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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선교동향과 비서구교회의 책임 2401

LNCK 2010. 4. 13. 20:17

◈21세기 선교동향과 비서구교회의 책임                                              -스크랩글, 출처보기-

                                                                                             정민영 선교사 (Wycliffe International)

 

▲들어가며

2007년 12월에 열린 성경번역선교회(GBT) 총회의 주제는

‘영원한 말씀과 변화하는 세상’이었다.


지난 2005년 국제 위클리프(Wycliffe International) 총회의 주제인

‘변화하는 세상 속의 말씀’(The Word in a Changing World)을 반영하는 이 주제는


한국교회에 친숙한 선교학자 하비 콘(Harvie M. Conn)의 명저

<변화하는 세상과 불변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급변하는 세상에 발 빠른 대처를 해야 할 과제(상황화)와 아울러,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영원히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사40:8)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재천명하는 이중적 의미를 담았다.


이것은 비단 GBT나 위클리프뿐 아니라

세계선교에 참여하는 모든 단체와 교회의 과제인데,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에 근거한

건강한 선교전략의 수립이 우리 모두의 당면현안인 셈이다.


세계선교의 큰 흐름을 적시에 파악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먼저 숲을 본 후에 나무를 봐야 한다는 인식의 원리도 그렇지만,

선교란 고정된 과녁이 아닌 ‘움직이는 표적’을 맞춰야 하는 과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항상 일정한 형태로 계시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히브리서 저자는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히1:1)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의 시대적 섭리를 이해하고 적절히 대처하려면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분별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2008년 국제 위클리프 총회의 주제는 ‘시대를 이해하고 할 바를 깨닫자’

(Understanding the times; Knowing what to do)였다.


다윗이 왕위에 오를 때

다양한 지파와 가문에서 수천에서 십 수만에 달하는 용사들이 나서는 반면

잇사갈 자손에서는 불과 200명만 합류하는데,

그들은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대상12:32)였다.

예수님도 “시대의 표적”을 읽는 영적 시각의 중요성을 말씀했는데(마16:3),

어느 때나 그 시대의 흐름을 읽는 선지자적 지도자가 절실히 요구되는 셈이다.


 

◑1. 급변하는 선교환경


▲1. 세계의 지구촌화/세계화 (Globalization)


21세기 세계의 가장 현저한 흐름은 단연 세계화일 것이다.

뉴욕타임즈 기자인 프리드만은 그의 최근 저서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세계화가 지구촌 곳곳에 미치는 거대영향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이제는 더 이상 한 나라나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물 안에서 일어나는 단절된 현상이 아니라 지구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또 다양한 지역이 지구촌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미국 월가(Wall Street)의 붕괴가 세계경제위기(Global Financial Crisis)로 이어지고,

서해안에서 발생한 원유 유출 사고가 한반도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환경문제에 직결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세계는 문자 그대로 ‘지구촌 마을’(global village)로 변했고,

역사상 최초로 민족국가의 틀을 초월한 헌법아래 하나의 연합국가를 형성한

유럽연합(EU)도 세계화 현상의 한 사례이다.


그러나 세계화가 곧 지구촌 평준화는 아니다. 불균형 발전을 통한

빈익빈 부익부 및 기득권 강화현상이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문명의 이기나 세계화의 특혜를 누리는 집단과 누리지 못하는 집단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채 날로 차별이 심화되고 있는데,

미전도종족이 대부분 그 혜택에서 제외된 집단이라는 사실이

21세기 세계선교의 심각한 도전으로 다가온다.


한편, 세계화와 더불어 정반대 흐름인 지역화가 병행되는 현상이 현저한데,

배타적 민족주의의 발흥이나 종교적 근본주의의 부상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 기독교에 대해 친화적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던 집단들이

이제 적극적으로 배격하는 종말적 현상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21세기 선교의 남은 과업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님을 시사한다.


세계화의 물결은 세계와 지역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과거 단일민족이 모여 살던 한반도에 다양한 외국인들이 유입되어 한민족과 더불어 사는,

이른바 세계와 지역의 공존공생(global-local symbiosis) 현상이 좋은 예이다.


이제 더 이상 선교를 ‘해외’라는 구별된 지역으로 제한할 수 없게 되었고,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와 받는 나라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이른바 ‘문밖의 세계선교’(world mission at your doorstep)가

교회의 당면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교회는 더 이상 제한된 지역적 이슈에만 매어서는 안 되고, 또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비록 물리적으로 특정지역에 머물지라도 온 세상을 끌어안는 안목(think globally,

act locally)이 요청되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2. 2/3세계 교회의 급성장


21세기 교계의 가장 현저한 흐름은 이른바 2/3세계 교회의 급성장이다.

저명한 교회사가 라토렛(Kenneth Latourette)은 2천년 기독교역사를 기술한

그의 방대한 저서에서 개신교선교가 본격화되고 확장된 19세기를

‘위대한 세기’(The Great Century)라 칭한 바 있는데,


그렇다면 20세기는 더 위대한 세기였고,

선교의 종결이 예상되는 21세기는 가장 위대한 세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1세기에 하나님은 2/3세계 교회를 일으켜 세계선교의 동반자로 세우고 계신다.


선교사 출신으로 <세계선교역사>를 저술한 니일(Stephen Neill)8)은

19세기의 특징을 프랑스혁명(1789)으로 촉발된 근대민주주의의 발흥으로 보았고,

20세기의 특징은 볼셰비키혁명(1917)으로 시작된 냉전시대로 보았는데,

그렇다면 21세기는 냉전종식의 서막인 베를린장벽의 붕괴(1989)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의 특징은 냉전종식과 그에 따른 정치, 경제, 외교 질서의 재편,

새롭고 다양한 창의적 선교의 기회들이 열리고

지구촌 선교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젠킨스(Philip Jenkins)는 최근 교계와 선교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그의 저서를 통해

이제 서구주도형 교회시대는 지났고 지구촌 교회시대가 도래했음을 천명한다.

전통적 서구교회가 급격히 몰락하면서 새로운 비서구교회가 급부상하는

이 시대적 흐름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교회사가 앤드류 월즈(Andrew Walls)에 따르면,

그것은 서구가 기독교 후기사회로 전락하는 일(Post-Christian West)을 허용하시면서

기독교가 서구종교라는 오해를 벗고 진정한 세계종교로서의 위상

(Post-Western Christianity)을 회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2. 한국선교의 추이


▲1. 제1기 (1980-2005년): 양적 팽창기


한국선교연구원(KRIM)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가 파송한 타문화권 선교사의 수가 백 명을 넘긴 해가 1980년이었다.

따라서 그 이전에 일어난 선교적 전초작업의 공헌을 인정하더라도,

한국교회가 피선교지 이미지를 벗고 타문화권 선교를 본격적으로 감당하기 시작한

기점을 1980년대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 시점으로부터 4반세기가 지난 2005년까지를 근대 한국선교운동 제1기라 친다면,

2006년 이후 한국선교는 바야흐로 제2기에 접어든 셈이라 하겠다.


제1기는 우리네 특유의 양적 팽창기였다. 무슨 운동이든 제대로 힘을 받으려면

최소한의 질량(critical mass)이 확보되어야 하므로

선교운동 초기에 양적 팽창이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제1기의 양적 팽창은 실로 괄목할만하다.

1979년 93명이던 한국선교사가 1992년에 2,576명으로 늘어났고,

2003년에 11,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었으니

그때까지 이미 100배 이상의 폭발적 성장을 기록한 셈이다.


한국선교사의 수는 현재 17,0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9년 21개이던 선교단체도 1992년에 90개, 2003년에 164개로 늘어났고,

현재 170개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사역국가의 수도 1979년 당시 26개국에서 1992년 105개국,

2003년 164개국으로 늘어났고, 현재는 170여 나라에서

한국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제1기의 성장은 실로 홍수가 난 것에 방불한 엄청난 속도의 성장이었다.

10여 년 전 IMF 구제금융의 시련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단순한 외형성장이 반드시 축복은 아니라는 것,

양적 성장에 부응하는 질적 성숙이 없다면

오히려 성장이 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는 법이다.

4반세기만에 외형이 150배나 팽창한 우리네 선교가

캄캄한 사사시대를 향해 달음질하고 있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근대 선교운동 제2기를 맞는 우리의 과제가 더 많은 선교사,

더 큰 선교외형이 아니라 규모에 걸맞은

성숙한 선교행위에 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2. 제2기 (2006년 이후): 질적 성숙기


근대 한국선교운동 제2기는 당연히 질적 성숙기로 가야 한다.

제1기가 청소년기였다면 제2기는 청장년의 원숙한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아무나 무엇이든 아무렇게나 저지르는 선교적 사사시대를 반드시 뛰어넘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짧은 선교역사와 일천한 경험을 핑계 삼아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2007년 여름에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한국교회와 선교계에 큰 충격파를 던졌고,

직접 연관된 지역교회와 비영리단체를 뛰어넘어

한국선교 전반의 사역행태를 심각하게 재고하고 검토해야 할 숙제를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위험지역에서 사역하거나 그곳에 일꾼을 보내는 일을 어떻게 다뤄야 하고

전략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고심하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의 현장으로 보내시며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10:16)고 하신 말씀을 떠올린다.


이 말씀은 최소한 두 가지 중요한 이슈를 제시한다.

하나는 동인(motivation)의 이슈이고, 다른 하나는 접근 및 전략의 이슈이다.


①“비둘기 같은 순결”은 순수한 동인과 연관된 말씀이다.

위험한 지역으로 달려가는 (또는 사람을 보내는) 진정한 동인은 무엇인가?

하나님나라를 위함인가, 아니면 자기만족내지는 성취감인가?

혹 값싼 영웅심이나 만용은 없었는가?


선교공동체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권면을 따르지 않은 독단적 행동은 없었는가?

위험부담을 지는 것으로 자신의 의를 내세우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어려운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②“뱀 같은 지혜”는 전략적 접근에 관한 말씀이다.

전도와 선교를 위해 마땅히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지혜로운 접근과 전략을 부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복음의 진보이지, 우리의 영웅적 행동이 아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마10:17, 23)


복음의 진보를 위해 핍박을 감수하고 때에 따라 순교도 불사해야 하지만,

무모하게 위험을 향해 돌진하는 만용을 성경은 정당화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나 기타 유사상황에서 우리는 위기관리에 최선을 다했는가?

선교단체와 민간단체, 대사관, 정부의 지침에 귀를 기울였는가?

혹 소중한 생명을 너무 소홀하게 다루지는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피할 수 없는 섭리적 부분은 무엇이었고,

우리의 지혜와 전략 부재로 인한 인재(人災)의 요소는 무엇이었는지

분석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3. 21C 선교의 동향과 과제


21세기 세계선교의 동향 및 과제를 짧은 지면에 다루기는 역부족이고,

필자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세 가지 핵심이슈를 소개한다.


▲1. 총체적 선교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증인으로 부름 받았다.

증거(witness)는 전도(evangelism)를 포함하지만

전도보다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다.


오랜 기간 복음주의 교계는 ‘증인의 사명’을 ‘전도의 책임’으로 축소하는 오류를 범했다.

우리의 삶이 완전해야 전도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힘써 선포하는 가치가 정작 우리 삶에서 구현되지 않으면

우리가 외치는 복음의 신빙성이 땅에 떨어지게 된다.

우리가 외치는 복음의 신뢰도는 우리가 구현하는 삶을 통해 뒷받침되며,

단순한 ‘말’이 아닌 ‘언행’(말과 행실)을 통해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현존이

복음의 선포와 병행되어야 한다고 선언하며,

로잔언약을 기안한 스토트(John Stott)는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선포(proclamation)와 현시(demonstration)의 두 기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들려줘야 할뿐더러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복음의 가시성(visibility)이 중요한 셈인데,

선포가 증거의 원심적 측면이라면, 삶을 통한 현시는 증거의 구심적 측면이다.


멸망하는 세상을 향해 구원의 복음을 힘써 선포해야 하지만,

탁월한 복음적 가치의 구현을 통해 세상이 신앙공동체에게 빨려오도록 해야 한다.


아직도 그토록 많은 미완성 과업이 남아있는 이유가

단순히 복음제시의 부재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서 파생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선교로서의 사업’(Business as Mission)이다.

그리스도인이 사업을 선하고 정의롭고 진실되게 운영한다면

악하고 불의하고 거짓된 대부분의 세상사업과의 차별화(거룩)를 통해

복음을 효과적으로 증거하는 셈이고,

세상으로 하여금 복음의 탁월성에 주목하게 하는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즉, 언어와 비언어를 망라한 총체적 메시지로 복음을 증거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메시지는 우리가 말을 할 때뿐 아니라 말하지 않을 때도

삶과 태도를 통해 전달되는 법이다.


선교적 문화인류학자인 크래프트(Charles Kraft)는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의사전달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We cannot not communicate)고 말한다.


그리스도인 사업가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든 입을 다물고 일에만 열중하든

모종의 의사전달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동일한 기준과 방식으로 사업하면서 성경공부나 예배를 추가한다고

기독교사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유형의 사업을 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자세로 사업을 운영할 것인지는 더욱 중요하다.


▲2. 교회와 선교


장기간 선교단체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서구선교의 틀은

지구촌 선교시대에 올바른 성경적 선교공동체의 회복이라는

중대과제를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선교단체 중심적 관행은, 과거 지역교회의 선교적 무관심 및 무책임에 기인하는데,

장기간 선교는 지역교회 밖의 별도 체제(선교단체)를 통해

예외적 사안처럼 취급되고 진행되었다.

그러한 역사적 관행은 뒤늦게

지역교회의 선교적 각성과 (선교적) 부흥을 거론해야만 하는 모순을 낳았다.


존스톤(Patrick Johnstone)은 그의 최근 저서 <교회는 당신의 생각보다 큽니다>를 통해,

역사적으로 분리되고 파편화된 교회의 세 구조, 즉

회중구조(현재의 지역교회)와

교육-훈련구조(현재의 신학교 및 훈련기관)와

사도-선교구조(현재의 선교단체)가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교회(Church)란 현재의 지역교회(church)뿐 아니라

선교단체와 신학교를 포함한 교육-훈련 기능을 아우르는 포괄적 공동체이다.


통합적 교회관은 필연적으로 선교적 교회론을 낳는다.

선교란 교회가 시행하는 어떤 일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다.


최근 Christianity Today가 선교분야의 탁월한 책으로 선정한

<하나님의 선교>의 저자 라이트(Christopher Wright)는

교회가 하는 일이 선교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선교를 위해 교회를 두셨다고 말한다.


선교란 교회의 특별활동이 아니라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정체성이다.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는 본질상 선교적 체질 및 선교적 DNA를 가진 교회이고,

모든 성도는 선교적 삶(missional lifestyle)을 살아야 한다.


▲3. 비서구 (2/3세계) 선교의 과제와 책임


선교종결운동이 급격히 가속화되고 있는 21세기 들어

하나님께서는 전통적 서구교회뿐 아니라

비서구교회를 크게 일으켜 사용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비상한 시대적 섭리에 발맞춰

비서구교회가 감당해야 할 과제와 책임이 무엇일까?

최소한 네 가지 주요이슈를 생각해본다.


①축적된 세계선교의 경험과 노하우 학습

②창의적 2/3세계 선교모델 제시

③선교운동의 국제화

④시너지창출 형 협력과 동역이 바로 그것이다.

 

①축적된 세계선교의 경험과 노하우 학습


앞에서 한국선교의 제2기가 질적 성숙기임을 거론한 바 있는데,

질적 성숙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며 최소한의 원칙과 상식만 지켜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가 처음 시작하는 개척자들이라면 모를까,

한국 및 2/3세계 선교가 굳이 시행착오의 어설픈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천 년 기독교 선교역사와 2백 년 개신교 선교역사를 통해

검증된 경험과 노하우가 산지사방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세계선교는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피하고 효율 극대화를 통해

선교를 종결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따라서 지난 4반세기에 걸쳐 지속된 한국선교의 수많은 시행착오는

참으로 뼈아픈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성경적 원리 및 2천 년의 임상적 실험을 통해 이미 검증된 정도를 짐짓 무시하고

굳이 우리방식을 고집할 이유가 무엇인가? 무지 때문인가, 고집 때문인가?

무지도 고집도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잘못이다.


제2기를 맞는 한국선교는 이제 어설픈 시행착오보다 확인된 방법과 전략을 활용하여

남은 과업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완수하는 데 공헌해야 한다.


②창의적 2/3세계 선교모델 제시


지구촌 선교시대의 도래는

세계선교에 대한 비서구교회의 독특한 공헌과 모델을 요구한다.

서구선교의 방식을 아무 비판 없이 수용하거나 대충 흉내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통적 선교에서 물려받아야 할 것과 걸러내야 할 것을 구분하는 분별력도 필요하지만,

더 나아가 성경적 원리에 입각하면서도 2/3세계 선교의 체형에 맞는 창의적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비서구교회는 서구선교를 포함한 세계교회가 2천 년간 축적한

선교적 경험과 노하우를 섭렵해야 할 과제와 아울러

비서구의 독특한 안목과 경험을 축적해야 할 책임을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


문제는 그러한 노력이 태부족인 현실인데,

비서구선교가 선교적 실천(doing mission) 일변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험의 자료화, 평가와 비판을 통한 전략적 발전, 학습을 통한 시행착오의 방지

등을 통해 세계선교에 적극적으로 공헌해줄 것을 선교계는 기대하고 있다.


2/3세계 선교시대의 도래는 그에 걸맞은 선교적 대안과 모델을 요청하는데,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준비되었든 안 되었든,

2/3세계 선교운동의 앞줄에 서있는 사실 자체로

창의적 2/3세계 선교모델을 제시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

한국교회에게 주어져있는 셈이다.


세계선교에 동참하기 원하는 비서구교회들이

최근 들어 부쩍 한국선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얼마 전 선교대회의 노하우를 배우고 필요한 자문을 받기 위해

선교한국을 방문한 인도네시아 교회의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지난 수년간 선교한국 대회를 찾는 비서구 참석자들이 부쩍 늘고 있다.


그들 입장에서 서구선교의 방식을 따르기는 너무 벅차고

상황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상황과 처지가 비교적 가깝게 여겨지는 한국선교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것이다.


설악포럼은 바로 그러한 과제에 대한 한국 선교계의 바람직한 반응인데,

향후 다른 2/3세계 선교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공동의 과제를 함께 풀어내는 자리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③선교운동의 국제화


선교는 본질적으로 세계적이다.

따라서 세계화 시대의 도래와 무관하게 선교를 그 관점에서 조명하고

국제적 차원에서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선교란 세계화 시대의 도래로 인해 비로소 부각되는 사안이 아니고,

오히려 선교가 건강한 세계화를 부추기고 선도해야 한다.

힘의 논리가 아닌 수평적 의미의 세계화란 복음에서만 발견되는 개념이고,

선교란 바로 우주적인 복음을 구현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인식이 결여되고 국제화 과정이 생략된 선교행위는, 오히려 선교의 장해물이 된다.

배타적 민족주의나 제국적 패권주의는 본질상 선교와 공존할 수 없는 법인데,

그간의 한국선교는 다분히 폐쇄적이고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진행되어온 경향이 있다.


제2기를 맞은 한국선교는 이제 ‘그들만의 잔치’를 종결하고

세계교회의 협력과 동역의 장에 적극적으로 나아가

그들과 손잡고 남은 과업의 완수를 위해 정진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제에 실패한다면 2/3세계 선교의 향도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④협력과 동역


세계교회가 공동으로 위탁 받은 선교의 사명을 위해 협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협력의 당위성은 효율성에 우선되는 개념이다.

‘협력을 시도한다고 효과가 있겠는가?’라고 묻기 전에

‘협력 없이 일하는 게 옳은가?’라고 물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세계선교의 과업을 우리의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가?’라고 묻기보다

그 일이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주께서 맡기신 사명이므로

선택의 여지없이 마땅히 감당해야 한다는 논리와 유사하다.


선교를 위한 세계교회의 협력은 당위일 뿐 아니라

효율성 측면에서도 전략적 가치가 크다.

성경은 협력의 당위성과 아울러 효율성을 가르치고 있고 (예: 전4:9-12),

세상의 학문도 핵융합 에너지와 같이 뭉치면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힘의 역학을 이야기한다.


말 한 마리가 끌 수 있는 무게가 4톤인데,

두 마리를 묶어 힘을 합치면 무려 22톤이나 끌 수 있다는 시너지효과는

물질계뿐 아니라 정신계와 영적인 분야(예: 합심기도)에 이르기까지 적용범위가 넓고 다양하다.


경쟁과 분열을 거듭해온 한국교회와 선교가 힘을 합친다면,

더 나아가 국제적 협력과 동역을 일궈낸다면

세계선교를 위한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협력과 동역은 선교운동의 힘을 강화해주는 물리적(양적) 시너지뿐 아니라

선교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화학적(질적)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다.


그간 한국선교를 비롯한 비서구선교가 동역과 협력을 도외시한 것은

엄청난 기회비용의 손실이다.

선교의 남은 과업은 단순히 선교사의 수가 늘어나고

선교재정의 규모가 증가된다고 완수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세계교회와 손잡고 시너지효과를 낼 때 비로소 종결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교회(Global Church)에 의한 세계선교(Global Mission)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21세기 선교의 원리이자 모델이다.                                                ▣ 해외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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