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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2785

LNCK 2010. 12. 10. 12:41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롬12:9-13                          출처보기

                                                                                                       *원제목 : 진실하게 사랑하자



롬12: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위 본문은 12개의 짧은 교훈이 다소 엉성하게 연결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랑이란 주제가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9절에 사랑이 나오고, 10절에 형제 사랑과 우애가 나오고, 13절에 손님 사랑이 나옵니다.

그 사이에 나오는 여러 가지 교훈이 다 ‘사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이 점이 통찰력이 있다고 생각되어서, 스크랩 합니다.

          아니면, 본문 해석이 아주 산만해집니다. 아니면 일목요연하게 구슬이 꿰어지지 않습니다.

 


▶도입 예화  주1)



▶롬12:9절,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거짓이 없다’는 것은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 사랑은 사랑하는 척하는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진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가식이 없고 외식이 없습니다. 사랑은 진실하고 진솔하고 정직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바울이 왜 ‘사랑’을 말하다가 ‘선악’을 말했을까요?


사랑은 선과 악, 참과 거짓을 분별할 줄 압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고전13:6).


자식을 진짜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식에게 도적질 해 오라고 시키지 않습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식이 도적질 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자기 힘으로 살도록 교훈할 것입니다.

사랑은 선악을 분별해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것입니다.


뻔히 악한 줄 알면서도, 서로 친하니까, 악한 사람을 대변하면 안 됩니다.

악한 사람에게 얻어먹었다고 해서 악한 사람을 두호하면 안 됩니다.

악인이 겁을 준다고 악한 사람 편에 서도 안 됩니다.

악을 지긋지긋하게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선에 속한다’는 말씀은, 선에 바짝 달라붙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악을 미워하고 본드로 붙인 것처럼 선에 달라붙어

선에서 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10절,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


우리는 요셉의 형제들처럼 형제를 시기하고 질투하지 말아야 합니다.

형제간에 우애해야 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이런 질투를 이기려면 적극적으로 사랑하면 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축하해 주면 됩니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 개뱅이 다리 근처에 형제우애의 동상이 있습니다.

옛날 우애가 돈독한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추수 때가 되어 동생이 말을 시작합니다.


“올해는 형님의 노고로 풍년이 들었군요...

형님은 동쪽에서 벼를 베세요. 저는 서쪽에서 베겠습니다.”


해를 등지고 작업하는 것이 해를 보면서 작업하는 것보다 쉬워서

동생이 형님을 배려한 것입니다.


형님은 “그렇게 하지. 아우의 좋은 뜻대로...”라고 응수했습니다.

형제가 각기 벼를 베서 쌓아올린 볏가리가 각자의 수확물이 됩니다.


동생은 “나보다 형님은 식솔도 많고 씀씀이도 많으니 식량이 더 필요할 거야...

그냥 드리면 안 받으실 거고, 어쩌지?”

이렇게 생각하다가 밤에 몰래 자기 몫에서 볏단을 빼서

형님 낟가리에 쌓아 놓았습니다.


형도 “동생은 살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많을 텐데.

그냥 주면 안 받을 거고,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하다가

한 밤중 지기 볏단을 부지런히 동생 낟가리에 옮겨 놓았습니다.


두 형제는 똑 같은 일을 며칠이고 반복하다가

한 밤중에 드디어 볏단을 들고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형제는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성만 이순의 형제의 얘기입니다.

재산을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고 형제간에 법정투쟁을 하는 시대에

얼마나 흐뭇한 얘기입니까?


우리는 서로 우애할 뿐 아니라,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해야 합니다.

존경스럽지도 않은데 어떻게 존경하라는 것일까요?

남이 나보다 돈이 더 많아야만 존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나보다 학력이 더 높아야만 존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의 작품입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의 창조의 작품으로 보면 누구라도 존경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열매입니다.

다른 신자를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열매로 보면

어떤 신자라도 존경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신자는 성령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 가시는

성령님의 조각 작품입니다.

우리가 다른 신자를 성령님의 조각 작품으로 보면, 어떤 신자라도 존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적 원리와 시각으로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해야 합니다.



▶11절,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이 말씀은, 사랑에는 열정이 있음을 말합니다. 

(본문 롬12:9~13절 단락의 전체 맥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근면합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

게으른 사람을 보는 사랑하는 가족은.. 속이 터집니다.

게으른 남편은, 침대에 앓아누운 아내에게 물 한 컵도 떠주지 않습니다.


저는 굴지의 기업가 두 분과 아주 가깝게 지냈었습니다.

한 분은 지금 세상을 떠난 분이지만, 80대 노인으로

미국에서 돌아오시는 바로 그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셨습니다.


제가 비행기로 미국에서 돌아온 그 다음날 새벽에 바로 교회로 나올 때

항상 그분을 머리에 떠올립니다.


또 한 분은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해서 운동을 하시는 분입니다.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시는지 작은 체구지만

그 큰 63빌딩에 근무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역도를 제일 잘 들어 올리십니다.


저는 두 분과 가까이 지내면서, 두 분 다 정말 부지런한 분들임을 발견했습니다.

두 분 다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시고 가족들을 사랑하시니까

부지런히 움직이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게으른 사람이 성공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뭔가 이루고 사는 사람들은 다 부지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은 부지런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부지런하게 움직입니다.


4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똑부’가 있습니다.

멍청하고 부지런한 ‘멍부’가 있습니다.

똑똑하고 게으른 ‘똑게’가 있습니다.

멍청하고 게으른 ‘멍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중에 어디에 속합니까?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서

똑똑하고 부지런한 ‘똑부’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문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합니다.

사랑의 열정가가 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뜨겁습니다. 사랑은 열정입니다. 


저는 ‘미스 김’my wife과 연애할 때 일주일에 편지 두 통을 써 보냈습니다.

미스 김은 한 달에 한 통도 보내주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토요일마다 청량리에 나가서 몇 시간씩,

열차에서 내리는 미스 김을 눈이 빠지라 기다렸습니다.


어떤 때는 아예 청량리에서 경기도 양동까지 2시간 열차를 타고 내려가서

미스 김을 만나 함께 열차를 타고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미스 김이 누군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사랑할 때는 정말 마음이 뜨겁습니다. 열정이 식은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사랑의 불이 지금도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까?

남편이나 아내에게 “당신 아직도 날 사랑해서 가슴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요?”

라고 묻고 싶겠지만, 남편이나 아내에게 묻지 마시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주님을 섬기라’는 말씀이 여기에 붙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이 주인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사랑의 열정이 비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섬기면 심령에 불이 붙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아낌없이 흘리실 정도로

우리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셨고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에 주님의 열정이 우리에게 옮겨집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이 우리의 주업(life-business)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우리의 열정과 에너지를 바쳐야 합니다.

자기 사업을 하듯 주님을 섬길 때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넘칩니다(life-joy).



▶12절,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


(사랑이 있으면)  소망 중에 즐거워합니다.

사랑은 기쁨으로 그 출구를 삼습니다. 사랑은 인내로 그 힘을 기릅니다.

사랑이 있으면 또한 기도에 항상 힘을 씁니다.


예전에 너무 많이 실패하고 너무 많이 속았다 하더라도, 소망을 잃지 마십시오.

주님의 재림을 통해서 완성될 천국의 큰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이 일상생활 속에서 함께 하시고 마침내 복을 주시는 작은 소망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소망 중에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소망 중에 기뻐한다고 해서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눈을 감고 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눈을 가리는 바보의 낙원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속임수가 아닙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은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모든 일로부터 가장 선한 것을 이끌어내는 습관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환난 중에 참습니다’

우리는 소망 중에 즐거워하면서 동시에 환난 중에 참아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주님이 또 내게 어떤 복을 주시려고 하시려는가?”

기대하면서 참아야 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 인내할 수 있는 것은

환난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만들어내는 공장이기 때문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2-4


인내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넘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포기하고 싶을 때 ‘내가 포기하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려울 때 포기하면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인격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어렵다고 포기하면 당장은 어려움을 면하지만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침내 주시는 복도 누리지 못합니다. 환난 중에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십시오.


(사랑이 있으면) 기도에 항상 힘씁니다’

우리는 환난 중에 계속 인내하기 위해서,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놓고 기도하면 됩니다.

감사하면서 기도하고, 기대하면서 기도하노라면 환난 중에 참을 수 있습니다.


사실 환난은 기도의 자명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난을 허용하시는 것은 기도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환난이 찾아오면 하나님께서 “기도해라. 기도해라. 기도해라.”고

시끄러운 자명종을 울리신다고 보셔야 합니다.

우리는 환난의 자명종 소리에 벌떡 일어나 기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제가 대학생 시절에 등록금이 없어서 예배당에서 밤새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겨울철에 난로 앞에 앉아서 1주일 동안 기도했습니다.

애써 기도하다가 예배당 긴 의자에 엎드려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 저의 기도에 놀랍게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등록금을 주셔서 공부를 계속 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에 항상 힘을 써야 합니다.


 

▶13절,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바울 사도 자신이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갈2:10).

바울은 실제로 구제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롬15:25-27, 고전 10:16~17).

초대 교회 신자들도 구제에 힘을 썼습니다. (행2:44, 4:32~34).


바울은 신자들이 기회 있는 대로 착한 일을 하되

특별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우선적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갈6:10).


우리 교회는 독거노인들에게 ‘사랑의 반찬 서비스’를 합니다.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장학금을 줍니다.

재난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도와주려고 노력합니다.

무료로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구제가 가난한 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손님 접대는 주로 숙식이 필요한 길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형제 사랑이, 나그네 사랑과 결합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이 교훈을 줄 당시는 여관들이 적은데다가

박해로 인해서 이주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복음 사역자들이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길손들을 접대하는 일을 즐겁게 했고 열심히 했습니다. 주2)


우리 교회에서 전번에 선교사 자녀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접대한 것도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바울은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pursue)'고 했습니다.

길손들이 우리에게 올 때에 영접할 뿐 아니라,

길손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묻고 찾아서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길손들이 행여 거리에 앉아 있거나 지붕 없는 한데서 자지 않도록 해 주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노숙자들과 외국인들을 대접하라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생활이 힘든 분들에게 사랑의 쌀을 나눠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외국 학생들과 청년들을 자신의 자녀들처럼 돌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음식도 해 주시고 병원에도 데려다 주시고, 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도 해 주십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영국 워윅셔 Warwickshire 공동묘지에 이런 묘비가 있습니다.

“여기에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았고, 긁어모으는 일만 했던 구두쇠가 누워 있다.

지금 그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지내는지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관심이 없다.”


반면에 런던 성 바울 사원에는 이런 묘비가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약한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주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동정을 주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렸던

찰스 조지 고든 씨를 추모한다.”


여러분은 짧은 인생을 마치고 어떤 묘비를 남기시고 싶습니까?

여러분이 구제와 대접을 힘쓰시면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잠언11:2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독일 부르츠버그 왕궁에는 거울로 된 홀 a Hall of Mirrors 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들어가시면 여러분의 얼굴이 수천 개로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웃으면 거울도 수천 개의 웃음을 줍니다.


여러분이 손을 펴면 거울은 여러분을 향해 수천 개의 손을 폅니다.

여러분이 남들을 도와주면 남들도 여러분을 도와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실하게 사랑하면, 여러분은 남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실 것입니다.



★손님 대접 관련글


775 전도자를 대접하라


502 대접 받고 어쩔 줄 몰랐다... (강추)


.................................


주1) 도입 예화

17세기 영국 올리버 크롬웰 경이 어떤 병사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그 날 저녁 종이 울리면 그 병사는 처형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녁 종이 울릴 시간이 되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울리지 않았습니다. 왜 저녁 종이 울리지 않을까. 크롬웰은 궁금했습니다.


알아보니 병사의 약혼녀가 종탑에 올라가서 종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크롬웰은 그 약혼녀를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아가씨, 왜 그랬소?

만종을 막는 것이 국법을 어기는 줄 몰랐소?” 크롬웰은 약혼녀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약혼녀는 울먹거리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만...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크롬웰이 그 약혼녀의 손을 보니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습니다.

큰 무쇠종이 울리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자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종을 붙잡고 있노라 그만 양손이 피투성이가 된 것이었습니다.


크롬웰은 피를 흘리고 있는 여인의 손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병사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던 크롬웰은 생각을 바꾸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의 사랑은 정말 대단하군요. 그대의 희생적 사랑 때문에

그대가 사랑하는 병사를 살려주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만종이 울리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까?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 사 랑    

주2) 손 대접 관련 성구

창18:1, 19:1, 마10:40-42, 롬16:1~2, 딤후1:16~18, 히13:2, 벧전4:8~10, 요삼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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