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참 복을 - 하나님의 아들됨 마5:9 11.01.11.인터넷설교스크랩,녹취,편집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9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이것 역시, 인간 본성이 원하는 복과는 좀 거리가 먼 것 같다.
돈이 많이 벌릴 때의 짜릿한 그 기쁨 .. 이런 기쁨이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을 복이라고 하셨을까?
▲당시 로마 사회에는 양자를 삼는 것이 아주 성행했다.
그리고 양자가 가진 권한은, 친아들과 법적으로 동등했다.
당시 로마법이 그랬다.
로마사회의 입양계념은, 현대의 입양의 개념과는 약간 다르다.
당시 로마사회에서는 정치가나 재산가들이, 자신의 후계자를 양자로 입양 했다.
그러니까 양자 입양이 아주 성행했는데, 꼭 고아를 데려오는 개념이 아니라..
고아가 아닌 일반 사람도, 그를 데려다가 자기 후계자를 삼을 때는, 법적으로 양자로 삼았다.
양자로 입양된 사람은, 아버지의 아들이 됨과 동시에
아버지의 정치적 기반과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를 가지게 된다.
이런 대표적인 경우가 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황제이다.
그는 시저의 먼 친척이며, 동시에 시저의 양자였다.
그는 시저가 죽을 때 어렸으며, 정치적인 기반도 없었다.
그러나 결국 시저의 양자라는 지위를 통해, 대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이처럼 로마 사회에서 정치가나 재산가의 양자가 된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양자가 된다는 것(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은
어떤 사람의 양자가 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과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이다.
또한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이 단락 펌)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양자)이라” 롬8:14
▲아버지가 아들을 택하지, 아들이 아버지를 택할 수는 없다.
아들 자신이 스스로 '누구의 양자되었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
아버지가 아들을 양자 삼지,
아들이 누구를 '내가 그 분의 양자되었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
쉽게 예를 들면, 부모가 보육원에 가서 누구를 택하여 양자 삼는 것이지,
보육원 아이가, 부모 중에 누구를 찍어서 자기 부모를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요지는, '누구의 아들(양자)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몫이지, 아들의 몫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양자)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해 주셨기 때문'이지,
내 스스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 는 것은..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
여러분, 이것은 큰 은혜이다.
이 세상에서 가문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도 큰 복이거늘
하나님의 집안에, 하나님이 양자로 입양되는 것은,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은 .. 정말 큰 은총이다.
시저가 아우구스투스를 양자 삼은 것에 비교될 수 없다.
아무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은혜로 택함 받은 사람만 양자가 된다.
▲양자의 특권과 의무 주1)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은.. 화평케 하는 일에 특별히 힘쓴다. 이 말도 당연히 된다.
▲화평케 하는 자, peacemaker라는 뜻인데..
이 말은, 세상에 전쟁과 분쟁을 없애고 평화를 위해 힘쓰는 자.. 라는 뜻도 되지만,
그 일차적인 뜻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불화'를 화평케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주main개념이고,
거기서 파생된 보조 개념으로서 '인간과 인간사이의 화평'을 들 수 있지만,
주개념을 완전히 무시한 채, 보조 개념만 강조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실제로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예수님이 주로 하신 일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평화'였지, *화평=평화=peace
'사람과 사람사이의 평화'를 위해 애쓰셨지만, 그것은 보조적인 일이었다.
반대로,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 때문에 분란이 일어났다.
예수님이 주로 하신 일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평화'라는 뜻이다.
▲문제는, 하나님과 인간은 근본적으로 평화할 수 없다는데 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죄인데,
인간의 현실은, 그 죄를 떠나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인간의 선한 양심마저도, 죄악에 깊이 물들어있다.
예를 들면, 가난한 사람을 도우는 것은 분명히 선한 일이지만,
그 선한 양심 속에도 '자랑, 자기 공로, 칭찬 받음'이 내재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는 것도,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 선한 동기 속에도 '내 자랑, 내 얼굴, 내 명예'가 몰래 숨어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 자체로 하나님과 절대 평화할 수 없다. 절대 타락한 죄인이기 때문에!
그래서 인간의 대표로써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원죄를 해결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이 화평케 되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예수님처럼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아들/양자는, 아버지의 권리도 상속하지만,
아버지의 고난도 함께 상속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고난도 함께 상속하는 양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화목케 하는 귀한 직분을 감당하셨듯이,
오늘날 우리도, 화목케 하는 피스메이커가 되려면,
반드시 내가 지는 십자가 고난 같은 고난이 필요하다.
아들은 특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도 있다.
롬8:17절에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상속자’이며, heir
동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라고 표현한다. joint-heir, 공동상속자
이것은 놀라운 축복이며, 동시에 무거운 의무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렸던 부활과 영원한 생명과 승리와 권세를
우리도 함께 누린다.
그러나 이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가 당했던 고난도 함께 당해야 한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음과 동시에
이 땅에서의 고난과 핍박도 당해야 함을 의미한다.
상속자의 특징은 '아버지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일꾼은 주인이 고난을 당하면 그냥 떠나간다.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속자는 아버지와 함께, 영광을 함께 받듯이, 고난도 함께 받는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우노라'고 말했다. 골1:24
고난당하는 것을, 고생이 아니라, 도리어 (양자의) 특권으로 여겼던 것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만 아니라, 그 분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 특권,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빌1:29, 공동번역
오늘 우리는, 고난당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는 신앙이 있는가?
그 고난을 당해야, 피스메이커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교회를 위한 고난)을 당해야,
세상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평화가 오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승리는 항상 <진 다음에 승리>, <십자가 다음에 부활승리>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예수님이 이루신 평화의 사건인 십자가를 염두에 두고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평화'를 생각해 볼 때,
여러분, 피스메이커가 되려면.. 내가 먼저 져야 한다.
내가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사람사이에도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가 나를 공격해 와도, 그때 내가 먼저 죽는 것이란.. 예를 들면,
'내가 평소에 저 사람을 전도를 열심히 하지 못하니까.. 나를 공격하는 거지.. 다 내 죄야..'
또는 '하나님이 저에게, 나를 다루시라고 허락하신거야.. 다 내 허물이야..'
이렇게 (공격을 받을 때) 자신의 죄를 생각하고 회개하고,
나아가 그 사람의 허물과 부족함까지, 자기가 십자가를 지고 위해서 기도해 주면..
그때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평화가 임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둘이 똑같으니까 싸우는 것이다.
한 사람만이라도, 십자가 복음에 자신을 담근 자가 있으면.. 절대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다.
▲정리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 피스메이커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도 평화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삶을 뜻한다.
그때 하나님과 사람사이는 물론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평화가 이루어지는데,
그 실제적 예는, 내가 내 대적을 힘과 무력으로 제압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를 격동시킨.. 혹시 있을지 모르는 나의 잘못을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막 격동하는 그의 잘못을 내가 대신 그를 위해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를 저주하는 시므이를 볼 때, 자기의 허물 때문이라고 여겼고,
스데반도,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보면서, 저들의 허물을 사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 스데반의 기도가 응답되어, 사도바울이 탄생한 것이지,
만약 스데반이 그 기도를 드리지 않았더라면, 청년 사울은, 자기 살인 죄로 인해서,
공의의 심판과 저주를 받아서, 얼마 못 살고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데반의 피스메이커 역할로, 청년 사울이 하나님과 화평케 되었던 것이다.
.....................................................
주1) ▲양자의 특권과 의무
①첫 번째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는 것이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롬8:15
우리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특권이다.
만약 우리가 대통령이나 대그룹 총수를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염치가 좋거나
비굴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더 나아가 ‘아빠’(아바)라고 부르는 것은 더욱 친근함의 표시이다.
우리는 구원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여러분이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얼마나 특권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 분은,
고아나 사생아가 되면.. 누구를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얼마나 특권인지 알게 된다.
종은 주인을 무서워한다. 종은 주인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있고 싶어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로 그런 '아들의 영'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옆에 가고 싶어 하고, 같이 대화(기도)할 수 있고,
언제나 자유롭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②두 번째 특권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이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8:17
‘상속자’란 헬라어의 ‘클레로노모스'다.
이것은 아버지의 지위와 재산을 모두 물려받는 법적인 상속자라는 의미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물려받는 자녀들이다.
우리는 재벌2세를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들보다 더 큰 기업을 물려받을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③양자로서의 삶. 의무
그러나 아들은 특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도 있다.
17절에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상속자’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라고 표현한다.
헬라어로 클레로노모스heir와 쉰클레로노모스joint-heir로 나와 있다.
전자가 그냥 상속자라면, 후자는 공동상속자라는 의미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이며, 동시에 무거운 의무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렸던 부활과 영원한 생명과 승리와 권세를
우리도 함께 누린다.
그러나 이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가 당했던 고난도 함께 당해야 한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음과 동시에
이 땅에서의 고난과 핍박도 당해야 함을 의미한다.
상속자의 특징은 아버지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일꾼은 주인이 고난을 당하면 그냥 떠나간다.
왜냐하면 그 밑에 있어도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속자는 아버지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 고난을 이기고 다시 부유하게 되었을 때
아버지의 영광이 내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이 단락 출처-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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