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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 同床異夢 2699

LNCK 2010. 10. 19. 22:24

◈동상이몽 同床異夢                           잠17:3                          05.12.14.설교스크랩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잠17:3



▶귀한 것이니까, ‘마음을’ 연단하는 것입니다.

은과 금은 귀한 것입니다. 은과 금이 귀하지 않으면 굳이 연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은과 금이 귀한 것이기 때문에 연단하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귀하기 때문에.. 연단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서 찌기를 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마음에 제거해야 할 찌끼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관점과 우리의 관점이, 하나님의 관심과 우리의 관심이 얼마나 다른지 아십니까?

우리는 도가니도 풀무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평안하고, 형통하고, 성공하고, 잘 되고, 높아지는 것을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히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도가니나 풀무 속에 우리를 던져 넣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난과 고통 속에 우리를 던져 넣으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도가니나 풀무 같은 것과 관계없이

그냥 평안하게 번창하고 성공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연단하여 마음에서 찌끼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마치 동상이몽입니다.

(우리의 행위 이전에, 마음입니다. 근본적인 마음이 중요하니까요.)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마음에서 교만과 혈기를 제하고

욕심과 이기심을 제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찌끼를 제하는 것입니다.

원석의 은과 금에서 찌끼를 제하면

그것이 나중에 보배 합에 넣어져서 귀하게 사용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그러합니다. 찌끼를 제해야 비로소 귀중한 보석이 됩니다.


▶평안한 삶이, 인생 목표가 아닙니다. (죄송한 표현으로 ‘장땡’이 아닙니다.)

여러분, 평안한 것이 다가 아니고

이 땅에서 도가니나 풀무를 통과한다 해도, 우리 마음이 연단을 받아서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존귀해지고 높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복을 받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요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잘되고 성공하고 높아지는 것을 추구하지 말고,

마음이 정결하게 되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변화되고 주님의 형상을 닮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여러분, 목표를 올바로 점검 하십시다.

    무사안일하게, 편안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지고한 목표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연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단’이 없는 원석은.. 별로 가치가 없습니다.

    금과 은은.. 모두 ‘연단’을 통과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연단’을 통과해서, 내가 금과 은과 같은 보석이 되어야지,

    ‘연단’없이 원석으로 사는 인생은.. 그냥 ‘돌’과 같습니다.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싫어하는 내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고난의 풀무에서 연단하시고 정결하게 하십니다.

고난을 싫어하는 나,

변화되지 않고도 평안하게, 성공하며, 형통하게 살기를 원하는 마음..

모두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차라리 변화되고 아프게 살기를 원해야 합니다.

차라리 질병에 걸리더라도.. 내가 그것을 통해서 정결하게 되고 변화되는 것을 원해야 합니다.

차라리 가난을 통과하더라도.. 내가 정결하게 되고 변화되는 것을 원해야 합니다.


차라리 중국이나 북한교회처럼 고난을 통과하고 순교를 통과하더라도

우리가 정결하게 되고,

우리가 주님 앞에 합당한 사람으로 보배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더 원해야 합니다.

이게 지금 이 시대와 한국 교회에 빠져 있는 요소입니다.


우리는 너무 형통신학, 축복신학, 번영신학에 너무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것은 일면(부분)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가 그렇게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연단되기를 원하십니다. 영혼이 정결케 되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고난, 시련을 만나거든, 불 시험을 만나거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약1:2, 벧전1:6)

왜냐하면 우리가 연단 받으면, 예수님께서 오실 때

영광과 존귀 가운데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금방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형통하고, 번영하고, 잘되는 것도 원하시지만 (그건 잠시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더 원하시는 것은, 우리 마음이 연단 받고 변화되는 것입니다.(이건 영원합니다.)


▶내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은 다릅니다.

여러분, 정말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하나님, 제게도 말씀의 은사를 주세요. 하나님, 제게도 영안을 열어주세요.

하나님, 저도 주님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저도 천국에 갈 수 있게 해주세요.

하나님, 저도 크게 써주세요. 하나님, 우리 교회가 부흥하게 해주세요.'

어쩌면 다 쓸데없고 무가치한 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점이 바르지 못합니다.

너무나 영적으로 초점이 바르지 못하고 흐려진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초점이 흐리고 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정말 간절히 원해야 하는 것은 형통도, 번영도 아니고

크게 쓰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은이나 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들의 활동이나 사역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마음에 있고,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기를 원하십니다.

겉으로 드러난 우리 행위 이전에, 먼저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찌끼를 제하기 원하십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내 본성에 위배되더라도..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닮는다.'는 말입니다.

                                                                       *관련글 보기 :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 

그런데 맞는 말이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실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은 우리 본성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우리 온 몸의 세포들이 들고 일어나서 반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인정받기를 원하는데, 예수님을 닮는 것은 섬기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평안하기를 원하는데, 예수님 닮는 것은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우리의 것을 챙기기를 원하는데,

예수님을 닮는 것은 다 내주고 다 나눠주고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싸우기를 원하고 자기를 변호하고 보호하기를 원하는데

예수님을 닮는 것은 원수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대해서 비난하기를 원하지만

예수님을 닮는 것은 다 내려놓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동상이몽, 이렇게 내 소원과, 주님의 소원이 판이하게 다르군요. 

여러분,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워지고, 우리는 능력이 있어지고,

우리는 은사들로 채워지고, 그리고 그냥 얄팍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큰 비전을 가지고, 큰 능력으로, 크게 쓰임 받을 것을 원하지만

하늘에서 볼 때는 우리 속이 환하게 보이는 겁니다.


하늘에서 볼 때는, 우리 실상은 너무나 얄팍하고 천한 삶을 사는 것을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지혜나, 은사나,

그런 기도생활이나, 그런 충성이나,

그런 부흥이나, 그런 체험이나,

그렇게 쓰임 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습니다.

주님은 우리 속에서 주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연단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본성과 다르지만,

우리들의 관심사와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과 다르지만

주님은 겸손에 관한 빛을 우리 영 속에 비춰주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온유에 관한 빛을, 섬김에 관한 빛을,

고난과 순교에 관한 빛을,

헌신과 희생과 용서에 관한 빛을 우리 속에 비춰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거기에 얼마나 미달되어 있는지

우리가 그것과 얼마나 무관한 삶을 사는지

우리가 이대로 하늘나라에 가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할 것인지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고 기름부음과 은사를 받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기뻐 뛰고 찬양하고 그러면서도


하늘나라 가서는 얼마나 보잘 것 없을 것인지,

얼마나 가치 없는 작은 자일 것인지.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아가 살아있고,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의 성공과 야망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가지고 있고...


정말 예수님의 겸손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지,

예수님의 사심 없는 사랑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지 알 수 있도록

빛을 비춰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 물질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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