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와 예배 출33:1~23 10.01.17.설교녹취, 정리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하나님의 임재>이다.
우리의 예배를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 때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말은, 예배를 안 드리고 있으니까, 예배에 더 자주 참석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안 나타나기 쉬우니까.. 그것을 회복하자는 뜻이다.
◑1.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 말은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다는 말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는 말은
그 분의 임재가.. 우리를 떠나셨다는 말이다.
▲예수 믿는다고, 자동적으로 임재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성도들이, 내가 예수를 믿으므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무조건 세례를 받고, 교회에 출석한다고.. 하나님의 임재가 내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오늘 우리가 매일 신앙생활에서, 또한 예배로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구해야 하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우리가 딴 것을 구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성공, 물질적 축복, 교회 성장.. 이런 것을 구하면서
마땅히 구해야 할 하나님의 임재/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약화, 신앙의 약화/세속화를 가져오는 주된 원인인 것이다.
▲본문 설명 :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한 모세
출32장에서 금송아지 숭배사건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그들을 멸하고자 하셨다.
그때 모세가 중재하며 기도해서, 하나님은 겨우 그 뜻을 돌이키시는 내용이
출33장 전체에 걸쳐 나와 있다. 살펴 보면
①하나님은 모세에게, 임재를 거두시겠다고 하셨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대로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겠다.
내가 내 천사를 앞서 보내어, 그곳 7족속을 몰아내어, 너희로 그 땅을 차지하게 하겠다.
그런데 나는 너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출33:1~3
앞서 32장에서 금송아지 사건 때문에, 하나님이 대노하셨기 때문이다.
②하나님의 임재를 모세가 간청하다
이때 모세가 간절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백성들에게 장신구를 제하게 한다. 33:6
-진 바깥에 회막을 세운다. 33:7
그래서 여호와를 사모하는 백성들만, 따로 진 바깥에서 모이게 했다.
그것은 타락한 백성들에게서, 거룩한 백성들만 구별하여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세는 여호와께 간구한다.
다시금 임재하셔서, 백성들과 함께 해 주실 것을 간청한다. 출33:12~13
③이러한 몇몇 과정들을 거친 후에..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회복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너희와 함께 가리라 내가 너(모세)를 쉬게 하리라' :14
처음에는 ‘너희와 같이 안 가겠다’고 하셨다가 :3
모세의 간절한 중재에 설득되셔서 ‘내가 친히 너희와 함께 가리라’고 말씀하셨다. :14
④여호와의 임재를 회복한 곳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다. 33:18~23
자세한 내용은 출33장을 읽어보시라. 여호와의 임재와 여호와의 영광은 항상 같이 간다.
▲하나님의 무소부재 와 임재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다. omni-presence
온 우주에 안 계신 곳이 없는데, 임재는 또 뭐냐? 당연히 임재하시는 것 아닌가?’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은 물론 편재(모든 곳에 계심)하시지만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임재하심으로써
그들과 실질적으로 함께 하신다.
성경에 아브라함에게 임재하신 하나님, 야곱에게 임재하신 하나님,
모세에게 임재하신 하나님 등.. 그 예는 셀 수 없이 많다. (하나님의 임재
를 보세요)
하나님이 늘 무소부재/편재 하시지만, 그 가운데 특별히 임재 하신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지 않으면
내가 예수를 믿고 있어도, 내가 무슨 직분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천지에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편재하시는 하나님은 당연히 계시지만
임재하시는 하나님,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지고, 내 가슴이 뜨거워지고,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
이런 것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임재가 없을 때는!
자기가 무슨 직분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일하신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시키시고, 자기 사명을 감당케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특별히 나타나 그와 함께 해 주시고, 동행해 주신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다니엘, 이사야, 사도바울.. 모두가 똑같다.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 백성을 구분하는 표시였다.
‘하나님의 임재’는, 이방에는 안 나타나고,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나타났다는 것이다.
오늘날 ‘축복 받아 부자 되었다. 애를 많이 낳았다’ 이런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아닌 사람들을 구분하려고 하는 시도는.. 맞지 않다.
벌써 구약시대부터,
이스라엘보다 훨씬 더 강성하고, 부유한 나라들이 이스라엘 주변에 많았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과 아닌 자들의 구분은,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느냐/아니냐?’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백성들에게 함께 해 주시고,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의 임재는 가끔이라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 성경적 근거는?
출33:16절에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서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백성과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모세의 이 말씀은, ‘임재’가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만민이 구분되는 정확한 표식인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승천하실 때
너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렇게 약속하셨다. 마28:20
하나님의 임재가.. 하나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분 짓는 표식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희 모든 필요를 채워주겠다.. 는 식으로 약속하지 않으셨다. (필요를 채워주시지만..)
◑2. 예수를 믿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모르고 살아갈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가 중요한데,
오늘날 안타깝게도 많은 신자들이.. 이것을 그저 교리적/지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지식이나 관념이 아니다.
반드시 내가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의 임재로 나타나는 현상은
하나님의 영광이 느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내 가슴이 뜨거워지고,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 이런 것들이다.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냉랭할 때는.. 주님이 임재하지 않으신 것이다.
▲두 세 사람이 모여도.. 임재가 안 임할 수 있다.
마18:20절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2~3명이 모이기만 하면, 주님의 임재가 당연히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2~3명이 모여도, 주님이 임재하지 않을 수가 경우에 따라서 많다.
대개의 경우, 우리 마음이 준비되지 않아서 그렇고,
또 우리 마음이 준비되어도, 주님의 주권적 역사에 따라, 임재하지 않으실 때도 간혹 있다.
▲전체가 회중예배로 모여도, 임재가 안 나타날 수 있다.
2~3사람이 아니라, 심지어는 전체 회중예배로 모였는데도,
주님의 임재가 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찬양도 힘을 잃고, 예배가 시간 메꾸기로 흘러간다.
물론 한 두 번은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세 번, 네 번 계속해서
회중예배에 주님의 임재가 나타나지 않으면
(주님의 임재가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회중예배인데)
저는 강대상 의자에 앉아서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주님, 혹시 목회자인 제가 준비가 안 되어서.. 오늘 예배가 이렇습니까?’
‘주님, 혹시 우리 회중 전체가, 주님께 뭐가 잘못 하는 것이 있는지요?’
그래서 나도 몸부림치고, 우리 모두가 몸부림친다.
주님의 임재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그런게 몸부림치다보면.. 회개하고, 기도하고, 사모하다보면.. 회복되게 된다.
A. W. 토저의 저서「예배인가 쑈인가」라는 책이 있다.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 예배는, 설교는.. 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원 제목이 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의 임재에 관심 없고, 예배가 엔터테인먼트 되어 감을 우려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설교시간 중간 중간에 터져 나오는 회중의 박수소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방해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저 웃고 떠들며 박수치는 것만을 좋아하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는 목마름이 없다.)
▲설교시간에 임재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설교자도,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부터.. 냉랭할 수 있다.
그러면 10번 중에 9번은, 설교시간에도 냉랭하다. (1번 정도는 특별한 은혜가 있다.)
또한 설교는 뜨겁게 준비했는데,
10번 중에 1번 정도는.. 설교시간에 냉랭할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9번의 경우에는, 주님의 임재가 보통은 잘 임한다.
어쨌든 설교를 냉랭하게 두 세 번 했으면,
나 스스로 몸부림친다. 하나님의 얼굴과 임재를 간절히 구한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반드시 주님의 임재가 임하는 설교를 하도록...
기도하며, 몸과 마음을 준비한다.
그래서 반드시 설교에 기름부으심/임재가 있어야.. 내 영혼이 만족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임재가 나타나지 않는데도.. 몸부림치지 않을 수도 있다.
‘주님의 임재’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거나
아니면 깊은 영적 침체에 장기간으로 빠져 있는 경우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내게 임하게 할 수 있는가?
①예배시간을 통해, 회중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임한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면서,
회중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중에,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예배 후에도 그 임재가 지속되는 삶을 살 수 있다.
②개인기도와 성경읽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개인적으로 체험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으로 빠져든다.
사실 이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는 사람은, 승리하는 삶과 사역을 할 수 있다.
영적으로 메마르기 쉬운 해외선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준비도, 바로 이 습관이라고 한다.
③극심한 고난을 통해서, 자기의 죄를 낱낱이 회개하면서,
하나님과 교제가 회복되고, 하나님과 친밀해지기가 쉽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능력 있는 성도가 되는 비결은, 사실 여기에 있다.
물론 위 3개가 모두 다 나타나기도 한다.
▲마치는 말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지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교회가 아무리 세상적인 부와, 명예와, 자랑거리를 많이 갖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희박하다면..
엔진 빠진 자동차, 앙코 없는 찐빵에 불과하다. 겉모습만 있다는 뜻이다.
제가 잘못 판단한 것인지 모르나,
오늘날 일부 교회에 ‘프로그램’은 차고 넘치는 것 같은데,
‘하나님의 임재’는 좀 희소한 것 같다.
하나님의 임재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랬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라고 자랑했지만,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3:17
정작 예수님은 문밖에 서서 계셨다. 계3:20
그들은 예수님의 임재를 문밖에 세워두고 말았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내가 영적으로 둔감해지고, 주님과 교제가 멀어지고, 습관적 죄에 빠져 있으면,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머리카락 잘린 삼손과 같이
-몰락할 당시 엘리 제사장의 집안과 같이
-에스겔 당시, 예루살렘 성전과 같이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완전히 떠나신 그 임재는
좀처럼 쉽게 돌아오시지 않았다.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 기간 중에 많은 고난도 있었고...
그런데도 오늘날 성도와 교회들이
정작 구해야할 하나님의 임재는 구하지 않고,
축복, 물질, 성공, 교회성장, 프로그램..
이런 것들만 먼저 구하는 것은.. 대단한 미혹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의 회복은,
그 무엇보다, 우리의 회중 예배에서부터, 가장 먼저
더 강력하게 회복되어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 같이 안보가 우리 기도제목이 되는 시기에는
더더욱 '하나님의 임재'가 간절히 필요하다.
이것만 있으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시27:1
라는 담대함이 생기고, 실제로 하나님이 강하게 해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아무리 법궤를 메고 나간들.. 지고 만다.
국가안보에 있어서, 교회의 사명이 중차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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