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계시의 분별 척도 - 겸손 히4:12~13 10.07.14.설교일부스크랩
①계시의 목적은.. 주님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랍고 아름다운 분인가
그것을 알려주는데 있습니다.
②또 계시의 목적은.. 우리가 그 주님을 닮아야 되는데
우리는 얼마나 부족하고 뭐가 잘못 됐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을 알려주는데 있습니다.
※여기서 ‘계시’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특별계시인 성경을 뜻하지만,
부차적으로 성령의 은사로서 예언, 환상 등을 통칭하는 개념임.
◑1.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계시
잠언 11장 2절에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머리 똑똑한 사람에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 지혜입니다.
왜 사람들이 속는 지 아십니까? 교만 때문에 속는 것입니다.
왜 잘못된 계시를 받습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만입니다.
교만이 속임수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계시를 받는 사람 중에, 제일 잘못 받는 사람이 누굽니까?
“내가 재림 예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재림 예수고 감람나무고 천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교만의 극치입니다.
그 속에 오만과 교만으로 꽉 차 있으니까, 그런 계시를 끌어 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이지만,
사람 마음에 교만이 있으면 있을수록
자기에 대해서 과대평가된 계시들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비전이 아니고,
자신에 대해서 과대평가된 계시들을 받습니다.
꼭 꿈과 환상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자꾸 자기 생각에 자기가 대단해보이고, 위대해 보인다면..
그래서 그것을 설교시간에 언급까지 하게 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영의 인도함을 받은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지금까지 계시 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봤지만
여기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계시를 받고 예언을 정확하게 합니다.
그런데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아버지를 알게 하시고” 그런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이 계시가 주님에 대한 계시가 되어야하는데...
종종 설교자, 예언자, 은사자들이 (처음에는 올바른 길을 가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잘못된 길을 가는 결정적 이유는,
그 예언, 은사를 통해서 결국은 <자기를 높이는 수단>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참된 예언과 참된 은사는.. 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그리스도를 높입니다.
계시가 왜 필요합니까? 주님을 알기 위해/알리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눅10:22
◑2. 자기를 회개로 인도하는 계시 (말씀, 꿈, 환상, 신비적 체험 모두 포함)
그 다음에 계시가 왜 필요한 것입니까?
자기를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이사야의 체험에 나온 것처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성전에서 계시를 받은 이사야는.. 자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나는 하나님 봤다 니들은 봤어?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봤다.
나는 천사를 봤는데, 너는 천사가 날개가 몇 개인지 알아?” 이게(우월감) 아니고
계시는 첫째는 하나님을 알게 만들고, 두 번째는 자기를 알게 만드는(겸손한) 것입니다.
그게 올바른 계시에요.
그래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고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복음의 시초부터 그런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게 참된 계시입니다.
▶그래서 정말 어떤 사람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고
정말 어떤 사람에게 예언의 영이 강하게 임하고
정말 어떤 사람이 제대로 입신하게 되고 그러면
이 사람들은 점점 주님을 깊이 알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주님을 높이게 되고,
주님을 증거하게 되고, 주님을 예배하게 되고,
또 점점 자기를 보게 되고 회개하고 깨어지고 변화되고.. 이게 계시입니다.
이게 계시의 정로right way입니다.
정말 계시를 제대로 받은 사람은 이 길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개인 예언들 정확하게 하고, 뭐 예언들이 잘 맞고 그런데
결국 가는 길이 뭐냐면,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자인가, 자기가 얼마나 위대한 자인가!’
이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게 왜 그러냐 그러면, 계시의 영은 임했는데
그 속에 있는 근본적인 교만이 깨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교만에 마귀가 역사해서, 자꾸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설교/예언을 합니다.
그런 미혹을 스스로 자청하게 합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그 사람들이 처음부터 이상하거나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영성도 좋고, 기도 많이 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막 그쪽으로 갑니다.
(환상 중에) 천국 갔다 와서 “너(자기)는 바울보다 큰 자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럼 벌써 잘못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처음에는 전혀 정상적인 분들, 아니 신령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신비한 환상도 보고, 예언도 하죠. 설교도 ‘말씀대로’ 전한다고 칭송받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정확하게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은사들을 받고 사역하다가..
언제부턴가 터닝포인트가 오는데, 교만이 역사할 때 그렇습니다.
교만은 처음에 자기나 주변사람의 눈에 잘 안 드러납니다.
그런 와중에, 이런 사람들이 ‘교만에 빠지는 계기’가 발견되는데요..
언제 부턴가 자기에 대한 아주 대단한 응답들을 받습니다.
※①항에서 설명했죠. 예언이나 은사는 모두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은근히 홍보하는 것이라면.. 일단 잘못된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②그리고 진짜 성령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대단한 계시를 받았다고 칩시다.
그랬더라도, 그는 자기 자신의 계시를 감춥니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것을 공개적으로 떠벌리지 않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약 10년에 한 번쯤 공개적으로 간증하는 것은 괜찮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간증을 주업으로 설교하는 분은.. 결국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분이 한국에 대해 예언을 받았다고 칩시다.
그 예언을 가만히 들어보면서,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서, 내가 하나님 앞에 가서 예언을 받았다’
이렇게 나오는 사람은.. 이미 변질된 가능성이 큽니다.
③신앙생활은 성경→전통→이성→체험(은사)의 순서로 하는 것이 건전합니다.
체험도 정말 중요한 것이지만,
일상의 신앙 근거(성경, 전통, 이성)를 무시한 체험은.. 그야말로 ‘신비주의’입니다.
체험도 정말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것은 일상의 신앙 근거(성경, 전통, 이성)와 함께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관련글 보기 - 올바른 기독교 신앙을 갖기 위한 4가지 근거 2503 (강추)
▶다시 말씀드리면,
‘내가 말씀을 깨달았다. or 성령께로부터 오는 계시의 영이 내게 임했다.’
그렇다고 다 끝난 게 아닙니다.
‘내가 겸손한자냐, 교만한자냐’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교만한 자면 자꾸 자기에 대한 엄청난 것들을 받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속습니다.
내가 겸손한 자면.. 내가 전하는 말이 ‘주님에 대한 계시’가 됩니다.
그 다음에 내가 전하는 말(계시)이, 내 부족과 타인의 부족을 가르쳐주는 계시가 됩니다.
내 부족이나, 우리가 고쳐야 될 거.. 이걸 깨닫는 계시가 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얘기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라는 것은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계19:10
예언의 영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인 것이지,
예언의 영이 임했던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예수님을 증거 했지
그들이 자기를 증거 했습니까?
▶물론 “너를 내가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소명 같은 거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렘1:5
그러나 그렇다고 떠벌리지 않습니다.
이런 차원을 넘어서가지고,
너무 자기에 대해서 대단한 걸 받는 거는.. 대부분 잘못된 것입니다.
교만이 스스로를 속인 것입니다.
계시의 목적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자인지 알려주는데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가 얼마나 회개해야할 비천한 자인지 알려주는데 있습니다.
▶마치는 말
계시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①주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 우리들의 베일을 벗겨서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바로 그것입니다.
계시의 목적은 우리의 눈을 열어서 자꾸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②그 다음에 계시의 목적은 우리를 자꾸 벌거벗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느니라. 히4:13
계시의 시작이 말씀 아닙니까? 성경이 곧 계시입니다.
성경은 사도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사람의 마음의 생각의 뜻을 감찰하나니
오직 만물이 우리를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4:12
이거는 단순히 말씀의 기능을 보여주는 게 아니고
말씀이라는 거 자체가 계시의 가장 대표적인 나타남인 것을 생각할 때
이 계시의 목적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계시의 목적은 무엇이냐?
우리를 벌거벗기는 것입니다.
③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진짜 계시적인 사람이면 겸손합니다.
진짜 계시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벌거벗겨진 사람이.. 어떻게 교만하겠습니까? 오히려 겸손해지지요.
진짜 계시는 사람을 자꾸 겸손하게 만듭니다.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 계시(말씀 포함)를 받으면서 내가 점점 교만해진다..
그러면 뭐가 이상한거지, 진짜 계시는 사람을 점점 겸손하게 만듭니다.
또 굉장히 계시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도요한 아닙니까.
사도요한을 보십시오. “나는 너의 형제다.” 계1:9
이 사람은 노old 사도입니다. 지금 다른 사도(12사도)는 다 죽고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 세계 기독교의 수장입니다.
정신적인 지도자고 실질적인 가장 큰 권위를 가진 사도가 워낙 권위를 갖고 있는데
이 사람은 완전히 그냥 장수하여서 백발이 성성한 노 사도입니다.
거기에다가 계시가 확 열리고(계시록을 받은) 이런 권위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같이 형제된 자다” 그게 겸손입니다.
진짜 계시는 자기를 겸손하게 만든다는 걸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계시는 자꾸 쓸데없이 자기의 위대성에 대해 계시를 받는 게 아니다
진짜 계시는 자꾸 주님에 대해서 계시를 받는 것이다. 내가 작아지는 것이에요.
진짜 계시는 내 사명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그러지만
진짜 계시는 또 나를 벌거벗기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갔을 때 더 영광스런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나를 벌거벗기는 것이 진짜 계시입니다.
그래서 진짜 계시를 받는 사람은 자꾸자꾸 자기 자랑은 다 없어지고
그저 예수님 자랑이고 그러면서 여러분 점점점 겸손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정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예언의 은사가 있는 사람, 여러분 중에 입신하는 사람
여러분 중에 계시를 받는 사람 이거를 꼭 기억하십시오.
정확한 예언의 은사들이 왔어도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곁길로 가는 걸 봅니다.
이단까지는 안 되어도 사이비까지는 안 되어도 곁길로 가는 걸 봅니다.
사람들이 계시를 받으면서 정로를 가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자꾸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모세 같은 선지자가 일어남이 없어요.
그런데 모세는 그냥 예언하고 단순히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친구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자기를 아는 사람이에요.
나를 진실로 더 회개하는 자, 점점 더 깨어지는 자,
점점 더 변화되는 자, 점점 더 주님을 닮는 자..
이걸로 만들지 않는, 꿈과 환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요?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요?. 그런 예언 사역이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는가요?
그런 입신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뭐하려고 천국에 들락날락 거리나요?
여러분 계시의 목적이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계시를 통해서 주님을 점점 깊이 알아가고 도전받고
계시를 통해서 자기를 점점 깊이 알아서
점점 겸손해지고 갈망하는 자가 되고 회개하는 자가되고 변화되는 자가 되는 것
이것이 있어야 그 사람이 올바른 선지자고
이것이 있어야 그 사람이 올바른 예언 사역자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더 읽으실 분 .................................
구약의 가장 놀라운 계시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과 얼굴을 대면해서 보았던 모세인데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그걸 본받아서 자기 얼굴이 빛난 자였습니다.
그게 계시의 목적입니다.
계시의 목적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얼굴을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얼굴을 빛나게 하는 것..
계시의 목적은 단순히 뭘 가르쳐주는 게 아닙니다.
단순히 성경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단순히 어떤 사람의 미래를 가르쳐주고 또 도시에 대해서 예언하고
이런 것은 계시의 기능의 2차, 3차, 4차의 기능들입니다.
계시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주님을 알고 자신을 알게 함으로써
우리 얼굴을 빛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계시의 목적인 것을 믿습니다.
모세처럼, 스데반처럼 얼굴이 빛나는 사람으로 주님 앞에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