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0

자리에 앉아 불평하는 사람들 2509

LNCK 2010. 6. 19. 19:34

◈자리에 앉아 불평하는 사람들                 마20:1~16                  10/06/16설교스크랩,정리


 

▶아래 설교문의 요지 정리

 

1. 본문의 결론인 '나중 된자 먼저 되고, 먼저 된자 나중 된다'(마20:16)는 말씀처럼,

    은혜의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먼저 되어도 나중 됩니다.

    반대로 은혜의 원리를 아는 사람은.. 나중 되어도 먼저 됩니다.

 

2.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르실 때는,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일한 시간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급은, 세상 처럼 성과급이 아닙니다.

    일의 양이나, 결과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나의 중심을 보시고 상급을 주십니다.

 

3. 하나님 나라의 일은, 계약관계로 해서는 안 되고, 은혜관계로 일해야 합니다.       *관련글 : 갯펄과 진펄이 아니라...

 

 

◑서론 : 본문은 ‘포도원의 품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는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그 시기에 흔히 있었던 일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포도수확기는 9월 말쯤인데, 이때를 대비해서 미리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이 시기를 놓치게 되면, 그 다음은 우기에 접어듭니다.

비가 오기 전에 포도를 거둬들이지 못하면, 한해 농사가 폐농이 됩니다.


그러니 우기에 접어들기 전, 포도수확기에 포도를 거둬들이는 것이

얼마나 시급하고 다급한 일이었겠습니까?

포도원주인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그 어떠한 일꾼들도 대 환영이었습니다.

일손이 모자라라는 그러한 때에

한 시간만 일하는 품꾼이라고 하여도, 그는 대대환영이었습니다.


   당시에 일반 시장은 인력시장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인력시장이 그렇질 않습니까. 사람들은 시장터에 아침 일찍부터 와서는

   어떤 사람이 와서 자기를 고용해가기까지 기다렸습니다.


   포도원주인은 얼마나 급했든지, 수시로 시장터에 나가서

   품꾼들을 구해서 농장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본문을 가르치신 예수님의 의도는 - “은혜”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려는 목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천국, 하나님의 나라에서 은혜의

중요함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천국, 하나님의 왕국을 우리의 경제적 논리로 보지 않아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을 세속적인, 육적인 시각이 아니라

영적시각으로 보고 이해할 줄을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경제적 논리는 어떻습니까?

똑같은 일이라고 한다면, 일한 시간만큼 노임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그렇지 않고 ‘은혜의 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원리가 부당하다는 사람은

   자기를 -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 ‘늦게 와서 마지막 한 시간만 일한 사람’으로 여긴다면

   ‘은혜의 원리’를 적용하시는 주님께, 우리가 감사드리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유대인들은, 이 은혜의 원리를 부당하게 여겼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와서 하루 종일 내내 일한 품꾼들이

오후 늦게 와서 한 시간만 일한 품꾼들이 자신들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고

포도원주인에게 불평했다는 대목입니다. 마20:8~12

본문에 이 대목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제일 일찍 온 품꾼들이 원망했습니다. 불평했습니다. 항의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불공평한 대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당시 유대인들은, ‘은혜’에 대해 불평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상의 사전 지식을 가지고서,

   오늘은 아래의 각도에서 본문을 해석해 보려고 합니다.



◑본론1 : 본문의 선포 대상은 누구였나요?


예수님은 누구를 겨냥하여(대상으로) 이 말씀을 가르치셨을까요?

아래 3부류의 사람들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첫째로 이 비유의 말씀은 제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 너희는 그리스도교에 입문하는 최고의 혜택을 받았다.

너희는 어느 누구보다도 그리스도교를 제일로 일찍이 접하고, 그 권리를 누렸다.


너희 이후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게 될 것이다.

너희는 그들보다 앞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기득권을 앞세워서, 너희들이 가진 영광과 자리를 주장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이 어느 때에 오느냐가 문제가 되지를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는 소중한 존재, 보배 같은 존재이다.”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교회 첫 번째 교인이고, 제일 오래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 했기 때문에,

이 교회가 실제로 자기들이 주인이 되고,

이 교회의 정책을 자신들이 좌지우지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뒤에 들어온 사람,

즉 새로운 세대가 자신들과는 다른 새로운 계획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면

고참들은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마치 몸속에 자신과는 다른 형의 새 피가 들어오면

우리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듯이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포도원의 품꾼’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을 해보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시각에서 본다면,

교회에 먼저 들어와 있다고 해서

반드시 특별한 대우나 존경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를 않습니다.


▶2. 제자들과 똑같이 유대인들에게 주신 경고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민족,

선민이라고 굳게 확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 선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그들 의식, 뇌리에서 결코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꿈에서라도 이 사실을 결단코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천시하였습니다.

언제나 그들은 이방인들을 미워하며 증오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 같은 무리’로, 

즉 소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하나님의 멸망을 받기로 예정되어있는 족속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의 이러한 오만방자한 태도가

결국에는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교에 입문을 한다면,

이방인들을 열등한 자들로 치부를 하고야 말 것입니다.


   유대인만 그렇겠습니까? 사실 세상 모든 민족이,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로 텃세, 기득권, 짠밥(연륜).. 이런 것을 따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도, 그런 텃세와 연륜을 따지며

   결국 내게 이로운 방향으로 기득권을 주장하지는 않습니까?

 

      실제로, 사도바울 시대에,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님 나라에서 그 위치가 뒤바꿔지고 말았습니다.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향했던 것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내 개인에게도,

우리 공동체에도,

우리 민족적으로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습니다. 아니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자기 기득권만 주장하려고 할 때.. 그렇게 됩니다;. 


▶3. 오늘 우리 인생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구한말 조선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복음이 당시에 상층계급인 양반이 아니라,

하층계급인 평민이나 천민들부터 먼저 받아들여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포도원의 품꾼들’의 비유 끝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는 말씀처럼,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라는 이 말씀이

이루어졌다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본론2 : 본문은.. 경고의 말씀도 되지만, 동시에 은혜와 위로의 말씀도 됩니다.


▶1. 하나님의 나라에선, 나이나 연륜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천국, 하나님의 왕국은 늦어도 다소 늦어도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이른 아침인 유년인 때도 좋고,

정오인 힘이 왕성한 청년이나 장년의 시기도 좋고,

정오가 한 참 지나서 해가 뉘엿뉘엿 지는 때,

즉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년의 시기라도 좋습니다.


예수님의 ‘포도원의 품꾼’의 비유말씀은

이 모두가 똑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 인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인생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큰 위로의 말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는 일찍이 예수를 믿었다고요?

예수를 나이가 젊어서 믿었다고 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아무 쓸모도 없다고요?

나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수를 다 누리고 장수하다가 호상을 당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너무나도 어리고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똑 같이 환영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선 이들 모두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침 9시에 온 자나, 저녁 늦게 온 자나.. 다 같이 동일하게 환영을 받습니다.


우리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인생 모두에게 차별하지를 않으시고,

하나같이, 똑같이 일찍이 오나 늦게 오나,

저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 문 앞에 서셔서, 우리 모두를 환영해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이보다 더 큰 위로의 말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 하나님 나라에서는, (젊은 층은 물론이고) 노년층 일꾼까지도 다 고용해 주십니다.

생각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일자리가 없는 것만큼 세상에서 큰 비극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후 5시에 일거리를 찾은 품꾼은, 그 동안 그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어서

그의 재능은 녹이 슬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일을 할 수가 있는데, 일거리가 없어서 놀아보세요.

그 인생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하게 느껴지겠습니까?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오후 6시면 인생의 종을 치는 그러한 때에도,

시각이 오후 5시,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비록 한 시간뿐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인생을 들어서 써 주시는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3. 모든 봉사에는.. 상급이 똑같습니다. (이런 면이 있습니다.)

이 품꾼들은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똑같은 임금을 받았습니다.


모든 봉사는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다는 것입니다.

주어진 봉사의 양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것은, 주어진 일을 사랑 안에서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25장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

   주인으로부터 5달란트를 받아서 5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2달란트를 받아서 2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똑같이, 일점일회도 틀리질 않은 똑같은 칭찬의 말을 들었습니다. 마 25:21, 23


   그렇습니다. 봉사는 일의 종류나 양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봉사는.. 하나님 앞에서 다 똑같이 받아들여집니다.


우리는 자꾸 셈에 빠르고, 숫자에 예민합니다.

그래서 5달란트와 2달란트를 구분하고,

아침 9시부터 온종일 일한 일꾼과, 저녁에 1시간 일한 일꾼을 차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처럼 ‘일 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능률 중심, 생산량과 효과 중심’적으로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은 5달란트 받아서 5달란트 남기시렵니까?

    아니면 2달란트 받아서 2달란트 남기시렵니까?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이 똑같다면,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할까요?

   

    쉽게 예를 들면,

    A국에서 2명 전도한 선교사나

    B국에서 5명 전도한 선교사나.. 칭찬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A국과 B국의 상황이 다르므로 실제로 그럴 수 있습니다. 


    오늘 한국에서도,

    어려운 지역에서 분투한 가운데 2달란트 남긴 종이나,

    비교적 쉬운 지역에서 수고한 가운데 5달란트 남긴 종이나,

    하나님의 칭찬과 판단은 공의롭고 정확할 것입니다.

    ‘무조건 5달란트가 낫다’는 것은 - 인간의 판단일 따름입니다.


우리는 모든 평가를

수고한 시간의 양으로, 산출된 결과물의 양으로 등

양으로 평가하려고 합니다만,

하나님의 평가는.. 인간의 평가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받은 사명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눈과 입과 코와 손발의 중요성을.. 상대평가 하기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절대평가해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먼저 온 자들은, 자기들의 이익에 따라, 상대평가를 해 버린 것입니다.

 

▶4.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끝으로 이것은 예수님의 ‘포도원의 품꾼’의 비유말씀에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최고의 교훈입니다.


일하고자 하는 전적인 목표,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일하는 그 마음, 일의 그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품꾼들을 보면 크게 분명히 두 부류로 나눠집니다.


①먼저 온 품꾼들은 주인과의 계약관계를 들먹입니다.

“우리가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을 해도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하는 말이 “우리가 더 많은 일을 했기 때문에

노임을 더 많이 주어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어떠한 행태를 보입니까?

주인을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항의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행동에서 보듯이, 그들의 전적인 관심, 오직 한 가지 목표는

그들의 자신들이 한 일에서 가능한 한, 할 수만 있으면

무엇을 더 많이 얻어낼까, 챙겨 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사업 관계적/계약 관계적으로만 생각합니다.


②뒤늦게 동참을 해서 일한 품꾼들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주인의 약속, 계약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를 않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일할 수 있는 기회였고,

그들은 그저 일을 했다는 기쁜 마음으로,

주인이 주는 대로 기꺼이 보수를 받고 그들은 주인을 떠났습니다.

그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뿌듯해서

기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을 것입니다.


주인과 흥정하지 않습니다. 계약관계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은혜관계로 주인을 대우합니다.


    그러니까 1시간만 일한 품꾼도,

    하루 종일 8시간 일한 품꾼과 동일한 상급을 받았던 것은,

    하나님은 일하는 자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은혜로, 감사로, 사랑으로 일하는 품꾼을.. 귀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 은 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