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언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렘1:6~9 06.05.05.설교스크랩, 정리
◑6절, 말할 줄 몰라도 괜찮습니다.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렘1:6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이때 예레미야가 하나님께서 자기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다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러분, 말 잘 하는 사람 중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말 잘못하는 사람 중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개 말 잘하는 사람들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밖에 쓰임 받지 못합니다.
말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강력하게 쓰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니 힌, 말더듬이었잖아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 입술이 둔하고 뻣뻣한 자였잖아요.
바울은 자신의 말이 시원치 않다고 했습니다.
오랄 로버츠도 말더듬이었습니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말 잘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나이 많은 것도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아이라’ .. 아이처럼 순수한 것을 원하십니다.
내가 젊든지, 늙든지 아무 상관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사람만 되면 됩니다.
하나님은 부르시는 자에게 “구변과 지혜를 주리라.”(눅 21:15) 말재주를 주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구변과 지혜가 임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니 베드로가 공회 앞에서 말했습니다.
어부들이 말할 때의 어부들의 말투가 있고
어부들이 사용하는 용어와 억양 같은 것이 있잖아요.
그런데 최고의 지식인들이 모인 공회 앞에서 얘기하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학문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가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구변과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들에게는 기도를 열심히 하면 구변의 은사가 임합니다.
그리고 지혜의 은사가 임합니다.
성도들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상담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면
성령이 임하면서 구변의 은사가 주어집니다.
구변의 은사가 임하면, 자기를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을 자기가 압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성령께서 자기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말씀이 임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설교도, 복음 전할 때도 그런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그때 할 말이 다릅니다.
환자마다 약 처방이 다른 것처럼, 죄인을 구원할 때도 그 처방들이 틀립니다.
하나님께서 말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구변과 지혜의 은사를 주셔서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전부)가 아닙니다. ↙
◑7절, 순종과 담대함이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7
말 못하는 사람이 말 잘하는 것이 다가 아니고
우리가 선지자로서 사역하기 위해서 갖춰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는 성도들도 복음 전하는 자로서 갖춰야 하는 것은, 말 잘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①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는데, 하나님이 가라는 사람에게 갈 수 있어야 합니다.
②“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무엇을 명하시든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라 할지라도,
그 말을 하는 것이 나에게 굉장히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고 너무너무 어려운 말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가라하면 가고, 하나님이 말하라고 하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지자의 정말 중요한 자격 요건은, 말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 보내든지 가고, 선한 사람뿐 아니라 악인에게 보내도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셨습니다.
아합에게 보내도 가고, 또 무슨 말을 하라든지 해야 합니다.
아합 왕에게 가서 심판의 말을 전해야 했잖아요. 자기 목이 달아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오늘날 이것에 실패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이 문제에서 구멍이 뚫렸기 때문에, 수많은 목회자들이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 ‘좁은 문, 좁은 길’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게 천국 가는 길인데. 메시지에 성경 말씀만 쭉 나열해놨지
사람들을 이끌어야 할 ‘좁은 문이, 좁은 길’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듣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설교하면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설교를 하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문제는, 가라는 곳에 가고, 무엇이듯이 주시는 것을 다 대언해야 하는데,
자기 몸을 사리면.. 몇 번 그렇게 불순종하면.. 주의 영이 그를 떠나가 버리십니다.
그러면 다시 회복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므로 가라는 곳에.. 가야하고,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담대하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알면서도 선포하지 않습니다.
또 그것이 축적되어서, 이제는 진리를 알 수 있는 능력조차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로는 ‘주님을 위해서’ 그러지만 정말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내 교회와, 내 목회와, 내 영향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정말로 영혼들을 살리고 구원하고 정말로 영혼들을 천국에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가 ‘과연 몇 사람이나 내 말을 듣고 나를 따를까?’,
‘몇 사람이나 내 말을 듣고 나의 협력자가 될까?’
‘나와 함께 모이고 나와 함께 기도할까?’
만약 이랬다면, 구약의 선지자 중에 제대로 예언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너희가 선지자 중에 핍박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행7:52)
그럴 정도로 선지자들은 다 핍박을 받았습니다.
반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보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회개해야 심판과 멸망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회개해야 살기 때문에,
듣기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과와 상관없이
죽더라도 진리를 전하는 것이 선지자입니다.
그것을 대다수의 현대 교회 목회자들이 잃어버렸습니다.
아주 단체적으로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선지자로 열방을 위해서 쓰임 받으려면.. 그것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자신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랴,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랴?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자기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상은 사람의 종일 뿐,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사람이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은 잘하고, 설교도, 강해설교도 잘하고, 성경공부도 잘하지만,
말 잘하는 것이 다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말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갔느냐?
하나님께서 가기를 원하시는 사람들은 불신자도, 우상숭배자도 있지만 신자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너무 회개가 안 되었기 때문에, 정말 신자들에게 갔느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위험을 보여주고 회개시키는 일들을 하고 있느냐?
정말 주님께서 명하는 모든 메시지를 전했느냐? .. 하는 것입니다.
교리화된 규격에 맞는 메시지만 전하고, 나머지 껄끄러운 것은 다 걸러버리고,
그래서 교회 안에서 수많은 영혼들이 지옥가고 멸망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것은 영혼들을 사냥하고 영혼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말 잘하고 설교 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을 명하시든지, 그대로 목숨 걸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8절, 하나님의 보호를 믿으십시오.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8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보내는 자에게 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말씀을 전하면 많은 공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보호하십니다.
순교까지도 영광이고 축복입니다.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십시오. 계속 보호하시고 계셨습니다.
돌로 치려고 해도 빠져나가셨잖아요. 계속 최후의 순간까지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풍랑이 아무리 거세고, 전 세계를 뒤덮어도,
노아의 방주는 안전했습니다.
아무리 갈릴리에 풍파가 내리쳐도,
주님이 함께 타신 배는.. 물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한 번, 두 번 체험하는 사람은,
점점 더 담대해 지는 것입니다.
◑9절, 자기 입에 주님의 말씀을 담은 사람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9
어느 때는 하나님이 말씀을 안 주실 때도 있지요.
그러나 어떤 때는 말씀을 강하게 주실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말씀을 아주 깊이 주실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우리가 할 일은
‘말씀을 내 입에 넣어주소서’라고 구하는 일입니다.
양떼가 배고파서 죽을 지경이니, 주께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즉석에서’ 말씀을 주시기도 하지만,
보통의 경우는 ‘오래 기다려야’ 주시는 말씀을 받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든지, 설교자는 그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전하는 말씀은, 주께 받은 것이다.’ 고전11:23, 7:25참조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이 말씀이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면, 동시에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합니다.
그걸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는, 하나님의 영이 같이 오십니다.
여러분도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거나 기도할 때에
‘레마’가 임할 때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막 쏟아 부어지는 것처럼
자신에게 강하게 임하는 것을 느끼잖아요.
마찬가지로 말씀이 나에게 임하면 성령의 기름부음이 따라서 옵니다.
기도하거나 설교할 때,
꼭 음성이 클 필요도 없고, 꼭 작을 필요도 없습니다.
문제는 음성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으심’입니다.
아무리 목소리나 기교로, 그것을 흉내 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말씀이 오면 성령이 오십니다. 말씀이 오면 기름부음이 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온 것처럼
말씀을 받을 때 성령의 기름부음이 옵니다. 그래서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임하는 것을 사모합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엡4:19
제가 여러분에게 저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제가 많은 분들을 '먹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먹을 것을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부담이, 제 마음에서 항상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참으로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것이,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베드로가 설교한 것처럼, 성령이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수의 강입니다. 그 생명수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정의를 부르짖고, 교회 갱신을 외치더라도.. 좋습니다.
거기에 생수의 강이 있습니까? 성령이 내려오십니까?
아니면 그 목소리만 듣기 싫게 갈라집니까?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이건 어쩌다가 한 번만 두시는 게 아닙니다.
평소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레미야는 약 40년에 걸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대언이란.. '대신 전했다, 위에서 받아서 전했다'는 뜻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대언자다!’라고 당신은 외칠 수 있습니까?
그건 자기가 목청을 높인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대언의 영’을 주시고, 자기가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언의 영’이 한 번 임한 사람은,
웬만큼 자기가 사울 왕처럼 교만해서, 성령이 자기를 떠나지 않는 이상,
예레미야처럼, 일생에 걸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것입니다.
주님,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마다
단순히 개념을 나눠주는 시간이 아니고,
성령이 임하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기름부음이 넘치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영혼이 살아나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마음이 소성하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시간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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