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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0

순례자의 삶의 진솔한 이야기 2311

LNCK 2010. 2. 15. 20:51

◈순례자의 삶의 진솔한 이야기 모음                막1:17                   모두 펀 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1:17



◑왕수도자


세상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수도자들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물론 감명 깊은 강론을 하는 수도자,

맡은 바 일을 무리 없이 원만히 척척 처리해내는 수도자,

수도복이 잘 어울리는 수도자도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가장 수도자다운 수도자, 왕 수도자는 끊임없이 ‘길 떠나는’ 수도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나를 따라 오너라! 하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지체 없이 따라나서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참 수도자의 모범을 봅니다.


수도원 인사이동 기간을 맞아 집을 바꾸시는 선배 신부님들의 모습에서

참 된 수도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배우게 됩니다.


가방 두 개만 달랑 양손에 들고 새로운 임지로 향하시는 선배 신부님들의 뒷모습,

오래된 안경, 다 떨어져가는 소지품, 낡아 헤어진 바짓단,

곧 끊어질 듯한 허리띠를 매신 선배 신부님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수도회의 희망을 봅니다.


사제나 수도자들이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생각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제나 수도자가 지녀야 할 가장 본질적인 자세는 ‘순례성’이란 것입니다. 


순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어느 한곳에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않고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자유로움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짐도 무거울 수 없습니다.

언제나 간편합니다.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니까요.

간혹 목욕탕에 가 보면, 신발장, 옷장이라는 작은 공간이 잠시 주어집니다.

(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간편하게 살 수 있는데,

어쩌면 우리는 마치 이 세상에 천년만년 살 것처럼, 물건들을 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순례, 떠남’은 꼭 물질적 영역만은 아닙니다.

참된 신앙 성장의 첫걸음은 매일 자신을 떠나는 것입니다.

매일 우리의 아집과 이기심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매일 우리를 가두어놓는 "나"란 울타리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홀가분한 자세가 되어 주님께서 부르실 때

즉시 그분을 따라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국>


▲명절 때마다 암송하는 구절

명절 때마다, 우리 집 앞에 보다, 동네 이웃 집 앞에

선물박스가 그득히 쌓이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때마다 속으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되다/행20:35 라는 말씀을 암송하게 된다.

그러면 억지로라도 마음이 좀 편해지기도 한다.


또한 ‘나는 많이 인사할 데가 없어서, 참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도 ‘나도 인사를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교만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명절 인사’를 많이 받는 사람은, 또 그만큼 많이 ‘인사를 드려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선물박스가 수북한 것을.. 그리 부러워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참 인간성이 스스로 실망스러운 것은

‘선물을 주는 것’과 ‘받는 것’의 ‘체감 액수’가 5배는 나는 것 같다.

그만큼 내가 주는데 인색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들도 명절마다 반성하게 된다.


명절이 끝나는 시점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되다/행20:35 라는 말씀을 암송하면서

대충 대차balance를 따져 보면서, 만약 내가 받은 것이 더 많다면..

명절이 다 가기 전에 빨리 나눠주어야 하겠다. 복 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거룩한 권위


권위주의는 몰아내야 하지만, 권위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권위주의자’와, ‘권위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 다릅니까?


권위주의는.. 권위를 고집하고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권위’를 고집하고 집착합니까?

그것은 자기에게 ‘권위가 우러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권위가 자기에게 우러나오는 사람은

굳이 권위를 집착하지 않음은 물론..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권위주의자는

권위가 없기에 권위에 집착하고

권위를 가지고 권세를 부리려는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힘입니다.

힘이 없으면, 그 권위는 여지없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또한 힘 숭배자들입니다.

권력으로 재력을 얻고,

재력으로 인력(man power)을 사고,

인력으로 사업을 극대화하고,

그래서 다시 권세나 권위를 유지하고, 행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권위자는.. 권세를 부리지 않고

권위를 행사하지도 않습니다.

권위의 근본은 힘이 아니라.. 진리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권위를 행사하지 않고

진리를 실천할 뿐이고

진리를 말하고 실천함으로써.. 그의 권위가 드러날 뿐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진리와 겸손과 사랑의 권위였음은 말할 것도 없고

거룩함의 권위였습니다.

마귀마저도 예수님의 이런 권위를 인정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악마마저도 하나님의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하고 고백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권위는 진리와 겸손과 사랑에 있어서 뛰어난,

한 인간으로서의 권위 정도가 아닙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하나님에게서 오는 권위입니다.


우리도 그런 권위를 지닐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첼레노가 쓴 <프랜시스 전기>를 보면

첼라노는 성 프랜시스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지칭합니다.

다시 말하면, 프랜시스에게는 ‘영적인 권위’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어떤 권위를 행사하고 있습니까?                <선>


요한복음을 한 번 주의 깊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에게서 보이는 하나의 행동 패턴이 있습니다.

어떤 이적을 행하고는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할 때 즈음이면

종적을 감추어 버리는 것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쳤을 때도 그랬고,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덩이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신 다음에도 그랬고,

나면서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쳤을 때도 그랬습니다.


언제나, 이적을 행하고 나서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려 할 때면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그분이 이적을 행한 목적은, 자신을 스타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적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보다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세워드립시다.



◑겸손은.. 먼저 인사를 통해서


저희가 운영하는 교육시설들이 지니고 있는 특징 가운데 눈에 띄는 한 가지는

‘교육자들이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입니다. 


새벽미사가 끝나기 바쁘게 저희 신부님, 수사님들은

밥 한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부리나케 정문 쪽으로 달려갑니다.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쪽 저쪽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습니다.

한창 꽃피어나야 할 청춘인데, 채 피어나기도 전에 벌써 시드는 기색이 완연합니다. 


벌써 많이들 삭아버린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신부님, 수사님들 마음도 편치가 않습니다.

고달픈 아이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신부님, 수사님들 마음은 "짠"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려고 마음을 쓰지요. 


"안녕? OO야, 학교 오느라 고생 많았지?"

"OO야, 오늘 점심 때 농구장에서 보자!" 등등

신부님, 수사님들은 아이들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섭니다.

아이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반갑게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교육자가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서서 인사하는 전통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일년 내내 계속됩니다.

50년간 계속되어온 우리 학교의 소중한 전통입니다. 


아이들이 인사하기에 앞서 교육자가 먼저 인사하는 모습,

교사가 아이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모습,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교육자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교육철학인

"겸손의 미덕"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교육자가 자신을 낮춰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설 때

교육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겸손의 덕이란 참으로 실천하기 힘든 덕이지만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실천할 때

그 주변은 얼마나 풍요로워지고 밝아지는지 모릅니다.

인사를 받으려고 기다리기 전에, 내가 먼저 인사합시다!   <국>



◑가장 깊은 어둠 가까이에


오래전 맹인 선교회 식구들과 만날 때였다.

겨울에 차가운 방에서 교리도 가르치고

함께 병원 방문도 하며 기쁘게 지내던 중

한 사람을 통해, 내가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체험을 했다.


‘내가.. 상대방의 자립을 바라지 않고

나에게 의존하기를 바라며 만나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내 만족을 위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자

나는 몹시 비참했고 슬펐다.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 믿으며 살아온 내 존재가 흔들리며

나는 아주 힘든 시간을 한 동안 보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을 깨닫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했다.


돌아보면 그 시간이, 나에게 첫 회개의 순간이라 느껴진다.

내가 이상적이라고 굳게 믿었던 삶의 방식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시고

나를 거짓된 강박관념에서 풀려나게 해주신,

그리고 순수한 사랑의 동기로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신 은총의 시간이었다.   <희>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으면서도 가장 외로운 분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은 혼자 계시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예배 때에는 사람이 우르르 몰려오지만

예배가 끝난 후의 많은 시간과, 일주일의 대부분의 시간에는

예수님은 외롭게 홀로 지내셔야 합니다. 


박윤환 전도사님이 쓴「하나님은 삼등입니다.」라는 컬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삼등입니다.

일등은 '하고 싶은 일', 이등은 '해야 하는 일', 삼등은 '하나님 만나는 일'입니다.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해야 하는 일도 다 마치고,

그 후에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줍니다. 하나님은 삼등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하나님은 삼등입니다.

내 힘으로 한 번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하고,

그나마도 안 될 때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은 삼등입니다.


거리에서도 하나님은 삼등입니다.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내 자신,

그 다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그 다음에야 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삼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에게 일등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도와주십니다.

내가 괴로워 할 때는 만사를 제쳐 놓고 달려오십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 생각 들 때는 홀로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언제나 일등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일등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으면서도 가장 외로운 분, 이 예수님을 알아드립시다.

이 외로우신 분을, 나의 친구로 삼아드립시다.                                                             ▣ 크리스천 삶(리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