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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더 좋은 일자리가 있습니다 2927

LNCK 2011. 3. 23. 22:42

 

◈제게는 더 좋은 일자리가 있습니다.             -스크랩, 출처보기-

 


왕셩타이/ 대만 사역자님의 간증

 


▶내가 대만의 동해대학에서 공부하던 대학생 시절,

한 그리스도인이 나에게 6년간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나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와 논쟁하여 말로써 그를 이겼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손해를 본 사람은, 그때 주님을 만나지 못한, 바로 나였다.


▶대학 졸업 후 나의 군복무 생활

후에 나는 대만의 금문에서 2년간 군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의 군 복무 생활은 지금처럼 그렇게 편안하지 않았다.

금문은 개방된 관광지도 아니었을 뿐더러,

당시에는 전쟁시기로 ‘단타 쌍불타 정책’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타쌍불타 정책

중국이 대만의 금문도 및 남쪽의 섬들을 점령 할 계획으로 양국이 대전하던 중

중국이 ‘단타쌍불타 정책’을 채택함으로

양측이 홀짝일로 나눠 번갈아 포사격을 했고

61년 이후엔 실탄을 공포탄으로 대체해 79년까지 계속 되었다.


그래서 중국의 포격일인 홀수일이 되는 밤이 되면 우리 병사들은

다음날 태양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으므로 모두가 매우 긴장 하였다.

                          ※금문도는 중국 본토와 불과 2Km 거리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난 이제 겨우 22살인데, 나에게는 분명 아주 찬란한 장래가 있을 텐데, 이대로 죽고 싶지는 않아.’


나는 또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아마도 지금 뿐만 아니라

7, 80세의 노인이 되어도 여전히 죽고 싶지 않을 거다.

그러나 사람은 다 죽기 마련이지.

그렇다면 나의 인생은 대체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이란 말인가?


22세에 죽건, 80세가 넘어서 죽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다만 좀 더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경험하는 것뿐 아닌가?’

그러나 혼자 생각만 할뿐, 나에게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고생스러웠던 나의 아메리칸 드림

안전하게 군 복무를 마치고,

1975년에 나는 대만에서 미국 위스콘신 주로 유학을 떠났다.

내가 미국에 갔을 때, 그곳 기온은 영하 20도였는데,  대만은 기후가 따뜻하다.

난 그곳의 한 미국인과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하지만 도착한지 2주도 채 못 되어, 나는 지독한 감기를 앓게 되었다.

감기가 어찌나 지독한지.. 이틀 내내 앓느라고 일어나서 밥조차 먹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미국에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고, 나를 돌봐 줄 사람도 없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금문에서 전쟁 중에 죽었다면 훈장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여기서 지금 죽는다면, 내가 죽은 것을 아는 사람조차 없겠구나.."


나는 다시금 같은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대체 살아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러고 나서 얼마 안 있어, 다행히 내 감기는 완쾌 되었다.


그 당시 학교에는 대만 학생이 단지 20여 명 뿐이었는데

모두가 서양음식을 지겨워했기 때문에, 중국 요리를 만들어 먹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중국 학생들은 함께 모여서 밥을 해 먹게 되었다.


나는 아주 신이 나서, 처음으로 대만 유학생들이 함께 식사하는 곳으로 갔다.

거기에서 선배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은 나보다 영어도 잘하고, 공부도 잘한데다가 곧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하는 대화를 통해,

그들 중 단 한 명도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모두가 얼굴에 실망이 역력한 기색을 띄고는

‘졸업은 곧 실업’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당시에는 미국에 남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린카드(영주권)를 따야만 했다.

그린카드가 없으면, 별도로 교수를 찾아 가야하고,

게다가 장학금을 타야지만.. 미국에 남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선배들은, 모두가 자신들의 장래에 대해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 하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마작을 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고,

여학생들은 모노폴리(브루마블게임)를 하면서.. 이런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다른 것을 얘기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으며,

모두가 똑같이 인생의 막막함을 느끼고 있었다.


 원래 나는 그들을 가장 부럽게 여기고 있었는데, 그날 완전히 맥이 쏙 빠지고 말았다.

 

‘1, 2년이 지난 후에, 공부가 끝나면 나도 그들과 같은 그런 모습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럼 나의 아메리칸드림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바로 막 죽음 금문도 에서부터 도망쳐 나왔는데,

이제 또 이렇게도 발버둥치고 분투하면서 노력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모든 사람이 이러한 조류를 향해서 버둥대며 가고 있는데,

나도 이대로 이 조류가운데로 떠내려가는 것은 아닌가?’



▶얼굴에서 빛이 나는 여학생

앞으로 진로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바로 그 때,

모임의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눈사람 같이 살이 찐 여학생 한명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고, 매우 침착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

환한 빛으로 충만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기쁨으로 차 있을 때에라야 비로소 얼굴에서 빛이 나게 마련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저 여학생이 살이 저렇게 쩌도, 어떻게 저렇게 기쁠 수가 있을까?’

라고 혼자 생각했다. 나는 다가가서, 그녀에게 그 기쁨의 이유를 물었다.


“모든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원래 학교는 어떻다는 둥,

이후에 졸업하면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둥 온통 걱정스런 이야기뿐인데..

당신은, 아무 염려 없이, 웃고만 있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기쁘게 하는지.. 제가 알고 싶군요.”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 대답은 나를 크게 놀라게 했다.

왜냐하면 내가 동해대학에서 공부할 때 거기에는 아주 예쁜 예배당이 있었는데,

예수는 그 교회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성탄절에 1년에 한번 가서, 예수를 헌 번 보는 걸로 족한 게 아닌가?

그가 어떻게 그녀 안으로 뛰어 들어갔는가?


이후에 그녀는 그녀가 어떻게 주님을 만났는지를 얘기해 주었는데,

지금은 그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에게 하나의 깊은 인상이 남았는데,

그것은 바로 그녀 안에 매우 큰 기쁨과, 침착함과,

인생에 대해 소망이 가득한 확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 ‘생명’에 정복당하였다.

이론으로 정복당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몸에 있는 살아있는 어떤 것으로. 그 생명, 그 기쁨으로 정복당하였다.

아! 나도 그것을 가지기 원한다!


그때가 내가 처음으로 복음에 대해 마음이 열린 때였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한테 있는 것을 가질 수가 있나요?”


그녀는 말했다.

“나도 몰라요. 하지만 내가 책을 몇 권 가지고 있어요.”


그녀는 나에게 <열두 광주리 가득히>를 내밀었다.

나는 돌아가서 읽고는 엄청 난 것을 발견했다. 

책안의 거의 모든 매 구절이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그 때부터 주님을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학생은 후에 나의 부인이 되었다.


나는 하나님이 매우 재미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리스도인과 '대체 하나님이 계시는지"에 대해 오래 동안 논쟁해 왔지만,

한 사람의 몸에 정말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본 순간

나는 곧바로 매료 되어버리고 말았다.


국방부에 수 백 만 명이 있는데 왜 나를 찾으십니까?

이후에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환경보호국에서 일하게 되었고,

또 에너지 관리국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캘리포니아 주 자치장의 보좌를 맡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소재한 군사기지를 중점적로 관할하게 되었다. 환경보호


또 91년부터 97년까지는 캘리포니아 주 자치장에서 국회의 대표까지,

미국 50개주의 자치장 대표로도 일하였다. 


미국에는 단 7개의 위원회가 있는데, 미국국회의 보조부장이 위원회의 주석이었고,

나는 50개주의 자치장 대표가 되어 이 위원회에 참가했는데,

매년 몇 차례의 회의가 열리곤 했다.


1995년도의 어느 날 회의가 끝난 후에,

위원회 주석이, 나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더니 말했다.

“내가 자네와 함께 몇 년 일하면서, 자네가 일하는 것과,

각 방면에서의 능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게 되었네.

나는 자네가 국방부에 와서, 나의 보좌 부부장을 맡아 줬으면 하네.”


국방부 보좌 부부장은 상당히 높은 지위에 해당한다.

‘미국 국방부에는 수 백 만 명의 인재가 있는데, 왜 갑자기 나를 찾아 온 것일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이어서 말했다.


“여보게, 자네가 지금 캘리포니아에 있고

자치장으로부터 매우 신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네.

각 방면에서 나타나는 능력 또한 높고 말이야.


하지만 생각해 보게. 5년 후에 어느 정도의 지위까지 오를 수 있을 것 같나?

하지만 국방부에 오면, 아주 높은 권력자들 여럿과 인맥을 넓힐 수 있지.

자네 정도의 재능과 능력이라면, 곧 그들에게 어필 할 수 있을 거야.


게다가 더 대단한 제한을 하나 하겠네.

내가 자네를 세상에서 가장 권력 있는 미국 대통령에게 데려가서 보이도록 하지”


그때 그가 ‘5년 후’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5년 후’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전에 주님께 서원했던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죄송합니다, 저에게는 더 좋은 일자리가 있습니다.’

나는 주님을 믿은 후에, 주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에게 이렇게도 풍부한 생명이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분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한 가지 서원을 했는데,

그것은 바로, 주 정부에서 규정한 퇴직을,

가능한 가장 빠른 연령에 퇴직을 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계산해 보니 2000년이 되면 퇴직을 할 수가 있었다.


부장과 내가 이야기를 한 것은 1995년 이었다.

거기에 5년을 더하면 딱 2000년이 아닌가?


그래서 이후에 나는 미국국회 보좌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에게는 더 좋은 일자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섬기는 주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기 때문이다.

땅위의 왕은 4년이 임기이지만, 하늘에 속한 왕의 임기는 영원하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임기 말에 지금의 대통령이 다시 한 번 더 당선될지, 아니면 당선되지 못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섬기는 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분을 만주의 주, 만왕의 왕으로 세우셨으니

주님을 섬기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때 내가 그 일을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대통령이 임기 말에 재당선이 되지 않았다면, 나도 함께 내려가야 했을 것이다.


결국, 나는 그가 제안한 직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를 도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말했다

“당신 정말 바보 같군요! 그런 좋은 기회를 포기하다니요.

당신이 간다면, 우리도 함께 출세해서 당신과 함께 호강하며 살 뻔 했는데요..”


그러나 나는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더 멋지고, 더 높고, 더 신성한 목표를 봤습니다.”


1996년 말, 퇴직으로부터 약3년이 남았을 때

일을 내려놓기를 바라는 교회의 부름이 있었으므로,

나는 다시 한 번 이것을 위해 주님께 기도하였다.


그리고 결국 나는 정년퇴임을 하지 않고 일을 내려놓게 되었다.

지금 나는 홍콩에서 대학생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 복음의 내용은 ‘단지 복 받고 평안히 사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중요한 하나님이 사람 안에 들어가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의 일은 비록 땅 위에서 존경받는 높은 직업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사업이다!


<왕셩타이, 수심지처 녹취정리                                            ▣ 꿈, 비전, 소명   


 

◑部長 對不起 我有更好的工作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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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读东海大学时,有一个基督徒向我传了六年福音,我不仅没有相信,反而跟他辩论,结果都是我贏,但实际上是我受亏损了,因为我没有碰见主。.

 

单打,双不打的年代


后来我在金门当了两年兵。那个时候当兵不像今天这麼轻鬆,金门也不是开放观光的地方,当时是有砲战的时代,有『单打双不打』的说法。


所以,每到单数日的晚上,每一个人都很紧张,因为不晓得第二天能不能看得到太阳。在这种景况之下,我第一次考虑到『我才二十二岁,我不想死,我应该还有很灿烂的前途的。』我又想,『但是,我今天不想死,到了七老八十的时候,我还是不想死。可是,人都要过去的。那麼,我人生究竟是为著什麼呢?二十二岁死,跟八十几岁死,差别究竟在哪里?是不是就多了点酸甜苦辣的经历呢?』我没有答案。


幻灭的美国梦


安然服完兵役,到了1975年,我从台湾到美国威斯康辛去念书,当时是零下二十度。我跟一个美国人住在学校宿舍,不到两个礼拜,我就得了重感冒,甚至整整两天没办法起来吃饭。当时因为不认识任何一个人,所以也没有人照顾我。我在床上想著,『如果我死在金门,大概还可以得一个勳章,但是现在死在这里,也没有人会知道我死了。』我又想起同样的问题,『人生的目的是什麼?我究竟活著干什麼?』不久后我也痊癒了。


那时学校只有二十几位中国学生,大家因为对西方食物觉得腻了,就想做点中国菜,大夥儿也可以聚在一起吃饭。所以,我很高兴地去了第一次的聚餐,在那里遇到的都是学长,他们个个英文比我好,功课也比我好,並且也快毕业了。但是,从他们所谈的问题中,我发现没有一个人是满意的,每个人脸上都是失望的表情,视毕业如失业。当时若要留在美国,就一定要拿到绿卡,没有缘卡的只好另外找教授,並且还要找奖学金才能留下来,所以学长姐们都感到前途一片迷茫。男生一面打麻将,一面谈这些问题;女孩子边玩大富翁,也谈这个问题。没有人谈不同的问题,都同样地感到人生很迷惘。


原本我是很羡慕他们的,但是那天我心里头凉了,因为想到只要再过一、两年,我不也是跟他们一样吗?那我的美国梦究竟是干什麼呢?刚刚才从死亡里逃出来,现在还在挣扎奋鬥著,我努力是为什麼呢?是不是人人都挤向这个潮流,我就往这个潮流走呢?


脸上发光的女孩


正在想下一步该怎麼走时,我看见角落坐著一个女孩子,胖得跟雪人差不多,但是脸上很喜乐,很有笃定的把握,而且好像还有光。只有当一个人喜乐时,笑脸才真的会发光。我心里想,一个女孩子胖成这个样子,怎麼会这麼喜乐?我就走过去问他。当然,我不是这样子问她的!


耶稣不是挂在教堂上吗?


我问她说:『刚刚大家谈的问题,都是原本在学校是怎样,后来毕业又要如何的事...但我想知道究竟是什麼原因,让你这麼的喜乐?』她说:『我里面有耶稣。』这回答真吓了我一大跳,因为我唸东海大学时,那里有个很漂亮的教堂,但耶稣不是挂在教堂上面的吗?圣诞节时,一年去看耶稣一次,不就好了吗?祂怎会跑到你里头来呢?然后,他就跟我讲他怎麼碰见主的事情,现在我都不太记得内容了,只留下一个深刻的印象,就是他里面有一个非常喜乐、非常笃定、对人生充满盼望的一种把握。这个是我没有的。


我被征服了,不是一个道理征服了我,而是他身上有一个活的东西。哦,我要这个东西。那时候是我第一次向福音敞开,所以我问她:『那我怎麼也拥有妳有的呢?』她说:『我不知道。但我这里有几本书。』她就拿给我《十二篮》,我回去一看,发现真是不得了了,书上几乎每一句话都是对我说的。


简单的讲,我那时候开始信主了,而那位女孩子后来就是我的太太。我觉得神很有意思,原本我可以跟基督徒辩论『到底有没有神』很久的时间,但是当我看见一个人身上真的有神的时候,我就被吸引了。


国防部有几百万人,为什麼找我呢?


之后我在美国加州州政府环保局作事,也进了能源所,甚至做了加州州长的助理,专门在管美国在加州所有的军事基地。从91年到97年的时候,我还是加州州长到国会的代表,也是美国五十州州长的代表。


美国有一个只有七个人的委员会,主席是美国国会的助理部长,我作为五十州州长代表,也参加了这个委员会,每年都会有几次的开会。到了95年,有一天会议结束后,委员会主席把我拉到一边,对我说:『我跟你共事了几年,非常欣赏你办事、各方面的能力。我想请你到国防部作我的助理副部长。』国防部助理副部长这个职位是相当高的,但美国国防部有几百万人,为什麼突然间找到我呢?我在考虑的时候,他接著说:『你看,你现在在加州,州长非常器重你,各方面的表现都很好。但是,你要想想看,五年之后,你会爬到什麼样的一个职位?但是,来到国防部的话,你可以认识很多很多有权力、有地位的人,你的才能和各方面的长处,马上就可以在他们面前显露出来。尤其值得一提的是,我还可以带你去见世上最有权能的一位-美国总统。』当时他不说『五年后』还好,一说到『五年后』,我就想起自己曾经向主许了一个心愿。


对不起,我有一个更好的工作机会了


我从信主以来,越认识主,就越觉得祂太宝贝了!但祂有这麼丰富的生命,卻还有很多人不知道。所以,我向主许了一个心愿,就是一到州政府规定最早可以退休的年龄时,我就要退休去传福音,算过之后,我在2000年就可以退休。部长和我谈话时是95年,加上五年,不刚好就是2000年吗?后来我跟这位美国国会助理部长说:『对不起,我有一个更好的工作机会了。』因为我所服事的主耶稣,祂是万王之王,万主之主。


地上的王四年一任,属天的王永不下台


我接著说:『到了年底,现任总统还要再被选举一次,还不知道到时候选不选得上。但是我所服事的主耶稣,神已经立祂为万主之主,万王之王了,服事祂不是更好吗?』当时我若接受那个工作,而现任总统年底没选上的话,我也要跟他一起下台了。


至终,我没有接受他提供的职位。帮我作事的人说:『唉呀,你怎麼这麼傻!把这个机会放掉了。你去的话,我们就雞犬升天,跟你一起吃香喝辣的呀!』但是我说:『对不起,我看见了一个更棒、更高、更神圣的目标。』到了1996年年底,距离退休只剩下三年多,但因为教会有放下工作的呼召,我再次为此事向主祷告。最后,我放下工作,没有退休,现在在香港跟大学生传永远生命的福音,这福音的内容不是只有福利平安,更重要的是神要进到人里面。


美国国防部的工作虽是地上高尚的职业,然而事奉神卻是更有价值的事业!


< (王生台)水深之处听抄整理,未经讲者改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