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을 풀어드려라 이사야19 :1~25 -출처보기-
▲주제 요약
유다가 애굽을, 그 군사력, 경제력을 부러워하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유다를 통해, 애굽으로 전달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선민/자녀/택한 백성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부르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올바른 자기 정체성을 갖고서, 떳떳하게 살아야 합니다.
괜히 돈 많은 부자 부러워하고, 출세한 사람들 앞에 기가 죽어 산다면..
사명 감당이 안 됩니다.
설교 제목이 ‘하나님의 사랑을 풀어드려라’인 것은
선민 유다 백성이, 강대국 애굽에 기가 죽어 사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애굽 및 열방으로) 풀려나가지 못하고, 묶여 있다는 뜻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묶여 있으면.. 이거 큰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만 부러워하고,
세상을 부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은혜/영광'이, 나를 통해, 세상으로 (묶여 있던 것이) 풀어져 나갑니다.
◑애굽을 부러워하지 말라
▲이사야 19장은 애굽에 대한 예언입니다.
19:1~17절까지 애굽이 쇠약해 질 것을 쭉 예언 해 나가시다가
18~25절까지는 분위기가 확 바뀌어 버립니다.
특별히 23~25절에는 도저히 언뜻 보기에 해석이 불가능한 귀절들이 나타납니다.
앗수르를 향해 하나님께서 ‘내가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애굽도 ‘나의 백성 애굽이여’ 하시면서
남유다와/ 앗수르와/애굽이 모두가 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똘똘 뭉쳐서
화해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함께 경배 드리는.. 그런 꿈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이 메시아가 와서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요,
실제로 지금도 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장차 완성될 것입니다.
▲애굽 멸망의 특징 - 내부 자체적 쇠약
사19:1~17절까지 애굽이 쇠퇴하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른 나라들에 대한 예언과 다른 점이 있어요.
앞서 바벨론, 블레셋, 모압, 아람, 북이스라엘.. 이런 모든 나라들에 대한 예언은
그 특징이, 멸망의 심판이 임하는 방법이
꼭 외부에서부터, 더 힘센 나라들의 침입을 받아서 망하게 됩니다.
근데 이상한 것은, 이 애굽의 쇠퇴함은 외부에서부터 힘이 임하면서
더 강한 나라에 의해서 침략도 받겠지만,
먼저는, 애굽 자체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쇠약해집니다.
그냥 그대로 놔뒀는데, 애굽 스스로가 그렇게 쇠약해 져 버린다는 것이에요,
왜 이러한 일이 애굽에게 일어나게 됩니까?
남유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남유다가 생각할 때
애굽은 대대로 남유다의 주인 같은 나라였습니다. (꼭 조선시대의 중국 같았죠.)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애굽이라는 나라는 늘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공경의 대상이었고, 늘 마음에 의지처였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으면 애굽에 손을 내밀고, 애굽과 손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바벨론에 밉보여서, 결국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을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 ‘하나님이 내 힘이시다’라는 믿음이 없으니까,
인간적으로 힘센 곳에 기대게 되는데...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사명 감당’은 못 하는 것이죠.
▲오늘 젊은이들의 예
요즘 우리 젊은이들, 뭐 월드컵에 나가도 당당하게 16강에 진입하고,
또 스포츠 중에서도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top 권에 속하는 그런 종목이 많습니다.
참 대견스러워요,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외국 사람들과 나가서 싸워서 이기는지...
요즘 젊은이들의 마음은 꼭 우리와 같진 않은 것 같아요.
우리는 어렸을 때는, 월남전이 치러질 때,
월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가져온 버터, 소시지, 믹서기..
그러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구경하고, 얻어먹으면서 맛도 보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미제 TV, 냉장고가 있는 집이 그렇게도 부러웠습니다.
그 집은 거의 귀족 집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학교 다닐 시절, 전교에서 누가 제일 부자였습니까?
자가용 타고 등교해서, 학교 교문 앞에서 내리던 아이였습니다.
그만큼 자가용이 희귀했습니다. 전교에서 몇 명만 그렇게 자가용으로 등교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자가용으로 등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바라는 게 다르더라고요,
가만 보니까 탁월한 연예인들 중에는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저 쌩고생을 하면서 월드스타 비, 이병헌, 박진영,
그 외에도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는 한류 스타들...
바로 그런 심정으로 유다 사람들이 애굽을 바라봤다 이겁니다,
그런데 선망의 대상이었던 애굽이, 자체적으로 쇠약해져 버립니다.
남유다가 많이 당황하게 되겠지요.
선망의 대상, 공경의 대상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애굽이 유대를 선망하게 될 것이다. 사19:16~19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까지 하시냐면요,
오히려 애굽 사람들이 부녀와 같이 되고, 아녀자와 같이 약하게 되고 :16
애굽이, 남유다인 너희를 오히려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공경과 존경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될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게 무슨 얘깁니까
‘진짜 애굽이 벌벌 떨 정도로 막강한 힘을 네가 갖고 있다!’
이러시는 거에요, 남유다한테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네가 애굽을 부러워하지만
남유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것은
애굽이 벌벌 떨고 애굽이 부러워해야 할 힘의 원천이다 이겁니다.
이 남 왕국 유다가 그걸 모르는 거에요,
▲중간 정리하면,
오늘날에도 마찬가집니다.
예수를 안 믿는 부자, 예수를 모르는 성공한 사람들이 (애굽이)
성도들(남유다)을 부러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도를 부러워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졌습니다. 하나님과 예배와 교제가 있습니다.
-장래 소망(영생)이 있고, 현재에도 믿음과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화목하고, 매사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삶이 평온합니다. 등등
위에서 말한 한류스타들의 할리우드 진출,
그거 해야죠. 무조건 다 반대하는 뜻은 아니고요.
다만 무조건 ‘큰 것이 최고다, 큰 물에서 놀아야지’ 하는 것은,
유다가 애굽을 숭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본문 17~18절에서, 애굽이 반대로 유다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잖아요.)
그러니까 한류스타가 할리우드에 진출하더라도
무조건 부러움의 대상으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사랑/영광을 그곳에 비추고, 드러내기 위해 진출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는, 물질의 힘, 군사력의 힘, 세속적 힘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자랑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은혜/성품/온화함/안정됨/늘 만족함/항상 기뻐함.. 등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런 성도들의 힘을 부러워합니다.
◑하나님을 부러워하시라 주1)
◑애굽을 부러워하면.. 사명 감당 못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하나님의 사랑을 풀어드려라’ 입니다.
이것이 본문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요?
남유다가 애굽을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적 가치관을 선망하고, 부러워하는 동안에는
성도가 사명 감당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 통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은혜/영광이 세상에 풀어질 수 없습니다.
(꽁꽁 묶여 있게 됩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이 있지 않습니까?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는 그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부러워하고,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이 세상적인 기준에 따라서 그를 공경하고 모델로 삼고 있는 한,
그 사람을 향하여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 풀려 나올 수가 없다는 거에요.
남유다가 애굽을 부러워하고 있는 동안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시고 계시잖아요.
하나님의 사랑을 풀어내신 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세상 왕들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들을 무작정 부러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세상 왕)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이 풀려서 베풀어질 수가 있었던 것이에요,
▲다시 본문, 사19장으로 돌아가면,
남유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힘의 원천을 기억하고
애굽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야만
애굽에게도 사랑이 뻗어갈 수 있다 이거에요,
너희는 애굽을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애굽이 너희를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묶여있는 상태로
‘왕이여, 묶여있는 것 말고는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을 통해서 왕에게도 총독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풀어서 나타내 보여줄 수 있었다 이겁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이웃집 아들이 부럽잖아요,
그렇게 부러운 한 그 이웃집 사람들뿐만 아니라
내 자식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은 풀려 나가지를 않습니다.
옆집 자녀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것은, 크게 기뻐하고 칭찬해 주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과 자부심을 갖고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사람은.. 그게 됩니다.
아니, 하나님이, 하버드 대학보다 못하신 분이십니까?
▲본문 마지막에 (애굽에 이어서) 앗수르가 등장합니다. 사19:23~25
앗수르도, 애굽과 함께, 유다와 함께
3나라가 더불어 동맹을 맺고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럼 앗수르는 왜 등장하나요?
여러분 미움이라는 것도, 결국은 마찬가지입니다.
애굽은 부러워할 대상이었지만, 반대로 앗수르는 미워하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러움도/미움도.. 다 그게 그거입니다.
주님의 다스림과 통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저 앗수르의 해코지도
결국 하나님이 악을 변하여, 선으로 바꾸어 주실 것을 믿기에,
원수가 그렇게 원수처럼 밉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도, 당신을 못 박는 사람조차도 미워하지 않으시고,
스테반이 자기를 돌로 쳐죽이는 자들을 용서하는 이유가 뭐에요?
저들이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미워하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섭리와 사랑 안에서, 나를 해칠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이럴 때, 앗수르 같은 철천지원수들을 향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서, 풀어진다/나간다... 이겁니다.
그래서 내가 부러워하는 애굽이나,
내가 끔찍이 미워하는 앗수르나,
이스라엘(나)과 3국연합동맹을 맺고(24절)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통과해서 앗수르까지, 고속도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24절)
여러분, 이웃집 남편의 경제 능력을 애굽처럼 부러워하면서,
(이웃집 전도는 고사하고) 내 남편 전도도.. 그거 힘듭니다.
대학 동창생을 앗수르처럼 끝내 미워하면서.. 내 가족 전도 힘듭니다.
내가 우리 가족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은혜/영광/성품을 풀어내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크리스천들이
세상적으로 부러워할 사람, 똑같이 다 부러워하고,
세상적으로 미워할 사람, 똑같이 다 미워하고,
그래서는 ‘하나님의 사랑/영광/성품/권세’가, 나를 통해, 풀어지지 않습니다.
그게 내게 있기는 있는데.., 꽁꽁 묶여 있게 됩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하는 말이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경제분야에서, 과학분야에서, 정치분야, 군사분야에서
제일 높은 산봉우리가 있어요.
그러나 산봉우리가 아무리 높아 봐야,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 아닙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에베소서에 말씀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 보좌 우편에 가서 앉아 있는 거에요, 하늘에 앉힘 바 된 자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비록 이 몸이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우리 마음이 하늘에 앉힘 받은 자들이라는 거에요.
이런 신앙적/영적/성경적 자부심을 갖고 살면서
원래 크리스천으로서 가진(내재된) 하나님의 영광/사랑/권세..
이런 것들을 풀어서 나타내자.. 이겁니다.
돈의 힘으로, 권세의 힘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런 놀라운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각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
주1)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하고 부러워 해야 한다'는 말씀을, 아가서를 통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아가1:4
이 말씀의 뜻은,
아가씨인 바에는 솔로몬이라고 하는 인물을 좋아하지 않고 배겨낼 수 없다. 입니다.
이 얘기를 원어대로 그대로 얘기하면
‘모든 아가씨들이 정직함 안에서 그대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입니다.
그럼 여기서 ‘정직함’의 뜻이 뭡니까?
술람미 여인의 생각에는,
도대체 여자라고 하는 존재치고 솔로몬을 좋아하지 않을 수 는 없다는 거에요,
이런 마음이 사랑이지요,
‘정직함 안에서 아가씨들이 (솔로몬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욥기 생각나십니까? 하나님이 사탄에게 말씀 하십니다.
욥처럼 정직하고 순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보았느냐,
그리고 하신 말씀이, 그리고 하신 시험이 뭡니까?
건강 뺏어가고, 자녀 뺏어가고, 재물 뺏어가고, 사회적 명성 뺏어가고
다 뺏어 갑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바로 ‘정직’입니다.
그러면 정직함 안에서 솔로몬을 사랑한다는 게 뭐에요,
왕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게 아닙니다, 유식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게 아니에요,
솔로몬이 돈이 많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게 아닙니다.
솔로몬의 인격 그 자체, 그 인격 그 자체를 보았을 때
좋아하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냐? .. 이런 뜻입니다.
이게 지금 술람미 여인의 마음이에요.
신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이렇게 좋아한다는 것이에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형통케 했으니까 좋다,
하나님이 내게 사업을 잘되게 해 주셔서,
자식을 건강하게 해 주시고 좋은 대학 들어가게 해 주시니까 좋다,
내 삶을 이만큼 해 주시니까 좋다,
하나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시니까 좋다, 이게 아니라는 거에요.
이건 다 정직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정직함 안에서 하나님을 좋아한다는 얘기는, 하나님 그 자체가 좋다,
이게 바로 정직이예요, 하나님의 매력에 빠져 봐야 된다 라는 겁니다.
근데 아쉬운 것은 안타깝고 아쉬운 것은,
하나님이 형통하게 해 주시니까 좋다,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복 받을 수 있어서 좋다,
새벽기도 하면 가문이 잘 된다,
전부 그 애기 아닙니까?
하나님 자신이 좋아서
“하나님을 법시다, 돈 버는 것 대신에. 하나님을 먹읍시다,
하나님을 가집시다, 하나님을 가지면 다입니다”
이런 얘기 들어 보셨습니까 여러분?
연장선상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어떻게 항상 기뻐합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 이게 가능합니까?
여러분 이 말은, 뜨겁게 너무너무 좋아서 연애하는 연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들은 항상 기뻐합니다.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핸드폰 전화 값이 2~30만원 나와도 항상 '기도'(대화)해요,
범사에 감사해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너그럽게 변하는지 몰라요, 다 수용합니다,
서로 사랑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정도로, 하나님 한 분만,
하나님 그 자체만 사랑해야.. 이게 정식으로 믿는 겁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증명해 보여주셨는데,
우리는 자꾸, 축복/성공/출세로.. 그 사랑을 증명해 보여달라고, 난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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