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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침묵, 기도 2695

LNCK 2010. 10. 18. 02:24

◈고독, 침묵, 기도                           눅5:15-16                    설교스크랩, 정리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예수님이 더욱 유명하게 되었고)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신자도 많았지만..)

예수는 물러 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5:15-16


고독, 침묵, 기도의 영성

로마 황실의 교사였던 아르세니우스가

‘주여, 저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했을 때,

그는 ‘아르세니우스야, 세상을 피하라. 그러면 너는 구원을 받으리라’

라는 신비한 음성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르세니우스는 그 음성을 듣고, 로마를 떠나 이집트 사막으로 들어가서

수도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주여, 저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소서!’ 라고 기도했을 때,

‘아르세니우스야, 떠나라, 침묵하라, 항상 기도하라. 이것이 무죄의 원천 이니라!’

라는 신비한 음성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아르세니우스의 이야기는 고독, 침묵, 기도에 관한 것으로,

그것은 사막의 영성을 요약한 말이라고, 자기 책에 썼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독, 침묵, 기도는, 세상이 우리로 세상을 닮게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성령 안에 살아가게 하는 3가지 길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고독, 침묵, 기도는 역사적으로 사막의 교부들의 수도생활에서 강조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먼저, 신약의 예수님이 실천하셨던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고독, 침묵, 기도생활을 가장 잘 보도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사람들과 떨어져, 광야나 산에서, 고독과 침묵의 시간을 가지시며

종종 기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①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사람이 거하지 않는 광야에서 홀로

40일간 계시며 금식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눅4장


②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도, 혼자 산에 가셔서,

밤이 새도록 홀로 계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눅6:12~13


③예수님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습관처럼 고독, 침묵, 기도시간을 가지셨습니다.

본문 눅5:15~16절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서, 무리가 당신께로 몰려올 때도,

거기에 도취되지 않으시고, 홀연히 그 자리를 떠나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고독의 시간, 침묵의 시간, 기도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④눅22:39절에도, 예수님은 습관적으로 한적한 곳에서,

고독과 침묵의 시간을 가지시며, 기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40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오늘날 어떤 사역자가 인기가 있어서 사람들이 몰려들 때,

   또는 사업가가 자기 사업이 한참 잘 풀려나갈 때,

   그 일들을 잠깐 물리치고,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그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아가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성공적인 상황에서는

   스스로 쉽게 만족하고, 일에 더욱 빠져 버립니다.

   그때도 하나님과 교제하며 기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열심히 일하러 뛰어다니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사역과 사업이 자기도 모르게

   점점 허무 vanity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너무 천천히, 서서히 빠져 들어감으로, 쉽게 그 위험성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를 ‘영성의 시대’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영적인 세계는 점점 무관심하게 될 줄 알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더욱 영적인 세계를 갈망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TV나 영화, 또는 잡지에 보면,

서구인들이 동양신비종교에 많이 빠져드는 것을 종종 봅니다.

오늘 설교제목인 고독, 침묵, 기도를 배우기 위해,

기독교적 전통을 가진 서구인들이,


인도, 티벳, 태국, 중국, 한국까지 와서

힌두교, 라마교, 불교, 뉴에이지 종교에 심취합니다.

거기에는 고독, 침묵, 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기독교가, 중세 때부터 사변적 철학과 결합해서,

주류가 ‘학문’쪽으로 흘러갔습니다.     ↔영성

그래서 어느 정도 신학적 기반을 탄탄히 다졌겠지만,

그 결과 기독교의 ‘영성’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단히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기독교의 전통 가운데서

20세기에 들어서 오순절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면서,

잃었던 기독교의 ‘영성’을 되찾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부분의 세계 오순절운동은

(사변적 기독교 전통 가운데서, 잃어버린 기독교의 영성을 되찾아준 공로가 있지만)

현세주의, 기복주의, 성공주의와 결합하여, (이게 전통적 사변적 신학을 무시한 결과임)

어쩌면 오순절운동이 이루었던 업적보다, 끼친 폐단이 더 많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만큼

현대 기독교는, 역사에 유래가 없을 만큼, 세속화의 홍역을 세계적으로 앓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오늘날 우리가 고독, 침묵, 기도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①현세주의, 기복주의, 성공주의로 흐르는 잘못된 강물

   ②또는 반대극단으로 철학적 사변주의로 인해 결국 ‘공허한 기독교’로 빠지는

   양 극단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올바른 길이오,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이 단락 편집자 글)


▶분주하면, 하나님을 못 만납니다.

예수님이나 사막의 교부들의 고독은, 단순히 외롭게 혼자 외딴 곳에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고독은 사람들과 일을 떠나

하나님과 함께 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일과,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 파묻혀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과중한 일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끌려가고 있습니다.


내가, 일과 사람들을 벗어나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은 세상(마귀)은,

일과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세상(마귀)을 닮아가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켜,

적극적으로 자신을 따로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고, 사막의 교부들이 그러했습니다.


▶혼자 조용히 지내면 불안한 현대 기독교인

그러나 우리는, 혼자 있는 훈련이 너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홀로 있는 것을 불안해 합니다.

우리는 너무 분주하고 떠들썩하게 사는데 익숙해 있기 때문에,

주변이 조용하거나, 누군가 나를 찾는 전화가 없으면, 불안해집니다.


혼자 조용히 좀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늘상 하면서도

막상 동행자 없이 혼자 한적한 곳에 며칠 있으려고 하면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답답하게 여깁니다.  

 

참으로 요즘은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는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바쁜 것이 성공의 척도인 세상이지만... 바쁨과 고독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심지어는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의 증거는,

늘 일과가 바쁘고, 그것도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 평화로이 거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뿌리내리지 못한 영혼의 특성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 깊이 뿌리내린 사람은, 사람들과 평화로이 있을 수도 있지만,

혼자서도 (주님과 함께) 평화로이 지낼 수 있습니다.

 

   특별히 혼자서 주님과 교제하는 습관을 길러놓지 않으면,

   노년이 될수록 더욱 방황할 것입니다.

   노년이 되면, 이래 저래, 혼자서 지내야 할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러셨습니다. 주께서는 허다한 무리 중에 둘러싸인 중에도

그들을 가르치고 돌보시며 병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러시다가도 무리를 떠나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또 다른 의미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전혀 다른 두 상황이 아무렇지 않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영성적으로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사람은 말로 일을 하지만, (침묵 없는) 말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우리는 너무 말을 많이 하고, 하루 종일 말에 둘러싸여 있으며,

말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목회자나 교인들도, 설교가 교회성장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합니다.

목회도 너무 말에 의존하여 하고 있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우리는 말에 의존하여 살지만, 

사실은 너무 많은 말로인해, 말의 능력을 상실하고 있고, 

말로인해 우리 내면은 더욱 공허해지고 있습니다.


상처 주는 말, 왜곡된 말, 빈 말,불필요하게 지나치게 많은 말들은

우리 내면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헨리 나우웬은, 서방세계의 수도생활의 창시자인 베네딕트의 말을 빌려

좋은 말, 거룩한 말조차도 침묵생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그런 말도 하지 말라는 뜻) 


▶침묵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말의 파워

그리고 침묵이 우리로 순례자로 만들고 

마음속의 불인 영적인 불을 지킬 수 있게 하며

진정으로 말하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침묵은 말의 고향이라고 말합니다.

 

영적 존재로서 인간의 침묵 속에서 배태되어 나오는 말은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처럼,

역동성과 창의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침묵은 단순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 내면까지 침묵하지 않는다면, 아직 침묵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우리 안에서 욕망이 소리 지르고

적대감과 원한이 얼마든지 소리치는 상황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침묵은 바로 내면의 침묵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내면의 침묵에까지 이르려면, 마음의 욕심을 비워 가난한 마음을 가지며

내 뜻을 쳐서 주님께 복종 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고독과 침묵 속에서 

내면의 귀를 통해 하나님을 경청할 수 있으며,

주의 뜻을 따라 진정으로 기도할수 있습니다.


▶침묵은 곧 듣는 시간

예수님의 고독과 침묵은, 곧 기도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시간이요,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고독과 침묵과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여 일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도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셨다면

우리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조차도 흔히는 침묵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요구를 얼마나 급하고 일방적으로 하나님 앞에 쏟아놓고

기도를 끝내는지를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말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끝낼 즈음에는,

의도적이라도 '듣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고독, 침묵, 기도'속에

   항상 주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기다림'입니다.

   혹시 아무 내적인 음성을 못 듣고, 기도를 마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번을 기약하며, 계속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주님의 음성이 내적으로 들릴 때는,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들립니다. 

   억지로 '듣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은 인적 드문 광야의 40일 금식기도로 문이 열리고,

감람산의 철야기도로 마무리에 듭니다. 


우리 삶의 궤적도 예수님의 그것을 닮아가야, 세상에 끌려가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루터는 자기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루에 3시간씩 기도하지 않고는 

일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존 웨슬리도 기도 잘하는 사람이 연구도 잘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고독과 침묵과 기도훈련을 하며 

구도자적 자세를 잃지 않을때

우리는 세상을 이기며 살며, 우리의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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