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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2487

LNCK 2010. 6. 7. 18:09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막6:30-33               02.07.07.설교스크랩        


 

▲지금 우리는, 쉬는 문화가 아니라, 일하는 문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늘 제목이 된 "쉬어라"라는 말은

설교자들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었던 말씀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마가복음에, 이런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안 게 최근 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성경에 ‘잠깐 쉬라’는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많지 않으실 겁니다. 아마 그 부분을 읽더라도 그냥 지나치셨을 겁니다.

그만큼 우리의 문화는 쉬는 문화가 아니라, 일하는 문화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일하고 충성하라고만 강조했지, 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어딘가 우리 상황에 맞지 않게 생각했고

그런 마음을 먹는 것조차, 잘못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하면서, 이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람에게는 일보다 쉼이 더 중요합니다.

캐나다의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은

만약 일과 쉼 둘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한다면

일이 아니라, 쉼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극단적으로 '바쁜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결국에 바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쉬면서 하는 일,

하나님 만나고 인생의 근본을 생각하며 시간을 음미하는 것이,

일하면서 이뤄지는 것보다.. 훨씬 인생에서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라는 겁니다.


   언뜻 이런 얘기는 비현실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으로 들립니다.

   "아니, 어떻게 일을 하지 않고 쉴 수 있으며,

   쉬는 것부터 먼저 하면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반문하실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피터슨 박사는 멜빌의 <백경>이라는 소설을 인용하면서 설명합니다.

 

고래잡이배가 ‘모비딕’이라는 흰 고래를 쫓고 있습니다.

바다는 쉴 새 없이 출렁이고, 선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를 젓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림처럼 앉아있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누구냐 하면 작살을 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작가는 말하기를

"작살이 최고의 정확성을 갖기 위해서는.. 작살 던지는 사람이

수고 가운데서가 아니라, 한가로움 가운데서 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작살 던지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때가 되고, 준비가 되면, 그는 작살을 정확하게 쏘아야 합니다.

모든 선원들의 수고와 노동은, 바로 이것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생을 보다 깊이 있게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분주함’이라는 적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은 필요하지만, 휴식이 있는 노동이어야 하고, 휴식을 위한 노동이어야 합니다.


피터슨 박사는, 목사들이 예배나 기도도

일처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경건한 사람이 되려면, 분주함을 몰아내고 쉼의 영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목사의 마음에 쉼이 없는데, 어떻게 사람들을 쉴 수 있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쉬며 놀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쉼의 영성>은, 일 위에 일을 쌓는 분주함에 반대되는 말로,

조용하고 편안하게 욕심 부리지 말고 일하고, 쉼이 있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설명 : 잔뜩 고무된 제자들                                       *고무된 : 고-북치고, 무-춤추다. 즉 사기가 잔뜩 오른.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6장의 본문말씀과 전후맥락을 살펴보면

휴식에 대한 우리 주님의 생각을 보다 자세히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를 부르시고, 둘씩 내 보내시면서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막6:7~13

그래서 제자들이 나갑니다. 그리곤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옵니다.

그러면서 막6:30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서 자기들이 일했던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매우 고무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떠날 때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입은 옷, 신고 있는 신발이 전부였고

그 당시 여행객들이 가지고 다니는 전대에는, 한 닢의 동전도 없었습니다.


정말 자신들도 가난한 사람이 되어서 이곳저곳을 두루 다니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이 손을 얹는 사람들에게서는 귀신이 쫓겨나고, 병이 낫고

그리고 어느 집에 들어가더라도, 그들에게 먹을 것과 거처할 곳이 제공되곤 했습니다.


이러한 체험은 사도들에게 너무나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감격과 성취감은 아마도 하늘을 치솟았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그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라도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의 보고를 받고 난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얘들아 이제야 바야흐로 우리의 시대가 왔다.

   앞으론 더 많은 사람들을 파송하기 위해, 큰 훈련원과 사무실을 짓고,

   우리의 조직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고,

   이 일을 위해 더 많은 후원자들을 모집하도록 하자' 그러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조된 분위기와는 반대로, 사도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6:31


▲흥분을 가라앉혀라!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사도들을

인간적인 흥분과 성취감에서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본문에 “거기에는 오고가는 사람이 하도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막6:31

흥분에 사로잡혀 있는 사도들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그 열기와 흥분으로 다시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그 전보다 더 큰 일을 성취해 보려고 하는, 그런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신 것이 아니라, 위기를 감지하셨습니다.


그래서 한적한 곳으로 그들을 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일보다 휴식이었던 것입니다.

휴식은 재창조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는 게 예수님의 생각이셨습니다.


영국의 왕실 아카데미에서는,

사람이 일을 하다가, 며칠 만에 한 번 쉬는 것이 좋은가를

여러 각도에서 조사하고 연구해서 데이터를 냈습니다.

그런데 연구의 결론은 "7일 중에 한 번 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라고 했답니다.


그러면 사람만이 아니라, 짐승은 어떨까 하여 연구했습니다.

1주일에 하루를 쉬게 하는 나귀는, 짐을 지고서 하루에 30마일 이상을 갈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1주일 중에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나귀는

하루에 겨우 15마일밖에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매일 일하는 나귀는,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 나귀보다

그만큼 손해가 많고 쉽게 병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쉬어야 합니다.


쉰 후에도 새로운 계기가 되지 않는다면, 그 쉼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저 역시도 오늘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 자신에게 물어 봤습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쉬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너는 쉬면서 어떤 휴식의 달콤함이 있냐?

그리고 쉰 후에는 뭔가 새로워지는 게 있냐?" 자문해 보았습니다.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휴식은 있지만 안식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프랑스의 어떤 의사가, 병원진료를 마치고, 오후에는 자기 집에서

    화초도 키우고, 목공일도 하면서, 집안 여기 저기를 꾸미며 일했습니다.

    이웃집 한국인이 보니까, 그가 의사로서 하는 병원진료보다, 집안 일이 훨씬 더 힘들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이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집에서는 좀 쉬셔야죠. 너무 무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의사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저는 병원일 말고는, 모든 일이 제게는 쉬는 일입니다.

     당신은.. 쉰다는 개념이, 그저 누워서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참된 쉼은, <영혼의 쉼>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육체의 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영혼의 휴식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휴식이 아닙니다.

몸을 아무리 쉬어도.. 영혼은 여전히 피곤하다면.. 거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몸과 영혼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몸의 쉼은, 결국 영혼의 쉼으로 나아가야 하고,

영혼의 쉼을 갖기 위해서, 몸의 쉼(일상 탈출)도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 안에서 누리는 참된 휴식을 찾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몸과 영혼이 다 소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때로는 한적한 곳으로 혼자 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 주님을 의식하면서 쉬어야 합니다.

    

   쉬면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또 우리에게 짐을 주시고 멍에를 주실 것입니다.  마11:28~30

   그러나 그 짐과 멍에는 더 이상 무겁지 않을을 것입니다. 쉽고 가벼울 것입니다.

   이런 참된 쉼과 평안이, 여러분에게 평생 계속되기를 축원합니다.                             ▣ 크리스천 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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