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스의 배와 십자가 이사야42:1~25 설교스크랩, 출처
◑도입, 인간은 갇혀서 살지 않고, 끊임없이 항해합니다.
▲아르고스의 배
이어령 박사님이 오래 전에 쓰신 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인류가 최초로 바다에 띄운 배가
바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스의 배>라는 것입니다.
인간에는 아가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다, 강물 속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처럼
자유롭게 물을 삶의 공간으로 생각하며 다닐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아르고스 배’ 이후에 끝없이 배를 만들어서
물고기가 강을 자유롭게 다니고 바다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처럼
자유롭게 물 위를 떠다니게 되었고
이제는 잠수함이 생겨서 물속에서도 머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인간은 날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땅에 살도록 운명 지어졌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러한 운명에 굴하지 않고 날개가 없는 인간이
비행기를 만듭니다.
그 이후로 인간은 날개는 없지만 새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사는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있는 피조물 중에서
인간처럼 바다와 하늘과 땅을 동시에 자기의 삶의 영역으로 삼고 있는
존재가 없다는 것이에요.
물고기에 비해서 인간은 다릅니다. 물고기는 바다에만 한정되어 있어요.
또 새는 하늘을 나는 것에 삶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늘과 바다와 땅을 동시에 산다는 것이에요...
계속해서 그 글은,
인간은 바다나 하늘뿐만 아니라,
이 땅과는 또 다른 세계, 즉 정신의 세계, 정신의 바다, 정신의 하늘을
날고 항해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산다는 얘기를 하십니다.
그 정신의 세계로 뛰어 들어가서 날 수 있고 항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인간의 언어다.. 라는 말씀을 하세요.
문인이시고 시인이시니까, 언어를 주제로 삼아 글을 쓰시면서 하신 얘기에요.
언어를 통해서 인간은 정신의 바다와 정신세계라고 하는 하늘을 날 수가 있다..
▲인간은.. 정신세계를 넘어서, 천국을 자유롭게 항해합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천국을 생각해 봅니다.
인간은..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실제로 천국도 항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신앙인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 바다를 항해하고, 하늘을 날고,
정신세계의 삶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로 실제로 천국을 들어가서 항해할 수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하시는 일
▲천국을 항해하려면.. 땅에서 이륙해야 합니다.
여러분, 바다를 항해하려면 땅을 떠나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늘을 비행하려 해도 이륙을 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을 여행하고 천국을 살려면.. 이 세상을 이륙해야 됩니다.
이게 바로 기독교가 말하는 신앙의 핵심이에요.
쉽게 말하면 지금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현실적 과제를 갖고 살지 않습니까?
직장을 가져서 수입이 있어야 되고,
자녀를 길러야 되고, 결혼을 해야 되고,
인간관계를 해야 되는 이런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게
기독교의 핵심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과제가 있는 이 세상을 떠나서
마치 하늘을 날기 위해서 땅을 이륙하듯이
이 세상의 삶의 현장을 마음이 떠나서 천국 안으로 들어가서
천국을 지금 살게 해 주는 것이... (그러나 현실의 영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맨 마지막에 나옵니다.)
바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이고,
기독교가 이 땅에 생겨난 이유이고,.
오늘 본문이 노래하고 있는 ‘여호와의 종’
그 분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기독교는 천국을 지금 여기서 사는 겁니다. 현재천국이라 말하죠.
그냥 이 땅에서 마음이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뜻이 아니라,
아예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이 세상을 떠나서 천국을 사는 것이 기독교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경쟁해서 이기고 탁월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만사형통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가 주는 여러분을 향한 복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이 세상을 이륙하고 천국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갇힌 상태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빛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특징적인 단어들이 반복해서 나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6절에 '이방의 빛'
빛이라는 말이 벌써 나올 때는 어둠이 전제로 되지 않습니까?
이 어둠이라는 말이 다른 형태로 계속 돼요. 어떤 형태로 계속 되느냐?
‘눈먼 자들’이라는 말이 7절, 16절, 18-20절 사이에도 계속해서 반복해 나옵니다.
‘흑암’ 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7, 16
‘옥’(감옥)이라는 말이 또 나와요. :7, 22
다 일맥상통하는 단어요,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하는 겁니다.
‘이방의 빛’이라는 말에서부터 흑암이 전제되어 있고
흑암이니까 소경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고
흑암에 갇혀 있다는 감옥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도대체 주님, ‘여호와의 종’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일은,
우리를 갇힌 자의 상태에서 이끌어내셔서
감방에서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 이게 무슨 뜻일까요?
▲사람은, 갇혀서 살 수 없는데, 실제로 갇혀서 삽니다.
예를 들어 참치가 바다에서 살고 있습니다.
생전 참치는 그물에 잡히기 전까지는 뭍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바다 속에서 태어나서 바다 속에서 살다가
바다에서 죽는 참치를 ‘바다에 갇혀 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원래가 참치는 바다에서 살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가미를 주시고, 부레를 주시고, 지느러미를 주셨어요.
그리고 원숭이가 바다 속에 뛰어 들어가지 못하고, 하늘을 날지 못한다고 해서
원숭이가 이 땅에 갇혀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원래 원숭이는 이 땅에서 살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성경은 우리 인간에게 ‘갇혀있다’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사42:7, :22
(이 말씀은, 갇힌 것이나, 어둠 속에서 눈 먼 것이나 .. 똑같다는 뜻입니다.)
이 갇혀 있는 자는.. 왕에서부터 하인에 이르기까지
남여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말입니다.
▲문명세계라도.. 갇혀 있습니다.
이방의 빛이라고 했어요. 사42:6
이방(만국)도 지금 캄캄함, 흑암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방이 누구죠?
중국도 이방입니다. 이집트도 이방이에요.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이방입니다.
왜 이들이 다, 문명의 발상지도 흑암에 갇혀 있다고 말하는 겁니까?
인간에게는 또 다른 세계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그러나 그 세계 말고도 또 다른 세계가 실제로 있는데
실지로 항해할 수 있는 곳이고, 갈 수 있는 곳이고, 살 수 있는 곳인데
그 세계에 대해서 눈이 멀어있고 귀가 닫혀있고
그 세계에 대해서 전혀 지각이 없는 상태로 살고 있는 거예요.
메시아가 오셔서 해 줄 수 있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눈먼 자를 뜨게 해서, 이 세상에서 천국의 시각을 찾아주는 일
이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은 부차적이고요)
▲메시아는, 갇혀 있는 사람에게 빛을 주십니다. (흑암에서 해방시키십니다.)
왜 병자를 고치십니까?
이 세상에서는 고칠 수 없는 이 세상의 모든 방법이 동원이 되어도
고칠 수 없는 병을 고치신 이유는
병을 낫게 해주시는 것에 주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과는 다른 세계(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침투되어 들어와 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주님께서 그러시잖아요. '내가 너희 앞에서 하나님의 손가락을 힘입어
권능을 행하면 천국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다.' 마12:28
하나님께서 개입되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세계가
즉 '천국'에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겁니다.
마치 인간이 아가미가 없어도 바다를 항해할 수 있고
날개가 없어도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땅에만 갇혀 있지 않고, 하늘과 바다를 삶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처럼
천국이라고 하는 삶의 영역을 허락해주시기 위해서
여호와의 종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셨다는 거예요.
◑'메시아가 오셔서 하시는 일'을 오해하지 맙시다.
▲따라서 기독교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다분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설교문의 주제
이 땅에서의 형통케 하는 것이 과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이 세상의 삶을 이륙해버리는 겁니다.
바다로 나가려면 땅을 떠나야 되는 것처럼
하늘을 날려면 땅을 이륙해야 되는 것처럼
이 세상의 삶에서 이륙해버리는 것이고, 이 세상의 삶에서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내 몸이 이 세상에 있으면서 내 몸이 직장에 있으면서
내 몸이 가정에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이 일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에요.
아르고스의 배가 인류 최초의 배로서, 땅 이외의 바다를 삶의 영역으로 확장해줍니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하늘을 인간에게 삶의 공간으로 덧붙여 줍니다.
그러면 십자가는 뭡니까?
이 세상을 이륙하게 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천국을 여기서 느끼게 해주는 겁니다.
바로 그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일이 초대교회 유무상통도 그 일례인 거예요.
천국으로 들어가지 않은 사람이 자기의 지갑을 열 수는 없습니다.
물론 기부donation 정도는 인지상정 안에서 가난한 자를 도와줄 수 있어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아예 돈에 대한 마음이 떠나버리는 것'은
천국으로 직접 들어가 보지 않고는 경험할 수 없습니다.
▲왜 풍랑 만난 배 위에서, 예수님은 잠을 주무실 수가 있었을까요?
풍랑 만난 배 위에 있었지마는 천국에 들어가 계셨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게 아닙니까?
어떻게 다윗은 사울 이하 모든 이스라엘 군대가 얼어붙어 있는 상태에서
목동의 신분으로 골리앗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까?
바로 천국을 느끼기 때문 아닙니까? 이렇게 달라져 버린다는 것이에요.
현실 세상에서 ‘천국’을 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이륙해서 천국에 들어가서 이 세상에 남아 있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예요.
이 신비함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지요.
*관련글 : 사실적 믿음, 현실적 믿음 (천국을 현실로 살아야 한다는 주제의 설교문, 강추)
▲일단 정리하면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의 여러분이 느끼고 있는 현재의 삶의 과제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 살게 해주는 것이 기독교고, (현재천국부터)
천국에 들어가 있는 자로서 이 세상을 살게 해주는 겁니다.
그럴려면, 바다의 항해를 위해 아르고스의 배를 타야 하듯이
천국의 항해를 위해서는 십자가의 배(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5절을 보면 우리가 이제까지 메시아가 이 땅에 임하셨을 때 이루어지게 될
메시아 왕국을 표현하고자 하는 그 표현과는 정반대의 표현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사42:15절 '내가 큰 산과 작은 산을 황무케 하며 그 초목을 마르게 하며
강들로 섬이 되게 하며 못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그 동안 보아왔던 메시아 구원에 대한 묘사는 어떻게 나타났었습니까?
사막에 시냇물이 흐르고, 광야에 못이 생기며, 메마른 땅에 화초가 피어나는
아름다운 땅 소나무와 잣나무가 자라는 곳으로, 비옥하게 변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위 말씀은 황폐하게 된다고 거꾸로 얘기합니다.
그들이 물을 얻을 수 있는 강이, 그냥 황폐한 땅덩어리로 변한다 이겁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우리가 이 땅에서 일들을 너무 우상처럼 섬기면,
이 세상의 삶에서 내 속에서 발생하는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산.. 돈일 수도 있어요. 아주 든든한 기업일 수도 있어요.
산처럼 견고한 기업일 수도 있지요.
강물.. 그것이 자식이든지
연못.. 그것이 인기이든지 아니면 형통이든지 무엇이든지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여호와가 오시면 오히려 다 마르게 해버린다는 겁니다.
왜 그래요? 이 세상에서의 이륙을 이 세상에서 마음이 떠나는 것을
재촉하신다는 겁니다. 택한 백성, 구원하실 자들은,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오시면 우리가 마음이 떠나지 못하고 있는 한
거꾸로 우리의 삶이 빈곤할/황폐할 수도 있어요.
계속 이 세상에 머물러서 이 세상 일에 묶여서
이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한
여호와 하나님의 종 메시아가 오셔서 하시는 일은
천국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오히려 내 욕심으로 이루고 싶은 모든 일들을.. 다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소경이다, 귀머거리다, 옥에 갇혀 있다, 흑암에 앉아있다' :7, ;16, ;19등
이 얘기를 계속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여러분, 지금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에요. 천국을 봐야 됩니다.
그리고 천국으로 들어가야 되고 천국의 그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우리의 과제라는 겁니다.
여러분,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가서 천국을 느끼기 이전에,
이 세상에서
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 많은 이 세상에서
내 마음이 끌어 당겨질 수 밖에 없는 많은 유혹거리들이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과제는.. 바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천국을 보고 듣고
그 곳에 들어가 사는 것이라는 거예요.
이게 바로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본 자에게 있어서 이 이후의 삶은
이 땅에 남아 있는 삶, 다 사명이에요.
사명이라는 거는 이웃 때문에 살려두고 계시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천국을 가진 자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이웃에게 주는 겁니다.
내가 천국을 갖고 있는 동안에
내 배우자와 자녀와 함께, 천국을 느끼고 배우고 천국을 깨닫게 해 준다는 거지요.
천국을 모르고 있는 한, 너는 지금 이 세상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라는 겁니다.
▲42:2, '그(여호와의 종 메시아)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정말 천국을 바라보고, 흑암의 감옥에서 탈출한 사람은,
조용 조용하게 삽니다. 크게 자신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길에는 발걸음 소리가 없습니다. -클릭-
42: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일까요?
적어도 '성공하고, 부자되고, 출세하게 만들어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메시아가 오신 원래 목적을 무시하고,
완전히 잘못된 목적으로 신앙생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오리엔테이션(방향설정)이, 완전히 엉뚱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톨릭은 주류가 그 방향성을 제대로 잡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일은
지금 내가 과제로 부여받고 있는 이 세상의 삶의 문제를
잘 해결하도록 해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르고스의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듯이,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비행하듯이
그렇게 십자가 사건을 이루신 이유는 십자가를 올라타고
천국으로 항해해 오라는 얘기입니다.
천국을 맛보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갇혀 있는 것이고
흑암에 있는 것이고
소경의 상태로 있는 거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땅에서 살 수 밖에 없은 인간이 아가미도 없으면서
아르고스의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듯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듯이
오늘도 십자가를 올라타세요. 십자가를 올라타는 시간을 가지세요.
그게 기도입니다.
십자가를 올라타고(내가 죽고) 이 세상을 이륙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죽는 거예요.
큰 산, 작은 산. 이게 나의 재산일수 있고 직장일 수 있지만
다 황폐하게 하듯이 :15
내 마음에서 그것들이 다 죽는 겁니다.
그럴 때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실 거예요.
천국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만나시면 성령의 감동을 통해
하나님 보좌에 앉아계신 그분을 느끼시고 실감하시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위해서 나를 이 땅으로 내려 보내실 거예요.
삶의 현장으로 다시 투입하실 겁니다. 그때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이끄시고 시키시는 일만 하면 되는 거지요...
(현실의 영성으로 살아야죠. 단 먼저 천국을 경험한 다음에 말입니다.)
..........................................
▲영적 재활훈련 (펀 글)
저희 선친께서 교통사고를 당해 한 석 달 정도 병원에 입원해 계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리가 부러지셔서 기브스를 하고 계셨습니다.
뼈가 다 붙은 후에도 오랫동안 재활훈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 재활훈련을 받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고 아프셨습니다.
오랫동안 기브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리가 굳어져서
그것을 펴기 위하여 재활운동을 해야 했는데
재활운동을 하는 것이, 교통사고로 뼈가 부러진 것 보다 더 아픈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프다고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고 편하기는 하지만
제대로 걸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영적으로 큰 사고를 당한 사람들과 같습니다.
오랫동안 세상과 죄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것을 버리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욕심을 따라 살던 사람이
범사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마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렵고 아픈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살려면, 잘 살려면, 행복하게 살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려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가 감사한 삶을 살려면
죽을 듯이 힘들고, 아프고, 어려워도.. 재활훈련을 받아야만 합니다.
운동을 해야만 합니다. 삶의 방향과 방식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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