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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간 사건에 비춰진 그리스도의 십자가

LNCK 2011. 2. 17. 18:21

◈아간 사건에 비춰진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7:1~26          10.08.13.설교녹취

출처; 김성수 목사님 사사기강해 1강  45'~60'부분 녹취                       

 

*아래 해석은, 소위 말하는 '영해' (영적인 해석) 입니다.

영해는, 성경을 필요이상으로 너무 깊이 파고 들어간 것입니다.

들어보면 해석은 기가 막히게 맞습니다.

그러나  선을 넘어서 너무 깊이 파고 들어간 것 같습니다.

여러 정통 신학은 '영해'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영해'가 무엇인지 공부하는 차원에서, 이 블로그에 올려 놓도록 하겠습니다./편집자

 

 

◑왜 아이 성에서 패배한 것일까?

 

▲아간이 ‘바친 물건’에 손을 대었기 때문이다.

 

수7:1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7:1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이스라엘이 아이 성에서 대패한 것은, 바친 물건을 취했기 때문이다.

앞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여리고에서 취한 전리품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라는 명령을 하셨다. 수6:18

 

수6:18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그 바친 물건이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 진으로 바치는 것이 되어 화를 당하지 않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여기서 ‘바친 물건’ 혹은 ‘바칠 물건’   :11, :18

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헤렘’은 완전히 멸하기로 정해진 것

또는 완전히 바쳐지기로 정해진 것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완전히 바쳐진 또는 멸해져야 할 그 ‘바친 물건’이, 조금 남겨져서,

아간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조금 남겨져서..

 

하나님이 그 많은 금은 중에, 아간이 가진 조금이 더 탐나셔서 그런 것이 아니다.

왜 내 말 안 듣고 조금 남겼느냐는 것이다.

 

▲바친 물건 = 바치는 사람

 

그런데 12절에 보면, 하나님께 바쳐져서 진멸되어져야 할 그 물건

그 물건을 바치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시되어지는 것을 본다.

 

삿7:12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래서 신약에도, 물질을 드릴 때, 그것은 자신(의 몸)을 먼저 드리는 것을 의미했다. 고후8:5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고,

그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바칠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가 있었다.

의미는- 자신의 몸이고, 그 실체는- 헌물, 노획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바쳤던 것은,

그들이 노획했던 전리품 정도가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12

 

(이게 헌금의 원래 의미다. 물질을 바치기 이전에 자신을 헌신하여 바치는 것이다.)

 

그래서 아간이 ‘바친 물건’을 손 댄 것은,

‘바친 사람’이 실격된 것이다.

 

 

◑아간 사건 - 저주 받은 그리스도의 모형

 

(범죄자) 아간=그리스도는 아니지만,                *'범죄자 아간'은 선악과를 따 먹은 첫째 아담을 예표

아간 사건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형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죄인의 대표로 저주 받아 죽었다는 점에서...

 

▲그런데 아간 한 사람의 범죄로, 왜 이스라엘 전체가 아이 성에서 패하게 되었을까?

-아간이 예수님을 모형/예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설명을 들어봅시다.)

 

아간이 뽑히는 과정을 보면

수7:16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17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18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저주의 불에 타죽어야 할 자가 뽑혔는데, 하필 유다지파에서 뽑혔다.

아간 한 사람이 범죄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다.

왜 그런가?

 

'아간 사건'이,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모형/예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오늘날 우리 중에 '한 사람의 아간'을 정죄하고 치는 구절로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너 한 사람 때문에 온 회중이 망한다는 식으로.. 성경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본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 아담, 한 사람 아간이 범죄했는데,

그를 대표로 한 모든 집단을 모두 저주하시는 것이다.

아간이 범죄하여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 속에 떨어진 것과,

아담이 범죄하여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진노 속에 떨어진 것과 똑같은 이치다.

 

롬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한 사람 아간이 범죄해서, 모든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게 되었는데,

그 아간이 죽자 이스라엘이 저주에서 풀려났다.

 

물론 아간은, 자기 죄 때문에 죽었다.

이스라엘 중에서 뽑히고 뽑힌, 왜 그렇게 뽑히고 뽑힌 과정을 다 설명해 주느냐면,

아간이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뽑히고 뽑혀서 최고의 죄인’으로 결정되자.. 그가 돌에 맞아 죽는다.

그런데 그런 ‘최고의 죄인’이 죽었는데, 왜 이스라엘이 살아나게 되는가?

 

'아간 사건'이 예수를 모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유다지파 라는 점,

-그가 ‘뽑히고 뽑힌 자’(대표자)라는 점

-그의 범죄가 온 회중의 패배와, 그의 죽음이 온 회중의 승리를 가져온 점

 

비슷하게, 민수기에서 예수님은 ‘장대에 달린 놋뱀’으로 모형되었다.

예수님이 ‘뱀’(사탄)이다.. 는 아니고,

‘예수님이 뱀처럼 저주 받는 대상이 되었다..’ 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아간이 예수님은 아니지만,

      예수님처럼 '죄인의 대표자'로서 저주 받아(돌에 맞아) 죽었다는 점

 그 결과,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었다는 점에서.. '아간 사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셈이다.  

      ('아간'과 '아간 사건'의 구분 요)

 

아간이 죽어서, 온 회중이 살아났듯이,

아간처럼, 유다 지파인 예수님은

죄인 중에서 뽑히고 또 뽑히셔서,

만인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죄인 중의 괴수가 되셔서,

죄인 중에 괴수가 당하는 십자가 형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한 분의 죽으심을 통해, 온 회중의 승리를 가져오신 것이다.

 

(약간 다른 각도로 보면, 더 넓게 보면)

아간이 언약을 어기고 범죄하였다는 점에서.. 첫째 아담을 모형/예표하기도 하고,

아간이 죄인의 대표로 죽었다는 점에서.. 둘째 아담을 모형/예표하기도 한다.

 

어쨌든 (아간이 아니라) '아간 사건'은

첫째 아담이든지, 둘째 아담이든지 (둘 다 라고 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모형/예표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해석에 있어서, 혹시 다른 이견이 나오면 고치겠습니다. 일단 설교자 김성수 목사님 의 설교를제/편집자가 이해한 만큼 녹취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간은 돌무덤에 갇혔지만, 예수님은 돌무덤을 깨치고 살아나셨다.

아간이 돌에 맞아 죽었고, 돌무더기가 쌓여서 오늘날까지 남아있다고 했다. 수7:26

이 점이 아간과 예수님이 다른 점이다.

아간(사건)은 모형이고, 예표일 뿐이라서.. 죽는 것까지만 보여주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무덤(바위동굴무덤)에서

그 돌을 굴리시고, 다시 부활하여 살아나셨다.

 

이것이 아이성 사건이다. 십자가의 구원이다.

그게 아이성 전투, 아간 사건에 숨어있는 의미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드릴 헌금 떼먹으면 벌 받는다..’가 주제가 아니다.

(그런 의미가 소주제로 숨어 있을지라도, 전체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다.

 

▲오늘날까지 있더라

 

수7:25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26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이런 해석이 (아이 성 사건을 십자가 사건과 연결시키는 해석)

너무 오버한 것이 아닌가? .. 질문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해석이 맞다는 증거가 26절의 ‘오늘날까지 있더라’는 구절이다.

이 말씀은, 무슨 고고학적 증거(돌무덤)가 ‘오늘날까지 남아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것 아간의 돌무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아니야!’ 라는 뜻이다. 저는 그렇게 본다.

 

앞서 모세가 출애굽 했지만, 가나안에 못 들어갔고,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다 쫓아내지 못했듯이,

아간도.. 예수의 모형을 보여주었지만, 완벽하게 보여주진 못했다. 단지, 모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간의 모형이 모세나 여호수아와 약간 다른 점은,

아간은 ‘범죄자의 대표로 뽑혀서 죽었다’는 모형이다.

그래서 범죄자 아간이 뽑힌 것이다.

 

 

▲아간이 아골 골짜기에서 죽은 후에 이스라엘이 승리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영적 이스라엘이 마귀를 이기고 승리한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에 천국이 펼쳐져 있었다.

천국은 항상 무덤 문 너머에 있다.

 

아골 골짜기 너머에 소망이 존재하도록 만드셨다.

그러므로 이 아골 골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모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래 성경구절은,

아골 골짜기(죽음)를 지나면, 소망(천국)이 펼쳐질 것을 나타내는데,

 

호2;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사65:10 아골 골짜기는 소떼의 눕는 곳이 되어

왜 하필 그 저주의 아골 골짜기가, 소 떼가 눕는 천국 같은 곳이 되는가?

 

이런 구절들은 ‘여호수아서의 아간 이야기’가 ‘십자가의 모형’이 됨을 모르고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구절들이다.

왜 아골 골짜기가 갑자기 소망의 문이 되지?

-죽어야 살고, 예수가 대표로 죽어서, 죄로 죽은 인간에게 소망을 주시고,

소 떼가 눕는 천국 같은 곳으로 만들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간이 돌에 맞아 죽어 형성된 돌무덤이 위치한 아골 골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 십자가 이야기의 모형이었던 것이다.

 

 

▲정리하면..

하나님은 수7장 ‘아간 이야기’를 통하여,

죄의 실체와, 주1)

그 죄에 떨어지게 되는 하나님의 저주와,

그 저주가 해결되는 방법까지 아울러 설명하고 계신다.

 

그 아간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가?

아간이 죽고 아골 골짜기가 생기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승리를 주시는데, 완벽한 승리를 주신다.

 

그러나 그 승리는.. 여호수아(사람)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라는 것도 잊지 않으시고 설명하신다. (이 부분 http://blog.daum.net/yhbg67/6906610에 계속)

 

 

............................

 

 

 

주1) 아간에게서 나타나는 죄의 실체

 

수7: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움 외투 한 벌과 은 2백 세겔과

50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보고’(보다)의 히브리어 ‘라아’는

창3장의 ‘보암직도 하고’와 같은 단어이다.

 

선악과 사건이 여기서 다시 한 번 펼쳐지고 있다.

보암직도 하고, 탐스러워 그가 취한 것이다.

 

성경에서 종종 이스라엘의 범죄를, ‘아담의 범죄’라고 표현하신다.

그 아담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이야기였고,

또한 바로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호6: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그래서 아담이라는 이름 자체가 인간 이란 뜻이다. 우리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성경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저주받을 인간과

그를 은혜로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로만 점철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 아간이 누구인가? 아담이요, 나이다.

그래서 내가 아골 골짜기에서 불에 타죽어야 한다.

그래서 내 위에 아골 골짜기 쌓여야 한다.

 

그걸 여러분이 인생속에서 처절하게 확인하고 인정해야 한다.

내 위에 아골 골짜기 돌무더기 쌓여야 한다. 착한 척 하시지 마시고!

 

아담이 그러했듯이 아간 안에 들어있는 나도

아간처럼 그렇게 죽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아간처럼 저주를 받고 죽으신 것이다.

 

*출처; 김성수 목사님 사사기강해 1강  45‘~60’부분 녹취                            ▣ 십자가     

 

◈아간 사건에 비춰진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7:1~26          10.08.13.설교녹취

 

 

*아래 해석은, 제 편집자 가 공부하는 차원에서 올립니다.

 앞으로 더 정확한 해석을 배우게 되면, 언제든지 수정하겠습니다.

 

 

◑왜 아이 성에서 패배한 것일까?

 

▲아간이 ‘바친 물건’에 손을 대었기 때문이다.

 

수7:1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7:1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이스라엘이 아이 성에서 대패한 것은, 바친 물건을 취했기 때문이다.

앞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여리고에서 취한 전리품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라는 명령을 하셨다. 수6:18

 

수6:18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그 바친 물건이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 진으로 바치는 것이 되어 화를 당하지 않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여기서 ‘바친 물건’ 혹은 ‘바칠 물건’   :11, :18

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헤렘’은 완전히 멸하기로 정해진 것

또는 완전히 바쳐지기로 정해진 것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완전히 바쳐진 또는 멸해져야 할 그 ‘바친 물건’이, 조금 남겨져서,

아간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조금 남겨져서..

 

하나님이 그 많은 금은 중에, 아간이 가진 조금이 더 탐나셔서 그런 것이 아니다.

왜 내 말 안 듣고 조금 남겼느냐는 것이다.

 

▲바친 물건 = 바치는 사람

 

그런데 12절에 보면, 하나님께 바쳐져서 진멸되어져야 할 그 물건

그 물건을 바치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시되어지는 것을 본다.

 

삿7:12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래서 신약에도, 물질을 드릴 때, 그것은 자신(의 몸)을 먼저 드리는 것을 의미했다. 고후8:5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고,

그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바칠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가 있었다.

의미는- 자신의 몸이고, 그 실체는- 헌물, 노획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바쳤던 것은,

그들이 노획했던 전리품 정도가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12

 

(이게 헌금의 원래 의미다. 물질을 바치기 이전에 자신을 헌신하여 바치는 것이다.)

 

그래서 아간이 ‘바친 물건’을 손 댄 것은,

‘바친 사람’이 실격된 것이다.

 

 

◑아간 사건 - 저주 받은 그리스도의 모형

 

(범죄자) 아간=그리스도는 아니지만,                *'범죄자 아간'은 선악과를 따 먹은 첫째 아담을 예표

아간 사건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형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죄인의 대표로 저주 받아 죽었다는 점에서...

 

▲그런데 아간 한 사람의 범죄로, 왜 이스라엘 전체가 아이 성에서 패하게 되었을까?

-아간이 예수님을 모형/예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설명을 들어봅시다.)

 

아간이 뽑히는 과정을 보면

수7:16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17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18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저주의 불에 타죽어야 할 자가 뽑혔는데, 하필 유다지파에서 뽑혔다.

아간 한 사람이 범죄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다.

왜 그런가?

 

'아간 사건'이,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모형/예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오늘날 우리 중에 '한 사람의 아간'을 정죄하고 치는 구절로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너 한 사람 때문에 온 회중이 망한다는 식으로.. 성경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본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 아담, 한 사람 아간이 범죄했는데,

그를 대표로 한 모든 집단을 모두 저주하시는 것이다.

아간이 범죄하여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 속에 떨어진 것과,

아담이 범죄하여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진노 속에 떨어진 것과 똑같은 이치다.

 

롬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한 사람 아간이 범죄해서, 모든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게 되었는데,

그 아간이 죽자 이스라엘이 저주에서 풀려났다.

 

물론 아간은, 자기 죄 때문에 죽었다.

이스라엘 중에서 뽑히고 뽑힌, 왜 그렇게 뽑히고 뽑힌 과정을 다 설명해 주느냐면,

아간이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뽑히고 뽑혀서 최고의 죄인’으로 결정되자.. 그가 돌에 맞아 죽는다.

그런데 그런 ‘최고의 죄인’이 죽었는데, 왜 이스라엘이 살아나게 되는가?

 

'아간 사건'이 예수를 모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유다지파 라는 점,

-그가 ‘뽑히고 뽑힌 자’(대표자)라는 점

-그의 범죄가 온 회중의 패배와, 그의 죽음이 온 회중의 승리를 가져온 점

 

비슷하게, 민수기에서 예수님은 ‘장대에 달린 놋뱀’으로 모형되었다.

예수님이 ‘뱀’(사탄)이다.. 는 아니고,

‘예수님이 뱀처럼 저주 받는 대상이 되었다..’ 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아간이 예수님은 아니지만,

      예수님처럼 '죄인의 대표자'로서 저주 받아(돌에 맞아) 죽었다는 점

 그 결과,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었다는 점에서.. '아간 사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셈이다.  

      ('아간'과 '아간 사건'의 구분 요)

 

아간이 죽어서, 온 회중이 살아났듯이,

아간처럼, 유다 지파인 예수님은

죄인 중에서 뽑히고 또 뽑히셔서,

만인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죄인 중의 괴수가 되셔서,

죄인 중에 괴수가 당하는 십자가 형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한 분의 죽으심을 통해, 온 회중의 승리를 가져오신 것이다.

 

(약간 다른 각도로 보면, 더 넓게 보면)

아간이 언약을 어기고 범죄하였다는 점에서.. 첫째 아담을 모형/예표하기도 하고,

아간이 죄인의 대표로 죽었다는 점에서.. 둘째 아담을 모형/예표하기도 한다.

 

어쨌든 (아간이 아니라) '아간 사건'은

첫째 아담이든지, 둘째 아담이든지 (둘 다 라고 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모형/예표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해석에 있어서, 혹시 다른 이견이 나오면 고치겠습니다. 일단 설교자 김성수 목사님 의 설교를제/편집자가 이해한 만큼 녹취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간은 돌무덤에 갇혔지만, 예수님은 돌무덤을 깨치고 살아나셨다.

아간이 돌에 맞아 죽었고, 돌무더기가 쌓여서 오늘날까지 남아있다고 했다. 수7:26

이 점이 아간과 예수님이 다른 점이다.

아간(사건)은 모형이고, 예표일 뿐이라서.. 죽는 것까지만 보여주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무덤(바위동굴무덤)에서

그 돌을 굴리시고, 다시 부활하여 살아나셨다.

 

이것이 아이성 사건이다. 십자가의 구원이다.

그게 아이성 전투, 아간 사건에 숨어있는 의미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드릴 헌금 떼먹으면 벌 받는다..’가 주제가 아니다.

(그런 의미가 소주제로 숨어 있을지라도, 전체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다.

 

▲오늘날까지 있더라

 

수7:25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26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이런 해석이 (아이 성 사건을 십자가 사건과 연결시키는 해석)

너무 오버한 것이 아닌가? .. 질문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해석이 맞다는 증거가 26절의 ‘오늘날까지 있더라’는 구절이다.

이 말씀은, 무슨 고고학적 증거(돌무덤)가 ‘오늘날까지 남아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것 아간의 돌무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아니야!’ 라는 뜻이다. 저는 그렇게 본다.

 

앞서 모세가 출애굽 했지만, 가나안에 못 들어갔고,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다 쫓아내지 못했듯이,

아간도.. 예수의 모형을 보여주었지만, 완벽하게 보여주진 못했다. 단지, 모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간의 모형이 모세나 여호수아와 약간 다른 점은,

아간은 ‘범죄자의 대표로 뽑혀서 죽었다’는 모형이다.

그래서 범죄자 아간이 뽑힌 것이다.

 

 

▲아간이 아골 골짜기에서 죽은 후에 이스라엘이 승리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영적 이스라엘이 마귀를 이기고 승리한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에 천국이 펼쳐져 있었다.

천국은 항상 무덤 문 너머에 있다.

 

아골 골짜기 너머에 소망이 존재하도록 만드셨다.

그러므로 이 아골 골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모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래 성경구절은,

아골 골짜기(죽음)를 지나면, 소망(천국)이 펼쳐질 것을 나타내는데,

 

호2;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사65:10 아골 골짜기는 소떼의 눕는 곳이 되어

왜 하필 그 저주의 아골 골짜기가, 소 떼가 눕는 천국 같은 곳이 되는가?

 

이런 구절들은 ‘여호수아서의 아간 이야기’가 ‘십자가의 모형’이 됨을 모르고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구절들이다.

왜 아골 골짜기가 갑자기 소망의 문이 되지?

-죽어야 살고, 예수가 대표로 죽어서, 죄로 죽은 인간에게 소망을 주시고,

소 떼가 눕는 천국 같은 곳으로 만들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간이 돌에 맞아 죽어 형성된 돌무덤이 위치한 아골 골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 십자가 이야기의 모형이었던 것이다.

 

 

▲정리하면..

하나님은 수7장 ‘아간 이야기’를 통하여,

죄의 실체와, 주1)

그 죄에 떨어지게 되는 하나님의 저주와,

그 저주가 해결되는 방법까지 아울러 설명하고 계신다.

 

그 아간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가?

아간이 죽고 아골 골짜기가 생기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승리를 주시는데, 완벽한 승리를 주신다.

 

그러나 그 승리는.. 여호수아(사람)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라는 것도 잊지 않으시고 설명하신다. 

 

 

............................

 

 

 

주1) 아간에게서 나타나는 죄의 실체

 

수7: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움 외투 한 벌과 은 2백 세겔과

50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보고’(보다)의 히브리어 ‘라아’는

창3장의 ‘보암직도 하고’와 같은 단어이다.

 

선악과 사건이 여기서 다시 한 번 펼쳐지고 있다.

보암직도 하고, 탐스러워 그가 취한 것이다.

 

성경에서 종종 이스라엘의 범죄를, ‘아담의 범죄’라고 표현하신다.

그 아담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이야기였고,

또한 바로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호6: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그래서 아담이라는 이름 자체가 인간 이란 뜻이다. 우리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성경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저주받을 인간과

그를 은혜로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로만 점철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 아간이 누구인가? 아담이요, 나이다.

그래서 내가 아골 골짜기에서 불에 타죽어야 한다.

그래서 내 위에 아골 골짜기 쌓여야 한다.

 

그걸 여러분이 인생속에서 처절하게 확인하고 인정해야 한다.

내 위에 아골 골짜기 돌무더기 쌓여야 한다. 착한 척 하시지 마시고!

 

아담이 그러했듯이 아간 안에 들어있는 나도

아간처럼 그렇게 죽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아간처럼 저주를 받고 죽으신 것이다.

 

*출처; 김성수 목사 사사기강해 1강  45‘~60’부분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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