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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0

성전의 존재 목적

LNCK 2010. 6. 10. 13:30

 

◈성전의 존재 목적                        고후6:16                          10.01.24.설교녹취

 

 

 

성경의 주요 사상을 잘 설명하고 있으므로,

약간 딱딱한 내용이지만, 2~3번 읽으시면서, 이해해 두시면 좋습니다.

저/편집자도 정리하기 전에, 설교오디오를 2~3번 듣고서, 겨우 이해했습니다.

 

아니면, 우리가 '제 눈에 안경' 식으로 성경을 읽거나, 이해하게 됩니다.

자기가 원하는 구절과 마음의 소원대로, 성경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죠.

일례로, 부자 되고 싶은 마음으로 성경을 보면.. 모두 그런 구절만 신구약에 수 백 군데 이상 보입니다.

 

 

◑출애굽의 목적 ... 그들 중에 거하며 친밀한 교제를 누리심

 

출애굽 목적은.. 히브리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보내는 근본적 목적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였다.

 

출29:46에, 하나님이 그들 중에 거하시려고, 애굽 땅에서 출애굽 해내었다고 한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출29:46

 

하나님은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 가운데서 친밀한 교제를 누리시기 위해서, 그들을 출애굽 시키신 것이다.

 

   참고로, 성육신의 목적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이 땅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지만,

   먼저 예수님이 하신 일은, 육신을 입고서, 사람들 가운데 함께 거하기dwell 원하셨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dwell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주님이 사람들 가운데 거주하기 원하시는 이유는.. 친밀한 교제 때문이다.

 

 

구약시대 성전의 목적 ... 그들 중에 거하며 친밀한 교제를 누리심

 

구약시대 성전은, 신약의 교회(성도, 또는 성도들의 모임)의 그림자였다.

구약의 성전에서.. 하나님은 백성들과 친밀히 교제하기 원하셨고,

마찬가지로 신약의 교회에서.. 하나님은 성도들과 친밀히 교제하기 원하신다.

 

즉, 구약의 성전은.. 성전제사/의식/형식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을 통한 하나님과 교제/기도/예배가 중요했다.

 

▲1.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의 거하실 집이 그 주요 목적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살 집이 없어서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시는 것이 힘드셔서,

이제 내가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아야 되겠다고.. 그래서 성전을 지으신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성전의 주된 목적은 주거용도가 아니라, 교제용도라는 것이다.

 

①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드린 기도를 살펴보면,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실 주거용 집이 일차적 목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역대하6:18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주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솔로몬의 성전건축 목적은,

하나님이 집이 없어서, 집을 지어드린 것이 아니다.

 

성전의 목적은, 하나님과 교제에 있었다. 즉 예배하고, 기도하는 곳이었다.

하나님이 거기서

주의 백성들을 주야로 바라보시고,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기 위함이었다.↙

 

대하6:20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1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②이사야 선지자도, 형식 위주의 하나님은 집(건물)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사66: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이런 구절을 읽으면, ‘성전 지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솔로몬이 괜히 성전 짓느라 헛고생만 했다’는 오해를 하게 되는데...

 

그러나 연이어 말씀하시기를,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하나님은 ‘집’이 아니라, ‘사람’들과 교제하기 원하신다.

그래서 집(건물)이 필요한 것이다. 그 본질 교제 을 위해서 형식 성전 이 필요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성전건물이 아니라,

그 속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의 ‘겸손히 떠는 심령’이었다.

 

 

③예수님도 같은 맥락으로 말씀하셨다.

막11:17,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나님과 교제)하는 집이라...

그러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④스데반의 설교에서도, 성전의 존재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행7:46~49,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사66:1 인용)

 

위에서 살펴본 바는,

<하나님은 성전 건물 자체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성전무용론’을 주장하신다고.. 우리가 오해할 정도이다.

사66:1, 행7:49절을 읽으면 특히 그렇다.

 

▲정리하면

구약의 성전이 ‘하나님의 주거용 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성전에서 ‘형식적인 제사를 받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백성이, 당신께 교제/예배/기도/얼굴을 구하는 것’을 해 주기 원하신다.

그것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성전 또는 성막이라는 형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그 건물이나 제사의식 자체를 우상화했고,

   정작 본질인 ‘하나님과 교제, 경외하며 떠는 마음’은 소홀히 했다.

 

   심지어 지금도 팔레스타인 땅의 극우파 유대인들은

   성전 되신 예수를 믿지 않으면서도, 성전만 우상화하고 있다.

   그래서 동 예루살렘에, 회교사원을 허물고, 성전 건물을 다시 지으려 한다.

   거기서 율법의 형식적 제사를 회복하려고 한다. 그게 본질이 아닌데 말이다.

 

 

▲2.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을 성전삼고 거하기 원하신다.

아래 구절에서 말하는 성소는 ‘주의 백성들’을 가리킨다.

 

출15: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dwelling 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sanctuary로소이다

 

여기서 성소가, 주의 백성이 아니라 시내산의 성막을 가리킨다 하더라도,

주의 백성들이 없는 성막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이용승객이 없어서 문 닫는 공항터미널과 똑같다.)

 

주님은, 그 성소에서 자기 백성과 교제하기 원하시고,

그것을 위해서 필요한 장소가 성막이었다.

 

성막에서.. 어떤 형식적 제사를 집행하는 것이.. 주님의 소원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성소에서.. 그 백성들과 친밀히 교제하기 위함이었다.

 

   구약 성막이나, 성전의 본질이 그렇다고 할 때,

   신약의 성전된 우리 성도들 역시 그러해야 한다.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짜 내면적 친밀한 교제..

   이것을 위해서 주님은, 오늘날 성전/교회를 세워가고 계시는 것이다.

 

   오늘 나는 정말, 주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는 성전인가?

   아니면 화려한 외적 형식만 갖춘, 솔로몬 성전을 답습하고 있는가?

 

▲3. 결론을 말씀드리면

구약시대의 성전이나,

신약시대의 성전(성도, 또는 성도들의 모임)이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에 있다.

 

   우리는 종종, 구약시대의 성전제사가 형식에 치우쳤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전 청소를 단행하신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지지한다.

 

   문제는, 신약의 성전 된 나 자신도,

   구약의 성전처럼, 지금 형식화 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구약의 제사처럼, 신약의 예배를 드리지만,

   거의 형식적이며, ‘마당만 밟고’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채찍을 드시고, 성전을 정화시킨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어쩌면 예수님은 오늘도, 채찍을 드시고,

   신약의 성전 된 우리 각자 또한 우리 교회를.. 똑같이 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예배가 주님과 친밀한 교제가 없이 형식에 빠졌을 때.. 그렇게 된다.

 

*관련글 : 부흥이 오는 방식 (1/2)     부흥이 오는 방식 (2/2)

 

 

신약시대 성전의 목적 ... 구약과 동일하다.

 

신약시대 성전은 - 성도

그 근거 구절은 아래에 있다.

 

고후6:16, 우리는 살아 계신 (신약의) 하나님의 성전이라.   고전3:16, 6:19참조. 

 

연이어 사도바울은, 우리를 성전 삼으신 목적이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밝힌다.

 

고후6:16b,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신약시대 성전의 완성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계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그게 출애굽 시대의 성막이든지, 레26:12

솔로몬 시대의 성전이든지,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고, 새롭게 세워질 (신약의) 성전이든지, 렘32:38, 겔37:27 

신약시대의 교회이든지, 고후6:18

계시록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 성이든지  계21:2~3

 

신구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계21:3 

 

♠‘친밀한 교제’가 신구약을 관통하는 구절/주제라는 증거

 

-레26:12,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본문 출29:45~46참조. 

 

 

-렘32:38,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겔37:27,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고후6:16,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계21:3,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히8:10,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그 외 호1:10, 호2:23, 롬9:25, 참조.

 

 

어떤 형식이 아니라,

본질적인 친밀한 교제관계,

하나님은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원하시고,

그게 창세기부터 ~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구원계획 design이다.

 

즉,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이다.

 

▲지금 신약 성전은.. 공사 중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씀하는데,

 

엡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렇게 함께 지어져 가는 목적은,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즉,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에 있는 것이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구약이든지, 신약이든지, 미래의 새 하늘과 새 땅이든지,

기도, 말씀, 경외함, 아버지와 자녀 관계의 친밀함..

이런 것이 만약 없이,

 

아무리 세례교인이든지,

몇 대째 내려오는 기독교 명문 집안이든지,

자기 직분이 교회에서 아무리 높아도,

자기가 교회에 아무리 오래 다녔어도...

자기가 아무리 새벽기도에 안 빠지고 계속 다녀도...

자기가 아무리 교회를 여러 개 짓고, 관리해도...

 

그런 형식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교제가 빠진 사람은... 교회가 아니다.

 

▲만약에 우리 교회의 예배에서 계속 싸늘함이 지속된다면

저/설교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각자가 ‘신약의 교회’인데,  고후6:16

우리 각자가 평소에 ‘교회’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가,

 

주일날 그 ‘교회’들이 다같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는 십중팔구 싸늘한 예배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참된 교회’ 성도들의 심령이 뜨거워서      *여기서 ‘교회’는, 개인 성도를 의미

‘싸늘한 교회’ 성도들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이기면 다행인데,

대부분이 ‘싸늘한 교회’ 성도들이라면,           

예배 전체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약 성도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은.. 그저 교리가 아니다.

    그저 교리로서, 오늘날 성도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정말 내면적, 본질적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져 있다면.. 그래도 정말 내가 '하나님의 성전'일까?

    (다음 호에 계속)                                                                                     ▣ 임재, 동행, 교제, 친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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