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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2694

LNCK 2010. 10. 16. 18:50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행8:21          10.09.14.설교스크랩, 정리



어제 제가 죽는 을 꿨어요.

여러 사람이 죽을 순서가 있는데 저도 죽을 순서가 되었더라고요.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죽음이 와서 제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딱 생각나는 게 뭐냐 하면,

이제 죽을 것을 아니까 편안하게 죽음을 기다리는데, 우리 자녀가 생각이 나요...


(꿈을 꾸고 나서)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 자아가 죽을 때가 됐구나. 드디어 이제 옛사람이 끝장나려나 보다.’

꿈이 그런 의미라는 느낌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저의 옛 자아가 더욱 죽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보고 그럽니다.

“목사님, 공격하는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힘드세요?”


그러면 제가 그럽니다.

“힘들죠. 그런데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저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나입니다. 나 때문에 너무 힘이 듭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나고, 나의 가장 철천지원수는 나입니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별거 아닙니다.

나를 제일 괴롭게 하는 것은 나이고, 나의 가장 큰 원수도 나입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실제로 가장 강력한 영적인 적敵은 나의 옛사람입니다.

나 자신(옛사람의 잔재)보다 더 위험한, 나 자신의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고 한 건, 자기가 적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목숨을 버리라고 한 건, 자기가 적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적이기 때문에 자기를 죽이라는 거예요. 자신을 치라는 거예요.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라는 거예요. 자기가 적입니다.


이 일을 안 하기 때문에, 교회가 엉망진창이 되고,

신자들이 이 일을 안 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만신창이 됩니다.

자기를 죽여야 됩니다.


우리는 죽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것은 젊었을 때 철딱서니 없을 때 하는 소리지,

암만 성공해 봐요 안 늙나. 암만 성공해 봐요 안 죽나.

결국은 성공하든 어쨌든 늙고 죽게 되어있고,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엔 심판이 있느니라.’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고요,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관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업이 좀 커지면, 이제 어디 가서 자기가 나서서 한 자리 하려고 합니다.

그것도 필요하겠지만, 여러분, ‘그 뒤로 곧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사회에 나가서 번듯하게, 가문의 영광을 빛내며 뭘 한 자리 하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 때문에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해외여행 6개월~1년 가는 것이 유행입니다.

    그걸 바라보는 어른들 마음은 이것입니다.

    ‘직장, 학교 다 관두고 훌쩍 떠날 때는, 홀가분해서 좋겠지만,

    6개월, 1년 금방 지나갈 건데, 돌아와서는 어떻게 하려나?’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철딱서니가 없어서 그렇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에 나가서 한 자리 하는 것...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후’가 곧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늙고, 죽는 날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가르치는 지혜로운 인생은,

내가 맡은 일이 성장하고, 나이도 점점 먹어 가면.. ‘죽을 생각’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말씀이 진리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는 것입니다.

곧 심판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자, 어떻게 내가 주님 앞에 바로 설 것인가,

더 겸손해지고, 더 경건해지고, 더 욕심을 버리고,

더 명예심을 버리고, 세상 것 버리고, 더 주님 깊이 알고, 주님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희생하고... 그럴 생각해야지,

무슨 어디 가서 명예직을 얻으려고 기웃거리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하나님께 영광은

열심히 자기가 깨어지고 죽고,

성령의 능력 받고, 기도하고, 희생하고, 복음 전하는 일이지,


무슨 호텔 같은데 가서 (회의 차) 식사 같이 하는 것... (그것도 필요한지는 모르나)

여러분, 그런 자리를 부러워하거나 탐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더 원해야 할 것은, 그런 게 아닙니다.


너무 다른 사람하고, 나를 비교할 것도 없습니다.

천국은 학교가 아니라 가정입니다. 큰 가정입니다.


천국은.. 학교에서 하듯이, 일등, 이등, 삼등, 꼴등, 우등상 이런 게 아닙니다.

(여러분 가정에, 자녀가 일곱이 있는데, 거기서 일등과 꼴등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천국은 가정입니다. 상급이 있고, 지위가 다 있지만, 그래도 천국은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시고, 사랑의 나라이니까,

너무 서로 비교할 생각하지 마시고, 자기 본문에 충실하면.. 그만입니다.


1등, 2등 그런 데 신경 쓰지 말고, 자기 본분/사명에 충실하면서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정말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

그런 참 성도가 되려고 애쓰십시다.


   연속극에도 그런 것 나오잖아요?

   <대장금>에 보면, 궁중요리사 장금이가 주인공입니다.

   왕도 조연이고, 왕비도 조연이고, 상궁도 조연입니다.


   지금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거기에 1등, 2등, 꼴등이 있겠지만,

   연극이 끝나고 천국에 가면,

   자기 직분(역할)에 충실한 사람이 1등상 받습니다. 

                     *관련글 : 존 뉴턴의 종의 도리 http://blog.daum.net/rfcdrfcd/9274006


그냥 예수님을 사랑하면 되는 것이지

천국은 1등, 2등, 3등 그런 피곤한 세계가 아니라

완벽한 사랑의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러니까 사람은, 외모 - 그의 명함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의 직위, 그의 직함, 그의 어깨에 달린 계급장, 그가 가진 재력 등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 - 그의 마음을 본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교회에서도 사람들은, 그의 외모를 안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 장로, 권사, 위원장, 선교회장.. 이러면 알아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외모를 보시면서 1등, 2등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지요.

‘누가 마음이 겸손/온유/따뜻한가?’

그걸 보시고 평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외모로 1등 되려고 하지 마시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일에, 1등 되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알던 사람들을 만나보고 충격을 받는 게,

그 중에 많은 분들이 목회를 안 하는데,

목회 안하는 것은 그럴 수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학교 때 같이 신학생으로 다니던 사람이, 지금 완전히 세상 사람이 된 거예요.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완전히 세상 사람이 되었어요.


그게 뭐냐면 중심이 문제입니다.

사울은 중심이 바르지 않았기 때문에, 넘어지면 확 넘어지고 끝나버립니다.


그런데 다윗은 중심이 바르기 때문에, 넘어졌는데도 완전히 넘어지지 않습니다.

간음을 했는데도 완전히 넘어지지 않고, 살인을 했는데도 완전히 넘어지지 않아요.

끝날 것 같은데 안 끝납니다.

그게 ‘중심이 바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중심이 바르기 때문에, 뿌리가 되어 가지고, 다시 회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중심이 바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고, 곁길로 갔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반듯하게 살고, 요셉처럼 반듯하게 살아 온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그게 복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중심이 바르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가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더라도,

그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더라도,

아니 그가 정말 죄인 중에 대괴수더라도,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참고 귀중하게 쓰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그의 중심이 바르기 때문입니다.


   중심이 바르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킨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뜻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 뜻을 따르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는 대부분 ‘중심이 바르지만, 아직은 대부분 중심이 불완전합니다.’

예수 믿고 진정 회개하고 거듭난 사람들은,

그 중심이 기본적으로 바르지만, 그러나 얼마나 불완전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이 빛을 비춰주셔서, 제 마음에 바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게 하시고, 고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139:23~24


우리가, 기본은 바르다 할지라도, 방향은 바르다 할지라도,

세부적인 분야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많은 결함이 있고, 문제가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부족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교회에서 자꾸 한 자리 차지하려고 하지 마시고,

대신에, 우리 중심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십시다.

그게 ‘중심이 바른 사람’의 소원입니다.


본문 행8장을 보면, 마술사 시몬에 대해서 다른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정곡을 찔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는 네게 분깃될 것이 없다.” 행8:21


기독교는 너(마술사 시몬)하고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마음이/중심이 바른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게 생활이 바른 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생활이 바르다고 자부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도 마음이 바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분깃)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이가 한 살, 두 살 늘어날수록,

마음이 점점 더 바르게 돼야 돼요. 그게 진짜 은혜입니다.


말씀이 깨달아지고, 계시가 임하고.. 이런 것만 은혜가 아니에요.

진짜 은혜는, 나이가 들수록, 신앙 연륜이 쌓일수록.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복을 받으면 받을수록,

점점 더 내 마음이 바르게 되는 거... 이게 진짜 은혜에요.


그게 다윗이에요. 하나님 보실 때에 중심이 발랐던 사람.

하나님 보실 때에 하나님 마음에 합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저거 쓰러뜨리면 난 뜬다.’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를 듣고, 의분이 나서 나가서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이지요.


그런 야망이나 그릇된 동기나 이런 걸 가지고 나갔던 게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저렇게 망령되이 일컬을 수 있는가?’ 얼마나 동기가 바릅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모독 받는데, 이 사람들은 뭐하고 있는가?’

그거 위해서 자기는 목숨을 내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가서 쓰러뜨린 것입니다. 이게 다윗의 중심이었단 말이에요.

이게 다윗의 마음, 바른 마음이라고요.


시27:4절에, “내가 여호와께 구하였던 한 가지.”

내가 목자시절 때 구하였던 그 한 가지.

내가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구하였던 그 한 가지.


지금은 왕이지만, 지금은 모든 걸 갖고 있지만

내가 여호와께 구하였던 한 가지, 곧 그것을 구하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시27:4

 

주님을 더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중심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의 사람은, 이런 사람이란 말이에요.


사람들이 출세를 못 할 때는, 크게 표시가 안 납니다.

그런데 좀 사회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되면.. 슬슬 표시가 납니다.

‘야망, 욕심, 무리수,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보복’

거기서 자기 마음이 삐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말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신도, 스스로의 유명세에 갇혀서, 그런 말이 귀에 들리지 않게 됩니다.


   행8: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가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오늘 내가 내 양심을 버리고, 모르는 체하고,

내 욕심으로 행하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분깃(기업)을 얻지 못합니다.

아니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겉으로 그 일이,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칭찬이 자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나)의 영광’을 구하는 목적으로 일이 진행된다면,

‘이 도에는 네가 관계가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라는 주님의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하겠습니다. 미리 미리!                                   ▣ 리더쉽,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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