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1

복음은 하나님의 의와 심판으로 시작 2872

LNCK 2011. 2. 14. 15:33

 

◈복음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시작       롬1:17~18                     11.01.09.설교녹취



◑1. 복음은.. 전하지 않고 견딜 수 없이 기쁜 것


▲오늘날의 복음인 TV연속극

복음이란.. 원래 ‘승전의 기쁜 소식’인데, 그래서 뉴스(소식)란 단어와 연관되는 말이다.

전장에서 전령이 뛰어와서, 승전보(뉴스)를 알렸던 것이.. ‘복음’ 유앙겔리온 이란 말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복음의 기쁜 뉴스를 알리지 않고,

다른 기쁜 뉴스들을 자꾸 알리는데..

‘복음’이.. 정말 우리 속에 정말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하는데..

요즘 저는 다른 ‘기쁜 소식’들을 전해 듣는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목사님, 요즘 그 미니 시리즈 보고 있으세요? 시청률이 1위 라던데요?’

요즘은 이게 뉴스(기쁜 소식)이다.

성도들이 복음의 기쁜 소식보다, 연속극의 기쁜 소식을 전도하고 있음을 본다.


그 미니시리즈를 본 성도님은,

그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것이다. 너무 재미있으니까! 

그 연속극이 그분의 복음(기쁜 소식)이다.


그런데 우리 역시도, 요즘의 복음(연속극)에 쉽게 ‘전도가 되고’ 있는데...

‘아, 그 연속극이 정말 그렇게 재미있습니까? 줄거리가 어떻게 되는데요?’


그래서 며칠 지나서 보면,

우리 아이들이 그 미니시리즈를 구해 와서,

집 거실에서 보고 있는 것을 본다. 완전히 전도가 된 것이다.  ※미국 상황임


TV연속극 보는 것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은 자기에게 기쁜 무엇을, 반드시 전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화나 연속극을 재미있게 본 사람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그것을 반드시 자기 입으로 전하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 우리가 복음의 뉴스를 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 뉴스가 나에게 별로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요..

그렇다면 우리는, 내가 믿는 복음을 재점검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정말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한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만난 다음에 평생 이 ‘뉴스’를 방송했다.

혹시 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예배’만 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복음이란 말은, 하나님께 예배해라는 말이 아니라,

안 믿는 세상에 전하라는 것이다.


▲복음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다.

마1장에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그 부모에게 천사가 말하기를

‘아들을 낳은 터인데, 그 이름을 예수(구원자)라 하라.

왜냐하면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니라.’ 마1:21


그 당시는 로마제국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에서 일제식민지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살았다.


당시 갈릴리는 로마제국의 최전방이었다.

그래서 자주 그 최전방의 로마군단장이, 나중에 로마의 차기 황제가 되곤 했다.

그런데 유대는, 그 전방의 로마 주둔군을 모두 먹여 살려야 했었다.

그러니 일제 식민지보다 더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큰 문제는 ‘경제’였다.

당시 이스라엘에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것은, 항상 그 시발점이 ‘세금 문제’였다.

세금 문제로 폭동이 일어난 것이, 점차 독립운동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들의 어려움은 경제문제 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셔서, 자신을 ‘구원자’라고 하시는데,

그들을 경제문제에서 구원하지 않고, 현실문제에서 구원한다고 하지 않고,

그들 각자의 죄에서 건져주신다고 하셨다.

애당초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벌써 그런 예언이 있었다. 마1:21↑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오늘날 복음이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를 집중 다루고 있다.

잘 먹고 잘 사는 길이.. 복음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복음이 타락하고, 변질하게 된 원인이

20세기에 주로 일어났는데,

그 원인은 아래에 있다고 본다. ↓



◑2.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고 같으니라.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  롬1:17

오늘날의 복음이 변질되기 쉬운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만 전하기 때문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은 사랑’이 분명히 포함되지만,

그 사랑보다 먼저 ‘의’가 전제되어 있다. ↑

첫 단추를 ‘의’로 끼워야지, ‘사랑’으로 끼우면.. 나머지는 모두 잘못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먼저 전한다.

롬1:16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고 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는 게 아니라.. 


그 ‘하나님의 ’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은 죽어서 영원히 멸망해야 마땅한 존재인데,

거기서 구원함을 받았으니.. 복음에 ‘하나님의 사랑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그 ‘하나님의 의’ 때문에,

복음을 듣는 죄인들은..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 안 그러면 영원히 죽으니까!

복음은 그래서 먼저 회개로 인도한다.


그런데 현대의 복음은, ‘하나님의 ’를 무시하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식으로.. 사랑만 강조하다 보니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원하지만,

그 원하는 하나님의 사랑도 자기에게 채워지지 않는다.

복음의 의를 통해 진정 회개함을 경험하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그에게 부어지지 않는 것이다.


진정 회개하지 않는 영혼에게,

하나님이 그 사랑을 부어주실 리 없다.


▲복음의 모형을 설명하는 출애굽 역사를 보면

바로 왕의 압제 밑에서, 로마 제국의 식민지 시대처럼, 바로 왕의 압제가 대단했다.

그래서 히브리 백성들은 사는 것이 힘들어서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려고 구원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그 구원 역사는, 세상에 10가지 재앙으로 나타났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하나님의 가 나타나..

먼저 재앙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시더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신다.

만약 히브리인 이더라도, 문설주에 피를 바르지 않았더라면, 심판 받았을 것이다.


▲세상 마지막에도 인류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 (라고 예언되어 있다.)

그것은 구원의 서막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그 ‘인류적 재앙’이 영원한 구원의 시작이 된다.


물론 안 믿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되지만..

이렇게 심판구원은 둘이 붙어서 다닌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 역사가 먼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사랑'만 강조하고 있으니.. 이게 20세기부터 왜곡된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무슨 어려움에 처해 있든지,

그 어려움의 배경에는 죄와..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가 있다.

(물론 믿는 성도의 고난은, 그를 회개케 하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아예 갓 태어난 태아가 무슨 불치병에 걸리는 수가 있는데,

그것도 죄 때문이다. 인간은 날 때부터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의로우신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게 되어 있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이 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그 형벌을 대신 당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그 죄에서 놓임 받게 하셨다.


마치 출애굽 때, 어린양의 피를 문지방에 바른 가정은, 사망에서 구원을 받았듯이

오늘날 어린 양의 피를, 자기 영혼에 바른 사람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에서 면제된다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와 심판에서 출발한다는 내용을.. 설명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기도 하신다.

여러분, 우리 속에 복음이 있는가?

주님은 우리 속에 복음이 없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세상에 고통을 주신다.

교회에 시험이 있다.

가정에 불행이 있을 수 있다.

 

그 모든 것은 바로 왕이 주는 재앙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일깨우심이다.

하나님의 의를 깨닫고, 회개하라고!


이 복음에는 사랑이 먼저가 아니다.

아버지가 판사라도, 치명적인 범죄를 지은 아들은,

아버지로 만나지 않고, 법정에서 판사로 만나게 되어 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

출애굽하는 어린양의 피에는,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그 가엾은 양을 죽이고, 그 피를 칠해야 했다.


여러분, 우리는 양을 안 키우니까 이 정서가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러면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애완견을 내 대신 죽여서,

그 피를 문지방에 칠한다고 상상하면.. 약간 이해가 될 것이다.


양 자체가 원래 순하게 생겼는데,

더욱이 어린양은 정말 어린 아기처럼 아무 죄도 없고 순진하기만 하다.

그리고 어린 양을, 유대인들은 꼭 자식처럼, 애완동물처럼 키우기도 했다.

 

특별히 '어린 양'의 피인 것은,

어린 양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무죄한 동물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죽을 이유 없는 무죄한) 양이 죽는 것은,

내 죄를 대신해서 죽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3. 복음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 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롬1:18

 

여러분, 복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노’이다. ↑


그런데 현대교회는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진노’로 시작하는 복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하도록 바꾸어 버렸다.


17세기 청교도 시대

18세기 조나단 에드워즈 영적 대각성.. 이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20세기에 들어와서 몇몇 신앙운동들을 통해서

‘복음은..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렇게 복음을 시작한 것이,

본의 아니게, 복음이 완전히 왜곡되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본다.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심판과

그에 따르는 회개의 필요성을 거의 무시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현대 교회에는, ‘회개 안 한 교인’들로 넘쳐나고 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넘쳐나고 있다.

 

      그 결과, 복음을 듣고 믿어도.. 별로 감격이 없다. 시큰둥하다.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과 진노에서 구원 받아야.. 이게 감격이 되는데,

      무작정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가 구원 받았으니.. 이게 연속극이 주는 기쁨만도 못할 수도 있다.

 

 

▲복음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각성을 깨닫는 것

여러분, 복음이 회복되어야 한다. 세상에 나가서 전도하기 전에,

우리 속에 복음이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요, 복음이다. 롬1:18


그래서 복음이란.. 어쩌면 기쁜 소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심판)이고, 하나님의 진노이니까!


그런데 복음이 기쁜 소식이 맞는 이유는,

그 심판과 진노의 위험성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우산 아래로 피할 수 있으니까..

복음이 구원 얻는 의인들에게는 ‘기쁜 소식’인 것이다.


롬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사도바울은 깨달았다. 자연인도 하나님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진노를 어느 정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이것을 일반은총 이라고 말한다.

자연을 통해, 양심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래서 전도 하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정말 영혼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의/하나님의 진노를 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이다.  롬1:18


여러분, 만약 우리가 사는 집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의 옆 동네인데,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두 성읍이 모두 다 몰살당하고 말았다.

거기에는 어린아이들도 있는데, 모두 유황불의 심판받아 불타서 죽고 말았다.


그러면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일성一聲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도다!’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해도 너무하시네!’ 하실 것인가?


물론 ‘해도 너무하시네!’ 하다가도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도다!’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순진한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어도

우리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도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복음은 사실 듣기에 괴로운 소식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전해야 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진실을 말해 준다.

‘하나님은 사랑이셔요!’ 하면서 진리를 달콤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했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했더니.. 다 순교했다.


여러분도 복음을 그대로 전하면.. 그래서 핍박 당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탄이 살아서 역사하기 때문에, 반드시 반대하고 훼방한다.


그래서 전도하고, 선교하고, 하나님 말씀을 똑바로 전하는 것을

‘영적 전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공중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전쟁! 엡6:12


▲워낙 하나님의 사랑에 익숙하고, 하나님의 사랑에만 중독되신 여러분!

당분간 금단 현상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진노

이런 것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시기 바란다.

우리의 영생과,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이다.


그래서 복음이 회복된 나는,

그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치는 말

복음은 너무나 기쁜 소식이다.

복음이 돈을 잘 벌고 축복받아 성공하게 해 주어서.. 기쁜 소식이 아니다.

복음은 돈을 못 벌어도 괜찮은 것이 복음이다.


왜 괜찮은가 하면,

그 돈 벌고, 성공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을

복음이 내게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고, 롬1:17

하나님의 진노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롬1:18


그래서 내 영혼에게 닥친, 하나님의 심판의 긴급성을 깨닫고,

어린양의 피에 의지하여, 그 영원한 저주를 없애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기쁜 소식이 되었다.

그 기쁜 소식은, 사실은 슬픈 소식에서 출발하는 기쁜 소식이다.


여러분, 우리가 지은 죄에서 용서함을 받고, 씻음을 받는다면,

이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이기지 못할 어려움은 없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지 못하면.. 견딜 수 없게 된다.


지금도 핍박받는 지역에서, 아프간, 이란, 북한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죽음의 위협이 시작될지라도, 복음이 너무 좋은 것이다.


그리고 혼자만 조용히 알고 있으면 괜찮은데,

모여서 예배하고, 남에게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하다가

붙잡혀서 핍박당한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이 있으면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말이다.


여러분, 이 시간 억지로 복음을 전하러 다니자.. 그게 아니다.

정말 내 속에 복음이 있으면.. 견딜 수 없게 된다.


마치 연속극이 재미있다는 전도를 받은 사람이,

그것을 한국마트에 가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서 보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우리가 복음의 소식을 받으면,

그것을 믿고,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없는 마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설교준비를, 다른 일 다 처리하고,

       다른 중요한 일 다 치르고,

       저녁 늦게 늦게 안 할 수 없어서 억지로 한다면.. 복음을 모르는 것이다.

 

       복음의 열정이 있는 사람은,

       말씀 연구를 아침 일찍부터 시작한다.

       다른 중요한 모든 일정보다,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 복음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