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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모형 갈렙

LNCK 2011. 2. 22. 20:01

◈예수님의 모형 갈렙              수14:6~15,   삿1:11~15          김성수 목사 사사기2강 중

 

 

여호수아도 당연히 예수의 모형이고, (그 이름의 뜻이 ‘예수, 구원자’)

이제 갈렙마저도 예수의 모형이라면.. 예수의 모형이 뭐 이렇게 많나?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인들이나, 주요 인물들이 다 예수의 모형인가?

그게 타당한가?

 

그런데 4복음서도 보면, 예수님을 여러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신 예수(마태) 

이신 예수(마가)

인자/사람이신 예수(누가)

말씀/로고스이신 예수(요한) 등이다.

그 외에도 생수, 산 떡, 어린양, 탕자의 아버지, 선한 목자.. 수두룩하다.

 

그러므로 아간, 여호수아, 갈렙.. 그 외에도

여러 사사들이 모두 그리스도를 예표, 모형하는 것은.. 틀리지 않다.

 

이렇게 여러 모습으로 다양하게 예표되는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을, 다각적으로 더욱 풍부하게 설명 해 주기 위함이다.

 

이런 전제 가운데, 아래 설교문에서

갈렙이 어떻게 예수님을 모형하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뭔가 중요한 메시지가 있으니까, 1장 서두에 나온다.

삿1:11~15절 사이에,

이미 여호수아서 15:13~19 에서 한 번 나왔던 갈렙과 옷니엘, 악사의 이야기가

다시 사사기 서두에 삽입되어 나온다.

 

갈렙과 옷니엘 이야기가 왜 여기서 가장 중요한 서두 삿1장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을까?

어떤 중요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여호수아15장은.. 여호수아가 살아생전에 기록된 이야기인데,

같은 이야기가 (여호수아가 죽은 후인) 사사기 1장에 왜 뜬금없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가?

 

그 이유는

갈렙과 옷니엘, 악사 이야기가.. 그리스도와 구원 이야기를 모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 구원의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서15장에 이어서 사사기 1장에 다시 배치했다... 고 본다.

 

▲돌연변이 갈렙

수14장에 가면, 그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가나안 땅 분배과정에서

돌연변이 같은 한 사람이 나타난다. 갈렙이다.

 

수14장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시켜서

아직 다 정복되지 않은 가나안 땅을 제비뽑아 나누게 하셨다.

 

이제 이스라엘 각 지파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좋은 땅들을 고른다.

아마 가장 좋은 땅이 자기들에게 당첨되기를, 모두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심지어 루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에서 그 땅에 눌러 붙기 원했다. 좋은 땅에 대한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본문 상황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면,

마치 어느 집에 12아들이 연년생으로 있는데,

어머니가 간식으로 피자를 몇 판 사오셨다.

 

그러니까 12아들들이 식탁에서 난장판이 벌어졌다.

서로 큰 조각, 제일 토핑이 많은 조각을 차지하려고 아수라장이 된다.

그런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결국 12아들은 공정하게 제비를 뽑게 된다.

 

그런데 돌연변이가 한 명 나타났다. (갈렙인데)

아무도 안 먹으려는 피자의 가장 자리, 테두리 빵,

그걸 자기에게 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형제들이.. 그건 뭐 제비 뽑을 필요도 없었다.

‘거저 가지라’는 것이다. 피자에서 거의 쓸모없는 부분이니까 그렇다.

 

이렇게 유다지파의 대표인 갈렙이, 여호수아 앞에 나와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헤브론 산지 땅을 달라고 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수14:12

 

그게 정말 좋은 땅이었다면, 다들 그 땅도 제비 뽑자고 하거나,

여호수아가 각별히 갈렙을 아껴서 주었다면, 특혜시비가 붙었을 것이다.

 

그런데 갈렙에게, 아무도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헤브론은 ‘산지’로서, 척박하고 못 쓰는 땅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거기엔 거인들, 아낙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산지에서는 땅이 가파르기 때문에 철병거가 다닐 수도 없다.

그런데 갈렙이 그 못쓰는 땅을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 그래서 외람되지만 ‘돌연변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모두 다 가나안 땅을 사랑했는데, 무덤덤한 돌연변이가 있었다. 

지난 시간에 다 쫓아내지 못하였더라 에서 살펴보았듯이,

12지파 모두가 가나안 땅을 사랑해서, 그 거민을 다 쫓아내지 못하고,

모두가 조금씩 그 땅을 남겨두었다.

 

가나안의 철병거도 사랑했고, 그들의 우상도 사랑했다.

그래서 다 쫓아내지 못하고, 조금씩 남겨두었던 것이다. 12지파가 모두!

 

이것이 아담의 후손들, 육신을 가진 사람들의 치명적 약점이었다.

아무리 죄이고, 세상이고, 마귀적이라고 해도..

끊고 쫓아내고 하면서도.. 결국에는 ‘조금’이라도 남겨둔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연약함이었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가나안 땅’을 사랑하고,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니까.. 제비를 뽑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혈안이 되는데..

무덤덤한 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안 가려는(안 차지하려는) 땅으로 가려고 한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일구는 순수한 일념으로!

 

▲예수님의 모형 갈렙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유다지파는 예수님을 상징했다.

지금 여기서 유다지파의 지도자 갈렙도 예수님의 모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땅의 모든 인간들이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가나안 땅에

속수무책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그래서 얼마를 남기고/숨기고 하는데...

그 시험에 넘어가지 않는.. 정말 예수님 같은 갈렙이 등장한다.

 

다른 지파들이 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그 땅에 다 넘어가는데,

그래서 다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과 거민을 남기는데,

갈렙 한 사람이 나타나서

‘나는 눈에 보이는 좋은 것 관심없습니다.’ 하고 나온 것이다.

 

당신들이 전부 ‘나 몰라라’ 하고 있고, 무관심한..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땅,

‘그거 나 주세요!’ 라고 애기했다.

 

언약의 땅,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갈렙만 정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무 사심 없이, 그 언약의 땅을 정복하겠다고 나섰다.

 

첫 아담과 정반대의 한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여러분, 마귀의 시험은 흉측스럽고 무섭지 않다.

대적의 유혹의 무기는,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다.

 

즉, 자기가 착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마귀가 착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해서, 자기 의를 더 챙기게 하다.

 

헌금을 많이 해서 자기 의를 챙기는 사람은, 헌금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해 줘서,

스스로 자고하고, 바리새적 의로움에 빠지게 만들 수 있다.

 

그게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것들이다.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걸 자꾸 하게 한다.

시험이 이런 방면으로 올 수도could 있다는 것을, 조심하자는 것이다.  

 

▲온전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갈렙

갈렙의 말 가운데 ‘온전히’ 란 말이 유난히 많이 나온다.

 

수14:7 내가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9 그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이게 창세기의 첫 아담의 모습과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이다.

 

▲설상가상 갈렙 .. 역설적으로 싸우는 크리스천의 모습 예표

헤브론 땅에는 아낙 사람들,

즉 가나안 거인 중에서도 가장 장대한 거인족이 사는 땅이었다.

지역도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그런데 정반대로
갈렙은 그때 이미 85세의 할아버지였다.

이런 것을 설상가상 이라고 한다.

 

가장 처참한 지경, 처참한 형국, 열악한 형국으로 갈렙이 내려가는 것이다.

그는 지금 이스라엘 중에 최고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85세의 노인이 12절에 위대한 고백을 한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수14:12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수14:12b

 

젊은 사람들도 다 회피하는 사역을,

가장 늙은 노인이 믿음으로 나가서 싸우려고 한다.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혹시’는 '반드시' 도 됨

 

자 이 그림을 보시면, 어떤 장면이 퍼뜩 떠오르시는가?

저는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울 왕도, 이스라엘 군대도.. 아무도 그를 물리칠 수 없었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린 다윗이 나와서 골리앗을 물리친다.

그만큼 지금 갈렙이 나서는 장면이.. 상황에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늙어서 연약했던 갈렙도 유다지파고,

어려서 연약했던 다윗도 유다지파고,

어린 양처럼 연약하셨던 예수님도 유다지파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싸우신 모습도,

세상적 관점에서 볼 때는 아주 연약한 모습이었다.

갈렙은 지금 예수님의 모형으로 여기에 서고 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크리스천이 세상을 이기는 방식은, 갈렙/어린양/예수님 방식이다.

자기 힘을 기르고, 능력을 배양해서 힘으로 세상을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모습으로 핍박을 당하는 처지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써’ 이긴다. 수14:12b

 

갈렙은 지금 아주 난처하고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만을 쫓아가는 상태,

그리고 그 상태가.. 결국은 승리로 이어지게 되는 그 상태가 바로 ‘축복’이다. ↓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수14:13

이 말씀은,

‘갈렙아, 그 땅 네게 줄게,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 땅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내가 축복기도 해 줄 테니까, 너는 가서 싸워서 차지해라..’

그런 뜻이 아니다.

 

‘네가 가진 믿음이 축복이다!’ 라는 선언이다.

그게 ‘여호수아가 갈렙을 위해 축복했다’는 말씀의 원래 뜻이다.

 

이런 갈렙의 믿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모형하고 있고,

그 예수의 믿음을 부여받은 갈렙같은 자들의 삶이 바로 축복이다.. 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의 힘으로는 그런 믿음이 발휘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의 믿음이, 먼저 우리에게 뚫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믿음이 우리를 (갈렙처럼) 끌고 가는 것이다.

 

그 예수님의 믿음이, 갈렙에게 뚫고 들어가서, 그를 끌고 가시는 것이다.

그게 여호수아가 갈렙을 보고 축복했다는 말이다. 

 

※설교자는, 이 부분에서 독특한 해석을 주장한다.

‘우리가 갈렙처럼 되자!’ 가 아니라

‘우리가 갈렙 안으로 들어가자!, .. 갈렙이 예수님의 모형이니까!

이렇게 주장한다.

 

또한 ‘우리에게 갈렙 같은 믿음이 있는’ 게 아니라,

‘그런 믿음을 갖자..가 아니라’

갈렙의 믿음이 또는 예수님의 믿음이 나에게 수여되어서,

그 믿음이 나를 이끌어 가셔야 한다... 는 식으로 주장한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데,

그 믿음의 주체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주님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시중에 잘 설교되지 않는데, 앞으로 차츰 연구해 봅시다.)

 

우리들이 갈렙처럼 살 수 없기에,

갈렙으로 모형 되는 예수님이 오셔서,

갈렙/예수님 안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게 본문의 ‘갈렙의 전쟁’이다.

  

갈렙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점을,

민수기와 신명기에서 이렇게 밝혀져 있다.

 

민14:22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10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위 구절에서 ‘오직’ 이란 단어에 밑줄 그으시라.

아래 구절도 ‘오직’ 이란 단어에 유의해 보시라.

 

신1:35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으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가나안 땅을 갈렙과 그의 자손만 들어갔는가? - 물론 아니다.

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 들어갔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오직 갈렙만 들어갈 것이고,

오직 갈렙의 자손만 그 땅을 차지할 것으로 말씀하시는가?

    위에서 줄친 ‘오직’을 보시라. 오직 갈렙 자손만 들어간다고 나와 있다.

 

갈렙이.. 예수와, 예수로 말미암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갈렘의 전쟁에 갈렘의 믿음으로 동참한 사람이 옷니엘이다.

(옷니엘과 악사 부분은 다음 시간에..)

 

 

....................................... 더 읽으실 분 ...............................

 

 

▲가나안 전쟁의 영적 의미

그렇게 갈렙의 가나안 정복 전쟁은

하나님만 신뢰하고, 그 분께만 목숨 걸고 순종한 ‘그리스도의 전쟁’을 모형하고 있다.

 

그런데 수1:1~6절을 읽어보시라

전쟁을 누가 하시겠다는 것인가? 하나님이 친히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딱 들어가자마자

거기에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칼을 들고 서 있었다. 수5:14

 

‘내가 친히 싸우는 거야, 괜찮아, 여호수아야 (갈렙아), 넌 내 뒤만 쫓아와!’ 

그걸 가르쳐 주신다.

너는 내 말만 들으면 된다는 것이다.

 

수1: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7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나라들 중에 가지 말라. 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에게 절하지 말라

 

그러니까 가나안 정복 전쟁은,

진짜 칼 들고 싸우는 전쟁은.. 현상이고,

그 본질은..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것이었다. 영적 전쟁이었다.

 

그러면 전쟁은,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알아서 다 치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전쟁에 용맹하게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현상)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하고 우상을 버려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신 것이다. (본질)

 

그런데 여기서 설교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간 해석을 주장하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고 우상을 버리는 게.. 쉽게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그게 정말 어렵고 불가능하더라는 것이다. (갈렙은 제외)

 

그래서 ‘자기 힘으로/자기 의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사사들의 의’를 붙들어야 한다.. 이것이 사사기라고

설교자(김성수 목사님)는 거듭 주장한다.

                                                                               

사사기강해2회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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