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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1

강물을 막아서는 사람 2871

LNCK 2011. 2. 14. 11:07

 

◈강물을 막아서는 사람           수3:14~17        11.01.16.설교녹취



◑1. 자기 자리를 잘 지킨 사람들


▲625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에, 이런 비화가 한 가지 있었다.

미국이 아직 625전쟁에 참전을 결정하기 전에, 맥아더 장군이 한국을 방문했다.

시찰차 전선을 돌아보았다.

그 때는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서울도 곧 함락직전의 위기까지 처한 상황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한강 방어선을 시찰하고 있는데,

방어선이 아주 허술했지만, 거기에 진지를 지키던 병사들이 있었다.


맥아더 장군이 물었다.

‘자네는 왜 후퇴하지 않는가?’


‘장군님, 여기가 제가 죽을 곳입니다.

저는 여기서 마지막까지 내 자리를 지키다가, 조국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


그 한 마디가 굉장한 감동을 맥아더 장군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 군인의 강력한 충성심이 맥아더 장군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것이, 미국이 625전쟁에 참전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역사는, 자기 자리를 잘 지킨 사람들에 의하여 진행되어왔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대로 잘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 역사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기를 잘 지킨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역사도 진행되어왔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항상 믿음의 자리에 서 있었다.

어떤 순간에도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옮겨간 것도,

하나님이 있으라 하신 그 자리에 있기 위함이었다.


그는 모리아 제단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켰다.

기어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다윗 역시 늘 자기 자리를 지켰다.

그는 아둘람 굴에 있어도 좌절하지 않았고, 그 자리가 늘 소망의 자리인줄 알았다.

그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하며 소리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새 지평을 열겠다. 하나님 나라의 새 역사를 시작하겠다’는 포효였다.

그냥 날이 새어, 아침이 온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바울도, 여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항상 열방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신 그 선교의 자리를 늘 지켰다. 떠나지 않았다.

결국 그로 말미암아 많은 이방사람들이 주님의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왔다.



◑2. 언약궤를 메고 강물을 막은 사람들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 이제 꼭 건너야 할 중요한 장애물을 만났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데, 하필 그 시기가 가장 강물이 범람하던 3~4월경 이었다.

요단강의 수위가 제일 높을 때, 건너가기 참 어려운 때였다.

그러나 요단 강 건너지 않고는, 가나안 땅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반드시 건너가야 했다.


▲자기 자리에 서 있는 제사장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하여

한 방법을 명하셨다. 그것은 바로 제사장들을 부르시고,

제사장들이 하나님 언약궤를 메고, 먼저 건너가도록 하는 방도였다.


그들이 요단강 물속으로 들어가고, 그들이 강 가운데 궤를 메고 서 있는 동안은,

요단강은 흐르지 않았다.

 

바로 제사장의 역할을 그것이다.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게, 그리고 기쁘게 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는 역할, 이것이 바로 제사장의 역할이었다.


▲내가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시대에 크리스천의 사명이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신 그곳에서 굳게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자리를 지키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지불할 대가를 지불할 동안에는,

우리로 말미암아 우리의 가정이 복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건너가게 될 것이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기뻐하는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우리로 인하여 복을 받고,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게 될 것이다.


▲죄악의 강물의 흐름을.. 언약궤를 메고, 가운데 서서, 멈추게 하시라.

영적으로 보면 우리 각자는 기름부음 받은 자, 선택받은 제사장이다.


여러분, 세차게 흘러가는 요단강물을 멈추게 하는 비결은, 오직 언약궤였다.

선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붙잡으면, 모든 종류의 강들은

금년에도 우리 앞에 그 흐름을 멈추게 될 것이다.


미움의 강물이 흐르는 속으로 들어가서, 우리는 평화를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굳게 붙듦으로 이 미움의 강물을 멈추게 할 수 있다.


의심의 강물의 흐르는 한 복판에서, 우리는 귀한 말씀의 언약궤를 꼭 붙들어야 한다.

나 한 사람이 그 자리를 지킴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의심의 강을 건널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 한 사람이 믿음이 있으면, 그 가정이 모두 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근심의 강이 우리를 침몰하기 위해서 막 넘실거리고 흘러올 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1

하신 말씀을 선포하고 믿으며, 그 근심의 강물을 딱 멈추어야 한다.


낙심의 강물이 막 밀려올 때도,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메어야 한다.

나 한 사람이, 말씀의 약속을 붙잡고, 제사장처럼 강물 속에서 막고 서 있을 때,

우리 공동체에 엄몰하는 낙심의 강물은 멈추어 서고,

모든 성도들은 무사히 강을 건너게 될 것이다.

 

절망의 강물이 우리를 엄몰하려고 할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메어야 한다.

그러면 모든 종류의 강물은 멈추어 서게 될 것이다.


금년에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그 말씀을 어깨에 메고, 여러 세상의 강물 가운데로 진군해 들어가는

그리스도의 군병들이 되시기 바란다.



◑3. 강 한 가운데 서 있으려면 용기가 필요


수3: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상류)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하류)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약속의 말씀,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까지 갔는데, 문제가 생겼다.

들어가려고 보니까 물결이 너무 높이 넘실거리는데, 빠져 죽을 것만 같았다.


발을 넣으려고 하는데, 넣질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강력하게 흐르는 강물 속으로 발을 넣는다고,

강물이 멈추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사실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벼랑 끝에 서는 용기를 가지고, 강물 속으로 발을 디뎠다.

강물의 흐름이 멈추기 시작했다.


▲믿음은, 다른 말로 <용기>

하나님의 사람은 약속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은 말씀대로 용기 있게 행동하는 것이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내 발을 미래를 향하여,

문제 속으로 나를 내던져야 한다.


그렇다. 제사장들은 약속의 말씀만 믿는 사람이 아니다.

믿는 바대로 발을 옮기는 사람이다. 요단강을 향해 발을 담그는 사람이다.


종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다.

이름이 아무리 예뻐도.. 불러줄 때까지 이름이 아니다.

노래가 아무리 멋지게 작곡되어도.. 불러 줄때까지 노래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이 아무리 훌륭해도.. 약속을 믿고 움직여 나아갈 때까지

믿음은 아직 제대로 검증된 믿음이 아니다.

제사장들은 믿음으로 발을 전진했다. 그때 그 강물의 흐름은 멈추고 말았다.


▲벼랑 끝에 서는 용기

로렌 커닝햄은 <벼랑 끝에 서는 용기>라는 책을 썼는데,

믿음이란 다른 말로 용기라는 뜻을 담고 있다.


믿음의 사람은, 늘 벼랑 끝에 서는 용기를 가진다.

벼랑 끝에 서는 사람만이, 벼랑 끝을 걸어가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물론 무모하게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 필요는 없지만,

평생 안주만 하고 사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우리에게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때로는 벼랑 끝 위를 걸어가라는,

때로는 벼랑 아래로 뛰어내리라는.. 용기를 요구한다.


이런 용기는, 어쩌다가 일생에 한 번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에 매년 발휘되는 것이다.

믿음 있는 사람은, 매번 용기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유명한 목회자 한 분은, 자기 과거를 돌아보면서

‘나는 늘 불도저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나왔다 했다’는 표현을 썼다.


믿음의 삶을 살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은

마치 불도저 밑에 깔리는 듯한 위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여러 번!

그러나 회피하지 않고, 그 위험을 용기 있게 직면했을 때,

결과는 ‘불도저 밑에서 다시 나왔다’는 것이다. 상식을 뒤엎고!


‘물질’의 예를 들면,

물질이 뻔히 안 들어올 것을 알면서도, 요단강으로 발을 내디디는 것이다.


지금도 미국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갈보리 채플의

척 스미스 목사는, 교회를 개척하는데, 물질이 많이 필요했다.

이제 그 돈을 갚지 못하면, 부도하고 완전히 파산하는 위기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런데 마침 자기를 잘 아는 사람에게서 후원금을 보내주겠다는 전화가 왔다.

그는 너무 기뻐서 춤을 추며 좋아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스미스 목사, 뭐가 그리 좋은가?’


‘하나님, 저를 잘 아는 아무개 씨가 후원금을 보내준답니다.

그는 참으로 신실한 사람이기 때문에, 말의 약속을 어기는 법이 절대 없습니다.

그래서 후원금이 반드시 도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보게, 나 하나님 는 신실하지 않는가?

너는 왜 한 번도 신실하신 내가, 너에게 채울 것을 믿고 기뻐하지 않았느냐?

내가 그 사람만 못 하냐?’


척 스미스 목사는 그날 깊은 회개를 하고, 하나님 앞에서 다시 출발했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에게 물질문제가 생길 때, ‘아예 기도하지 않는 경지’까지 올라가야 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데, 뭘 그렇게 애가 타서 기도하겠는가.

기도할 시간에는, 물질 말고, 다른 것을 간구하기도 바쁜데...


▲방파제 사명자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제사장들은 요단강의 흐름을 막아주는 영적인 방파제들이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막는 영적인 방파제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직장의 하나님이 세워주신 영적인 방파제임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우리 교회에 방파제임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우리나라의 영적인 방파제임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우리가 주님 앞에 바로 서서, 거기서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을 바라보는 동안에는,

주께서 ‘방파제의 사명을 감당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이다.


▲한 사람의 방파제, 윌버포스

18세기 영국은 잘 살았지만, 노예무역이란 큰 문제가 있었다.

당시 모든 국가수입의 1/3이 노예무역을 통해 들어왔다.

그 나라에 크리스천이 많았지만, 아무도 노예무역을 죄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렇게 잘못 되어가는 영국사회에 한 사람, 윌리엄 윌버포스를 세우셨다.


그는 20대 초반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그 후 50년 동안 노예제도폐지를 위해서 그는 열심히 활동했다.

 

하나님이 그를 방파제로 사용하셨다.

드디어 50년 만에 노예제도는 영국에서 폐지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영국의회 안에 의원 1/3이상이, 신실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으로 채워졌다.


여러분, 한 사람이 중요하다.

내가 부르심 받은 바로 그 곳에서 그 역할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저주와 사망의 요단강물을.. 한 몸으로 막아내신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도 바로, 거기 갈보리 십자가에 머물러 계셨다.

로마 병정들, 백성들이 화를 돋구어도 결코 내려오지 않으셨다.


주님은 갈보리에서 모든 죽음과 죄악과 저주의 강물을 홀로 막아내셨다.

그리하여 모든 인류를 사망의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도록,

요단강물을 막아내는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셨다.  ←구약도 십자가로 해석한 예



▲마치는 말

미움의 강물 속으로, 담대하게 들어가서 멈추어 서서,

용서의 복음을 선포하면, 모든 미움의 강물은 나로 인하여 멈추어 서게 될 것이다.


흐르는 저주의 강 속으로 들어가서 내가 축복의 통로가 되기만 하면,

어떤 저주라도 나로 말미암아 다 멈추어 서게 될 것이다.


주님은, 주님이 보내신 그 곳, 부르신 그곳에서

우리가 굳게 서 있도록 명령하고 계신다.

주님이 나를 거기에 세워 주셨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참으로 나는 요단강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내가 내 자리를 떠나면 저주의 강물은 다시 흐를 것이다.

내가 마땅히 힘써야 할, 피스메이커의 자리를 떠나면, 다시 분쟁은 일어날 것이다.


내가 막고 있는 그 모든 미움을 내가 그만 떠나버리면,

나로 인하여 유지되던 모든 사랑은 허물어지고, 다시 미움의 강이 흐르고 말 것이다.


주님, 우리를 귀한 자리에 세워 주셨다. 축복의 통로의 자리에 우리를 세워 두셨다.

그 자리에 굳게 서서, 그 모든 것들을 막아내는 거룩한 제사장들이 꼭 되시기 바란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그곳에서 우리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이 머물러 있으라고 한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여러분, 지금 어느 곳에 서 계신가?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힘들고 어렵고 지겹게 느껴지기도 하는

그런 곳에 서 있으실 수도 있다.


남이 몰라주고, 인정해 주지 않는 그런 외로운 곳에 서 있기도 하실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굳게 서 계셔야 한다.

그 가정에 서 계셔야 한다. 그 직장에 굳게 서 계셔야 한다.


바로 주님이 부르신 그 곳에 굳게 서 계셔야 한다.

지금 메고 있는 언약궤를 고쳐 메시라. 말씀의 약속을 꽉 붙잡으시라.

미움의 강을 사랑으로 막으시고, 분쟁의 강물을 평화의 말씀으로 막으시고,

절망의 강물을, 희망의 말씀으로 막아내시기 바란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의 강물을 다 막아내신 것처럼!


우리의 모든 사명 다 마칠 때까지,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곳에서 주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주님을 높이며 전도하고 선교하며                          ▣ 리더쉽, 목회자  

주님의 거룩한 뜻을 전하는 우리 주님의 거룩한 제사장들로서 살아가게 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