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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터인가, 관광지인가? 2853

LNCK 2011. 1. 29. 20:21

◈사냥터인가, 관광지인가?         요6:27~29           08.10.17.설교스크랩



◑내 배가 불러야, 주위 사람을 안 괴롭힌다.


▶사냥터 인생, 관광지 인생

한 가지 여쭤 봅니다.

'여러분은 사냥터를 사시다 오셨습니까 아니면 관광지를 사시다 오셨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삶을 살아가되.. 사냥터를 살든지, 관광지를 살든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배가 부른 사람은(예수님으로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관광지를 삽니다.

자기 배가 고픈 사람은(예수님으로 만족 못하는 사람).. 사냥터를 삽니다.

 

여러분, 가끔 동물의 왕국 같은 것을 보면 그런 사진들 종종 대할 수가 있습니다.

잔뜩 먹이를 먹고 배가 부른 사자가, 배를 땅에다 깔고,

초식동물들이 자기 가까이에 와도, 물끄러미 껌뻑거리며 바라보기만 합니다.

자기 배가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굶주린 사자는 어떡합니까. 너무너무 조심스러울 정도로 소리없이 다가가서

그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며 그 동물들을 잡아먹는 사냥을 하게 됩니다.

먹잇감을 잡아먹는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 삶을 사냥터로 사느냐.. 관광지로 사느냐 하는 것을 알려면

내가 배부른 상태로 사는가.. 아니면 굶주려 배고픈 상태로 사는가 살펴보면

내가 관광지로 살았는지, 사냥터로 살았는지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 삶의 이중적인 모습입니다.

내 마음의 배가 고프면.. 내 주위사람 모두를 다 잡아먹는 먹잇감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진정 개인적/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면.. 평생 배고픈 인생으로 삽니다.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 치신 자니라.


본문에서 예수님을 '양식'으로 표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진정 만난 사람은.. 그 양식을 먹고서, 배부른 인생으로 삽니다.


이어지는 구절은, 그렇게 예수로 '배부른 사람'은

하나님의 일도.. 그렇게 '자기만족'을 위하여, 목숨 걸면서 달려들지는 않습니다...


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우리는 흔히 자식을 사랑한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 나를 돌아보면 내 마음의 고픈 배, 만족함이 없는 배,

성취감이 없는 배.. 그 굶주린 내 배를 채우기 위해서

내 자식을 괴롭히고 있는 거 아닙니까?


왜 남편에게 닦달을 합니까? 내 고픈 배를 채우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진정으로 남편을 사랑하십니까? 자식을 사랑하십니까? 아내를 사랑하세요?

교회를 사랑하세요?


아니요. 혹시 내 주린 배를 채우려고 교회에 가는 거 아닙니까?

뭔가 내 인생에 만족함이 없어서..

심지어는 교회에 가서까지, 그 만족함을 채우려고 교회 가시는 것은 아닙니까?

(직분자 투표해서 떨어졌을 때, 상처받는 사람은.. 이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직장생활 왜 하십니까? 혹시 배고파서 하시지 않습니까?

직장생활을 통해서.. 승진해서.. 번듯한 직장 갖고서,

내가 사회에서, 친척들, 동창들로부터.. 마땅한 존경과 인정을 받고 싶어서..

때로는 연봉을 부풀려서 말하기도 하고, 비싼 차도 몰고 다니지 않습니까..


물론 직장생활 열심히 해야죠.

그러나 평생 굶주림 가운데, 직장을 사냥터처럼 다닌다면.. 얼마나 불행입니까?

문제는 자기만 괴로울 뿐 아니라, 자기 주변사람도 늘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입니다.)

 


◑참된 신앙은 '보는 것'


여러분, 아세요? 기독교를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뭐 봉사하라, 충성하라, 선교하라,

희생하라, 사랑하라.. 주문도 많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뭐 같아요? 보는 겁니다.

기독교는 간단하게 말해서 보는 겁니다.

이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치지 못했다면

엄밀하게 얘기해서, 우리가 아직 구도의 길을, 배나 더 열심히 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마6:26),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마6:28).


모세가 말씀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


성경은 전체적으로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것을 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활동이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내 가정에서, 내 직장에서,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숙한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은 보는 사람들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고, 들의 백합화를 보듯이

그리고 하나님이 홍해바다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시는

그 구원의 역사를 보는 것입니다.


보는 자들입니다. 뛰는 자들이 아니고, 활동하는 자들이 아니고,

충성하는 자들이 되기 이전에.. '보는 자'들이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런데 볼거리들이 없어요. 왜 볼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내가 배고파서 그렇습니다. 배고픈데 정신이 팔려서..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내 눈에 음식밖에 안 보입니다.

마치 금식하는 사람이, 하루 종일 먹을 것만 생각하듯이 말입니다.


자식을 바라봅니다. 그럼 자식의 뭘 봐야 됩니까?

자식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보여야 합니다.

금강산을 보는 그 1만2천봉의 그 기기묘묘한 봉우리들을 보며 감탄하듯이

자식을 보면서, 내 아내를 보면서.. 금강산을 봐야 됩니다.

그런데 자식, 아내 속에서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금강산이 보이질 않습니다.


직장에서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금강산이 환히 보여야 됩니다.

그런데 금강산이 보이질 않습니다.


왜 하나님의 활동이 안 보이겠습니까? 배고파서 그래요.

그래서 금강산도 식후경이에요.


요나단이 블레셋과 싸움을 할 때, 사울 왕이 금식령을 내렸습니다.

싸움을 해야 될 사람들에게 금식령을 내리는 게 웬일인지 모르겠어요.

곡간 안에 비축했던 모든 곡식을 꺼내야 되는데 금식을 명령을 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요나단이 싸우다가 현기증이 날 정도가 되었어요.

그래서 들판에서 꿀을 발견했는데 지팡이에 꿀을 찍어서 입에 댔더니

삼상14장에, '눈이 뜨였다(밝아졌다)'고 얘기합니다. 눈이 보인다고 얘기합니다.


왜 하나님 구경을 못하는지 아십니까?

왜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 여러분의 직장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지 아십니까?

내 배가 고프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6:27절 말씀처럼,

(요나단이 꿀을 먹고 눈이 밝아졌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먹고, 생명의 떡을 먹고서.. 눈이 밝아져야 합니다.

그제야 아내가, 아들이.. 제대로 보입니다. (관광하듯이 보이게 됩니다.)

 

배가 고픈 자들의 특징은 뭐냐?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배고픈 사람이 금강산 올라가면

금강산 구경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뛰어노는 토끼가 먹이로 밖에 보일 수가 없어요.


직장에서 보이는 일들이, 제대로 보여야 합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마6:26),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마6:28).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

이렇게 염려 없이, 직장 일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먹지 못하여 배고픈 사람은,

주린 자기 배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만족함이 없기 때문에...

괜히 직장에서 오버하고, 스스로 괴로워하고.. 그럽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먹고 사는 밥줄'로만 여긴다면.. 그거 얼마나 하루하루가 괴롭겠습니까!

나는 밥줄로 다니지 않고, 사명자로 다닌다고 생각하고.. 편안히 다녀야 하겠습니다.

예수로 배부른 사람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썩는 양식


본문에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


▶'썩는 양식'이 뭐겠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여러분. 엄마들이 많이 있지요.

대학입시를 잘 치러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여자 집사님들이 여러 교우들을 모아서 한 턱을 내신 거예요.

저도 끼었지요. 근데 한 달 정도 지났어요.

또 다른 걱정거리들을 잔뜩 머리에 이고 다니십니다.

아들이 대학 들어간 그 기쁨은 한 달도 못가는 겁니다.


그게 바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썩을 양식'이라는 겁니다.


입사의 기쁨이, 승진의 기쁨이 얼마나 지탱이 됩니까?

결혼의 기쁨이, 소원성취의 기쁨이 얼마나 지탱됩니까?

썩는 양식입니다... 음식 썩는 것 보세요.. 금방 썩어버립니다. 냄새납니다.


▶최근에 (2008년 상황) 탈렌트 최진O 씨가 안타깝게도 자살을 했습니다.

참 그분께 아무 것도 도와드린 것이 없어서 죄송하고, 위로를 표합니다.


그런데 방송인에게 들은 얘긴데, 최근 방송가가 침울한 분위기라 그래요.

최진O 씨가 돌아가시고 나서.

연속극 촬영장에 다들 너무 기분들이 가라앉아서, NG가 많이 난다고 그러대요.


최진O씨 하고 마릴린 먼로하고 비교해 보았습니다.

비슷한 데가 있어요.

마릴린 먼로가 36살에 자살을 하는데, 그 첫째 남편이 야구선수였어요.

뉴욕 양키스에 디마지오라고 하는 전설적인 야구선수였어요.

최진O씨 남편도 야구선수였잖아요.


마릴린 먼로가 전 세계 남자들의 마음을, 막말로 그냥 후려 버렸습니다.

마릴린 먼로가 나와서 조금 흔들어대면, 남자들의 마음이 전부 뒤숭숭해버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돈이 하루에 몇 백만 불씩 들어왔다고 그래요. 그리고 36살에 자살합니다.


그 인기, 그 지명도, 그 명성, 그 물질.. 다 '썩는 양식'이었지요..

결코 그 분들을 지켜줄 수 없었습니다. 생명을 공급해 주질 못했습니다.


▶다 부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

물질의 사명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그에게 물질을 특별히 많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그 사람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그건 그 분의 사명입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서, 그 분은 계산할 것이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물질의 사명 말고도, 다른 사명도 많잖아요?

혹시 내게 물질의 사명이 없으면, 다른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받은 소중한 사명을 다 팽개치고, 내버리고..

'물질'만 많이 벌려고 발버둥 치다가는.. 그게 '썩는 양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에 보면, 특별히 레위인들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지 않고, '하나님'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레위는 그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 신10:9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레위인의 사명을 받은 사람이, 땅이나 물질을 기업으로 받으려 하다가는,

'하나님의 기업'을 못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레위인의 사명을 받은 사람이,

땅이나 물질을 기업으로 못 받으면,

'내게는 하나님의 기업을 많이 주시려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레위인 사명을 받은 자가

하나님과 땅.. 둘 다 받으려하다가..

어중간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의 양식'을 어떻게 먹습니까?


주님을 먹어 배불러야.. 자식을 대할 때, 자식으로 채우려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자식을 닦달을 해서 일류대학에 들여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지게 됩니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 다 거짓말이지요. 일류대학 들어가면 누가 제일 좋습니까?

엄마가 제일 좋고 아빠가 제일 좋아요. 다 자기 배를 채우려고 합니다.

일류대학 들어가는 것은 좋지만, 부모의 야망만큼은 배제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님을 제대로 먹고 나면

아이에게 바라는 게 없어진다는 겁니다.

남편에게 바라는 게 없어진다는 거예요.

이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는 것이에요.


아직도 뭔가 자식을 통해 채우려는 게 있고,

남편에게 불만이 있고 아내에게 불만이 있다면

그러면 내 배가 채워지지 않은 것이고

내 배가 채워지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먹습니까?

너무 간단해요.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신 죽음을 내가 날마다 묵상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도 '예수와 함께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갈2:20, 엡2:5~6


여러분, 이것 못 믿으시면, 나중에 부활, 영생 못합니다.

지금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은.. 교묘히 안 죽고, 빠져나가고,

나중에 예수와 함께 부활 할 때만.. 내가 같이 참여하겠다는 것.. 그거 안 됩니다.


내 욕심, 내 배고픔, 내 열망이 생길 때.. 내가 죽었다고 여기세요!

그게 제일 쉽게 가는(죽는) 길이고요.


이게 자발적으로 안 되는 사람은,

예수님이 이제 강제적으로 그를 죽이십니다. 연단이라 그러죠.

그래서 강제적으로 자기 자아가 죽게 하십니다.


자발적으로 죽든지, 연단 받아 죽든지..

자기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자아가 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완전히 망한 것 같은데.. ('연단' 받아 죽는 사람은 진짜 망할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거기서 배부름을 얻게 됩니다. 만족을 얻게 됩니다.


▶실제 사례를 보시면,

집을 나가서 말썽 피우고, 친구 집에 있다가 3일 만에 들어온 딸 앞에서

그 딸 앞에서 

“주님, 내가 2천 년 전에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자, 이렇게 죽은 자가

가출 3일 만에 들어온 딸 앞에서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이 뭐겠습니까?

없어요. 없다는 거예요.


남편이 부도가 나서 회사가 망하려고 합니다.

그 망하는 현실 앞에서, 주님의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다고 현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맞습니다. 현실은 똑같아요.

그런데 내 마음이 변합니다.

내 마음에 이유 없는 기쁨이 생깁니다. 이유 없는 감사가 생기는 거예요.


서두에 '신앙은 보는 것'이라 그랬죠?

그 절망의 상황에서, 예전에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주님이 도와주실 것이다.'

'앞은 완전 홍해지만, 어딘가 길이 열릴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손'이 보이길 시작하는 겁니다. 마음에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너희가 잠잠하여 내가 너희를 구원하는 것을 보라!” 하는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어느 집 아이가, 지적 성장이 좀 느리게 나타납니다. 

(빠른 아이도 있고, 느린 아이도 있지요..)

그런데 그 아이를 보고 할머니도 난리에요.

'애가 이렇게 늦어가지고 어떡해하느냐?'


그러나 안달하며 아이를 교육하기 전에

내가 먼저 주님의 십자가 바라보며

'내가 2천 년 전에 주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라는 고백의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안달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전에 보이지 않던, 주님의 뜻과 계획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능적 기능이 있기 때문에, 수리나 언어적 기능이 느리기도 하고요..

자녀를 위해서 남들보다 배나 더 기도하게 되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뜻이 있다니까요... 그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안심합니다.


그리고 자녀도.. 하나님께 다 맡겼으니까, 큰 염려는 하지 않습니다.

부모 목숨과 장래만 맡긴 것이 아니잖아요.


▶직장에서 상사에게 야단 맞을 때,

‘내가 뭘 잘못했어?’ 이렇게 대들지 말고

돌아가서 아무 얘기도 하지 말고, 그 상사를 판단하지도 말고

“주님, 주님 죽으실 때 내가 죽었는데..” 하는 고백의 기도를 드리다보면

하늘이 내려오고 하나님으로 배불러지고 갑자기 여유가 생겨요.


그리고 문에서 딱 나오면 직장상사가 볼 때, 그 얼굴에 빛이 날겁니다.

“쟤, 왜 저래? 야단맞고 얼굴에 웃음을 머금었어? 빈정대는 거냐? 너, 이리와 봐.”

한 번 더 야단맞아요.


그러면서도 또 기쁘게 밥을 먹어요. 그리고 또 웃는 거에요.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삽니다.


그러면 직장상사가 속으로 두려워합니다.

'저 친구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봐..'


믿는 구석이 있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윗선에 큰 빽이 있는 줄로 압니다...              ▣ 복음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