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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로! 2670

LNCK 2010. 9. 30. 21:06

◈아버지께로!                         눅15:11~24                          10.09.05.설교스크랩



▶바쁘게 목회하면서, 하나님과 친밀함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바로 탕자

제가 한국방문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주의 일을 한다고 – 평소에 늘 설교준비하고, 성경공부하고,

    새벽기도, 금요기도, 상담, 심방 등등을 하면서 – 지내 왔지만

    혹 그 모든 일을, 늘 해야 되는 일이니까, 관성(매너리즘)으로 지탱해 온 것은 아닌가? 


    목회는 그렇다 치고, 나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가?


    하나님은 기본을 좋아하시는 분이신데, 내 영혼의 일은 무심한 채

    하나님의 일을 그냥 ‘일’로서 해 왔던 것은 아닌가?                


    내가 아들이면, 아버지는 다른 어떤 것보다 자기와 친밀함intimacy을 원하실 텐데,

    밭에 나가 땀 흘려 일하는 것보다, 사실은 더 깊은 부자 관계를 원하실 텐데,

    그런 근본은 잊은 채, 아무 생각 없이, 영혼의 친밀함 없이, 일만 계속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결국 탕자인 아들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4가지 모습


‘탕자의 비유’로 우리에게 익숙한 본문을 대하는, 오늘 우리의 숙제는

아버지의 모습에, 우리 영혼을 투영시키는 일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우리에게 바라시는 결론은, 

딱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결론이 바로 오늘 설교 제목(‘아버지께로!’)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1. 자기 몫을 달라고 요구하는 아들 앞에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일이라고 한 번 생각해 보시지요. 

자기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아들 녀석이, 제 상속분을 미리 달라는 겁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멍하게 서 있었을 겁니다.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 

하지만 사실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을 것입니다.

‘아들아, 네가 나와 함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네 것일 텐데…’


나중에 큰 아들과의 대화 속에서, 아버지의 이 마음이 드러나지만,

사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딱히 아들의 몫이 따로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몫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든지, 아들이 아버지 곁을 떠나든지 할 때입니다.

그러니 아버지와 함께 있는 동안, 자기 몫을 요구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앞에서 내 몫을 달라는 것은, 아버지를 떠나겠다는 선언인 겁니다.

말할 것도 없이 아버지의 마음은 비통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살아계신 아버지 앞에서 내 몫을 달라고 요구한 이 아들의 모습이

왠지 낯익지 않습니까?

내가 바라고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누리기를 원하는 어떤 것을

마치 내 몫이라도 되는 양, 그럴 권리라도 있는 양,

그것을 달라고 하나님 앞에 마구 요구했던 사람들이 누구지요? (바로 내 모습이지요.)


그게 아들에게 불행이 될 걸 아시는 아버지가, 그 요구에 응답하지 않으셨을 때,

그것이 우리를 위한 사랑이고 배려임을 모른 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아버지를 원망했습니까?


또 우리의 탐욕스런 요구가 응답 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간단하게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를 떠나곤 했습니까?


한 번 우리의 기도를 생각해 보시지요. 

기도의 많은 부분이, 사실 아버지와의 사랑 깊은 대화이기보다는,

내 몫을 달라고 졸라대는 일방적인 요구일 때가 많지 않습니까?

여러분! 더 이상 아버지께 내 몫을 요구하지 맙시다.

 

우리가 아버지를 떠나지 않고, 그 분 곁에 머물기만 한다면,

아버지는 내 몫뿐 아니라, 아버지의 모든 것을 주실 수 있고, 또 주고 싶어하십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시잖아요? 

그런 아버지를 기억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들아, 네가 나와 함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네 것이란다...’)

 

▶2. 먼 지방에 가서 방탕 하는 아들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기어코 자기 몫을 쥐고 먼 데로 떠나서, 허랑 방탕으로 재산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아들의 소식을 듣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너무나 마음 아파서, 차라리 귀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어떤 아버지는 당장 쫓아가서 아들을 때려서라도 집에 데려 오려고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아버지는 아예 호적을 파버리든지, 부자지간의 인연을 끊어버리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의 아버지는 도무지 그러실 줄을 모르시는 분입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아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분도 아니고,

억지로 아들을 당신에게 데려오는 분도 아닙니다.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져도,

그저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무작정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아들아, 제발 돌아와라, 제발 돌아와!” 사무치는 그리움을 가슴 속에 묻고,

끝없이 끝없이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을 떠나, 자주 먼 지방으로 가곤 합니다.


먼 지방, 거기는 하나님 없이 일하는 내 직장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 없이 꾸는 나의 꿈, 하나님 없는 나의 하루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버지 없이 살아가는, 내 삶의 모든 영역을 일컫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꼭 방탕해서 방탕이 아니라, 아버지 없이 내가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삶이.. 타국의 방탕일 것입니다.


아버지 없는 삶의 영역에서 아버지 없이 살아갈 때,

우리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우리의 재산과 능력과 힘을

끝없이 낭비하고 탕진하게 됩니다.


혹 나는 지금, 아버지로부터 멀리 떠나 낯선 지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끝없이 방탕의 성을 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아버지께서 주신 사랑, 온유, 친절, 인내, 믿음과 같은 거룩한 재산을

헛되이 남용하고 오용하면서 소중한 재산을 탕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아버지께서 주신 것들을, 얼마나 잘 보존하고 지켜내고 있을까요?

내가 바로 아버지를 떠나 방탕하게 살면서, 아버지 재산을 낭비하는 아들은 아닐까요?


아들에게 얘기치 않았던 일이 벌어지는 것은 다 아시지요?

오늘 본문에는 몇 줄로 간단히 처리했지만,

사실 아들이 부잣집 아들에서 거렁뱅이로 떨어지는 체험이 나에게 닥쳤다면,

우리 중에는 못 견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 아들이 잘 한 것은 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 집의 품꾼으로라도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야

비로소 아버지께 돌아갈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세 번째로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3. 아들이 아니라, 품꾼이 되길 바라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입니다.   


이런 광경을 목도하고 있는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아! 그 녀석 기특한데? 그런 생각을 다하다니,

내 아들이지만, 사람이 염치가 있네!’ 하면서  만족해 하셨을까요?


아마도 아버지 마음은, 오히려 심히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품꾼의 자격'이라는 말은 있을지 몰라도, '아들의 자격'이란 말이 가능합니까?


아들이면 아들이지, 어떻게 아들의 자격이 있습니까?

아들은 어떻게 해도 아들입니다.

적어도 아버지에겐, 아들의 어떤 자격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들은 영원히 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탕하게 살아서는 아들의 자격을 얻을 수 없다,

죄에서 깨끗해야 아들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적어도 이 정도의 공로는 있어야 된다, 이만큼은 아버지를 섬겨 드려야 한다,

이 정도는 성경을 읽고, 이 정도는 기도해야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다...' 


암암리에 우리 안엔 이런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를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했기 때문에 아들의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무엇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격을 잃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아버지의 아들과 딸입니다. 믿으십니까?


다시 말씀 드리지만, 아버지를 떠나 멀리 낯선 지방에 살았을지라도..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온갖 죄를 짓고 방탕하게 살았을지라도..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주신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었을지라도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왜 자꾸 품꾼이 되려 하세요?


사랑은 없고 거래만 있는 관계, 믿음의 대화는 없고 명령과 복종만 있는 관계,

아버지께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내 몫과 내 삯에만 관심 있는

그런 품꾼으로 아버지 앞에서 살고 싶으세요?


우리 모두 아들과 딸이 되어 아버지께로 돌아갑시다.

아버지는 그저  우리가 돌아와서 아버지 곁에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아버지 곁에만 있어줘도 아버지는 그냥 좋아하시는 분이세요.

그걸 믿고 돌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빈털터리로 돌아오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


마지막으로 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지요?

정말 가슴이 먹먹해져서 읽어내려 갈 수 없는 그런 감동적인 모습입니다.

아들이 집을 향해 돌아오는 걸 보지요?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아버지가 달려 나갑니다


다들 너무나 잘 아는 내용이라, 그저 그렇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한 번 이 일을 여러분 자신의 일로 생각해 보시지요.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려왔던 아들입니까?

얼마나 그리워했던 아들이에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된 아들입니다.


움푹 패인 눈과 반쪽이 된 얼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행색을 하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 그 아들을 향해 맨발로 달려 나가지요.


그리고는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

아마도 아버지의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을 것이고,

아들을 붙잡고 꺼억 꺼억 우셨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이보다 더 잘 묘사한 부분이 있을까요?

아무리 뛰어난 신학자도,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잘 설명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 아버지는 이런 분이십니다.

엄연히 살아계신 아버지 앞에서 자기 몫을 챙겨 먼 지방으로 떠나 버렸던 아들,

가진 것을 모두 탕진해 버리는 한심한 아들,

아들보다는 품꾼으로 아버지 곁에 머물려는 아들!

그런 아들일지언정, 돌아온 아들 앞에서,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십니다.

아버지의 망각은 용서의 능력이고, 사랑의 크기인 겁니다.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크게 성공해서 돌아오는 아들을 기뻐하듯이

아버지는 조촐한 아들의 귀향도 기뻐하십니다. 


튼튼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든/ 허약한 몸으로 돌아오든,

좋은 선물을 들고 돌아오든/ 근심과 걱정거리를 들고 돌아오든,

아버지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아들,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아들,

그 자체가 너무 좋아서 이토록 기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

절대로,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아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기쁨,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유일한 기쁨인 겁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 우리 모두 아버지께 돌아갑시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삽시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떤 상태에 있든

우리는 날마다 아버지께 돌아가기 위해 결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아버지 앞에서 내 몫을 요구하는 습관이 있고,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수시로 먼 지방으로 떠나버리고,

아버지 없이 내 마음대로 인생을 꾸려가고,

아버지가 주신 소중하고 거룩한 것들을 오늘도 끊임없이 낭비하며 탕진하고 있으며,

또한 아버지 앞에서 아들이 아니라, 자꾸만 품꾼으로 지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살피며,

바로 그 곳으로부터 즉시 아버지께로 돌아갑시다.


영적인 삶은 언제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과정입니다.

인생 전체를 큰 틀에서 봐도, 우리 삶의 여정은 아버지께 돌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삶의 매 순간 순간, 사건 사건, 국면 국면마다

기다리시는 아버지께 돌아오라는 초청과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누구이든 간에 이 초청의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한 생을 살아가면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듯이, 온 에너지를 쏟으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동안 감당해야 할 우리 모두의 소명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아버지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참된 소명입니다.


아들이 한 일은 돌아온 것뿐입니다.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게 있다면 그건 아주 단순합니다.

어떤 어려움과 환란과 시험과 곤고가 닥치더라도,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되는 겁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를 환영해 주십니다.

우리의 자격을 따지지 않고, 우리 과거의 허물을 보시지 않고,

아직 거리가 먼데도 달려 나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우리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 집으로 방향을 틉시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그 아버지의 소유가 다 내 것이 되는

풍요로움과 평안함을 맘껏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잘못된 길을 막고 서서

아버지 집으로 방향을 돌려주실 것입니다.

그 감격과 기쁨과 평안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환히 비추는

한 주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예수님이 드신 비유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내 몫을 요구하고, 그걸 받아 떠나며,

그리고는 방탕으로 허비하고, 다시 또 아버지의 구원을 기다리는 일을 반복해 왔습니다.


이제는 정말 아버지께로 돌아와서

다시는 아버지 집을 떠나지 않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다시는 아들 하나만 바라고 사시는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 흘리게 하지 않도록 그 집에 머물게 해 주옵소서.


그래서 아버지의 것이 모두 내 소유가 되는 그 평안함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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