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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스프링클러와 자전거 2784

LNCK 2010. 12. 9. 20:40

 

◈스프링클러와 자전거                       마11:28-30                       출처보기



▶문제 제기

18세기 존 웨슬리 때, 수 천~2만 명이나 모여서 복음을 듣던 영국 교회들이

지금은 왜 그 건물을 부동산에 매물로 내어놓게 되었을까요?

싸우스햄턴의 500년 된 교회는, 팔려서 지금 술집이 되었습니다.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케리를 파송했던 하비레인 교회는

지금 힌두교 사원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한 때 폭발적인 부흥으로 세계 교회를 놀라게 했던 한국 교회가

왜 지금 정체와 쇠퇴 현상을 보이고 있을까요?


그렇다면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데, 나는 왜 생활 속에서 은혜를 체험하지 못할까요?

오늘 그 답을 ‘스프링클러와 자전거’라는 제목 속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대학 캠퍼스에서 혼자 새벽기도 드리다.

이번에 제/설교자가 미국에서 3주 동안 지낼 때

하나님은 이런 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제가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베일러 Baylor 대학 캠퍼스에 갔습니다.

거기에 별로 넓지 않은 광장이 있습니다. 양쪽 옆에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건물 앞에 가로등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가로등 옆으로 나무들이 가지들을 이리저리 뻗고 있습니다.


저는 베일러 대학 광장 희미한 가로등 아래 철제 의자에 앉아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회고하면서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생각도 하고 기도도 드렸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를 품고 간구와 호소도 드렸습니다.

제가 연구하는 제자훈련 주제를 놓고 묵상도 했습니다.


때로는 눈물도 흘리고, 때로는 찬송도 부르면서, 뜻 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프링클러에서 얻은 통찰력


▶미국에 잔디가 아름다운 것은, 스프링클러 덕분

기도를 드린 후에,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를 한 바퀴 운동삼아 도는데

사방에 ‘칙칙칙칙’ 하는 소리와 함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스프링클러 sprinkler이었습니다. 잔디에 물을 뿌리는 스프링클러 말입니다.


스프링클러에서 뿜어져 나온 물이, 포물선을 그리며 잔디에 뿌려지는 모습을 볼 때,

제가 잔디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야, 이거 정말 시원하구나. 새벽마다 이슬처럼 내리는 은혜가 족하도다.

하루도 빼지 않고 물을 주니 정말 감사하구나.

내가 이렇게 녹색의 생기와 활기를 찾는 것도, 바로 스프링클러 덕분이 아니겠는가!”


미국에 갈 때마다 제일 부러운 것이 있습니다. 넓은 땅입니다.

특별히 제가 간 텍사스 주는 남한의 4.5배가 되는 넓은 땅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넓은 평원을 보면서

‘미국 정부가 우리 교회 교인들에게 텍사스의 일부를 한 100년 동안 조차해 주면

우리가 멋진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 놓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미국의 버려진 넓은 땅은 볼 때마다 부럽습니다.


미국에서 사람들이 사는 주거지에 들어가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푸른 잔디입니다.

잔디를 얼마나 잘 가꾸어 놓았는지 볼 때마다 부럽습니다.

도시마다, 도시 전체가 공원인 것입니다.

 

미국의 잔디가 어떻게 그 녹색의 생기를 유지하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그 비결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스프링클러였습니다.

새벽마다 풍부한 이슬을 뿌려주는 스프링클러가.. 잔디의 생명과 생기의 비결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스프링클러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생기와 활기와 의욕을 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의 은혜입니다.  요7:38참조


예수님의 은혜는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새벽마다 예수님 앞에 나가면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에 스프링클러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의 메마른 인생에 새벽마다 은혜의 이슬을 뿌려 주십니다.


새벽마다 은혜의 이슬을 먹으면 인생이 고달프지 않습니다.

험악한 인생도 활기가 넘칩니다. 답답한 인생도 확 뚫립니다.

메말라 쩍쩍 갈라지는 땅이..

단비를 받아 진한 녹색의 풀이 고개를 내밀게 하고, 얼마 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듯,

우리 메마른 인생이 화려한 꽃들이 만발한 초원처럼 됩니다.

새벽기도가 예수님께로 가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내 인생의 스프링클러입니다.


그러나 새벽마다 예수님께로 못 간다 하더라도

하루 종일 마음속으로 예수님께로 나가시면 됩니다. 

자동차 타고 가시면서도 “주님, 저는 핸들을 잡고 주님께 나갑니다.

주님이 제 인생의 핸들을 잡아 주시옵소서.” 하시면 됩니다.


바쁘게 일하면서도 “주님, 저의 바삐 움직이는 손발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갑니다.

저의 손발이 주님의 손발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은 스프링클러처럼

우리에게 은혜의 이슬, 생명의 단비를 뿌려 주십니다.


 

◑자전거 페달


▶자전거 타기를 통해, 신앙생활에 (육체의) 훈련도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스프링클러가 ‘칙칙칙칙’ 하고 물을 뿌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제가 아침마다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았습니다.

 

그 때 문득 “아, 이것이로구나. 자전거 페달을 새벽마다 밟으니

우선 몸이 건강해지고 밥맛이 너무 좋아. 이거야, 이거!

건강을 위해서는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돼.”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육체가 훈련을 받습니다. 육체가 단련이 되어 튼튼해집니다.

다리도 튼튼해지고 내장도 튼튼해집니다.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면 밟을수록, 인생이 힘차게 달리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 액셀러레이터는.. 아무리 밟아도 몸이 튼튼해지지 않습니다.

자동차는 자전거보다 더 빠르게 달리기는 하지만, 몸을 건강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느리기는 해도, 몸을 건강하게 해 줍니다.


제가 자전거 예찬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멍에를 매고 배우는, 육체적 훈련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에게 배우면 쉼을 얻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소 2마리가 하나의 멍에를 같이 메고 밭을 갈았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멘다는 것은 (소 2마리가 함께 멍에를 메는 것을 연상하십시오.)

예수님과 내가 함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이 하시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면 따라가면 됩니다. 예수님이 멈추시면 멈추면 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면.. 나도 따라서 돌아가면 됩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스승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배울 때에, 좀 잘못 한다고 잔인하게 채찍질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몇 점 이하는 탈락이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잘라버리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넘어지면 일으켜 주시고, 아파하면 쓰다듬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 하시고

꺼져가는 등불이라도 미리 꺼버리시지 않습니다.

상한 갈대도 붙잡아 세워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기름을 넣어 타게 하십니다.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스승이신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에게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배울 때에 마음에 쉼을 얻습니다.


▶멍에를 메면, 더 무거울 것 같지만, 사실은 더 가볍다.

우리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에게 배울 때에 놀라운 것을 깨닫게 됩니다.

멍에는 본래 무거운 것이고, 메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멍에는 메면 멜수록 가볍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예수님의 짐은 가볍습니다.


지난 금요일 안산동산교회 김인중 목사님을 모시고 우리 교회 전도회 연합수련회를 했습니다.

‘전도하면 행복하다’는 은혜로운 말씀을 듣고, 감동과 도전을 받고, 각오와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인중 목사님이 저와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권 목사님은 건강해 보이고 얼굴이 밝아요. 얼굴이 찌들리지 않았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행복한 목회자입니다. 저는 예수님과 같이 살면서 행복을 맛보고 있습니다.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은혜가 훨씬 더 넘칩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간증이요, 고백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에게 매일 매순간 배우고 훈련을 받는 것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작정하면

마음에 쉼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훈련을 받으면 받을수록 인생이 쉽고 가볍습니다.


인생의 고달픈 짐도 무겁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해 주시고,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인생 밭의 이랑을 만들어 갈 때,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뿌듯한 보람이 있습니다.


▶훈련을 받아야 쉼이 있습니다.

신앙인인데도 왜 불안과 고민과 우울과 포기에 빠집니까?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나 다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말씀을 무시하기 때문에, 마음이 쉼이 없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 그리하면... 쉼을 얻으리니.”

다시 말하면 ‘훈련을 받으라, 그리하면 쉼을 얻으리라.’입니다.

‘멍에를 메어라, 그리하면 쉼을 얻으리라.’입니다.

이 말씀을 무시하기 때문에.. 생명과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자전거를 타면서,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늘 건강해져야 하겠다고 생각만 하면 뭐합니까?

아깝지만 시간을 내어서, 페달을 힘껏 밟아야 하는 것입니다.


▶편하게만 살고자 하면 미래는 없습니다.

한국교회가 왜 정체되고 쇠퇴합니까?

왜 유럽과 미국의 일부 교회들이 쇠퇴하고 죽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훈련받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편안 게 좋고 힘든 건 다 싫다.’는 태도 때문입니다.

양육과 교육과 훈련 받는 것이 얼른 보기에는 힘들기 때문에 힘든 것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힘든 것을 거절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뭐든지 편하게, 편하게!” 이렇게 살면 생명을 잃습니다. 힘을 잃습니다.

의욕을 잃습니다. 발전을 놓칩니다. 희망을 잃습니다.

편하게 살자는 것은 편하게 죽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뭐든지 힘들어도 하겠다!” 이렇게 살면 생명이 약동합니다.

의욕이 넘칩니다. 발전과 성공을 합니다.

꿈이 이루어집니다. 안식과 행복을 맛봅니다.


▶일화

저의 할머니는 훈련의 의미를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시골에서 자랄 때 할머니는 저를 훈련시키셨습니다.

나무 지게를 지고 30리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볏단을 지게에 지고 모래사장을 지나갈 때, 발이 푹푹 빠져서 숨이 차고

어깨가 쑤셔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콩을 뽑을 때 어리고 여린 손바닥이 물집이 생겼다가 터졌습니다.

그 때 할머니는 “아이쿠, 내 손자! 얼마나 쓰리냐? 쯧쯧. 안타까워 죽겠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제가 너무 힘들어서 “할머니, 오늘은 그만 하고 집으로 가요.”라고 하면

할머니는 “죽으면 썩을 몸 아껴서 무엇하랴!”--이렇게 한 마디 하셨습니다.


이 말 한 마디에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할 때 몸이 부셔지는 것 같고 배가 아파 죽을 것 같을 때

“죽으면 썩을 몸 아껴서 무엇하랴!”는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힘든 훈련을 사랑으로 시키신 것입니다.

저는 할머니의 훈련 덕분에 지금도

일단 맡은 일을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해 냅니다.


공부도 힘들지만 열심히 하면 인생이 편해집니다.

운동도 힘들지만 열심히 하면 몸이 편해집니다.

사업도 힘들지만 열심히 하면 생활이 편해집니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이 힘들지만 열심히 밟으면 몸이 편해집니다.

불편을 통해서 편해지는 역설--이것이 훈련의 묘미입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은 은혜의 스프링클러가 있습니까?

그것만으로 안 됩니다.

(육체를 훈련하는) 멍에를 메고 계십니까, 훈련의 페달을 밟고 계십니까?


주님께 나가서 은혜의 스프링클러를 체험하십시오.

주님의 훈련을 받으셔서 성장과 발전을 통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주님의 멍에는 쉽고 주님의 짐이 가볍다는 것을 체험하십시오.

신앙생활의 행복이 여기에 있습니다.


스프링클러와 자전거, 평생 잊지 마십시오.

매일 은혜의 스프링클러를 체험하시고, 평생 훈련의 페달을 밟으십시오.

은혜와 훈련, 여기에 안식과 행복이 있습니다.                                       ▣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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