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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경쟁 전에 내 사기 먼저 꺾기

LNCK 2010. 5. 26. 13:00

 

◈생존경쟁 전에 내 사기 먼저 꺾기           시20:1~9        09.03.24.설교스크랩

 

 

▲기도 (원래는 마치는 기도. 여기에 설교의 주제가 함축되어 있음)

하나님아버지!

우리 인생의 끊임없는 소원은, 항상 뭘 정복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의 어느 것도 정복할 수 없는 죄인이며

오히려 형벌과 심판으로 정복당해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이 점을 깊이깊이 깨닫고

소제와 번제가 합쳐져 있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내 마음속에 늘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뭘 정복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나의 십자가에서 죽게 하옵소서.

 

그럴 때.. 오직 내 소원이 죽고, 내 계획이 죽고,

하나님의 소원과 계획만이 내 안에 살아서,

하나님의 역사가 내 삶에서 일어나며 하나님의 이름이 자랑되어지며,

하나님의 이름이 쓴 깃발이 높이 들려지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정복(전쟁을) 하기도 전에, 먼저 내 사기를 꺾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전쟁을 예로 들어보면,

장군이나 지휘관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정복하기 전에, 군인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술이나, 환각제를 먹인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복전쟁에 나가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의도적으로 사기를 꺾는 그런 일은.. 세상에 있을 수 없습니다.

 

▲설교 전에 성가대 찬양도.. 사기를 북돋우는 일

설교를 하시기 전에 성가대가 찬양을 하지 않습니까?

그때 그 성가대의 찬양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목사님들의 설교를 하는 ‘사기’가 크게 영향을 받고,

성도님들이 설교를 듣는 ‘사기spirit’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봅니다.

 

그래서 요즘은, 설교 전에, 중간에, 후에

설교자가 직접 강단에서 회중의 찬양을 인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은혜의 분위기가 감돌게 하는데.. 쉽게 말하면 ‘사기 진작’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사기라는 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시편20편을, 설교자는 <전쟁 전에 사기 꺾기>라고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있어요.

영적 전쟁에 있어서 신앙인이 싸우는 자세는,

먼저 자신이 다 죽어야 해요.

그래야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할 수 있어요.

 

본문 시편 20편은 <출정 시>입니다.

다윗이 지은 시지만, 전쟁을 하러 나갈 때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그러니까 정복하러 나가는 자들이 부르는 시입니다.

 

물론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의 소원은.. 당연히 승리입니다.

그런데 이 시편은, 승리를 얻기 전에, 먼저 자기 사기를 다 꺾으라고 말하는데요..

한 번 자세히 살펴보실까요?

 

 

▲시20:3절,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주시기를 원하노라.

 

당시에 전쟁을 하러 나갈 때, 소제와 번제를 드리는 의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소제를 기억하시며’, ‘번제를 받아주시기를’

이런 간절한 표현은,

그 의례가 습관적인 제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였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의 저자인 다윗의 간절한 소망은

먼저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기 전에

우리의 소제와 우리의 번제를 받아주시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소제grain offering가 뭡니까?      *소제素祭(흴 소) 곡식가루가 흰색으로 추정해서 만든 말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서 드리는 제사에요.

그 빻은 곡식가루로 전처럼 부치든지, 구워서 하든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곡식을 왜 가루로 갈아요?

자신의 존재를 죽이고, 말갛게 부셔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서, 헌신하겠다는 뜻이죠.

자기 의지나 고집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번제>가 뭡니까?

번제물의 가죽과 뼈와 힘줄을 다 각을 떠가지고(발라내서) 태워드리는 제사입니다.

즉, 내 살과 뼛속에 깊이깊이 파묻혀 있는 죄악까지도

다 겉으로 드러내가지고 태워버리는 게 번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평소에는 망나니처럼 살다가

    제사 드릴 때만 몸과 마음을 엄숙히 한다고.. 그게 될까요?

    그래서 신약에서는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롬12:1

    내 평소의 삶/행동/생활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런 사람의 제사와 제물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전쟁에 출정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거예요.

‘너는 죄인이다.

소와 양의 각을 떠서 제단에 바친 제물이

불에 훨훨 타며 사라질 때.. 저게 바로 나다.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승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없다는 뜻)

나 같은 죄인이 사업장에 나가서 어떻게 사업을 잘 할 수 있겠는가!

나 같은 죄인이 누구를 만나며, 무슨 결혼을 하며, 어떤 일을 하겠는가!

 

완전히 세상 삶을 살아나갈 때, 사기가 충천해서 나가는 게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소제와 번제를 통해서.

 

그래서 깡그리 죽어버립니다.

‘나는 안 된다. 전쟁은 무슨 놈의 전쟁. 승리는 무슨 놈의 승리?’

 

지금 적군과 맞서 싸워야 하잖아요.

그런데 철저히 자기를 죽이고, 자기를 부인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시편에 제목을 붙이기를

‘전쟁 전에 사기 꺾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간절히 시냇물을 찾듯이,

내 영혼이 간절히 주를 찾기에 갈망할 때에

비로소 주님의 임재가 임하면서, 주님이 나와 동행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42:1

 

그때 나타나는 결과가, 다음구절인 4절, 5절입니다.

 

 

▲4절,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주시기를 원하노라.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의 계획과 소원이 뭐겠습니까?

어찌하면 이길 수 있을까를 계획하고

결국 마지막 소원은 승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모든 계획을 이루어주시기를 원하노라.’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생존전쟁입니다.

전쟁이 꼭 이웃나라하고 싸워야만 전쟁입니까?

날마다 장사하러 나가도 옆집 가게하고 전쟁이고,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전쟁이고,

우리 삶의 장이.. 어쩌면 모두 경쟁이요, 전쟁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이 전쟁을 대하는 자세는,

내 힘과 사기를 진작시켜서, 최대치로 끌어올려서

내 힘으로 싸워 이기는 전쟁이 아닙니다.

 

반대로 먼저 전쟁터에 나가는 자들의 기를 완전히 꺾어버립니다.

번제와 소제를 통해, 자신을 완전히 죽여버립니다.

 

‘너는 어떠한 전쟁에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악한 자다.

너는 단 한순간도 하나님을 기억하며,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는 악한 자다.

전쟁터에 나가 총칼에 맞아 죽기 전에

너는 벌써 벌을 받아서 죽은 지 오래됐어야 됐다.’

 

이렇게 납짝 엎드리고, 자기 마음의 옷을 찢을 때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모든 계획을 이루어주시기를 원하노라.’  :4

이런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5절,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 원하노라’

세상에 이런 기분 좋은 축복의 약속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청년들이, 자기가 짝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위 5절 말씀을, 응답의 약속처럼 붙잡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사업하는 집사님이, 큰 프로젝트 계약을 따내기 전에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는 약속을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새벽기도에 나와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가 응답 안 될 때가 많아요.’ 현실에서는!

    ‘네 모든 기도’는커녕

    ‘한 가지 기도’도 응답 안 될 때가 있어요. 현실에서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5절의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3절에서 ‘자기 사기/의지를 다 꺾어야 하는데’

    3절을 건너뛰고, 4절과 5절만 붙잡으니까.. 그게 안 되는 것이죠.

 

    3절에서 자기가 완전히 죽은 사람은

    ‘살든지 죽든지, 되든지 안 되는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항복합니다.

 

    전쟁을 치러 나갈 때에도,

    자기 체면/자기 목숨/자기 생존이 걸린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쟁을 치러 나갑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마음을 비웁니다.

 

    그런 ‘자기 비움, 내려놓음’이 있을 때에

    ‘네 모든 기도를 이뤄주시기를 원하노라’는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그 모든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기도이거든요.

    자기 야망과, 자기 체면, 자기 목숨이 걸린 기도가 아니거든요.

    자기는 이미 죽었는데.. 자기 소원이 뭐가 있겠습니까?


 

 

▲7절,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자랑이란 게 뭐예요?

떠벌리는 거예요.

 

계속 하나님을 떠벌리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름을.

 

번제와 소제로 자기가 완전히 죽은 사람은,

자기를 자랑할 거리(꺼리 item)가 없어지죠.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만 자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번제와 소제를 통해 자기가 완전히 죽은 사람은,

마음에 소원이 생겨요. 마음에 계획이 떠오릅니다.

그 소원과 계획은.. 누구의 소원이며, 누구의 계획입니까?

물론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6:5절에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라고 했습니다.

 

우리 소원, 우리 계획은요,

그게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면,

사실 항상 악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생존경쟁의 장에 나가서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남을 죽이고, 자기만 살겠다는 궁리만 합니다.

 

그러나 번제와 소제(신약적 의미로 십자가)를 통해

자기가 완전히 죽은 사람은,

생존경쟁을 하더라도.. 자기 싸움이 아니라.. 여호와의 싸움을 싸웁니다.

 

그래서 병거나 말을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전쟁에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하는 직장 일,

오늘 내가 하는 사역,

오늘 내가 하는 학교 공부.. 이게 다 ‘여호와의 전쟁’을 싸우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 직무를 수행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과,

병거와 말(인간적 수단)을 의지하는 사람이... 서로 경쟁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한 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체험적으로 알게 되시기 바랍니다.

 

 

▲마치는 말

따지고 보면 여러분, 인생은 다 전쟁이에요.

자식을 기르는 것도 전쟁이에요.

 

그런데 이 전쟁 같은 인생을, 완전 정복하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먼저 자기 (사)기를 꺾는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식을 기르는 현장에서, 자식을 대면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또한 자식 앞에서.. 죽은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련글 :  나는 죽었어!

 

내 힘과 능력으로 자식을 잘 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자녀양육이란 전쟁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면 된다’는 거예요.

즉,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먼저 자기 기氣를 꺾어야 되요. 자기 사기를 다 꺾어야 되요.

‘내가 자식을 잘 기를 수 있다. 내가 자식을 인도하면 다 잘 된다.’

그런 사기/자신감을 다 꺾으세요.

 

뭐로요?

소제와/ 번제로/ 십자가로 자기 죽음을 선언하세요.

 

전쟁에 나갈 때마다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설교자도 마찬가집니다.

말씀을 전하기 전에, 날마다 기가 꺾여가지고

‘내가 무슨 설교를 하냐? 나 같이 추악하고 더러운 죄인이..,

주여, 주님의 십자가로 내가 죽고, 다시 살게 하옵소서,

부활의 주님이, 내 속에서 활동하여/설교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나오면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주시면.. 내가 강해진다’고 우리가 생각해요.

 

그러나 더 엄밀하게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이 진짜 붙드시면.. 먼저 내가 사기가 꺾이고, 내가 약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십니다.

그 다음에 주님의 능력을 덧입게 하십니다.

그래서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무조건 내가 슈퍼맨/원더우먼이 되게 붙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말했듯이, 우리는 약할 때 강해지는 것이지,

내가 강한 상태에서, 주님의 축복으로, 더 강한 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의 축복을 받아서 자기가 더 강해지겠다는 사람들은

   정신 반짝 차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오히려 망하는 길입니다.

 

   정말 강하고, 정말 전쟁에서 이기기 원하는 사람들은,

   먼저 약해져야 하고, 자기가 먼저 죽어야 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부활한 사람이.. 정말 승리자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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