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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나타내신다 2472

LNCK 2010. 5. 28. 15:24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나타내신다                   요14:21                 10.01.23.설교대강녹취

 

...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어떤 역사적인 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마다, 그 부흥운동을 오게 했던 말씀이 있었다.

1906년 LA 아주사 거리의 부흥이 일어났을 때는          

오순절 성령강림이 임했던 사건을 기록한 ‘사도행전 2장’이 그 핵심 말씀이었다.

모두 ‘오순절의 성령강림’을 간절히 기도하던 가운데.. 부흥이 일어났다.


1904년, 영국 웨일즈 탄광촌에 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통회, 자복, 회개.. 이런 성경구절과 메시지가,

당시 계속되던 부흥집회에 주제를 이루었다.


   앞서 무디의 부흥운동은 종말론적 재림 대비와 찬양운동이.. 그 주제였으며

   더 앞서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의 부흥은.. 회심conversion이 그 주제였다.

 

그 때로부터 1백년이 지난 지금,

만약 이 세상에 괄목할만한 부흥운동이, 우리 시대에 다시 일어난다면,

그 핵심 되는 성경말씀, 그 주제는 과연 어떤 것일까?


‘교회성장운동 중심의 부흥’일까?

‘해외선교운동의 부흥’일까?

‘찬양과 경배의 부흥’일까?

‘사회봉사와 긍휼사역의 부흥’일까?

아니면 1907년의 평양처럼 ‘회개와 통회자복의 부흥’일까?  (이 글 마지막에 설교자의 주장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랐지만, 그렇다고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베드로는 그물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그런데도 깨어있지 못했다.

주님이 대제사장의 법정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베드로와 또한 다른 제자들은, 모두 다 도망가거나,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다.


제자들은 3년이나 예수님을 지근거리에서 좇았지만,

예수님을 따라서 열심히 섬기고 봉사했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의 사역에 열심은 있었지만, 예수님을 사랑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거의 다 도망쳤다.

그리고 예수님이 무덤에 계실 때에도.. 방에서 조용히 숨어지냈다.


▲그러나 일부 여인들은 예수님을 사랑했다.

그 여인들은, 예수님을 믿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했다.

예수님이 죽었지만, 상황이 종료되었지만, 그들은 향품을 준비했다. 눅23:56

보통의 경우, 죽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죽어도 그 사랑이 계속된다.


예수님이 죽어서 장사되었는데,

안식일에는 안식일이라서 못 오고,

안식 후 첫날에, 무덤에 제일 먼저 찾아온 사람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던 12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했던 마리아였다.


아무 직분(사도)도 없었고,

아무 인정도 못 받았지만,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 사랑은, 예수님이 죽으신 것을 알고도.. 무덤으로 나아가게 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여러분, 교회에서 예수가 죽은 것 같을 때에도 (비관적으로 볼 때 지금과 같은 때)

다만 예수를 믿기만 하는 자들은.. 방문 걸어 잠그고, 집안에 박혀 있어도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은.. 뭔가 움직이게 되어있다.


지금 교회가 죽은 것 같은 냉기가 도는 때에 (이 말은 가정임)

이때는 ‘주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걸러내시는 때’이다.


교회가 잘 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열심일 때는.. 누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차가운 냉기가 돌 때에는.. 누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인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인지(그저 믿기만 하는 자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예수님의 편파적 차별대우?

엠마로오 가는 제자들은 예수님께 혼났다.

‘이 선지자의 말한 것을 더디 믿는 미련한 자들이여!’  눅24:25


그런데 부활을 안 믿기는, 막달라 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무덤에 나아간 것은, 부활을 믿어서가 아니라,

예수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였다.


   ‘동산지기여, 내 주의 시신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부활을 믿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사정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미련한 상태였다.


만약 예수님이 형평성에 근거해서 말씀하신다면,

막달라 마리아를 향해서도, 엠마오 길의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이 선지자의 말한 것을 더디 믿는 미련한 자들이여!’

라고 엄하게 말씀하셔야 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지 않으시고,

대신에 ‘마리아야!’ 하고 사랑스럽게 불러주셨다. 요20:16


둘 다 믿지 않았는데,

엠마오 길의 제자와, 막달라 마리아에게

왜 예수님은 편파적으로 차별대우 하셨을까?


요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둘 다 부활을 믿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마리아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고,   

엠마오 길의 제자들에게는 ‘사랑’이 없었다는 것이다.


   조금 더 비약적으로 생각하면,

   ‘지식’ 또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만 있으면, 예수님이 다 봐 주신다.

  

   지금 마리아에게는

   부활에 대한 ‘지식’도, ‘믿음’도 없었다.

   오직 가진 것은, 사랑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를 꾸중하지도 않으시고, 책망도 않으시고,

   그저 사랑으로 그를 대해 주셨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사랑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 나도 사랑을 나타내리라


▲여기서 잠시, 내 경우를 진단해 보면,

만약 오늘 주님이 내 앞에 나타나신다면,

‘이 선지자의 말한 모든 것을 더디 믿는 미련한 자들이여!’

or ‘OOO야, 나다!’

이 둘 중에, 내게 어떻게 말씀하실까?


주님은 반드시 사랑에 반응하신다.

내가 평소에 주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 나를 책망하실 것이고, 

내가 평소에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나에게 사랑으로 대하실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환란, 시험은.. 내 믿음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테스트이다.

여러분이 교회 봉사하며, 주님을 섬기다가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 때는 ‘주님을 사랑하는지/아닌지’를 시험하는 좋은 찬스다.

주님은 ‘내가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그저 내가 인정받는게 좋아서 섬기는지

그것을 알기 원하신다. 

그래서 그런 시험을 내게 허락하시는 것이다.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에서 ‘예수님이 죽으실’ 수도 있다.

   인본주의와 교회기득권의 쟁탈전이 난무하면서,

   교회에서 예수가 사라지고, 주님이 무덤 속에 계신 것 같은 상황이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즉 예수님이 사라진 가운데서도,

   마리아처럼, 여전히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어떻게 하든지, 변함없이 주님을 섬긴다.


   그런데 ‘예수가 죽었다’고

   ‘예수님이 이 교회를 떠나셨다’고 하면서

   자기마저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이 계시든지, 안 계시든지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란다.


   예수가 사라진 교회를 보고서,

   비판만 하거나, 아니면 그 교회를 무시해 버리는 태도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땅한 태도가 아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비록 예수가 떠난 교회라 하더라도  (그런 교회가 있다는 가정 하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사랑한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랑은,

   예수가 있을 때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갔을 때에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마리아처럼!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는 해도,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지/아닌지, 그 테스트를.. 위에서 2가지로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①내가 주님을 섬기다가 오해, 핍박,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 일을 중단하는가?

  아니면, 여전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환란 가운데 그 사명을 계속하는가?


②주님이 교회를 떠나신 것 같다고.. 나도 덩달아 교회에 관심을 끊어버리는가?

  아니면, 그 무덤 같은 교회를, 마리아처럼, 계속 사랑해서 관심 갖고 찾아가는가?


②번의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오늘날에 소위 깨어있고, 열심이 있다는 성도들이, 

‘교회에 소망이 없다’며,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를 무시하는 경우다.


그런 사람은,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주님을 섬기는 봉사에는 열심이지만,

주님을 아직 사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 과거 경험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면..


▲제/설교자가 과거에 청년회장을 하다가, 교회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다.

당시 제가 다니던 교회가, 여러 가지 인본주의적 요소들이 많아서,

제가 강하게 비판을 했는데.. 제가 징계를 당한 것이었다.


처음에 저는,

그런 교회를 비난하고,

그런 교회를 나도 저버렸다.


그런데 그때, 성령님은,

그렇게 반응하는 제게 잘못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네가 주님을 위해 열심히 봉사한다고 하지만, 사랑이 없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결코 교회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교회가 주님의 몸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는, 그 깨달음을 받은 후에,

그 다음 날부터 그 교회 새벽기도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안 나갔었다.


교회는 여전히, 마치 예수님이 죽어서 누우셨던 무덤처럼,

싸늘한 냉기가 감돌고, 생명의 역사가 없는 교회였지만,

저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교회에 새벽에 나가서,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빈손으로 나아가지 않고, 마리아처럼, 향유(헌금)까지 가지고 나아갔다.


여러분의 교회도,

차디찬 냉기가 감도는, 예수가 죽어서 없어진 무덤 같더라도,

여전히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항유까지 갖고 나아가서, 주님(교회)을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란다.


그때 이런 약속이 이루어진다.

요14:21, ...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된다는 것이다.


▲서두에 제/설교자가 던진 질문에.. 이제 저의 대답을 드리겠다.

제 생각에는, 제가 바라보는 바로는,

모든 시대의 부흥운동에 어떤 키워드 말씀과 주제가 있었는데,


앞으로 장차 다가올 부흥은,

큰 믿음과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는, 그런 영웅을 통한 부흥이 아니라,


사람이 외면하는 모임에서도

향유를 들고서, 그 차디찬 무덤 같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을 통하여

주님은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실 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주실 것이다.


그런 사랑을 통한 부흥이 일어나게 되리라고.. 저는 내다본다.

또 그런 사랑을 통한 부흥이 일어나야 하리라고 본다. (당위적으로)


▲복음서의 맨 마지막에,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갈릴리 바다에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예수님이 물으셨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런 질문을 던지신 것은,

예수님 역시,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으셨다.         *관련글: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 너는 아느냐?


   ‘베드로야, 너는 나에게 능력을 구할지 모르나,

   나는 너에게 사랑을 원한다.


   베드로야, 너는 나에게 큰 사역을 원할지 모르나,

   나는 너에게 사랑을 받기/주기원한다.

   나를 사랑하는 제자가 되거라. 그리하면 너는 승리할 것이다.’


여러분, 말세에 핍박 대환란 great tribulation 이 있을 것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이미, 그 대환란을 현실에서 목격하고 있다.

물질주의, 맘몬주의의 폭격에서.. 성도들이 신음하고 있다.

믿음에 심각한 도전과 배교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물질주의과 풍요의 도전 앞에서

사랑하지 않는 자는.. 어려움이 오면 다 변절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신 것이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이 없으면, 너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를

앞으로 다가올 부흥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런 부흥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함이 없이는.. 결코 부흥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다 변절하고 만다.


▲마치는 말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주님께, 큰 능력과 큰 사역을 구한다.

축복과 성공을 구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주님을 사랑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


환란과 시험이 와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교회가 차가운 무덤처럼 변하고, 예수님이 죽으신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주님을 사랑하여 무덤을 찾는 막달라 마리아 같은 사람을.. 주님은 찾고 계신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 요14:21 


그 사람이 이 시대의 대안이요,

예수님이 감취두신 차세대 비밀 병기다.                                                                      ▣ 사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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