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행악자 눅23:33~46 10.03.28.설교스크랩
*원제목 : 행운의 사순절
◑두 행악자는 모든 인간을 대표
지금 갈보리산 위에는 세 개의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일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을 보겠습니다.
이 사람을 성경은 ‘행악자’라고 소개했습니다.
‘행악자’라는 말은 중범죄자를 뜻합니다.
이 두 행악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데
누가는 바로 그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 단락을 기록한 것입니다.
▲두 행악자의 공통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행악자는,
어쩌면 오늘 우리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이 두 행악자 중에 어느 한 부류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①두 행악자는, ‘행악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두 사람 다 중죄인입니다.
그리고 그날 다 죽기로 작정되어 있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두 행악자와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자기 죄로 인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그가 살아생전에 지은 죄의 파일을 만든다면
아마 수 천 페이지는 족히 되는.. 그런 죄목이 나열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은, 따지고 보면,
이 두 사람의 중죄인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강도/중죄인은.. 우리 인생을 대표하고 있다는 겁니다.
②두 행악자의 두 번째 공통점은
둘 다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 행악자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말합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눅23:39
이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둘이 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도 예수가 누구인지.. 어느 정도는 잘 압니다.)
③세 번째 공통점은
둘 다 그 시간에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한 명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눅23:39
아마 다른 한 사람도 당연히 그렇게 말하거나,
적어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아주 다른/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우리 인생들도.. 이렇게 아주 다른 대조적인 두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요...
◑한 행악자
한 행악자가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눅23:39
이 강도가 던진 말은 그 이후 이 실존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비판하는 수많은 비평가들의 박수를 받아왔습니다.
▲지금 이 행악자는 분노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마땅히 인간 행복을 위해서 도움을 주어야지
왜 세상을 이렇게 어지럽게 만들어가지고
나 같은 사람은 강도짓이나 해야만 먹고 사는
이런 험악한 세상을 만들어놓고
죄를 지었다고 해서 잡아다가 인간의 생명을 강제로 끊어버리는
이런 고통과 부조리한 세상이 된 것은.. 모두가 전적으로 하나님 책임이다.
자신감이 없으면 아예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지 말았어야지
무엇 때문에 세상을 창조하고, 그 안에 사람을 살게 하고
세상에 이 많은 부조리를 두어서
나 같은 불행한 사람이 세상에 수없이 생기게 만드는 것이냐?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메시야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내려온 구세주가 아니냐?
그러면 나 같은 사람을 구원해야지, 누구를 구원할 것이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무능하게 사람에게 매나 맞고
침 뱉음, 삿대질 당하면서, 저렇게 퍼붓는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청하게 피를 흘려가며 죽어가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역이냐?
빨리 너도 구원하고 나도 구원하라.
그리스도가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이다.
왜 그리스도가 왜 지금 가만히 있느냐?
이런 고난의 현장에서 나를 구원하고 너를 구원해야
세상 사람들이 너를 그리스도로 알지
멍청하게 인간에게 잡혀서 숨을 거두는 그게 무슨 그리스도냐?
나 같은 사람은 구원이 필요하다. 빨리 구원하라.”
이런 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사상적 흐름이 20세기에 세계적 관심을 모았던
프랑스의 실존주의 문학가 샤르트르에게서 나타났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흥분했던 것입니다.
또, 독일인 니체는 “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발표해서
‘그리스도교는 삶을 파괴하는 원인이 된다’는 실존문학을 발표해서
젊은이들에게 박수를 받은바 있습니다.
이 행악자도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그리스도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구원자로 세상에 왔다면 나 같은 사람도 구원해 주어야 그것이 그리스도이지
네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구원하는 게 그리스도의 할 일이냐?
빨리 나를 구원하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너의 고통도 나의 고통도 모두 하나님의 책임이다.
그리스도는 마땅히 그 고통에서 인류를 구원해야 될 책임이 있으니
지금이 그때이다.
그러니까 욕먹고 바보같이 쓰러져 죽지 말고
빨리 이 시간 하늘의 능력과 권세를 발해서 이 현장을 구원하라.”
이렇게 말한 겁니다.
◑또 다른 행악자
그 다음의 강도도 똑같이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먼저 사람과 특별한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그 차이점을 발표하기 위해서
이 대목을 기록한 것입니다.
▲먼저 사람은 일방적으로 자기 의견만을 이야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말합니다.
즉, 이 사람이 하는 일은 자신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마땅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당연하다.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나쁜 짓을 했다.
내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눅23:40~41
비록 우리가 죄수는 되었지만, 하나님이 두려운 줄은 알아야 될 거 아니냐?
우리 민족은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던 백성이 아니냐?
너와 나는 그 계명을 버렸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사형을 당해서 죽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메시야이다.
구원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는데 지금이라도 구원의 기회는 있는 것이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눅23:42
그랬을 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그 자리에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23:43
◑정리하면
▲예수님은 첫 번째 행악자의 말은 들은 척도 하시지 않으시고
두 번째 행악자의 요청은 즉시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셔서 인간 구원을 위해서 설교를 하실 때
첫 번째 설교가 “회개하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독교의 진리는 자기를 회개하는 기초에서부터
구원에 이르는 진리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여기 보니까 두 사람 모두 예수를 그리스도, 메시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한 사람만.. 구원을 약속받았고,
회개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리스도께 불평만 늘어놓은 사람은..
예수가 그리스도인 줄 알았지만, 그는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여들 때가 언제였으며
하나도 없었을 때가 언제인가를 기억합니다.
자기 필요가 채워질 때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떡을 만들어 먹을 때 수천 명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병 고침을 받을 때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귀한 십자가를 지실 때는
아무도 남지 않고,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먼저 말한 행악자가 생각하는 구원이란
자기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는 ‘육신적 고통에서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고
나중에 말한 행악자는 ‘자기 죄’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내가 행한 일의 당연한 보응으로 죽습니다.
예수여! 나는 더 이상 이 땅에서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죽음이 나의 마땅한 보응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영생을 누리는 구원의 문제는
이 시간 당신께서 내게 베풀어 주실 수가 있으실 것입니다.
내게 그 은혜를 내려 주소서.” 이렇게 함으로써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살인강도 중에
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보지 않았고
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보았으며,
한 사람은 회개하지 않았고
한 사람은 회개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누가가 이 대목을 성경에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마음속에 믿으면서도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전도해 보십시오.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하나님 믿고 삽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시고 먹을 것을 주셔서 사는 것이지
다 하나님 믿는데 구태여 또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십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두 번째 강도는 구원받았습니다.
생애 마지막 시간에 훌륭한 인생을 창조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다 버리고 도망가는 그 상태에서
주님의 품으로 뛰어들어서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천국을 얻어냈습니다.
이 사람은 평생을 살아온 시간보다 이때 5분이 더욱 귀하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중대한 문제인 영혼의 문제를 한순간에 해결하는 지혜가
그에게 있었습니다. 참으로 복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임종 직전에
신앙 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로 가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혹시나 ‘그렇게 예수 믿는 게 제일 수지맞겠다.
평생 아무렇게나 살다가 마지막 한 시간 전에 다 청산하고 가면 제일 좋겠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자기를 구원했지만
다른 사람 구원에는 아무 도움의 역할을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는 십자가
그런데 주님이 지신 십자가 의미는, 온 인류를 구원한 십자가입니다.
자기 영혼만 구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훌륭한 것은 다른 사람의 영혼 구원에
내가 도우미 역할을 하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소원하고 열심히 하는 일은
바로 나도 중앙에 서있는 예수님과 같은 십자가를 지려는 것입니다.
성도가 성도다울 때는 언제인가요?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될 때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울 때는 언제인가요?
이 교회 때문에 수없이 많은 구원 받는 사람이 생길 때입니다.
오늘 갈보리 산에는 세 가지 십자가가 있는데
-구원 받지 못한 사람,
-자기만 구원한 사람,
-인류를 다 구원하신 분 등
세 가지 모습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대해 껄끄러운 사람들
살인강도 짓을 했기 때문에 사형 당하고 있는 흉악범을
예수님이 낙원에 함께 데리고 갔다고 하면
그 강도를 죽으라고 판결하고 사형시킨 법관들이나 사회인들이 그 사실을 믿겠습니까?
더구나 그 강도에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가족들이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오히려 “기독교인의 구원의 교리는 엉터리이고 썩었다.
그런 흉악범에게는 영원히 벌을 주어야지
어떻게 그런 사람을 예수님이 나와 함께 낙원에 가자고 말씀하시는가?”
이렇게 비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입니다.
누구나/어떤 죄인이라도 다 구원할 수 있는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
이 대목이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들은 어떤가요?
비록 그 강도 같은 짓은 없다 하여도 우리도 다 죄인입니다.
똑같지는 않아도 다 (같은)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은혜와 구원의 진리 때문에
이렇게 오늘도 주님의 거룩한 성찬에 초대를 받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게로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한 자매가 질문했습니다. (이 단락 펀글)
“저는 사람들을 죽이고 평생 못된 짓만 하다가
죽기 전에 회개해서 구원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생각으로는 이해 가지만, 정말 내 가족에게 그런 짓을 한 사람이라면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이 질문을 한 자매는, 현재 신앙생활을 좀 쉬는 중에 있습니다.
저는 또한 한 사형수를 기억합니다.
청부 살인을 하고,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물론 사형 선고를 받고 하나님을 알게 되어
믿는 마음으로 누구보다도 영웅적으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원은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나의 모습이 구원받을 상태에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하시며 평생 낙태와 성감별 등을 하시며 살아오신
70이 훨씬 넘어 회개하신 한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황혼에 세례를 받았지만
세례 받은 지 1년 반 만에 신구약 필사를 하였고
매일 기도로 회개의 삶을 살고 계십니다.
비록 질문을 했던 그 자매는, 봉사도 훨씬 많이 하였지만
지금 당장의 모습으로는 구원받기에 더 합당한 사람은
그 할머니나, 제가 알던 사형수인 것입니다. <용>
▲캐나다의 피플스 쳐치의 담임목사였던 O.J.스미스 목사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대단히 두렵고도 엄숙한 5가지 사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마지막 심판 때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둘째, 대부분의 사람들이 멸망할 것이다.
셋째, 구원받으리라고 여겨졌던 사람들 중에도 멸망 당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넷째, 죽은 뒤에는 구원받을 기회가 다시 없다.
다섯째, 지금이 어떤 이에게는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이다.
모두 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 죄, 복된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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