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시작, 하나님의 의 롬3:5~6 11.01.30.설교녹취
*지난 설교 보기 : 복음은 하나님의 의와 심판으로 시작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 있다.
▲로마서의 복음 순서
현대인의 강조하는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점에.. 전도의 가장 힘을 쓴다.
그런데 로마서의 구조를 살펴보면,
롬4장부터 ‘아브라함의 믿음’이 나오는데,
그 앞서 롬1, 2, 3장은 하나님의 진노, 심판이 먼저 나온다.
▲사실 이 순서는, 세례요한, 예수님의 복음전파와 일치한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은
‘회개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다.
사랑+믿음이 아니라,
회개+믿음을 전파하셨다.
구원 받는 조건으로 사랑, 믿음을 이야기 하지 않고,
‘회개’와 ‘믿음’을, 마치 신발의 두 짝처럼 같이 강조하셨다.
한 개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신발 한 짝만 갖고는, 아무 소용 없다.
▲창세기도 ‘하나님의 의’로부터 시작된다.
성경에 하나님이 음성을 처음 발하신 것도,
하나님의 의에 관한 것이었다.
성경에 하나님이 최초로 인간을 부른 음성은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인데...
하나님이 왜 아담을 부르셨는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신 이유는, 선악과 따 먹어서
아담의 불의가 나타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셨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 때부터 강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의 복음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들었을 때,
우리의 반응은 그 분을 신뢰하게 된다. 믿게 된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는 순서로 나아가고 있다.
즉 하나님의 사랑→믿음→구원의 순서다.
그런데 위에서 창세기, 로마서, 복음서를 살펴보았듯이
성경은 하나님의 의→회개→믿음→구원 의 순서를 말씀하고 있다.
자연인이 어떻게 회개 하게 되나?
하나님이 자기의 의를 우리에게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를 보이셨기 때문에, 그 의 앞에서 우리가 우리의 불의를 깨닫고,
회개하게 된다.
의가 먼저 드러나야, 불의를 깨닫고, 회개하게 된다는 뜻이다.
사랑이 먼저 드러남이 아니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것은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복음이 아니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은,
‘십자가의 도는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만 기쁜 소식’이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했을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러분, 끝까지 가면 드러난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할 만큼 미워하게 되어 있다.
(아래에 자세한 설명 나옴)
반면에 회개한 사람은.. 죽어도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
▲왜 주일 아침에, 이렇게 설교가 심각하게 나오냐고요?
현대인이 전하는 복음은 위험하다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평생을 예배드리고 교회 다녀도, 어쩌면 구원 못 받을 수도 있다.
현대 교회 안에 구원 받지 못할 사람이 허다할 수 있다.
오늘 우리 사회에 기독교가 여러 가지 지탄을 받지만,
그 속 원인은.. 진정한 복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교회에서 듣는 여러 설교들은, 사실은 복음이 아니라, 복이다.
(물론 안 그런 곳도 많지만)
여러분, 2천년 교회사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만난 사람들은, 복을 버렸다.
복을 버릴 정도로 복음이 강력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왜 ‘아멘’이 안 나오지요?
2천년 교회사는, 복음을 만났기 때문에, 복을 버려도 기뻐했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복 때문에, 복음을 버리고 있다.
사탄은 이 복음을 두려워한다.
성공하지 않아도, 복 받지 못해도, 기쁜 것이다.
그리고 성공을 하더라도, 축복을 받더라도,
복음이 없는 사람들이 불쌍해진다.
▲세례요한은 복음을 전할 때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세례요한이 복음을 전했을 때, 군인, 세리가 반응했다.
왜요?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세상에서 기득권층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살았다.
그러나 의 앞에서는 두려웠다.
세례요한이 전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다.
헤롯 왕도 두려웠다.
세례요한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헤롯 왕은, 견딜 수 없었다.
둘 중 하나였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든지, 아니면 세례요한을 제거하든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
우리들은 별로 의를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의가 없이는 아무도 구원 받지 못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는데, 오늘날 복음에는 ‘사랑’만 강조되고 있다.
현대 교회 안에 구원 받지 못할 교인들이 허다하다.
이 사실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일요일에 한 순간의 종교예식은 진통제, 수면제, 혹은 영양제일 수 있다.
그러나 죄를 치료하지는 못한다. 치료제는 아닌 것이다.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대에 전해지는 복음은, 죄에서 우리를 건질 수 없다.
◑복음의 시작은, 의, 진노, 심판
▲의의 복음을 듣고 회개한 자만, 사랑을 깨닫는다.
여러분,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은,
회개한 자는
즉시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깨닫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롬1, 2, 3장에서 증명하기 원했던 것이 그것이다.
한 날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그날이 있다는 것이다.
이게 롬1~3장이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이 롬1~3장(의, 진노, 심판)을 건너뛰고, 4장(믿음)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롬4~10장 말씀을 강조한다.
현대 교회는 로마서 1~3장을 잊어버렸다.
현대 교회는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첫 복음을 잊었다.
여러분, 복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의이다.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제가 어느 교회에 가서, 이 설교를 했더니,
마치고 어떤 성도님이
‘이번에 온 강사는 사랑이 없네!, 이번에 온 강사는 율법주의네’
제 곁을 지나가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제가 들었던 적이 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가서야
제 말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 날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로마서는 서두 1장부터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고 있는데,
2장에서도 계속 '진노'를 말하고 있다.
롬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그 날’.. the day 한 날이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의 날’이다.
복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는 그 날
그 날을 피할 수 있느냐/없느냐.. 이게 복음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날 그 날이다.
롬2: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사도바울의 복음에 이른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이게 복음의 시작이다.
◑그러면 의에 따라,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신가?
▲저는 오래 전부터 은혜와 율법, 죄의 용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 왔다.
저의 젊은 시절은, 거의 율법 아래서 신음하며 보냈다.
주님이 제게 도달하게 하신 것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롬3: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이 말씀은 롬1~3장의 전체 주제를 담고 있는 말씀이다.
그것은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이다.
여러분,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신가?
-이것이 회개한 사람이냐,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냐? .. 를 알 수 있는 증거clue다.
▲위 롬3:5절 앞에 시편 51편 말씀을 인용하는데, ↙
롬3:4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사도바울이 지금 복음을 설명하는 가운데, 시51편을 인용하고 있다.
시51:4b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지은 회개 시인데,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처분은 무조건 옳다는 것이다.
주님이 제게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다 정당하다는 것이다.
나는 죄인으로서 그저 입을 꾹 닫고 있겠다는 것이다.
뭐 변명하고, 반박하고, 자신을 변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게 진정한 회개다.
그래서 참된 회개를 거친 신자는,
하나님이 무슨 심판을 내리셔도.. 그것이 옳다는 것이다. 롬3:4. 시51:4
지금 설교 문맥이,
롬1~3장의 주제가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복음의 시작'으로 설명하는 중에,
사도바울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사랑이 아니신) 하나님이 과연 의로우시냐?’를 질문 던진다. 롬3:5절에서
사도바울은 시51:4절을 인용하면서 “아멘”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일부 신자나 신학자들이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변치 않는 속성 때문에 ‘심판을 내리지 않으신다’고
착각하고 있는데, 그것은 정말 착각이다. '다른 복음'이다.
여러분, 정말 회개하셨는가?
그 시금석은
주님이 나에게 어떤 판단/처분/심판을 내리신다 하더라도
‘주여, 당신의 판단은 옳으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시51:4, 롬3:4
지금도 세계도처에서 고난 받는 크리스천들은
그 어떤 일을 당해도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풀무불의 고난을 받을 때 이렇게 고백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이 행하시는/섭리하시는 모든 일은.. 무조건 다 옳고 의롭다는 고백이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자기 죄는 용서 받았다.
삼하12:13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게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그러나 죄의 결과는 다윗이 짊어져야 했다.
삼하12:10~11,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현대교회는 ‘죄의 용서’는 말하면서도, ‘죄의 결과’를 잘 얘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분 나쁜 소식이니까.
*관련글 죄의 결과 / Lon Solomon
물론 ‘죄의 결과’로 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사랑하는 성도를 더욱 돌이키게 하신다.
세상에서는 ‘교화/교정correction’이란 말을 쓰고,
성경에는 ‘징계 discipline’란 말을 쓴다. 히12:8
결국 좋게 변화시키는 목적으로, ‘죄의 결과’를 자기가 짊어지게 하신다.
▲다윗이 짊어진 죄의 결과
그래서 압살롬이 다윗을 배반하고, 모반했다.
그래서 쫓겨 갈 때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한다.
그러나 다윗은 시므이를 욕하지 않았다.
자기 죄를 자기가 기꺼이 짊어지는 사람의 자세였던 것이다.
‘가만 두어라. 시므이가 나를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나를 저주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삼하16:11
이게 진정 회개한 사람의 모습이다.
▲여러분, 이 설교는 제가 먼저 제 자신에게 하고 있다.
제 속에 정말 복음이 있는지..
그래서 어떤 고난과 환란을 당해도
‘주의 판단은 옳으십니다!’ 하면서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으면..
나는 정말 회개한 사람이고,
나에게 고난과 환란을 가져다 준 사람에게 똑같이 맞대응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섭리에 하소연하며 억울하다고 호소한다면..
어쩌면 나는 완전히 회개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더 회개해야 할 사람인 것이다.
제가 요즘 중국지하교회에서 엄청난 고난을 당한 사람의 책을 읽고 있는데,
그가 고난을 당하는 자세가.. 바로 그것이었다.
‘주님의 행하심 자기에게 고난주심은, 그게 뭐든지 다 의로우시고, 옳으시다’는 고백이었다.
오늘 우리도 이 복음을 나 자신에게 선포하자.
‘나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아닙니다. 당신이 옳으십니다!’ 롬3:4, 시51:4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진노를 대신 받으셨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불의한 모든 사람이 심판 받게 되어 있는데,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심판을 다 받으셨다.
그 잔은 원래 우리 것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 대신 그 잔을 받아드리셨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 잔이 지나갔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로또에 당첨된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 이 복음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오직 십자가에서만.. 내가 죽을 죄인인 것을 말해 준다.
너는 죽을 죄인이라는 것을!
그리고 예수님이 나의 죽음을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나에게 생명과 영생이 왔다는 것을!
그래서 모든 저주는 떠나갔다.
죗값은 다 치러졌다.
그러나 징계는 있다. 영원한 영벌에 대한 대가는 예수님이 다 짊어지셨지만,
교정과 성숙을 목적으로 하는 죄의 결과로서 징계와 환란은,
오늘날 우리 삶에도 계속된다.
그래서 천국을 가는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계속 징계(교화)성 환란은 당하는 것이다...
(참 회개한 성도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 더 읽으실 분 .......................
▲요한계시록을 헛다리 짚으시면 안 된다.
현대교회가 바이오칩이 666이냐, 전자신분증이 666이냐..
그런 것을 분간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복음을 분별할 때이다.
진정한 복음을 전하고 있느냐.. 그걸 분별할 때이다.
계시록의 진짜 포커스는 ‘미혹과 환란’이다.
계시록의 포커스 중 하나는 ‘미혹을 주의하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말세 때의 교훈으로, 제일 처음 주신 것이 ‘미혹을 주의하라’였다. 마24:4
‘다른 복음’을 주의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환란을 피하는데 초점을 맞추지 마시라.
어떻게 미혹을 피하여, 참된 복음의 진리를 지키는 우리가 되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계시되어)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는 복음은.. ‘다른 복음’인 것이다.
▲복음이 없는 사람은.. 목회자에게 상처 받는다.
복음이 없는 목회자는.. 성도에게 상처 받는다.
제가 여기서 7년간 개척 목회하면서, ‘상처 치유’한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앞으로는 우리 모두가 ‘복음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자.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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