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마스길) 기도 엡1:17~19 10.02.20.설교녹취
◑본문은 <바울의 마스길>
시편에 ‘다윗의 마스길’이란 말이 나오는데,
마스길이란.. ‘기도가 교훈이 되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그 기도 외에는, 다른 기도가 나오지 않고,
그 기도만 집중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집중적으로 기도하다가,
어느 순간, 기도가 응답받았다는 마음에 확신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서 자기 기도가.. 너무 자기 스스로 은혜가 되어서
그 기도문을 양피지(양의 가죽으로된 일종의 종이)에 기록한 것이
바로 ‘마스길’이다.
본문 엡1:17~19절은,
바울의 기도가.. 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 평소에 바울이, 이런 기도를,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늘 드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자기가 기도를 다 드리고 나서보니까,
그 기도가.. 교훈/가르침으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록해 둔다.
(사실 이런 기도는, 방언에 못하지 않은, 일면 방언보다 더 심오한 기도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 엡1:17~19절은 ‘바울의 마스길’이라고 본다. ※마스길이란?
살펴보면...
◑1.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의 첫 번째 기도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에베소 교인들이 이미 다 신자들인데, 또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여기서 ‘안다’는 말은,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제가 이스라엘에 유학할 때
‘내가 미국 대통령을 안다’고 말하니까,
서로 영어가 서투른 상태에서, 큰 오해가 생길 뻔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가 미국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줄로 오해했던 것이다.
나는 그냥 그의 이름과 얼굴 정도만 안다는 뜻으로 말했을 뿐인데...
여러분, 나는 미국 대통령을 알지만,
미국 대통령은 나를 모른다... 이것은 미국 대통령을 ‘아는 것’이 아니다.
일례로 러시아에는 인구의 80% 이상이 정교회 신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 중 90%는 부활절과 성탄절에만 교회에 나간다.
이런 경우,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하나님과 개인적 친밀한 관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 우리가 전도할 때마다 부닥치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나도 하나님을 다 믿고, 안다. 왕년에 교회도 다녔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그들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7:23
▲이 대목에서 ‘재난구조 영화’에 꼭 나오는 장면이 생각난다.
물에 빠진 사람이나, 산속에서 고립되어 구조가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구조 헬기가 떠서 다가오니까, 그것을 보고 기뻐하고 환호성을 지른다.
그런데 문제는, 헬기가 자기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을 더 안타깝게 만들도록 영화를 꾸며 가는데...
여러분, 영화의 장면이 어쩌면 내게도 꼭 그렇게 적용될 수 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나는 예수님을 보고, 좋다고 손 흔들고, ‘이제 살았다’고 환호성을 지르는데,
주님이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실 수도 있다.
마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사람 앞에서 시인한 사람만, 예수님도 그를 시인해 주신다. 여기서 '시인'은 종종 전도로 해석함)
그래서 바울이 대단한 깨달음(마스길)으로 이렇게 기도했던 것이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이것이 (에베소) 성도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여러분, 구원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시라.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 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하나님이 나를 알아 주셔야... 한다.
인격적으로 서로를 친밀히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하나님을 알아 가야(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쌓아가야) 하는 것이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내가 미국대통령을 안다고.. 내가 백악관에 들여보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분이 나를 알아야.. 내가 백악관(비유로 천국)에 들여보내진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사람들이 ‘주여, 주여’ 한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전혀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다. 그래서 ‘주여, 주여’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7:23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주님을 알 수 있을 것인가? ↙
◑2. ‘영’으로 하나님을 안다.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영 spirit)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알려면’ 오직 ‘영’으로 가능하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신령(영, spirit)과 진리(truth)로 예배하라고 권면했다. 요4:23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은) 모든 영의 아버지 히:12:9
그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영’뿐이다.
여러분, 인간의 실체는 영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처럼) ‘영’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내 영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 또는
‘내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내 영이 하나님의 영과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2분설, 3분설은 둘 다 맞다. *2분설:영혼, 육으로 2개로 나눔, 3분설:영, 혼, 육, 3개로 나눔
여러분, 성전을 멀리 바깥에서 보면,
<성전마당>과 <성소> .. 이렇게 2개만 보인다.
그런데 제사장이 <성소>안에 들어가 보면
성소는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이 되어있다.
그 경계선이 ‘휘장’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3개인데,
멀리서 보면 2개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2분설, 3분설은 둘 다 맞다.
여기서 지성소는.. 인간속의 영
성소는.. 혼
성전 마당은.. 육을 뜻한다.
한 장막 안에 <성소>와 <지성소>가 붙어있듯이
인간도 마찬가지로 <영>과 <혼>이 붙어있다. 살아생전에는.
그런데 하나님은, 지성소 안에서 주로 나타나신다.
대제사장이 만나러 갔을 때, 지성소 안에서 그를 만나주셨다.
영이신 하나님을, 내 영(나의 지성소)을 통해서, 그분을 만나게 된다.
▲여러분, 앞으로 21세기가 영성시대라고 하는데,
과거 18~20세기가 너무 ‘이성의 시대, 과학의 시대’로 치우쳤다가
이제 점점 다시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영성쪽으로 무게 중심이 다시 옮겨지고 있다.
여러분, 예수를 안 믿는 무당도, 영의 존재를 알고 두려워하는데,
예수를 믿지만.. 철학과 인문학과 교육학에 너무 심취한 크리스천은
의외로 ‘영의 존재, 그 중요성’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인문학들은 주로 ‘혼의 세계’만 다룬다. ‘영의 세계’를 터치하지 못한다.
무당들이 아는 ‘영적 세계’는.. 사탄의 영이요, 귀신의 영이다.
그들에게는 ‘영적 세계’가 열리기는 했지만.., 잘못 엉뚱하게 열린 것이다.
여러분, 무당에게도 열리는 ‘영의 세계’가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도 성령으로 활짝 열리게 되시기를 축원 드린다.
그런데 간혹, 은사자들에 의해 과거에 상처를 받으신 성도님들은
‘나는 그런 거 몰라. 그런 것은 필요 없어!’ 하시는 분들도 있다.
물론 신비주의에 빠져들면 안 되지만, 기독교에 신비는 반드시 있다.
혼과 육이 잘 되려면, 먼저 영이 잘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의 권면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영’으로 깨달아진다는 것이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영)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7
‘혼적인 지식’이 아니라.. ‘육적인 경험’이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 교육학’ 분야도 무지하게 발달해 있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영의 세계’를 열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을 기초로 하는 ‘혼이나 육의 세계’이다. (이것도 물론 필요함)
※물론, 인간은, 영, 혼, 육이 3개가 결합해서 활동한다. 어느 것 하나만 따로 떼서 움직이지 않는다.
▲행18장에, 알렉산드리아 출신 학자 아볼로가 에베소 교회에 와서 가르친다.
아볼로는 성경에 능하고 학문이 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구약성경으로, 유대인과 토론해서, 이길 정도로.. 대단한 학자였다. 행18:24~28
그러니까 에베소 교회는, 아볼로의 영향으로, 다분히 '지식적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바울이, 에베소서 편지를 보내서,
'너희 영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기도했던 것이다.
여러분, 현실적으로 교회에서
성경을 많이 알고, 신학적 지식이 상당히 깊어도
아무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볼로처럼.
왜냐하면 아직 ‘영의 세계’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기도하기를
제일 먼저 ‘영의 세계가 열려서, 하나님을 알게 되어라’고 기도한 것이다. :17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중국 시골지역에 들어가면, 아주 무식한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있다.
그런데 신학대학원을 나온 선교사가
그 무식한 사람들에게 성경지식은 가르쳐 줄 수 있는데,
실제로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만나고, 교제하는 사람은.. 중국 교인들이었다.
‘영의 세계’가 열렸느냐, 조금밖에 열리지 못했느냐.. 그 차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선교사는,
주님과 동행,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삶을 (아직 깊이) 살지 못하고 있는데,
성경을 배우는 그 중국 교인들은,
오랜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주님과 동행, 임재를 체험하는 삶을
평소에 늘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즉 그들은, 주님 음성을 듣고, 기도를 응답받고, ‘주님을 알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오래 전에, 미국 선교사가 본국에 편지로 보고한 적이 있었다.)
◑3.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18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1)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2)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3)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러분, 영이 열리면.. 마음의 눈이 밝아지게 된다.
‘마음’(혼)의 영역도.. 밝아지는 것이다.
▲마음의 눈이 밝아진 예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할 때,
마음의 눈이 밝아진 사람은.. 정말 그에게 꼭 적합한 선물을 고를 줄 안다.
그런데 마음의 눈이 어두운 사람은,
거금을 들여서 선물을 사서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집에 별로 필요 없는 것을 사서 주거나
-아니면 그 집이 전혀 관심 없는 어떤 것을 골라서 사 줘서
그 집이, 비싼 선물을 받고도, 전혀 기쁨이 없고,
도리어 얼른 그 선물을 남에게 줘버린다. 가지고 있으면 짐 되니까.
그러나 마음의 눈이 밝은 사람은,
지금 그 집에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아맞춘다.
그래서 작은 선물을 하더라도.. 받는 사람이 아주 고마워한다.
위 이야기는 그냥 지어낸 것인데,
사도바울이 말하는, 진짜 ‘마음의 눈’이 밝아진 사람은
다음 3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했다.
①주님이 나를 부르신 그 소망이 무엇인지 알도록 1:18
즉, 주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 안다는 뜻이다.
②성도의 기업(유산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 알도록 1:18
③성도가 갖게 되는 능력을 알도록 1:19
▲그런데 과거에 제가 오해한 것은,
-성령을 받고, 나의 영적인 세계가 열리면 (위 ◑2)
-하나님을 알게 되고 (위 ◑1)
그 다음에 마음 눈이 밝아지게 되는데 (위 ◑3)
그 밝아지는 내용에 있어서
①나를 부르신 그 소망도 건너뛰고
②성도의 기업의 풍성도 건너뛰고
오직 ③성령의 능력만을 억수로 많이 받게 되기를 바랬다.
오직 성령의 충만, 성령의 능력만 구한 것이다. 이것이 제 실수요, 오해였다.
그래서 우리 신앙이 종종 균형을 잃고,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은
성도 안에서 갖가지 좋고 풍성한 것들을 다 무시해 버리고 *위의 ①과 ②
오직 능력③만을 구하면서,
은사집회에 쫓아다니는 것은.. 극단적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표적을 좋아할 때
마귀가 기사와 표적으로 말세에 성도를 미혹할 것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다.
(능력, 기사, 표적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절대 아님)
▲바울의 기도는, 능력을 구하기 앞서.., 마음 눈이 제대로 밝아져야 한다고 기도했다.
오늘날 성도들은,
조금 은혜를 받으면,
조금 영적 세계가 열리면,
(일부 성도들은) 자꾸 능력부터 받으려고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시키실 때, 능력부터 주신 것은 아니었다.
행1:8절에서 능력을 받는다고 약속하시기에 앞서
그 분은 제자들을 오래 동안 말씀으로 가르치시며,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부르심, 그 기업의 영광 등을 성경을 풀어서 가르치신 후에
나중에 능력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능력도 필요하지만, 선행되어져야 할 것을 무시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능력에 앞서, 먼저 구해야 할 것들을 가르친 것이다. 엡1:17~19
우리의 마음 눈이 절반만 밝아지지 말고, 제대로 온전히 밝아진다면
-능력을 구하게 되기에 앞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과
-성도의 기업의 영광을.. 알게 되고, 구하게 될 것이다.
▲성도안에서 기업의 영광 the riches of the glory of his inheritance in the saints 1:18 (②번 따로 떼서 설명함)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신 기업(일종의 유산 상속)의 영광은
in the saints ‘성도 안에’ 있다.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성도들과 더불어 교제하고,
서로가 서로를 섬기고 위로하는 가운데,
그 기업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성도의 교제권’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항상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교제권을.. 자기 스스로 연결해 두어야 한다.
거기에 하나님이 주신 ‘성도의 영광’이 임하기 때문이다.
성도가 한없이 서로 부족해 보이지만,
그 부족한 성도들과 서로 섬기며 교제하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의 풍성함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혹자가 균형을 잃고서
오직 '능력, 능력' 구하다가는
이상한 극단주의자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부채도사'로 빠지게 쉽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에게 인격을 주셨다.
그 인격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잘 성숙되는 것은.. 너무 중요한 '부르심의 소망①'이다.
그것은 성도간의 교제②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능력③도 꼭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이다.
여러분, 위 3가지를 골고루 별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란다.
나는 혹시 건너뛰고 막바로 능력③으로 가지는 않았는가?
우리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이런 사실들을 깊이 깨닫게 되시기 바란다.
◑관련글 : 거저 받은 성령의 행복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나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여기서
“하나님의 깊은 비밀”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그리스도의 마음”을 열거하면서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알 수 없고
하나님에게서 온 영으로만 알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성령론을 얘기하자면 매우 어렵고 복잡하지만
바울 사도는 여기서 어린 아이에게 죽을 먹이듯
아주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게 얘기합니다.
쉬운 말씀이지만 더 풀이하자면
모든 존재는 각기 영(spirit)을 지니고 있고
그 영은 존재의 안팎을 넘나드는데
그 속을 알 수 있는 것은, 존재의 그 속까지 가본 영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영이 있으신데
하나님의 성령만이 하나님 깊은 속까지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비밀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선물을 알아보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려면
주님의 성령을 받아야만 하는데
아주 다행히도
주님의 성령께서는 하나님 안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오셔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령을 선물로 거저 받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선> ▣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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