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받은 사람은 거룩하게 산다 벧전1:13~2:10 09.09.24.설교스크랩
▶은혜에 굳게 서기 위한 2방안
(지난 호에서 살펴본) 베드로전서의 주제는 ‘은혜에 굳게 서라’ 이었습니다.
이 ‘은혜에 굳게 서는’ 방안을, 사도 베드로는 2가지로 제시하는데요,
하나는 고난에 대한 대처요,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음)
또 하나는 선한 행실입니다. (이번 호, 아래에서 살펴봅니다.)
은혜.. 이건 전적인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은혜를 은혜 되게 하기 위해서, 받은 은혜가 온전히 열매맺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응답을 해야 되느냐.. 이걸 베드로전서가 말하고 있는데요..
◑1. 거룩한 행실은 은혜를 굳게 한다. 1:13~2:3
▶1:13~16, 거룩할지어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벧전1:13~16절을 쭉 보니까 가장 중심 되는 단어가 ‘거룩할지어다’ 입니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 거룩한 행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굳게 하는 겁니다.
잘 이해하십시오.
거룩한 행실로 은혜를 받는 게 아니고
거듭나고, 또 하늘에 속한 기업을 얻고,
구원을 받도록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그런 게 아니고
(이런 것들은 ‘은혜’로 받는 것들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저 받은 이 은혜를
거룩한 행실로 굳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의 성경적 근거가 무엇이냐고요?
베드로전서의 문맥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1:1~12절과
1:13절부터 시작되는 문단(‘거룩할지어다’)이
:13절 서두의 ‘그러므로’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두 문단을 연결하면,
‘너희가 은혜를 받았으므로.. (그러므로) 이제 거룩하게 살라’ 입니다.
▶1:17, (믿음이 아니라) 행위대로 심판하신다.
선행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니..
그리고 아무리 거룩하게 살려고 해도,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없으니..
신자의 행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 이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반쪽 진리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너무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과 동행하길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순종하는 자식입니다.
여러분 1:17절 읽어봅시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7절에서, 하나님은 뭐로 판단(심판)하십니까?
예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십니다. 믿으십니까?
‘어 아닌데.. 믿음 보고 판단하시는데..’ 나는 그렇게 배웠는데..
죽어서 천국 문에 딱 도착해 가지고
‘너 누구야?’ ‘예, 저는 OOO입니다.’
딱 조사해 봤더니 안 좋은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너는 안 되겠다. 천국 불가!'
'나 예수님 믿었어요.'
'그래 예수님 믿었어? 그러면 너 천국에 들어가라.'
하나님이 이렇게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신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행위대로 사람을 판단하시는데,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행위대로 심판한다’는 본문의 말씀을
교회에서 고의적으로 없애버리는 겁니다.
이런 구절들을 애써 안 쳐다보려고 합니다.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여기도 '믿음'이 아니라, '행위대로' 심판하신다고 나와 있네요.
벧전1:17절,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이 말씀을, 혹자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것은 구원 여부에 관한 심판이 아니고,
상급 여부에 관한 심판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해석은, ‘이신칭의’ 신학을 전제로, 모든 성경을 거기에 끼워 맞춘 결과입니다.
물론 ‘이신칭의’ 신학은 맞습니다.
벧전1:17절,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은,
이신칭의 신학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고, 보완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변화된 삶, 선한 행실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각 사람을 행위대로 심판하셔도’
‘믿음을 보시고 심판하시는 것’과 그게 그것입니다.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1:17절에서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분이다...'
(※오늘 우리는 무조건 ‘믿음으로 심판하신다’는 말만 하고 있는데요,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말도 동시에 같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와 있거든요. 위에 언급한 두 구절 말고도 수 십 개 나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말씀만큼 많이 나옵니다.
어쩌면 더 많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면 또 이단으로 몰립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구원 받지만,
예수님 믿으면 거듭나고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게 됩니다.
즉,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살도록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 생활이 정돈되고, 행위가 정돈이 되는 겁니다.
이런 것을 한 마디로 말해서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한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겁니다. 벧전1:17
이 말씀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에 포괄적으로 포함되어 있거나,
동전의 양면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서로 대립적 개념이 아니라요.
성도의 '믿음'에는.. 반드시 선한 행실이 따라오거나, 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걸 잘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여러분 지금 사도 베드로가 말하는 것입니다.
▶1:17b, 그러므로 세상에서 살 동안에, 두려움으로 지내라
'외모로 보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18, 너희는 구속 받았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여기 구속redeem이라는 말은 몸값을 주고 노예를 빼내와
자유인이 되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조상부터 내려오던 그 망령된 행실,
돈 생기면 술집에 가서 술 먹고, 술 안 먹는 사람은 노름 집에 가서 노름하고
또 그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들은 성적으로 음란한 짓을 해서 처첩을 거느리고..,
여러분, 그런 망령된 행실에서 우리를 빼내온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은혜로 구원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그 구원은 우리의 어떤 선행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조상의 망령된 행실에서 구원 받은 것입니다. 빼내 온 겁니다.
여러분 17~절로 19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봅시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여기 또 ‘믿음/은혜로/피로 구원 받는다’는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동전의 양면을 다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중간 정리하면/ 구원의 은혜를 굳게 세워주는 선한 행실(거룩)
따라서 구원에는 거룩이 수반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은 구원에는 반드시 선한 행실이 따르는 겁니다.
내가 억지로 선하게 살려는 율법적/노력하는 선한 행실이 아니라,
내 속사람이 변화되었고, 점점 성화의 삶으로 성숙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선한 행실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조상의 망령된 행실에서 떠나지 않은 사람, 그는 구원 받지 못한 사람 일 수 있고
그리스도의 피가 아직 뿌려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게 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약을 먹어도, 어떤 사람은 즉각 약효가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사람에 따라서 약효가 몇 시간 후에 아주 천천히 나타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화의 삶이 아주 느리고 더디게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고 봅니다..)
▶1:22, 거룩한 행실은, 다른 표현으로 ‘형제 사랑’입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1:22
▶2:1~3, 거룩한 행실은, 또 다른 표현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2:1~3절을 읽어보십시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여러분, 구원에는 ‘칭의 성화 영화’를 다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는다’는 말은, 엄밀히 말하면 ‘칭의’ 받은 것입니다.
이제 구원의 과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구원은.. 어떤 것 이렇게 딱 줘서, 한 순간에 이렇게 갖게 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가 맺어진 것입니다.
관계가 맺어졌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고, 형제를 사랑하고, 믿음에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선한 행실’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직 관계가 맺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요3:16절 암송하고,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니,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고,
‘이제는 예수 잘 믿어 축복 받자. 축복 받는 데나 힘쓰자!’
이건 아주 잘못된 구원관입니다.
▶정리하면,
지난 호에서 살펴본 베드로전서의 주제는 ‘은혜에 굳게 서라’ 이었습니다.
이 ‘은혜에 굳게 서는’ 방안을, 사도 베드로는 2가지로 제시하는데요,
하나는 고난에 대한 대처요,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고요)
또 하나는 선한 행실입니다. (지금까지 위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거룩한 행실, 선한 행실은.. 구원의 은혜를 굳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로/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든든히 뿌리내려서.. 온전한 구원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갓 심은 나무에 부목(지지대)을 대듯이,
‘은혜’라는 나무가 뿌리 내리도록 굳게 세워주는 지지대가 필요한데,
하나는 고난이요, 또 하나는 선한 행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덕적/율법적/자기 노력적 선한 행실을 뜻하지 않고요,
예수 믿고 내면이 변화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선행을 뜻합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라는 말의 뜻은,
그저 '아무 것도 안 해도 저절도 된다'는 뜻은 아니고, 율법적/윤리적/자기 의지적 노력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전서2: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2:2
하나님의 말씀을 먹음으로써, 점점 자라가고, 점점 성화된다는 것입니다.
◑전도를 위해서도 선한 행실이 필요하다. 벧전2:4~9
벧전2:4~9절까지 쭉 말씀을 바라보면
우리는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그래서 그 집 안에서 하나님께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되어서,
주님의 복음을 이방에 선전/전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그 역할을 위해서 잘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자라가고’
‘선한 행실을 하며 살라’고 권면합니다.
▶2:4~5절을 읽어봅시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2:9절도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왜,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의 제사장 거룩한 나라 택하신 족속으로 삼으셨느냐.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것.
나를 구원해 주셔서 망령된 행실을 끊고 빛 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신
그 하나님의 덕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선전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우리를 불러내셨다는 것입니다.
이걸 하려면.. 여러분 우리가 ‘자라가야’ 되는 겁니다.
‘선한 행실’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여학생들 턱걸이 하듯이, 딱 1초 매달려 있다가 툭 떨어지는,
그런 선한 행실이 아니라,
평소에 ‘거룩한 집’, ‘거룩한 제사장’으로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하나님의 덕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전하기 위해서,
즉 전도를 위해서라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됩니다.
▶정리하면,
베드로전서는.. ‘은혜에 굳게 서라’라고 말하면서
그 일환으로 ‘행위로 심판 받음’을,
‘선한 행실을, 믿음에 자라갈 것’ 등을 강조합니다.
은혜로/믿음으로 구원받으니.. 너희 삶은 아무렇게 살아도 별 상관없다.. 가 아니라,
'은혜로/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살게 되어 있다'
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선한 행실로 살며
(2) 복음의 도리(거룩한 삶)을 널리 선전하며 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현실은,
(사실 베드로전서 같은 부분이 잘 강해되지 않아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성경의 몇 구절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자기 구미에 맞게 이해하고)
그래서 반쪽 진리를 붙들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심한 경우, 영생을 못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도는 믿음으로/은혜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정말 믿음으로/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는
그 받은 구원의 은혜를 굳게, 견고하게 세워서 열매 맺게 하기 위해서
자연적으로 어떤 현상들이 나타나는데..
거룩한(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고, 그런 삶이 점점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삶’이
-내 구원의 은혜를 견고하게 하는 목적도 있지만,
(또 다른 부수적인 목적도 있는데 그것은)
-세상의 안 믿는 불신자들에게, 전도하기 위해서(거룩한 덕을 선전하기 위해서)
그 거룩한 삶이 꼭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자연스럽게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베드로전서의 나머지 부분에서,
거룩한 삶, 믿음이 자라가는 성도의 실제 삶의 예를 듭니다.
-나라의 권위자들에게 복종하고
-종이 상전에게 복종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젊은 자가 장로에게 복종하라.. 등입니다. ▣ 은 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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