려는 사람이다.


여러분, 누가 식인상어 조스를 잡았는지 아시는가?

제일 나약한 것 같은 케릭터로 나오는 ‘경찰관’이다. 

우락부락하고 힘깨나 쓸 것 같이 나오는 ‘사냥꾼’이 아니었다.

상어에 대해서 잘 아는 ‘박사’도 아니었다.

 

<오직 주민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불에 탄 경찰관이.. 결국 ‘등불’이 되었다.

영화는 ‘사명감을 가진 자가 제일 무섭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을 뜻하는가?

‘사명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돈의 힘을 믿는 사람보다, 지식의 힘을 믿는 사람보다.. 사명감이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등불로서, 이 어두운 시대를 밝히고, 사람들을 살려내려면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결코 지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명감은, 사무엘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는 ‘음성을 듣는’ 체험으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그런 음성을 들으려면,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아주 자세를 곧추 세우고 들어야

비로소 <음성이 들린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는 경우도 있다. 매우 다급할 때는..    <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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