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이 특별한 사람으로! 창28:10~22 스크랩, 출처, 편집
▲제/설교자가 설교를 준비할 때면,
제 경우는, 일반적으로, 증거할 본문 말씀을 '기다리는' 편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기다립니다.
저와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을 기다립니다.
한 달 전부터 기다리면, 대개는 한 두 주 전까지는 말씀이 옵니다.
신비스러운 여러 경로를 통하여 옵니다.
성경을 읽는 동안에 그 본문 말씀이 오기도 하고,
다른 이들이 어떤 본문을 물어오는 형식으로.. 그 본문 말씀이 오기도 합니다.
설교하기 이틀이나 사흘 전까지도 본문 말씀이 오지를 아니하여,
초조하게 기다린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설교할 본문이 쉽게 정해지지 아니하여
지난 수요일 밤, 자정이 넘도록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로 나오니, 큰 아이 방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가 보았더니, 신학생인 아이는 창28:10~22절의 주석 책들을 읽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녀석의 침대에 누워서, 주석을 보고 있는 아이에게,
창28:10~22절의 본문 자체를,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그 본문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저는 침대에 드러누워서 그 말씀을 듣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나면서,
"바로 이거다. 오는 주일에 증거 할 말씀이 바로 이거다" 하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새로운 국면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자신이 체험한 그 새로운 국면을,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은,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인데요..
우리는 본문에서 몇 가지 괄목할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임하시자.. 보통 장소가 → 특별한 장소로 변했습니다.
▲내가 지금 사는 곳이.. 중요한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이름도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한
한 노숙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기치 않게,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이 사건 때문에,
보통 장소가 → 중요한 장소로 바뀝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아니한 한 장소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찮은 한 장소가, 하나님께서 그리로 오시는 한 사건 때문에,
그 곳이 아주 중요한 장소로 바뀝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 교회(장소)를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고,
그저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 지역으로 이사 오셔서,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시는 중에
여기서 하나님을 깊이 만난 체험이 있는 분들은,
아마 이 교회를 '성지'쯤으로 여길 것입니다. 자기 '개인적 성지'말입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돌베개를 베고 자는 그 지역의 원래 이름은 '루스'입니다. 평범한 지역입니다.
그러나 야곱에게 그 장소는 '벧엘'이었고,
이후로 그 후손들은, 그 장소를 '벧엘'로 불렀습니다. *벧엘 : 하나님의 집
창35장에서, 헷족속의 추격이 두려운 야곱 가족이 '벧엘로 올라간' 것을 보면,
이 장소가 야곱과 그 후손에게는 '특별한 성지'가 된 것이 분명합니다.
▲하늘과 땅의 연결이 있습니다.
그가 꿈에 본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공항에서 흔히 보는 트랩이 있습니다.
비행기가 도착하면, 트랩이 연결되고,
사람들은 그 트랩 계단을 통해 비행기에서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그게 트랩(계단)이든지, 사다리든지, 아니면 나선형 계단(지구라트, 당시 건축물)이든지
그 모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중요한 것은,
하늘과 땅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통해 천사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왕래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트래픽(교통)이 생긴 것입니다.
땅은 더 이상 땅 대로 홀로 버티어 선 대륙이 아니고,
하늘 역시 더 이상 땅으로부터 단절된 신들만의 영역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관계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10년 넘게 다녀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어떤 '4차원의 세계'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이성적으로 살아야지, 신비주의는 금물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신비'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일례로, 기도는, 또한 예배는, (야곱이 돌로 제단을 쌓은 것처럼)
일종의 하늘로 연결되는 사다리입니다.
그 기도와 예배를 통해,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우리에게 은혜와 성령과, 지혜와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천사가 메시지를 전달해 줍니다.
예수께서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1:51)
라고 하셨습니다.
'천사'의 가장 일반적인 개념은, 메신저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서 전달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러, 오르락내리락 한다는 것입니다.
(창28장에도,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한 직후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땅은 이제 더 이상 절망의 장소가 아닙니다.
이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을 유지하시고 지키시는 능력이
이 땅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지금 혹시 절망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아직 임하시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임하신다면..
지금 내가 선 곳이.. 아주 특별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 장소는, 하늘과 연결되고,
하늘 문이 열리고 사다리가 연결되면서,
주님의 메시지가 임할 것입니다.
그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자기 삶의 목적, 용기, 원기, 생명력이 충만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이 임하시자.. 보통 사람이 → 특별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1. 자기 신변의 위협을 받고서 도망치는 한 사람이
예기치 않게,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이 사건에 연루되어서,
보통 사람이 → 중요한 인물로 바뀝니다.
사람이 언제 중요한 인물이 됩니까?
중요한 관직에 오를 때입니까? (그런데 그 자리가 길지 않습니다.)
인기를 한 몸에 받을 때입니까? (이상하게 인기는 길면 10년입니다.)
보통 사람이 →중요한 인물로 바뀌는 계기는,
그에게 하나님이 임하실 때입니다.
물론 야곱은, 그 이전에도 모태교인으로서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벧엘에서 야곱은, 그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던 하나님을,
개인적/인격적/특별한 관계로 알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사람에게 일어나는 중요한 변화는,
그가 '영생의 사람,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버스기사이든지, 가정주부이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스스로 '나는 중요한 사람이며, 나는 지금 보람된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오늘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다' .. 이런 분명한 자각이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을 개인적/인격적/특별한 관계로 만났다는 증거입니다.
만약 당신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간에, 나이가 어떻든지 간에,
'나는 그냥 세월과 환경에 떠밀려 살고 있다.
내가 늘 바쁘고, 내 밑에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나는 잘 모르겠다!'
-이런 분은, 아직 하나님을 개인적/인격적/특별한 관계로 못 만난 분입니다.
그 결과, 자기 삶과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못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다려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특별하게 만날 수 있겠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는 예기치 않게 임합니다.
또한 이처럼 중요한 변화
곧, 한 장소의 의미 변화와, 한 인물의 삶의 변화가,
다른 때도 아닌, 야곱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야곱 자신이 자신의 운명을 조절할 능력을 상실한 바로 그 순간에,
발생하였다는 것이 우리가 괄목할 만한 국면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자랑하지 말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주를 섬기기 때문에.. 어떤 경우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임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회개하고, 사모하며 기다리는..
그런 노력이 전혀 필요 없다는 뜻입니까? ..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본문처럼 '예기치 않게' 임합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깨어있는 사람이.. 그것을 알아차립니다.
기도하고 깨어있지 않으면.. '우연이려니..' 하고 못 알아차립니다.
이런 상상도 해 봅니다. (상상입니다.)
만약 야곱이 영적 상태가 나태하고 해이한 상태에 있었다면,
그런 꿈을 꾸고 나서도,
그 다음 날 아침에 '단을 쌓거나 서원기도' 같은 것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들판에서 자니까, 별 꿈도 다 꾸네!' 하면서 계속 자기 길을 갔을 수도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약속의 말씀을 받습니다.
본문의 핵심은 창28:13~15절에 나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야곱은 에서의 살의(殺意)로부터 제 목숨을 건지려고 이 들판으로 도망 나왔습니다.
아무런 약속도 없이, 아무런 보장도 없이 이 벌판으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약속을 듣습니다.
보통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이 없습니다.
성경 말씀이 자기에게 그저 '일반적인 말씀'일 뿐입니다.
특별한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경 말씀들 중에, 자기가 특별히 개인적으로, 일생에 붙잡고 살아갈
그런 말씀을 받습니다.
야곱도 그 특별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특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창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4. 여기서 특기할 것은, 조상이 받았던 약속을 이어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꼭 자기가 하나님께 직접 약속을 받을 뿐 아니라,
자기 할아버지, 아버지 등 조상의 약속을 이어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다음 3가지의 명령을 주셨습니다.
왕상19:15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②
또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③
그런데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한 것②은,
엘리야가 아니라, 엘리사 대에 이루어졌습니다. 왕하9:1~3
아브라함-이삭-야곱은 말할 것도 없고,
여호수아도, 모세의 꿈을 이루어.. 가나안에 입성했습니다.
솔로몬도, 아버지 다윗의 꿈을 이루어.. 성전을 지었습니다.
12제자들도, 예수님의 소원대로,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물려받은, 조상의 꿈은 무엇인가요? 나는 그런 것이 있습니까?
예, 일반적으로 우리는 '대위임령'을 예수님으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세대, 우리 조상 세대가 못 다 이룬 그 꿈을, 그 비전을,
이어 받아서, 승계해서 펼치는.. 그런 역사가 나타나야 하겠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받은 꿈과 비전은, 창28:13~15
다름 아닌, 아브라함과 이삭이 받았던 꿈과 비전의 승계였습니다.
그것을 모세도 이어 받았습니다.
11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겠다고
너희에게 허락(약속)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 약속은, 그들 조상(아브라함)적부터 4백년 이상 이어오던 약속이었습니다.
................................... 더 읽으실 분 ...............................
▲야곱이 받은 약속의 내용 / 창28:13~15
①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땅에 있는 야곱과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늘이 땅과 함께 있으려고 땅으로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성서적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진수입니다.
②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께서,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사람의 생명을 보장하시는 것입니다.
가인 이야기(창4:9)에서, 가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하면서,
"형제를 지키는 자"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 본문에 나오는, 형제를 피하여 도망가는 도망자 야곱은
하나님이 자청하여 "지켜주는 자"가 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③셋째 약속은 "귀향"의 약속입니다.
오늘날처럼 이동이 잦은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상처와 치유를 함께 주는, 정서적으로 예민한 개념입니다.
특히 형제지간의 불화와 반목으로 도망자가 되어서
고향을 떠나온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눈물겨운 낱말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의 응답이 나옵니다.
약속은 꿈속에서 받지만, 야곱의 응답은 잠에서 깨어난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부분은 각자 연구해 봅시다. ▣ 임재, 동행, 교제, 친밀함
'분류 없음 > 2004~2005'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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