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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삼박자 2650

LNCK 2010. 9. 15. 21:56

◈창조의 삼박자                           창1:6-23                                -출처 보기, 축약-


 

창조의 삼박자란, 설교자가 만든 말인데

창세기 창조 기사를 보면, 반복되는 3박자가 있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보시기에 좋았더라!”입니다.

저녁, 아침, 좋음. 이것이 바로 창조의 3박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오한 통찰력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창조의 3박자에서,

앞선 두 박자는, ‘보시기에 좋다’라는 마지막 박자를 위한 전제조건이 되는 셈입니다.


이 순서를 잘 지켜 살면,

내 삶도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창조의 삼박자>는,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할 시간의 패턴이 있다는 것을,

태초에, 창조 때부터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저녁이란?

아시다시피

‘저녁’은.. 을 의미합니다.

‘아침’은.. 활동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비슷하지만, 이 개념을 좀 더 발전적(영적)으로 해석해 봅시다.


저녁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루의 활동이 마무리 되며 끝나는 시간입니다.

하루 동안의 모든 일과 사건들에 대한 생각을 접는 시간입니다.

저녁이 되면, 우리의 모든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활동의 스위치를 끄게(off) 됩니다.


예를 들어 사업상의 커다란 문제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에 대해 직접 당신의 손을 대시면서

창조적인 활동을 해 나가시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이 현실이 되어 나타날까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사건을, 직접 당신의 손을 대시어 창조적으로 해결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서 해결하셔야, ‘좋았더라’ 하는 창조의 3박자로 매듭이 완결될 것 아닙니까.


저녁이 아침보다 먼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업상의 문제에 있어서, 저녁이 먼저 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 내 생각의 스위치를 꺼버리는 겁니다.

내 걱정과 염려와 생각의 스위치를 꺼버리는 저녁이 먼저 와야만

하나님의 창조활동의 아침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이루어지는 시간의 패턴이 시작되려면

세 박자 중에 첫 박자가 되는 저녁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문제로부터 내생각과 걱정과 근심이, 마음 전체가

퇴근(off)해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대체 어디로 퇴근하라는 말입니까? 보통 우리는 집으로 퇴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퇴근해야 하는 집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의 집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품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 세상이라는 일터와 삶의 자리를 등 뒤로하여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마음의 얼굴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이와는 정반대로 살아왔습니다.

특정한 문제가 주어지면 보통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모든 생각과 판단과 능력을, 심지어는 젖 먹던 힘까지 총동원하는

아침(분주한 활동을 의미)을 시작합니다.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퇴근 하는 저녁시간을 먼저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해서 모든 활동력의 스위치를 켜는(on) 아침을 먼저 시작합니다.

 

아침이라는 시간대부터 시작하면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활동하고 해결을 찾아내려고 애를 씁니다. 움직입니다.

이런 경우, ‘창조의 3박자’가 엇갈려버립니다. 순서가 틀렸습니다.

결국 ‘좋았더라’의 결과로 귀결되지 않게 되는 거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가 우선적으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 문제로부터, 내 마음의 스위치가 꺼지고

마음에 저녁이 찾아와 세상살이를 등진 상태로

우리의 마음이 아버지께로 퇴근(off)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처음부터 성경은 ‘저녁이 될 것’을 먼저 말합니다.

아침을 밝히기 전에 오히려 먼저 우리가 저녁이 되어 퇴근해야

비로소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창조 활동(창조)이 시작된다는 겁니다.


 

이런 예는 성경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출애굽할 때, 홍해 앞에 이르렀습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당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왕좌왕하면서 모세를 원망합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 앞에서 심각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걱정하고 불만하며 원망합니다.

자기 지각, 경험, 판단이 (아침처럼) 막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저녁) 여호와가 오늘날 너희를 구원 하시는 것을 보라” 출14:13


홍해를 가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창조의 역사입니다.

마치 천지창조 때처럼, 하나님은 먼저 ‘저녁’을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그의 백성들에게 명하십니다.

‘너희는 생각하고 고민하고 걱정하고 원망하는 활동적인 아침

먼저 끌어 들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문제 앞에서 너희마음이 저녁을 맞이해서 퇴근하라.

그러면 오늘날 내가 너희를 구원하는 것을 보게 되리라’ 이렇게 얘기하신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침공 때,

백성들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말라고 명한 후에,

자기가 면벽 기도한 예도 있습니다. 각자가 성경을 찾아보세요. 왕하20:2, 사38:2


히스기야도, 큰 문제 앞에서, 저녁을 먼저 맞이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침을 주도적으로 활동해 주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로, 3박자로 아름답게 끝맺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일에도 마찬가집니다.

갑자기 내 지갑이 안 보일 때가 있습니다. ‘혹시 신용카드가 분실되면 어떻하지?’

지갑을 분명히 거기 둔 것 같은데, 그곳을 찾아보면, 지갑이 없습니다.


또는 처음 가는 밤길에서, 길을 잃어버려서 난처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거기가 맞는 것 같은데, 가보면 아닙니다. 그래서 한 두 시간 뱅글뱅글 돕니다. 


이때는 분주하게 찾아다니면.. 오히려 시간만 더 낭비합니다.

그리고 길이나 지갑을 찾을 때까지, 자기 마음이 매우 초조해 집니다.


그러므로 이럴 때일수록, 조용히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찾는 활동을 중단해야 합니다. 멈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저녁’시간을 먼저 가지면서, 하나님의 음성이나 지시를 차분히 듣고

하나님이 나를 주도하시는 가운데아침’활동을 하는 것이..

우리 경험상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야)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창조의 삼박자’가 내 삶에 나타나려면,

내가 먼저 당면한 상황과 문제에 대해 저녁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내가 활동의 스위치를 끄는(off) 저녁을 맞이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성급히 나대면서 고민하고 염려하며,

쫒기는 마음으로 동분서주한다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창조의 삼박자는 십자가를 통해서...

내 삶의 스위치를 off 하시기 위해서, 이루어 주신 사건이 십자가입니다.

주님이 대신해서 나를 끄신(off) 사건입니다.

내게 저녁을 가져다주는 스위치의 사건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구체적으로 한번 예를 들어 봅니다.


자녀의 진학 문제가 있습니다.

창조의 3박자가 나타나려면,

먼저 내 마음이 그 자녀의 문제에 대해 저녁이 되어야 하고,

자녀에 대한 생각의 스위치가 꺼져야 합니다.


어떻게 끕니까?

자녀의 문제 앞에서 마음의 눈을 떼서

자녀의 문제보다 먼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시면서

십자가의 주님과 함께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세상에 대한 나의 죽음(내 걱정, 내 염려, 내 자아의 죽음)을

고백하며 인정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때 이러한 고백은, 단지 하나님의 창조적인 개입을 끌어들이려는

하나의 기능적이고 전술적인(꾀 많은) 방편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내가 죽었다는 고백은

인격적인 것이고, 피조물 본연의 모습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분주하게 활동하고 염려한다는 것은..

내가 마치 하나님처럼 행세해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믿고 고백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능적인 전략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사이비 하나님 노릇을 한 죄악 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는(자아를 죽이는) 것입니다.


내 본연의 피조물 된 모습을 찾으면,

그것이 곧 퇴근의 저녁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로, 내 인생의 ‘주체가 나’라는

이 죄악 된 아침의 충동을 꺼버리자는(off) 것이지요.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은 나 자신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것이

바로 ‘창조의 삼박자’의 시작, 즉 ‘저녁’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십자가에서 나의 죽음을 확인하면서,

저녁이 되었고, 내 마음이 안식의 시간을 누렸습니다.


이제 그 뒤를 이어 아침이 되니, 하나님이 주체적으로 활동하십니다.

나는 저녁에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눈을 주위를 둘러보니 이게 어찐 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너무나도 좋으신 일들이 열매 맺혀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도/나도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되는 것입니다.

‘창조의 삼박자’가 내 삶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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