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로 인한 원망 민16:1~4 10.04.25.설교녹취, 정리
▲오늘 본문 말씀은, 담임목사가 설교하기엔 좀 거북한 내용이다.
고라, 다단, 아비람 등이 당을 지어, 모세에게 반기를 든 내용인데,
결국 하나님이 모세의 손을 들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설교의 결론이 ‘목회자의 말에 잘 순종해야 된다’로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말을 잘 들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인 지도자는, ‘축복의 통로’이다.
우리가 지도자에게 불평하고, 원망하다가는
하나님이 내게 세워주신 ‘축복의 통로’를
내 스스로 파괴해 버리는 어리석은 일이 되는데..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다... 라는 뜻으로 설교를 들어주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권위자(모세)에게 반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심판의 결과가.. 엄청났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이
지진으로 인해 땅속으로 함몰되어 버렸다. 민16:31~32
또한 고라의 꾀임에 빠져서, 같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던 250명의 지도자들이
향로를 들고 나갔다가.. 몽땅 불에 다 타죽는다. 민16:35
물론 요즘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난다.
제가 살아오면서 보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지도자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결국 잘못되는 것을 보았다.
특히 그의 입이나, 이빨이 다치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다.
아마 하나님이 그의 ‘입’을 조심하라고, 주신 경고인 것처럼 보였다.
(우연일수도 있으나, 시기적으로 너무 일치하니까, 그렇게 추측하게 된다.)
▲여러분, 좋고 훌륭한 지도자가 있으면, 공동체 안에 원망과 불평이 안 생길까?
물론 원망과 불평의 빈도수가 훨씬 낮아질 것이다.
지도자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그는 행2장의 성령의 능력을 체험했고,
그가 설교했을 때, 하루에 3천명이나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신령한 지도자 베드로가 지도했던 예루살렘 교회에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소외된다는 이유로
원망과 불평이 일어났다.
이로 보건데, 원망과 불평의 원인은, 지도자의 문제(과오)만 아니라는 것이다.
회중이 잘못해서, 원망과 불평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나타나는 지도자에게 있어서도,
즉, 모세와 같이 위대한 지도자에게 있어서도,
원망하고 불평하는 회중이 그 가운데 섞여 있었고,
심지어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가룟 유다와 같은 배신자가 있었다.
즉,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가 세워져 있어도,
원망과 불평은, 죄성을 가진 인간들 사이에서, 언제든지 솟아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속에, 지도자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솟아날 때,
그 지도자의 문제이기 보다는,
내 연약함과 죄성의 이유로, 내가 그를 원망할 수도 있으므로
불평이 나올 때, 나 자신을 먼저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 지도자의 문제일수도 있지만, 오히려 내 (죄성의) 문제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놓아야 한다.
▲민16장의 반란은, 조직적인 반란이다.
유명한 백성의 지도자 250명이나 되는 사람이,
고라, 다단, 아비람 편에 서서 모세에게 반기를 들었다.
여러분, 지금 모세의 자리는,
그게 무슨 큰 이권이나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완전히 봉사직이다.
무슨 대궐에서 시중을 받으며 사는 자리도 아니고,
백성들과 똑같이 먹고, 입고, 자고... 대신에 봉사만 죽도록 하는 자리다.
온갖 짐만 잔뜩 지고 있는 자리다.
먹여야지, 마시게 해야지, 인도해야지, 재판해야지...
만약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아니라면... 안 하는 게 백번 나은 자리다.
그렇게 백성의 지도자들이 반기를 일으키게 된 것은,
아마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 것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마 모세의 아내가 일찍 죽은 모양이다.
이 사건 때문에,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는 판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12:10
백성의 지도자들이 조직적으로 모세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민16:3
▲그러나 그 반기의 진짜 근본적인 이유는.. <시기심>이었다.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민16:3)
이 말은, 모세와 아론이, 자기들의 자리에서 행해야할 지도력을 넘어서서
뭔가를 휘두르고 있다, 지도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모세는 그런 적이 없는데,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렇게 매도하는 것을 보면,
아마 ‘시기심, 질투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①사실 모세나 아론이, 인간적 관점으로 볼 때, 자기들과 큰 차이가 없다.
단 한 가지 사실만 제외하고는!
그것은 <하나님이 지명하여 특별히 세우신 지도자>라는 사실이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것을 보는 눈이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자기들보다 특별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세와 아론이 밉게 보였던 것이다.
시기심이 발동했던 것이다.
②백성의 지도자들이 반기를 들 수 있는 근거를 한 가지 생각해 보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route이 몇 개가 있는데,
‘블레셋 해변 길’등 편한 길을 놔두고
굳이 광야의 험한 길로 백성들을 인도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세의 실정失政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신 길이었다. 모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백성의 지도자들 눈에는,
모세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자기 눈앞에 있는 모세만 보이니까, 모세에게 원망, 불평한 것이다.
그리고 모세가 마치 월권을 행사하는 것처럼, 시기, 질투한 것이다.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하며...
위의 두 가지 사실을 놓고 볼 때,
사람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지도자에 대해 불평불만 하는 것은,
결국 근본적인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 보니까,
‘배후의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결여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는 것이다.
대신에 자기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 보니까.. 시기심도 생기고, 불평도 나오는 것이다.
이전에 그들은 뇌성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적도 있었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지금 목도하고 있다.
그런 체험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도, 모세와 아론이 지금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민16:3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이 말은, 참 고상하고 아름다운 말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시기로 일그러진 말’이었다.
우리도 다 거룩하고, 하나님이 우리 중에도 계신데
왜 모세 너 혼자만 장기집권 하느냐? 왜 아론만 제사장이냐?
지금 반역주모자인 고라도.. 모세와 아론처럼 레위지파였다.
같이 당을 지은 다단, 아비람은.. 12지파 중 장남 르우벤 지파의 지도자였다. 민16:1
인간적으로 볼 때, 자기들도 백성의 최고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었다.
다만, 하나님이 그들을 지도자로 세우지 않으셨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었다.
▲원망과 불평의 뿌리에는 <시기심>이 있다.
그러니까 모세 지도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실 자기 자신들의 문제(시기심)였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문제는 못 보고,
남의 잘못만 크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일어난다.
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얼마나 심각한가 하면,
고라, 다단, 아비람이 받은 징벌은 약과이고,
지도자 250명이 함께 징계를 받게 되고,
전염병이 돌아서, 1만 명 이상이 죽어나가는 참상이 생긴다. 민16:49
여러분,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지도자에 대한 시기심,
이것을 잘 다루어야 한다.
그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시기심 역시
그 지도자의 문제(잘못)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의 죄성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죄성’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과 화해하시고, 과거의 권위자들과 화해하셔야 한다.
과거에 부모님들에게서 받은 상처,
학교 선생님께 받은 정신적 학대/육체적 체벌,
교회 지도자에게서 받은 상처...
이런 것들을 완전히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상처가 자기 내면에, 무의식속에 남아 있어서,
자꾸 어디를 가든지, 직장/교회/사회에서... 그 지도자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은 내적치유 사역자들이 아주 강조하는 내용이다.)
기분 나쁘시더라도,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윗 권위자들과 쉽게 다투는 사람은,
과거에 어디선가, 윗 권위자에게 크게 실망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1. 시집가서,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은 아내, 남편과 잘 싸우는 아내는,
(남편의 잘못도 물론 있겠지만)
그 전에 자기 아버지와 관계가 안 좋기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집가서는, 은연중에, 자기 남편에게, 과거의 자기 아버지 이미지를 투사시킨다.
그 이미지가 좋으면.. 남편과의 관계도 좋은데,
그 이미지가 나쁘기 때문에.. 자기 남편과의 관계도 전투적이 된다.
남편도.. 자기 아버지처럼 그런 사람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기 때문이다.
▲예2. 강사나 설교자가, 간혹 한 가지 틀린 것을 가르칠 때,
그 한 가지 틀린 것 때문에, 나머지 99개가 다 맞고,
그가 강사로 활동할 만큼,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정하지 않고, 비판만 하는 사람은,
‘자기가 과거에 윗권위자로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기 전까지는,
그는 그 잘못(비판)을 계속 반복할 것이다.
그 강사가 틀리게 말한 한 가지를,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이런 일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그 자신이다.
그 한 가지에 걸려 넘어져서,
나머지 좋은 99가지를 못 배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은 계속 ‘비판의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자기는 강사로 활동할 자격도, 실력도 안 되면서...
▲여러분, 지도자와의 관계/윗권위자와의 관계에 상처가 치유되어야
그를 진정으로 존경하게 되고
그때 비로소 자기에게 성장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절대로 자기에게 성장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오늘 본문처럼,
지도자를 대적하다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서 망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자기 윗권위자를 용서하지 않으면,
나중에 자기가 윗권위자가 되었을 때, 똑같은 일/자기가 과거에 비판했던 일을 행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백성들의 불평을 살펴보면,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16:13
그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일평생 하면서
윗권위자들로부터 너무 많은 학대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그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으니까
이제 모세에 대해서, 애굽에서와 똑같이 대적하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16:14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라는 말은
‘우리가 뻔하게 다 보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소경이 아니며, 모세 네 속셈을 훤히 알고/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과거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그를 선대하고 잘 해 줘도 (사실 모세가 그들을 기도로 살린 적이 몇 번인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사람을/지도자를 잘 믿지 못한다.
그래서 잘 선대해 줘도.. 원망하고 불평한다.
혹시 이런 과거의 상처와 앙금이 우리에게 아직 남아있다면,
주님의 은혜로 다 (내적)치유 받게 되시기 바란다.
▲백성의 반기에 대응하는 모세의 태도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민16:4
영적 지도자의 자세는.. 같이 대항해서 싸우지 않는다.
영적 지도자의 권위는.. 자기가 싸워서 지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자기 권위를 지켜 주심을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님은, 모세의 영적 권위를 지켜주셨다.
그래서 지도자들 가운데, 백성들 가운데.. 엄청난 징계가 이루어졌다.
여러분이 만약 지도자라면, ‘엎드리는 일’ 말고는 하지 마시기 바란다.
백성들이 자기를 대적한다고,
같이 대항해서 똑같이 싸우는 사람은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기가 ‘영적 지도자’가 아닌 것을!
자기가 영적 지도자라는 자각이 있으면,
‘하나님의 내 권위를 지켜 주신다’는 확신이 반드시 있다.
그래서 그 지도자가 대응할 일은 ‘엎드리는 일(기도)’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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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그러면 지도자가 명백한 잘못이 있는데, 그래도 잠잠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나에게, 지도자를 비판할 권위와 임무를 주셨는지> 물어보면 된다.
간혹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은 그런 사명을 주셨다.
그래서 그들은 지도자를 비판했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해 주셨다.
자기가 그런 사명을 받은 사람만, 사명감으로 비판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내가 지도자를 비판해야 한다는
분명한 임무를,
하나님이 내게 주시기 전에는,
나는 잠잠히 있어야 하고, 오히려 그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며 순종해야 한다.
그 지도자를 심판하고, 비판하는 권세는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 주시든지, 아니면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심판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