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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륜을 깨닫자 2482

LNCK 2010. 6. 3. 22:19

◈경륜을 깨닫자                 엡1:7~10                  09.04.10.설교녹취


 

▲경륜이란?

엡1:7~10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받은 것은,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구원사역을 이루신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미리 예정하신,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것이다.


엡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경륜이란,

오늘날 우리가 알기 쉬운 말로 옮기면 ‘경영’이다.

그 ‘하나님의 경영(경륜)’은, 엡1:9절에서 보듯이, 반드시 때가 있다.

때가 찰 때, 비로소 그 하나님의 경영이 이루어진다.


▲요셉이 깨달은 경륜

요셉이,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기 이전까지는,

그의 삶은 한 마디로 ‘억울, 그 자체’였다.


자기가 꿈을 꾸고 싶어서 꾼 것도 아니고,

자기가 형들을 지배하겠다는 지배욕에 불탔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요셉은, 영문도 모른 채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간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더 억울하게 감옥에까지 갇힌다.


후에 요셉은 깨달았다.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것을!


   여러분, 요셉이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남들만큼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가 모진 인생을 살았던 것이 아니다.

   되돌아보니.. 그게 <하나님의 경륜>이었던 것이다.


여러분, ‘인생에서 내 노력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속에 들어간 사람은,

자기가 노력하고, 애쓰고, 발버둥 친다고 해서.. 그 경륜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경륜>의 강물이 너무 큰 나머지,

내 노력, 내 환경, 세상 역사.. 이런 지류들은, 다 큰 강물에 편입되어 버린다.

결국 <하나님의 경륜>만 나타나게/이루어지게 되어있다.


<하나님의 경륜>속에 들어간 사람은,

죽어라고 노력해도.. 내 원하는 소원대로 안 된다.


내 노력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경륜, 경영, 계획>만.. 때가 차면 성취된다.


   유대인들이 신구약 중간기 약 4백 년 동안에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런데 메시야는,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오시지 않았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차매’, 비로소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의 경륜>은, 인간의 소원/노력/몸부림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죽을 노력을 다 했는데도.. 안 되는구나!’ 하시는 분,

‘내가 금식하고 죽을 각오로 매달리고 뛰어다니는데도.. 결국 안 되더라’는 분은,

그 투쟁을 그만하시고,

나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을, 한 번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란다.

내 노력과 분투로.. <하나님의 경륜>을 제어할 수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노력을 조금만 더 했으면, 달라졌을 텐데..’

‘아무래도 내가 노력이 1% 모자랐던 거야.. 이제 밤잠을 줄이면서, 더 노력해야지!’


여러분, 어서 빨리 더 노력해 보시기 바란다. 그래서 깨달으시기 바란다.

‘죽어도 안 되는구나!’, ‘죽을 각오로 뛰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구나!’


(그런데 내 주위에 가끔 ‘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미련을 못 버리는데..)


▲내 발버둥도 안 통한다.

<하나님의 경륜>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주님의 능력으로만 된다. 주님의 때가 차야 된다.

‘내 노력’이 영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결과를 좌우할 정도로, 결정적 요인은 되지 못한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면서,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죽어도 안 되는구나!, 내 인생, 죽도록 안 풀리는 구나!’


그 전에 요셉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종살이만 열심히 하면.. 무슨 길이 열리겠지..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겠지..’


요셉이 제아무리 발버둥 치며 노력했지만, 노력이 안 통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의 물결이 너무 크고 거센데 비해, ‘요셉의 노력’은 작은 물줄기였다.

그것이 도도한 경륜의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아마 하나님은, 감옥에 있는 요셉에게, 이렇게 감동하셨을 것 같다.

  ‘그래, 요셉아, 죽으면 된다. 너 자신의 모든 노력을 포기하여라.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에, 네 모든 생명까지도 다 맡기거라!’


요셉은, 더 이상 자기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자기 능력, 자기 판단, 자기의 선한 모든 것.. 다 동원해 봐도..

결과는 ‘죽어도 안 되는구나!’ 니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그 ‘경륜의 강물’에 자기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살든지, 죽든지..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에라, 모르겠다)’  


여러분, 인생의 극한 노력 속에서, 하다가 하다가 안 되어서 좌절할 때,

더 이상 ‘자기를 신뢰하지 않을 때 까지’ 그 좌절은 계속 파도처럼 올 것이다.

자기 인격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능력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모든 것을 다 버릴 때,


다시 말해서, 오직 하나님 한분만 철저히 신뢰하게 될 때까지

<하나님의 경륜>에 속한 사람은.. 그 지점까지 하나님이 끌고 가신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신뢰하고,

검sword을/물질을/인맥을/경력을/가족까지/자기 생명까지 모두 버릴 때까지

<하나님의 경륜>에 속한 사람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신다.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경륜>의 ‘인간 측 파트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셉은 모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는다.

7년 풍년이 오고, 7년 흉년이 올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결국, 그는 자기 시대에 ‘하나님의 때가 찬 경륜’을 이루었다.

엡1: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위 구절에 보면,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는 사람은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하신다고 하셨다.

그래야 <하나님의 경륜>을, 그 비밀을 잘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셉이 ‘7년 풍년, 7년 흉년’을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는 자에게 따라오는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되는 역사가 자기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죽을 노력을 다 했는데도.. 안 되는구나!’ 하시는 분 이야기로 돌아가서,

   혹시 ‘하나님의 때가 찬 경륜’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경륜이 나타나는 사람의 증거 한 가지는

   모든 지혜와 총명이 자기에게 넘치는 것이다. 엡1:8

   그래서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다. 엡1:9

   그 결과, 신비한 하나님의 경륜의 역사를.. 슬슬 풀어내게 된다.


▲신약 성도는 <경륜>안에 있다.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그런데 그 경륜을 깨닫는 역사는, 요셉과 같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일어나지 않고,

엡1:7절에 의하면, 예수 피로 구속, 곧 죄사함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난다.

그럼, 이러한 신약성도들이

지혜와 총명이 넘쳐서, 깨달아야할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인가?


엡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결국 역사의 마지막에 완성되게 하실, 구속사의 완결이다.

-그리고 성도는, 그 하나님 나라에 기업(유산)이 있다는 것이다. 엡1:11


   그래서 구속함 받은 성도는.. 땅엣 것을 추구하며, 바라며, 살아가지 않는다.

   현세에 부자되고, 성공하는 것에.. 그리 집중하지 않는다.

   지혜와 총명이 넘쳐서,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게 되었는데,

   곧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속사의 완성과, 그 영생 안에서 내가 얻을 내 기업의 영광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눈이 뜨이지 못하는데, 그래서 땅만 바라보는데,

   구속함 받은 성도는, 요셉처럼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아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완성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 것이다.


▲다윗이 자기 시대에 깨달은 하나님의 경륜

다윗은 자기 시대에,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성전을 지을 재료를 준비하기 원하신다는 뜻을

유일하게 깨달았던 사람이었다.


매일 성막에서, 제사 드리는 것이 일과였던 제사장들도, 그 시대적 경륜을 몰랐다.

그들은 성막으로 만족하고 있었고, 하나님이 성전을 짓고자 하시는 뜻을 전혀 몰랐다.


제사장들은, 성막에 들어가는 특권이 있었지만, 그 경륜을 몰랐는데,

다윗은 성막 바깥마당에만 출입하면서도, 그 하나님의 경륜을 다 깨달았다.

다윗이 주님을 지극히 사랑했으므로,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에게, 당신의 뜻/계획/경륜을.. 알게 하신 것이다.


▲마치는 말

여러분, 이제 노력을 그만 두시기 바란다.

대신에 이제부터 순종의 삶에 포커스를 맞춰 보시라.


‘노력’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경륜에 관계없이, 그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잠 잘 겨를도 없이,

마치 낚시꾼이 낚시대를 혼자서 20~30개 드리우고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순종’은,

주님이 시키신 그 일만 감당하는 것이다.

낚시꾼에 비유하면, 낚시대가 한 개밖에 없지만

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고기가 있는 바로 그 곳에 낚시줄을 던지는 사람이다.

그에게 낚시대가 여러 개가 필요 없다.

어차피 자기 손으로 사용 가능한 낚시대는 한 개니까.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사람이 말한다.

   ‘나는 안 해 본 게 없습니다!’


   그의 탄식을 들은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안 되지!’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주님이 시키신 그 일(경륜속의 자기 사명)만 추려서 한다.

   그리고 자기 한계를 넘어가는 일은, 멈출 줄 안다...


..........................................

 

 

◑God's Project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순교로 주님을 믿는 무리는 흩어지게 됩니다.

기업으로 치면 파산이고

공동체로 치면 해산입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장소적 공동체는 깨지고

사람들은 뿔뿔이 헤어집니다.

망했습니다.

끝장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루살렘이 망하니 디아스포라,

즉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생겨납니다.

인간이 도모한 것을,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으로 바꾸십니다.


마치 아버지 야곱의 편애와

형제들의 시기질투 때문에 요셉이 팔려간 것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원 계획으로 바꾸심과 같습니다.


빌립 집사도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인간적인 삶의 근거를 잃고

인간적인 관계도 다 끊어졌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왜 가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로 갈 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만이 모든 이유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계획(God's Project)이 열립니다.


유력자 간다게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관계를 엮으시고

그를 통해 더 큰 일을 더 폭넓게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스데반의 사건은 또 다른 하나님 계획의 시작입니다.

이 일에 가담한 사울을 당신 계획의 도구 삼으십니다.

그러니 인간으로서는 속단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성공한 것이.. 오히려 잘못 되는 수도 있고

망한 것이.. 성공의 시작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선>                                               ▣ 기독교 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