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실감하면 담대해진다 삼상17:45, 행2:38~39 10.08.20.설교스크랩, 출처
◑하나님을 실감한 다윗
다윗이 성령에 감동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골리앗과의 대결 때입니다.
가장 두드러지고 인상 깊은 구절은 골리앗을 향해 나가면서
다윗이 용맹하게 큰 소리로 외쳤던 고백적인 말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17:45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질문을 할 게 있어요.
하나님이 ‘만군의 주, 즉 온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요,
온 세상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지금 골리앗과 블레셋 군대와 대결하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 중에
단 한 사람인들 다윗이 외친 고백적 이야기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만군의 주요 창조주라는 사실,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는 모욕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이스라엘의 군인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만약 설문조사지를 돌렸다면, 100% 확신이란 결과가 나왔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스라엘 중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사울 왕을 포함한 이스라엘 군대가,
만군의 주 여호와의 군대가, 골리앗 한 사람 앞에서 벌벌 떠는 이유가 뭡니까?
이유인즉 만군의 주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그게 실제 삶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만군의 주를 알고 인정합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예배(제사)시간에 예배를 드립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아무도 현실의 삶에서, 만군의 주를 실감하는 자가 없었다는 거예요.
▲다윗이 양치는 막대기 들고, 돌팔매에 사용되는 가죽끈을 들고 골리앗 앞에 나갈 때
함부로 나갔다가 정말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서 공중의 새의 먹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도박도 아니고 지금 진검 승부를 걸고 있는데
다윗은 정작 목동으로 칼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칼도 귀한 시절이었고요.
그런데 지금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얼마나 실감했으면
이 절체절명의 위기와 공포의 상황에서
더군다나 자기 형들, 사울 왕, 모든 이스라엘 군대가 완전히 얼음덩어리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목동 주제에 혼자 뛰어나가겠느냐 이겁니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이럴 수는 없어요.
우리 아이는 아빠가 회초리만 들어도 얼굴이 새파래지는데
칼을 들고 단창을 들고 창을 들고 있는 골리앗을 향해서 두려움이 없을 순 없습니다.
▲그런데 왜 두려움이 없어요? 만군의 주(여호와)를 실감하니까요.
그러면 왜 만군의 주를 알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까지 하고 예배까지 드리면서도
벌벌 떨고 있는 자들은 무엇이며,
군인도 아닌 목동 주제에,
블레셋 군대와 골리앗 앞으로 돌멩이 다섯 개를 들고 뛰쳐나간 다윗은 뭡니까?
그 차이는 성령감동을 받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음으로써, 성령의 임재를 경험함으로써,
만군의 주를.. 만군의 주로.. 제대로 실감한 거예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실감한 12제자들
구약시대 성령강림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굉장히 선별적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복음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는
행2:38~39절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아라.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데
이 약속,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내 사건으로 알고
주님의 죽음과 연합해서 죽는 자에게는 성령을 주리라는 이 약속은
먼 데 있는 모든 사람에게까지 다 적용되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특별한 사람만, 신약에는 누구나!
그러니까 골리앗 앞으로 나갈 때에 그 수만의 이스라엘 군대와
다윗의 유일한 차이점, 다윗 한 사람만이 갖고 있었던 특권, 성령의 감동이었습니다.
이 특권이 이제는 신약에,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행2:39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음과 연합해서 세례를 받아서
이 세상에 대해서 나는 죽었다고 고백하며,
매일 내 생각, 내 계획, 내 세상적인 만족의 기준까지도 다 죽이는 자들에게
즉, 십자가의 신앙으로 사는 자들에게
즉,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사는 자들에게,
성령을 누구든지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때는 다윗 같은 특별한 사람만 받은 성령을
이제는 신약 때, 누구든지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이제는 나도 다윗처럼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다윗만 받은 그 기름부음을.. 나도 받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다윗처럼 담대해 졌습니다.
오순절 강림사건 전에, 제자들은 두려워해서 숨었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요20:19
제자들이 두려워해서 한 방에 모여 문을 잠궜습니다.
골리앗을 본 이스라엘 군대들이 두려웠던 것과 같은 모양새입니다.
자기들의 스승 예수님은, 그렇게 권능을 행하시고 능력이 많으셨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는 처참한 모습과,
유대인들의 살기등등한 악한 모습을 볼 때에
제자들 마음속에 골리앗을 보고 두려움에 떨던 이스라엘 군대 같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강림이 일어나면서 이들이 문을 열고 나가서
유대인들이 살기등등해서 죽인 자기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그 부분은 건드리면 안 되잖아요.
그저 1년이고 2년이고 묻어둬서, 예수님에 대한 기억이 없어지게
만들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바로 아직도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실 때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는데,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빌라도에게 강요하던 자기들의 행동이
그대로 기억되고 있는 지금 이 찰나에.. 자기 스승에 대해 얘기합니다.
“너 이제 큰일 났다.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다.”
정말 오순절 성령을 받은 후로는,
제자들이 다 ‘골리앗을 맞서는 다윗처럼’ 담대해졌습니다.
◑성령은, 내가 하나님을 실감하도록 만들어준다.
▲그러므로 성령강림의 현상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그 계명의 완성이 이루어집니다. 여호와를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을 실제로 실감하게 되면 이 세상이 바뀝니다.
그 예가,
①예수님이 풍랑 속에서 잠을 주무십니다. 어떻게 그래요?
풍랑보다 먼저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실감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지요.
제자들은 그렇게 실감을 못하니까 죽겠다고 아우성이지요.
②성령강림 후에 베드로가 어떻게 바뀝니까?
야고보가 목이 잘라진 것처럼, 자기도 내일 참수형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내려왔고 옆구리를 발로 내지르도록 해도 잠이 제대로 안 깹니다.
어떻게 그렇게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있습니까?
참수형이라는 내일의 현실보다,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먼저 실감하니까.
③사도바울도 하나님을 먼저 실감하니까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이 부러울 게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들도 나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큰소리칩니다.
▲성령운동의 악센트와 방향은 하나님을 실감하자라는 것으로 되어야 합니다.
내가 능력을 받자, 내가 권능을 행하자, 내가 은사를 행하자,
내가 깨끗해야 한다, 내가 성결해야 한다.. 라고 초점을 맞추지 말고
먼저 하나님을 실감하자는 쪽으로 바뀌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은사는 현상(↔본질)이요, 따르는 표적입니다.
제 3위이신 성령이 내게 임하면
제 1위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자동적으로 사랑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이후에 우리가 말하는 성령의 권능, 은사, 나의 성결함, 나의 변화
이런 것들이 다 따라서 주어지지 않겠습니까?
▲정리하면
성령강림의 첫 번째 증상은 하나님을 실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와, 성령이 감동한 다윗의 차이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벌벌 떨던 제자들이
여호와를 실감하면서 문을 박차고 나가서
자기 스승을 죽인 자들에게, 직접 스승을 죽인 사건을 들이밀면서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담대한 사람들이 된 것이지요.
▲성령에 감동되면, 돌팔매질도 잘 한다.
여러분, 다윗이 돌팔매질 실력이 있어서 맞혔겠어요?
골리앗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에 전달되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다윗이 던진 돌팔매를 통해 나간 거지요.
사울 왕이 군대를 데리고 군사훈련을 한 시간이 얼마겠습니까?
무기를 만들기 위한 돈이 얼마겠습니까?
그리고 블레셋과 싸우기 위해 계획을 짜고 작전을 짜고 한 시간이 얼마겠습니까?
다 소용이 없어요.
하나님 한 분 실감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겁니다.
목동 일하면서 하나님 한 분 실감한 다윗보다
이스라엘 군대 전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 세상의 힘이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실감하는데 전력질주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성령을 간구하자는 겁니다.
▲십자가 복음에 집중하면, 성령충만을 받는다.
성령 자체를 간구할 필요가 없어요. 약속 따라 가면 성령은 오십니다.
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여 죄시함을 얻음’이.. 바로 십자가 복음입니다.
그 십자가 복음을 실감나게 믿는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그 약속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내 감각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에 대해
내 마음의 반응이 죽고, 반응이 제로되자는 겁니다.
그때 성령의 감동이 약속대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실감하게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실감하고 나면
사울의 군대 전체를 갖고 있는 힘보다 더 큰 힘도
필요하다면 나타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능과 은사는 하나님을 실감하는 것에 자동적으로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실감하지요?
주님의 십자가를 거쳐야만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거치지 않으면
자꾸 성령을 통해 권능을 받으려 하고 은사를 받으려는 게 탐욕이 되어 버려요. ▣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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