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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질리지 않도록 해야 2721

LNCK 2010. 11. 1. 18:50

◈진리에 질리지 않도록 해야              눅5:17~26                     10.10.03.설교녹취 

 

 

은혜진리보다 앞선다.


▲진리만 강조하다가, 선교사 아들도 질려서, 불신자가 되어 버린다.

브라질 정글에서 평생 사역한 H선교사 아들도, 그래서 불신자가 되었다.

엄마가 매일 매일 예배만 드리니까.. 아들이 질려버린 것이다.

진리만 있고, 은혜가 부족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그 아들은,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매일 예배드리고.. 학교에 가야 되니까

그 예배 때문에 질려서 커서 불신자가 되고 말았다.

‘엄마는 하나님 편이지, 내편이 아니야!’


예배를 드리면 드릴수록, 선교사 아들은

‘엄마는 하나님 편이야, 그러니까 하나님 하고만 살아!’

이렇게 반발하고 말았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엄마가 아들 붙잡고, 매일 가정 예배드린 게, 그렇게 큰 잘못이란 말인가?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진리만으로 아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진리를 가르치고, 진리를 보여주기 이전에,

먼저 은혜와 사랑을 가르치고, 보여주었어야 했다고 본다.’


은혜와 사랑으로, 아들과 먼저 관계를 쌓은 후에,

진리를 제시하고, 가르쳐야 했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대하는 방식과 같아야 한다.(요8장)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진리부터’ 들이대지 않으셨다.

사랑으로 용납하신 후에 ‘진리’를 들이대셨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자녀가 아무리 컴퓨터 게임을 밤새도록 하고, 늦잠을 자며 학교를 안 가더라도,

아이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납하는 가운데서,

아이가 느끼기에 ‘엄마는 절대로 내 편이야!’

이게 형성된 다음에.. ‘진리’를 제시해야 한다.


안 그러면, 차라리 진리/성경/예배를 강조 안 하는 편이 더 낫다.

왜냐하면 그것 강조했다가.. 도리어 반발하고, 자녀를 괜히 불신자 만든다.


진리만으로는.. 그게 사람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놈의 진리 때문에.. 자기가 괴롭고 피해를 당한다고 생각한다...


▲진리를 읽다가.. 역효과 날 수도 있다. 은혜가 빠져버릴 때!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은 다 진리의 말씀이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진리를 읽어도 오히려 질려버린다.


그래서 목회자, 장로님 자녀들 중에서,

집에서 ‘진리’에 질려버린 사람들이 꽤 많다.


다른 사람들은 ‘진리’를 잘 모르니까, ‘진리’로 훈계하지 않는데,

목사님, 장로님들은 ‘진리’를 잘 아니까,

아이들을 훈계할 때, 꼭 ‘진리의 말씀’으로 훈계하게 된다.


아이들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은 ‘은혜’를 느끼지 못할 때,

‘진리’가 오히려 목회자/장로님 자녀를 빗나가게 만든다.


    은혜와 진리는 꼭 같이 가야 하지만,

    둘 중에 은혜의 비중이 더 크다는 것이다.                     

  

▲진리의 잣대, 은혜의 잣대

세리장 삭게오는 세간에 알려진 나쁜 사람이었다.

로마 제국 편에 서서, 자기 민족에게 세금을 과하게 부과하는 사람이니까..,


그 날도 예수님이 오셨을 때, 삭게오는 무리 가운데 섞이지 못했다.

그는 뽕나무 위에 올라갔다.

키가 작아서 뽕나무 위에 올라가기도 했겠지만,

아마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워서, 뽕나무에 올라갔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 가까이 온 삭게오를 보고 욕했을 것이다.

‘저 나쁜 놈도 구원은 받으려고 여기까지 와?’

‘네가 하나님을 찾으려면, 세리장이나 먼저 관 둬라!’ 그러지 않았겠는가.

이렇게 사람들은, 항상 진리의 잣대로, 상대방을 멸시하고 비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사정을 다 아실 터이지만,

‘삭게오야, 내려와라. 내가 오늘 네 집에서 머무르고 싶다’

먼저 은혜의 잣대로, 삭게오에게 다가가신다.


예수님은, 언제나 앞자리에 앉아서 말씀 듣는 충성된 사람의 집부터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멸시 받는, 삭게오의 집에 먼저 가시겠다는 것이다.


    삭게오는, 경건하다는 사람들이 들이대는 진리에 질려버린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의 은혜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열렸다. 그리고 변화되었다.

    ‘제가 토색한(강제로 거둔것을) 4배로 갚겠습니다.

    그리고 남은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겠습니다.’


오늘 나는, 진리만을 들이대서, 주위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지는 않는가?

내가 항상 은혜의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하겠다.

진리는 은혜 다음에 나와야 한다.

진리부터 들고 나오면, 나도 영락없이 바리새인 된다.


진리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진리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세상에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만,

그러나 진리가 모든 사람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죄인 중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나쁜 죄인인줄 알지만,

그들에게 진리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불편하고, 외면하고, 피하고 싶다. 죄인이니까!


그때 우리가, 그것을 정확하게 지적한다고..

그에게 회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죄인이라서, 진리를 감당하지 못한다.

도리어 진리에 질린다. 위의 선교사의 아들처럼 도리어 반발한다.


진리가 좋은 것이고, 꼭 필요한 것이지만,

진리는 반드시, 은혜와 진리의 순서로,

은혜 뒤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진리에 질리지 않는다.


여러분, 교회에서 진리가 선포되어야 하지만,

진리가 언제나 사람을 살려내는 게 아니다.

항상 은혜와 진리가 함께 선포되되, 은혜가 진리를 능가해야 한다.


여러분과 제 입술에, 이 예수님의 은혜의 말씀이 항상 있기 바란다.

이것은 오직 성령충만한 사람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늘 성령충만 해야 한다. 


‘은혜와 진리’

이것은 신구약 성경에, 한 번도 순서가 바뀐 적이 없다.             *관련글 :  인자와 진리


▲은혜의 해를 전파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그 안에 충만하셨다.  요1:14


진리만으로는 죄인을 못 살린다.

그런데 은혜의 말과 삶은, 그들을 살려 낸다.


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부딪혔는가 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진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언제나 ‘진리의 잣대’만을 들고 나왔다.

진리를 가지고, 바리새인들은, ‘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가/아닌가?’ 분별하려 했다.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뭡니까?’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늘 진리를 들고, 예수님을 시험한 것이다.


그러니 ‘은혜와 진리’되신 예수님은

‘진리의 잣대’인 바리새인들과

태생적으로 항상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리의 잣대로 보니까, 예수님이 자기들 기준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다.

서로 잣대가 틀린 것이다. 물론 예수님의 잣대가 맞다.

 

    오늘날에도 성경을 오래, 깊이 연구하는 것은 좋지만,

    자칫 ‘진리의 잣대’만 들이대다가.. 우리가 실족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진리 이전에, 은혜가 사람을 살린다.

바리새인들은 진리로 예수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간음한 죄인 여자를 돌로 쳐야 되는데, 죄인을 살려줘?’


여러분 죄인을 살려내는 것은 은혜다.

진리부터 들이대서는, 죄인을 살리기는커녕, 모두 다 교인들에게 질려버린다.

 

그것이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가 외면당한 가장 주요한 이유이다.

간음자, 동성애자, 그외 각종 죄인들이 교회를 외면해 버렸다.

다름 아닌 ‘진리’때문에!  


주님은 이 땅에 죄인을 살리려 오셨다.

여러분, 이 정신이 저와 여러분에 있게 되기 바란다.



◑2. 환자를 너무 진리로만 보지 마시라.


▲죄로 인한 질병도 있고, 하나님 영광을 위한 질병도 있다.

①죄로 인한 질병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신 후에

‘네 죄사함을 받았으니라’ 라고 가끔 말씀하셨다.  눅5:20, 본문


이 말의 뜻은, 우리는 자세한 내막을 모르지만,

예수님이 아시고, 그 중풍병자만 아는, 어떤 죄가 있었고,

그 죄가, 그 사람의 질병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중풍병을 낫게 하기 이전에, 먼저 그의 죄를 사하셔야 하셨다.


②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질병

-요9장, 날 때부터 소경된 자

-나사로가 병들어서 죽은 것>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도바울이 병든 것> ‘내 은혜가 네게 족하기’ 위하여


우리 주변에 있는 환자들, 병자들,

그 원인이 (인과응보가 인간의 본능이긴 하지만)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조건 정죄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그 이유는

①내가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

②그가 나로 인하여 ‘진리에 질려 버리면’, 실족케 한 책임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연자 방앗간용 큰 맷돌 매고 물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다.)


▲질병이.. 우리 성품을 성숙시켜 주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그러므로 환자를 너무 진리의 잣대로 들이대서 심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그 섭리를.. 우리가 다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주간에, 아마존 강에서 평생 사역하신 H선교사께서 다녀가셨다.

그분께 들은 간증이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그 분이 폐암 말기에 걸렸음이 발견되었다.

폐에 암이 90%가 퍼졌고, 의학적인 수명은 이미 끝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분의 일차적 관심은, 자기 병의 기적적 치료가 아니었다.

그 분의 관심은, 자기가 이렇게 폐암 말기 병에 걸렸는데도,

아직 못 고친 자기의 미숙한 자존심/신앙인격 때문에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을.. 뼈아프게 후회하고 있었다.


최근에 그가 항암치료 받고서, 병원에서 나오다가 보니까,

자기 옆에 주차된 차가, 자기 차의 백미러를 긁고 지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분 성질에, 즉시 급하게 쫓아가서, (방사선 치료로 어질어질 한데도) 

운전자에게 뭐라고 한 소리 했다.

‘운전 똑바로 하라!’고


그 다음에 이내 그는 자괴감이 들었다.

‘어떻게 폐암 말기에 걸려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남이 자기 차의 백미러를 긁고 지나간다고,

뛰어가서 그 사람에게 막 성질을 부릴 수 있나?’

그 분이 자신을 돌아보니, 탄식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 분은 지금 자기 폐암을 돌아보는 게 아니라,

얼마 안 남은 기간 동안 자기 성품을 돌아보고 있다.   (하나님이 연장해 주시기를..)


자기의 폐암 낫는 것보다, 더 급한 것(성품 치료)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은, 오히려 폐암을 주신 것을 감사한다고 했다.


폐암에 걸렸으니 그래도 요만큼 정신 차렸지..,

만약 자기가 폐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자기 못된 성질을 평생 고치지 못했을 것이고,

어쩌면 천국에도 못 들어갈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주1)


그래서 질병도 은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질병에 걸린 환우를 대할 때,

함부로 ‘진리의 잣대’를 들이대서, 판단하려 하면 큰 일 난다는 것이다.

어쩌면 중병 걸린 그가, 건강한 나보다 훨씬 더 의인일 수 있다.


성경에도 나와 있다.

마5: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건강하게 지옥 가는 것보다

차라리 불구자로(병자로) 천국 가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H선교사가 폐암으로 판명 난 이후에, 아마존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다.

그 분의 사역에, 지금 하나님의 영광이 막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가 폐암에 걸려서 아마존에서 설교할 때,

인디오들이 성령이 임해서, 그들에게서 회개가 터졌다.

예배당에 있는 전원이 울고 불며 회개하고,

성령이 임해서 방언과 예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질병이 있으니까

환자/환란을 당하는 자들을

무조건 '진리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질병/환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막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 영생의 관점에서 볼 때,

50년 사는 것이나, 90년 사는 것이나.. 큰 차이 없다. 그게 그거다.

그럼, 50세에 암으로 판명되어.. 자기 생애를 아름답게 마무리 짓고 떠나는 것과,

90세까지 무병장수하다가.. ‘진리의 잣대’로 평생 병자들을 판단하고 떠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을까? 어느 쪽이 더 축복일까?


사람들은 최연소 노벨상, 최연소 장관, 최연소 고시합격 이렇게 ‘최연소’를 찾는데,

천국 들어가는 것은, 어찌된 일인지 ‘최연소’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여러분 그렇지 않다.

꼭 천국 들어가는 것이 ‘최연소’가 무조건 최고로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와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신뢰할 따름이다.

 

 

주1)

자주 못되게 성질부린다는 것은.. 철저히 회개 안 했다는 증거이고.. 그래서 천국에 낙방할수도.. 회개 안 했으니까!

그리고 천국에서도 늘 성질부리고 싸우면.. 시끄러워서 안되니까.. 그래서 천국에 못 들어오게 하실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죽으면, 다 변화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전부 로봇이 아님. 내가 해야되는 역할도 있다. 회개와 변화 등. 


그리고 신학적으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뿐만 아니라 - 이것은 OK!

공생애를 통해, 인성을 지니시고 ‘삶의 모범’을 보여주신 것임 - 이 부분이 신학적으로 간과되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 + 삶의 모범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 복음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