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4~2005

창세기의 형제간 갈등과 봉합 2728

LNCK 2010. 11. 5. 19:22

◈창세기의 형제간 갈등과 봉합                      창25:7~9                  출처보기


 

창세기를 ‘형제간의 갈등’ 관점에서 풀어나간 전개가 매우 흥미롭습니다./편.



▶들어가는 말

신앙인은 누구나 ‘가정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장 큰 은혜와 축복’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완성이 가정(아담과 하와)을 이루는 것이었음을 보아도 그렇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단순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 하나를 만드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인간 창조의 이야기는 창조주 하나님의 자기만족식의 창조행위 그 자체에 머물지 않았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피조물인 ‘사람’으로 하여금 ‘가정’을 이루어

더불어 살도록 하셨다.


그러나 성서는 아담과 하와가 가정을 이룬 다음,

그들의 가정생활이 얼마나 축복되고 행복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인류 최초의 가정이 파괴되었는지를 보여주려는데 급급해 보인다...

 

 

◑창세기의 한 중요 주제 - 가정의 불화, 형제간의 갈등

 

 

 

▶1. 가인과 아벨

인류 최초의 가정은 형제간을 피로 물들인 끔찍한 살인으로 시작한다.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것이다.


둘째 아들은 죽고, 첫째는 집을 떠난다.

파괴된 가정의 빈 자리에, 하나님은 아들 하나를 ‘허락’(셋)하고,

그를 통한 족보를 열거한다(창5장). 이 족보의 끝에 노아가 태어난다.


▶2. 셈, 함, 야벳

인류의 악행을 보다 못한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노아와 그 가족들을 통해 새로운 창조세계를 열어 가신다.

홍수사건이후 노아의 자식들을 통해 인류가 퍼져 나간 것을 기록하는데(10장),

그 바로 전에 성서는 아주 독특한 이야기 하나를 건네준다.


노아의 자식들의 이야기다.

형제들 간의 갈등의 주제를 또 다시 반복하는 이야기다.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과 관련하여, 형제들의 운명이 갈리는 사건이 생긴 것이다(9:18-29).


한 가족을 이루고 살아야 할 형제가,

섬기는 종과, 섬김을 받는 주인으로 그 운명이 갈리게 된다.

한 가족인 형제간의 갈등과 분열을

인류 전체가 서로 갈라서게 된 이유로 설명한다.


하나님은 다시 한 가정을 택한다.

셈을 통한 족보를 열거하고, 거기서 아브라함이 태어난다(11장).


▶3. 이스마엘과 이삭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가정의 불화는, 다시 한 번 그의 아들들로 인해 표출된다.

자식이 없던 아브람은 첩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첩 하갈의 임신은 곧 그 가정에 불화의 씨앗이 되고,

하갈은 임신한 몸으로 쫓겨난다.


고통 가운데 처해있던 하갈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것과 동일하게

그에게서 태어날 아들을 통해 자손의 축복을 약속한다(16:10).

그리고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하나님께서 들으심’)이라 지어주신다(16:11).


형제간의 갈등으로 인한 가정불화 주제는

아브라함에게 친자인 이삭이 태어나면서 다시 한 번 반복된다(21:8-11).

서자로 태어난 이스마엘과, 친자인 이삭 사이의 갈등은

결국 형제의 사이를 다시 갈라놓게 만든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나님은 하갈에게 이스마엘을 통해서도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을 확인시킨다(21:18).

그러나 아브라함 가정의 불화, 곧 그의 자식들인 형제들 간의 갈등의 문제는

훗날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 간의 갈등과 대립의 씨앗이 된다.


한 집안의 형제간의 갈등을 보라. 이는 결국 오늘날까지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갈등과 분열, 대립과 전쟁의 씨앗으로 남아있다.


▶4. 에서와 야곱

그런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이삭으로부터 태어난 쌍둥이 두 아들인

에서와 야곱간의 갈등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형제간의 갈등은 장자가 누릴 축복을 둘러싼 싸움이었다.


성서는 형제간의 갈등이 이미 태중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예전 노아의 자식들에게 지어졌던 형제간의 운명처럼,

여기서도 장차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라 운명지어진다(25:23).


형제간의 갈등은 이들이 태어나는 모습에서 보다 자세히 나타난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과 에돔의 조상인 에서 사이의 갈등은

결국 이 두 민족이 영원한 원수가 되는 불화의 씨앗이 되고 만다(참고, 말 1:2-4).


성서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특히 많은 부분을 ‘야곱의 이야기’로 채우고 있다.

이는 야곱이 장차 실질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되기에 그렇다.

그로부터 나온 열 두 아들이 곧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된다.


야곱이 죽기 전에 자신의 12아들에게 축복의 유언을 하는 장면이

창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한다면(창49장),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12지파에게 축복의 유언을 남기는 장면이

곧 오경의 마지막을 장식한다(신33장).

이는 현 오경 전체가 매우 의도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만큼 족장들의 이야기 중에서 야곱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크다.


그래서인지 성서는, 그 이전 조상들의 형제간의 갈등의 이야기를 간단히 기술한 것에 비해,

유독 야곱과 에서 두 형제간의 갈등의 이야기는 매우 장황하게 기술 하고 있다.

장자권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의 이야기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이야기까지도 길게 설명한다.


형제간의 불화의 씨앗은 결국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던

인류 최초의 가정이 파괴된 그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이려 한다.

형 에서가, 거짓으로 장자의 축복권을 가로챈 동생 야곱을 죽이고자 한 것이다.


이제 한 가정의 행복과 평화는 이미 산산이 부서진 듯 보인다.

결국 둘째 아들 야곱은 정든 집과 부모 형제를 떠나야만 했고,

타지에서 오랜 기간 힘들게 살아가야만 했다.


성서는 또 다시 두 아들 중, 한 아들인 야곱을 택하고

그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간다.


▶5. 요셉과 그의 형제들

이스라엘 조상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창세기는

조상들의 형제들이 서로 반목과 대립, 분열과 싸움의 연장이었음을 놓치지 않는다.

야곱을 통해 태어난 12아들의 이야기 역시 미움과 시기, 질투의 이야기이며,

나아가 형제들은 막내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하는 데까지 이른다.


성서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가 이렇다.

인류의 시작과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의 이야기의 시작이 그렇다.


왜 성서는 이토록 가정의 불화, 형제간의 미움과 대립, 싸움을

반복해서 그리고 있는 것일까?

성서는 단지 이렇게 가정의 불화만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면서

가정의 평안과 형제간의 우애를 보여줄 수 있는 성서의 본문도 많을 텐데

설교자가, 굳이 창세기가 보여주는 가정의 불화와 형제간의 싸움의 이야기를

끄집어낸 그 속내가 무얼까 궁금해 하는 독자가 있으리라. 그 이유가 있다.


창세기에 나타난 조상들의 가정불화와 형제간의 갈등과 대립의 이야기,

그 중심에는 이상과 같은 민족 분열의 기원만이 아니라,

‘온 인류가 하나의 핏줄’임을 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1)


(※물론 위의 그런 주제-인류는 한 핏줄-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인간의 죄성의 유전과 그 심각성을 보여주려는 것 같은데요..

성경은 인간의 타락과 구원에 관한 책이니까요..

‘인류는 한 핏줄’은, 정말 창세기의 한 one of 주제는 맞을 것 같습니다./편)



◑가정의 화해, 형제간의 갈등 봉합


그런데 이상의 이야기는 단지 가정의 파괴만을 전하지 않는다.

형제간의 갈등은 새로운 용서와 화해

짝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1. 가인

비록 동생을 살해하고 집을 떠나는 가인에게도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실 것임을 약속한다.


▶2. 셈, 함, 야벳

노아의 자식들인 셈, 함, 야벳의 후손이 세상으로 퍼져나갔지만

훗날 선지자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을 보면서

이 모든 민족들이 다시 하나님의 성전으로 몰려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사66:18-23).


▶3. 이삭과 이스마엘

집에서 쫓겨난 이스마엘에게도 하나님은 이삭의 아들 야곱을 통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이루신 것과 동일하게 12아들이 태어나

큰 민족을 이루실 것임을 약속한다.


이스마엘이 쫓겨난 지역이 ‘브엘라해로이’였다(창16:14).

그런데 훗날 이삭 역시 ‘브엘라해로이’에서 거주하게 된다(창25:11).

이삭과 이스마엘은 함께 그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을 장사지냈다.

 

    아브라함의 향년이 175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함께)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창25:7~9


 

분열과 대립으로 끝나지 않고,

함께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4. 야곱과 에서

야곱과 에서의 갈등은 아래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 둘 역시 서로 화해하는 장면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이 부분 다음 호에서 자세히 살핌)

 

그리고 아버지 이삭의 장례식도 같이 치른다.

(이삭과 이스마엘처럼) 야곱과 에서도 함께 부친 이삭의 장례를 치른다.

정말 장례식은, 훌륭한 가족 화해의 장인것 같다.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창35:29


 

▶5. 요셉과 그의 형제들

동생 요셉을 팔았던 그의 형제들 역시

훗날 모두가 함께 만나 용서하고 화해하고, 다시 한 가족을 이루어 살게 된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도, 당연히 아버지 야곱을 함께 장례지냈다. 창50:7~8)

 

    그러고 보니, 거의 대부분 모두가 다, 화해했다.

    창세기는 형제간 분열의 역사이지만, 동시에 형제간 화해의 역사이다.


    이제 형제간의 갈등, 가정불화의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가정의 평화를 어떻게 이루시는 가를 살펴보자.


    이것이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기독인의 가정이 본 받고자 하는

    본 글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이 부분 다음 호에서 계속)

 

...........................................



주1) 아래 내용은 상당히 ‘신학적’입니다. 모든 분들이 꼭 동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학문적 입장에서, 참고해 볼만 합니다.


창세기의 많은 이야기들은,

이미 이스라엘과 이방민족들이 대립과 반목의 상황 속에서 나온

후대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모세가 대부분 썼지만, 후대에 약간 고친 점은 인정한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창세기의 조상들의 이야기는

이미 많은 이방 민족들과 함께 살고 있던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들과 본래 한 핏줄이었음을 보여주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구약성서의 포로기 이전 예언문헌들에

아브라함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는 후대에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을 민족의 조상으로 문서화 하면서

그로부터 후대 이스라엘과 타 이방민족들의 조상이

모두 그에게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고향이 ‘갈대아 우르’였다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말로 하면, 아브라함은 이라크 사람이라는 말이다.


중동 평화의 시작은 아브라함이 이라크 사람이었음을 상기하는 것에서

서로간의 새로운 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만약 단군이 일본 후지산에 그 거처를 삼았다가

훗날 동해 바다를 건너 한반도 땅에 이르게 되었다고 역사를 기술한다면,

이를 읽는 오늘날 한국 사람이 일본을 보는 시각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바벨론 포로기를 거치면서 이스라엘 예언문헌들의 구원 선포의 핵심은

점차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닌, 온 민족, 세계주의 사상으로 확대되어 간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이집트 자손과 같지 않은가? 야훼의 말씀이다.

내가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암9:7 사역)


“만군의 야훼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복 받으리,

내 백성 이집트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사19:25 사역)     ▣ 행복한 가정   


 

'분류 없음 > 2004~200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세와 예언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2732  (0) 2010.11.08
브니엘을 마주 대하는 가정 2729  (0) 2010.11.06
하나님의 후회 2726  (0) 2010.11.04
풍랑이 칠 때 2713  (0) 2010.10.28
등불을 간검하라 2706  (0) 2010.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