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글락에서 다윗의 위기와 그 회복 삼상30:1~20 -마이크 비클 Mike Bickle 말씀강해14강/정리-
블레셋 땅 시글락에 지내던 다윗은, 강한 신앙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미적거리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그런 와중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보시고, 그 연약한 믿음의 사람을, 구해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시글락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다윗
▲(가드 왕 아기스의 도움으로) 시글락에 피신한 다윗
다윗이 자기를 따르는 무리 6백 명과 함께 광야에 거하다가
이제 가드 왕 아기스 영역으로 피신합니다. 삼상27:2
사울 왕이 3천명의 정예부대를 동원해서, 자신을 추격하니까
차라리 외국 땅 블레셋의 한 영주에게 피신하는 것이, 더 안전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블레셋의 한 성읍인 ‘가드’ 왕 아기스는
다윗과 6백 명에게 ‘시글락’이란 마을을 주어서, 살게 합니다. 삼상27:6
다윗과 그 무리들이, 거기서 1년 4개월 정도 살았을 때였습니다. 27:7
앞서 선지자 갓은, 다윗에게
그가 유대 땅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예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삼상22:5
선지자 갓은 다윗을 따르던 4백인의 무리 중에 1명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쨌든 갓이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예언한 이유는,
다윗이 스스로 살 길을 찾지 말고 '하나님으로 네 피난처를 삼으라' 는 훈련을 시키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한 때 다윗이 유다로 들어갔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사울의 계속된 추격을 받으면서, 모압 땅으로 갔다가, 다시 블레셋 땅으로 피신한 것입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다가 블레셋 땅 가드로 피신한지 16개월이 되었는데,
바꾸어 말하면, 선지자 갓을 통한 하나님의 명령(유대에 머무르라)에
16개월~몇 년 동안, 오래 불순종하며 살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다윗도, 거기에 오래 머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딱히 다른 곳에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있고 싶어서 있기 보다는, 할 수 없어서 지내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에게 피신차 내려갔다가
자기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친 체 하다가
가까스로 살아난 적이 있었습니다. 삼상21:13
본문 삼상27장의 가드 왕 아기스는, 성경에 ‘가드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 라고
기록한 것으로 봐서, 그때와는 다른 ‘가드 왕’입니다. 삼상27:2
참고로, 가드는 블레셋 5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삼상6:17
▲어려움 1.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시글락에서 지내는 동안.. 겉으로는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거기서 무사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자꾸 가드 왕을 속여야 했습니다.
다윗이 아말렉과 전투에 나가서 승리하고, 전리품을 갖고 돌아올 때,
(아말렉은 블레셋 족속이 아님) 그는 그 전리품들이,
자기 동족 유다 족속과의 전투에서 빼앗은 것처럼, 거짓말을 했습니다. 삼상27:8~11
그러자 가드 왕은, 다윗이 자기 민족을 배신한 것으로 곧이 듣고,
다윗이 확실히 자기 휘하에 들어온 것으로 믿었습니다. 27:12
다윗이 갓 선지자의 예언을 무시하고, 시글락에 오래 지내는 동안,
사울 왕의 추격은 피했는지 모르나, 자기 마음이 결코 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둘러대긴 했지만, 그 마음에 안정감을 없었을 것입니다.
▲2. 마음에도 없는 전쟁에 참가하게 되다.
다윗이 (갓의 예언을 무시하고) 시글락에 오래 안주하다가,
점점 더 큰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가드 왕 아기스가,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려고, 출정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입장이 정말 난처해진 것입니다.
가드 왕 아기스를 도와서 동족과 전쟁을 치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드 왕 아기스 휘하에 있으면서, 그를 배신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울며겨자먹기로, 일단 자기 부대를 거느리고, 아기스를 따라서 출정합니다.
(그러니까 비록 이스라엘 땅이 위험하더라도,
다윗은, 갓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에 머물러야 했던 것입니다.)
그때 천우신조로, 전장에 도착하자, 아기스의 다른 장군들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골리앗을 죽인 적이 있는 다윗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기스는, 다른 장군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다윗을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미안하다고 도리어 사과합니다. 삼상29:1~7
그때 다윗은, 자기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정말 난처했을 것입니다.
정말 묘하고 난처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3. 출정했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시글락이 완전히 약탈당했습니다.
남자들이 모두 출정해서 떠났고, 마을에는 부녀자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 전쟁터에서 나갔다가 돌아오는 데 3일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와서 보니, 자기들의 처자식들이 다 포로/노예로, 아말렉에 붙잡혀 가버렸습니다. 삼상30:1~2
이 날은 다윗의 일생에 아마 최악의 날입니다.
그의 도피 생활 10여년에, 최대의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이 크게 다급하다고 했고(greatly distressed, 이런 표현 다른 데 없음)
다윗과 그 무리들이 울 기력도 없도록 소리 높여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리들이 다윗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막 반란이 일어나려 했던 것입니다. 30:6
자기들이 그동안 그래도 건설해놓았던 부락이, 쑥대밭이 되고, 다 불에 탄 것입니다.
▲다윗이나, 그의 추종자들은, 회의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들이 블레셋 시글락에 머문 것은 잘못되었다고.. 비로소 시인했을 것입니다.
애초에 시글락에 오지 말았어야 했었는데..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이라도 유대에 돌아가자니,
자기들을 환영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전히 신변에 위협이 있습니다.
위기를 당한 다윗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30:8
그러면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로
사면초가와 같이 당면한 문제들을, 다윗은 점점 풀어나가게 되는데요..
◑극적 반전, 다윗의 회복과 그 비결
누가 그랬던가요? 하나님은 ‘뒤집기의 명수’라고!
이 최대 위기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상황을 반전시켜 주십니다.
다윗에게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 알고 보니까,
가장 큰 축복의 시기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처신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위기에 몰리면, 당장 시글락을 찾아서 피신합니다.
내 눈에 보기에는, 거기가 안전할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거하는 것입니다.
▲1.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 살펴 볼 점은,
결국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시글락이 불타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불타는 순간이, 자신의 구원의 순간임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시글락이 불타서 주저앉은 것을 보고서.. 자신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새롭게 그의 인생을 세워주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나의 파멸과 멸망의 시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그 순간이 도리어 구원의 시간이 됩니다.
제가 다시 말씀드립니다.
모든 교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다시 새롭게 출발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직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사람만,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개인적 친밀한 교제관계를 갖는 사람만
그의 파멸의 시간도, 도리어 새로운 건설의 시간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파멸의 시간에, 그냥 파멸당하고 맙니다.)
▲2.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삼상30:6
이게 바로 신앙의 신비입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닙니다.'
여호와가 힘과 용기를 주신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여호와를 힘입고, 다윗처럼, 용기를 얻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 기적처럼 용기백배해서 문제를 헤쳐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통사람들은, 위기의 때에 털썩 주저 앉아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이 힘과 용기를 주시는 분’이란 사실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신앙으로 내면화되지 못하니까,
그런 지식은 한낱 공허한 꽹과리의 울림에 불과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믿어지지 않는 걸 어떻합니까!
여러분, 이것이 바로 ‘신앙의 신비/믿음의 신비’입니다.
우리가 교회와서 구해야 될 것, 얻어가야 될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이런 것을 얻어갈 줄 모르고,
대신에 무슨 세상적 축복을 얻어가겠다는 것은.. 신앙의 ABC를 모르는 것입니다.
▲기도로 묻는 다윗
지금 기도하는 다윗 옆에는, 마을이 불에 타서 연기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지금 기도하는 다윗 주위에는, 부하들이 손에 돌을 쥐고 왔다갔다 합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흐느끼며 울부짖는 소리들이 들립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기도의 비결’이 있습니다.
그런 엄청난 위기의 상황을 돌파하는 ‘기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벌써부터 광야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중에, 연마해 오던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다시 한 번, 자기의 비장의 무기(위기상황을 돌파하는 기도)를 꺼내들었습니다.
그것은 기도로 하나님께 묻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응답 받은 대로, 아말렉을 뒤쫓아 가기 시작합니다. 註1)
▲‘다윗은 다윗이고, 나는 나야!, 나는 다윗이 아니잖아!’
많은 성도들이, ‘다윗의 시글락 위기를 기도로 돌파’한 사건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윗이니까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다윗과 같은 믿음의 용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실제로, 내가 비슷한 위기를 닥칠 때,
나는 그 위기를.. 기도로 돌파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좌절하게 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다윗이 아니라서, 그 위기를 돌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웟처럼) 철저히 헌신 되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평소에 철저한 헌신이 되어있는 사람은,
신앙을 타협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지 않고 전적으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다윗의 시글락과 같은 위기를 만날 때에도
다윗처럼 기도로 그것을 돌파하고,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윗이 아니라고/나는 다윗과 다른 사람이라고.. 발뺌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내가 (다윗처럼) 헌신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죄도 안 짓고, 늘 완벽하게 산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늘 죄를 짓고, 실수를 합니다.
본문 사건도, 다윗이 연약해서 시글락으로 들어간 것이 애당초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넘어질 때, 벽에 부딪힐 때, 문제에 맞부딪힐 때,
그것을 기도로 돌파할 정도의 ‘영적인 힘’은 평소에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때 기도할 힘도 없을 정도로.. 자기 신앙이 평소에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헌신’이라는 것은 도덕적 완전주의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물을 수 있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채널은 평소에 열어 놓고 살아야 (친밀히 교제하며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3. (본문에는 안 나오지만) 다윗이 평소에 잘 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늘 회개하는 것입니다. ※관련글: 영적 익사상태 빠져나오기
다윗은, 자기가 실족해서 죄를 짓더라도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삭제delete'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컴퓨터 용어
이것 역시, 오랜 신앙생활에서 나오는 경험(자기만의 노하우)이었습니다.
아무리 회개를 해도, 자기가 용서 받았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이 있고,
회개를 할 때, 자기가 용서 받았다는 확신이 잘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은, 오랜 회개의 경험을 통해서, 점점 더 회개의 방식을
스스로 터득해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명확히 안 나오지만) 다윗은 시글락의 위기를 만났을 때
분명히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은 것’이라든지
‘아말렉을 쫓아가기로 한 것, 그래서 결국 가족을 되찾은 것’이라든지 삼상30:8~20
또 앞으로 설명할 ‘사울의 죽음’도
다 그가 회개한 결과로 주어진 회복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회개의 명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를 만나도 쉽게 돌파할 수 있습니다.
▲가드 왕 아기스가 출정한 그 전투에서, 사울 왕이 사망합니다. 31:1~3
시글락의 위기가.. 놀랍게도 극적 반전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전혀 자기 힘으로 사울 왕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정말 신비한 하나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기 인생의 최대의 걸림돌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물론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4. (제가 이 설교에서 가장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시편18편을 보시면, 그 시작 표제어에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표제어는, 현대에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니라,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저는 이 날이, 바로 삼상31장에서, 사울이 죽임을 당하고,
다윗은 아말렉의 약탈로부터 자기 가족을 다 찾은 (본문의) 그 날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30세 되던 해였습니다.
이 모든 극적 반전이, 하루~이틀 사이에 다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그런 위기의 최고조의 시간에,
다윗이 어떤 심경을 갖고 있었는지, 시18편이 말해줍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그중에서도 18:19절이 다윗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합니다.
(제/설교자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18:19
이 날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입니다.
시글락이 불타는 최대 위기에서 건짐을 받은 날입니다.
그런데 그 은총을 받은 이유를, 한 마디로 다윗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기 때문이야!’
여러분, 이게 참 황당한 말 같지만, 정말 진리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로또에 척척 당첨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기적적인 일이 금방금방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에 들어간 사람은
다윗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기 때문이야!’
세상에 보험을 들어도, 이런 안전한 보험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보험’이라는 것입니다. (돈 낼 필요도 없는 보험입니다.)
정말 인생 최대의 위기에서 구원받은 다윗이 하는 말이
무슨 큰 비결이라도 있을 것 같아서, 조용히 그 비결을 물어보니
의외로 너무 쉽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
여러분,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요, 진리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는 자기 구원이시니, 자기는 누구도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27:1~3
이게 지식으로는 알겠는데, 자기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사람이 있고,
이게 피부에 와 닿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 교제의 깊이>에 달려 있습니다.
정리하면, 기독교 신앙이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서 오는 안전, 확신, 평안.. 이것이 핵심입니다.
세상에서 성공, 출세.. 이런 것으로 기독교를 몰아가는 것은.. 변질입니다.
뿐만 아니라, 혹시 운이 좋아서 성공하고 출세하더라도.. 늘 불안초조 합니다. 그래서 참된 복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런 신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다윗은 적어도 광야 13년의 극심한 환란을 거치면서, 하나님과 친밀함을 쌓아가면서,
이런 신앙이 점점 다듬어져 갔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다윗과 같은 인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관계의 사람이 많이 나오기 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註1)
다윗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지, 성경에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는지, 내면의 음성인지, 꿈의 계시인지.. 분간이 안 됩니다.
문제는, 우리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 음성 듣는 방법’을 연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시고, 보여주시는 어떤 ‘패턴’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을 주시는 각자의 방식’을 터득해 나가야 합니다.
각자가 다른 방식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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