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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과 분열 / 정원

LNCK 2011. 4. 19. 11:37

 

◈부흥과 분열                              눅7:33                 -펀 글, 출처보기-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눅7:33

 


교회에 성령의 능력이 임하고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날 때

사람들은 곧 교회에 부흥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많은 성도들은 기뻐하고 감동하며

교회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흥과 동시에 갈등과 분열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부흥으로 인한 갈등


주님의 권능이 뚜렷하게 교회에 임하기 전에는

교회에서 크게 은혜를 받는 사람도 없으며, 크게 실족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실제적으로 임하게 되면

교회는 선명하게 두 종류의 사람들로 갈라지게 됩니다.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들은.. 매우 기뻐하며 주님께 사로잡히게 됩니다.

또 한 다른 종류의 사람들은.. 분노하며 그것을 싫어하고 대적합니다.

그러므로 평온했던 교회는, 대립과 긴장과 갈등이 생길 수 있게 됩니다.


사역자들은 대체로 이러한 분열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충만하게 임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갈등이나 휴유증 없이

안전하게 교회가 유지되는 것을 더 원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한 분열이 오는 것일까요?

왜 하나님의 역사가 임했는데, 오히려 고통스러운 일들이 교회에서 벌어질까요?


물론 그 교회에 임한 은혜와 능력이

하나님의 역사를 가장한 혼란스러운 영들의 속이는 역사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거짓의 영들이 일으키는 역사라면

거기에서 생기는 갈등과 분쟁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잘못된 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성령님의 진실한 역사가 나타날 때에도

교회 안에 오히려 갈등과 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 주님의 역사를 대적하고 방해하며 스스로 실족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평소에 아주 신앙이 좋은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인격적이고/헌신적이며/교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역사들이 일어날 때

그들의 속에서 이상하게도 분노와 거부감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러 신앙적인 이유를 들어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들을 공격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영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때)

하나님의 영이 강력하게 역사하실 때

평소에 사람들의 속에 숨어있었던 (거짓)영들이 견디지 못하고

빛 가운데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예민하고 성숙하며 영의 기능이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이들은

비록 교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을지라도.. 영을 잘 분별하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는 거듭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심지어 거듭났다고 하더라도, 주님의 영과, 사람의 영을 분별할 줄 모르고

주님의 영으로 살지 않고, 사람의 영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이들은, 주님의 감동과 사람의(인간적) 감동의 차이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앙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나름대로 애를 많이 쓰지만

많은 경우에 자신의 자세나 행위들이, 주의 영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합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그러한 이들이 지도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세상에서의 지도자와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나이나 지식이나 경험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영적 성숙도이며

그가 얼마나 주님을 가까이 알고 경험했으며, 실제 삶에서 주님과 동행하는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풍부한 사회 경험을 가지고 있고 박식한 사람이

영적으로는 아주 미숙하고 분별력이 부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라지는 버려 두라


마13장 천국 비유 에서 주님은 ‘가라지’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밭에 심지 않은 가라지가 나타나자, 종들이 "가라지를 뽑아버릴까요?"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하지만 추수할 때까지 내버려두어라.

괜히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알곡까지 상한다." 고 대답하셨습니다.


주님은 추수 때, 즉 심판의 날까지

가라지가 알곡들과 함께 섞여있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 신앙의 교제 안에도

가라지가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라지, 즉 잡초의 특성은 번식력과 생명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심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잘 자라납니다.

또한 그 뿌리는 항상 보통의 채소보다 더 깊습니다.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식물들은, 많은 공을 들여서 거름을 주고 관리해야 자라는 반면에

가라지들은 강한 번식력과 생명력으로,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랍니다.


이것은 신앙적인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많은 관리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악성이나 죄악들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잘 번식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그 배후에서 가라지를 심고

그것에 생명을 공급하고 있는 마귀들로 인한 것입니다.


가라지와 알곡의 관계를, 교회의 인간관계라는 측면에서 적용하면


주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에서는 오히려 지도자가 되고, 높은 위치에 서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라지는 뿌리가 깊은 것이 그 특징으로서, 큰 세력을 가지게 됩니다.


대체로 주님께 속한 이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나 군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정받는 것을 싫어하며 명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잘 모르는 이들은

명예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며, 다른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그런 유혹이 많다는 것이지, 물론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그러한 성향 때문에, 이들은 교회 안에서도 지배적인 위치를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위치를 가지고 있는 모든 이들이, 가라지와 같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분명히 신앙이나 모든 면에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추천에 의하여 지도자의 위치에 이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격과 삶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세력을 갖기를 원하며 으뜸이 되기를 원하고

권력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들에 대하여 주님은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주님은 그들을 제거하기 원하는 천사들에게, 그것을 보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뿌리가 깊기 때문에

그들을 뽑으면 다른 알곡에게도 상처를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외적으로 교회나 신앙의 세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

좋은 지도자로 알려져 있는 사람이 넘어진다면

그것은 많은 신실한 신자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알곡과 가라지는 서로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심판 때까지, 그 둘의 분류를 보류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주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영들이 돌아다닙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교회가, 세상의 영들과 많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영들을 잘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은

모두 신앙이 좋은 것으로 인정되며, 주님께 속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에 각 사람의 영적 상태와 마음의 동기는 모두 드러나며

각 사람이 어떠한 영을 가지고 있는지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 주님의 영광과 임재가 나타났을 때

그것은 이러한 마지막 때의 심판을 앞당기는 것과 같습니다.

(밤이 깊은 것은, 새벽이 가깝다는 의미인 듯...)

 

천국에서 악한 영들의 어두움이 드러나듯이

주님의 빛이 임할 때, 빛과 어두움은 갈라지고 드러납니다.


마지막 날에 가라지가 드러나는 것처럼

주의 능력이 임하면, 평소에 드러나지 않던 가라지들이 눈에 보이게 나타나게 됩니다.


(이 때, 부흥과 갱신이 임할 때)

특히 교회에서 세력을 가지고 위치가 있던 이들은

오히려 갈등하고 상처받고 힘들어하게 됩니다.


그들은 주님의 능력과 영광이 나타날 때

무엇인가 자기 속에서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은 능력과 부흥이 나타날 때

그들의 지위나 영향력을 잃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것은 부흥입니다.

그러나 또한 진통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정화 과정이기도 합니다.


평소에 주님을 사랑하는 줄로 알았지만

세상을 사랑하고 자아를 사랑하던 모습들이

주님의 영광스러운 빛 속에서 더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교회에 나타날 때,

대체로 단순한 이들, 젊은이들, 평소에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던 이들에게

강력한 은혜가 임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신앙이 좋다고 인정받으며

좀 더 지적이고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는

그러한 성령의 임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시던 당시에

세리와 창기를 가까이 하시고 지도자급의 사람들은 멀리 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당시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도 이 계층의 사람들은 분노하게 됩니다.


이들은 주님의 영이 자신에게 임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기보다는

저것은 악령의 역사이거나 아니면 지나친 광신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교회에는 두 그룹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한쪽은 점점 더 기뻐하고 한쪽은 점점 더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등들을 잘 통과하고, 반성과 회개가 이루어지며 교회가 정화되고

주님께서 실제적으로 그 교회를 사로잡게 되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부흥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성령님의 역사로 인하여

교회가 갈등하고 분열되어 상처만을 남긴 채 갈라지게 될 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을 알지 못하고

인간적인 열정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이들이

자신의 신앙 스타일을 재점검하고 반성하여 아름다운 새 출발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신앙 스타일과 맞지 않음으로 인하여

주의 영을 대적하는 자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사역자는 이러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사전에 인지해야 합니다.

교회에 성령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는 것에 대한, 반작용들을 이해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교회가 영적으로 복을 받을 때

그 때까지 알지 못했던 치열한 영적 전쟁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는 무난하고 문제없는 교회를 선택할 지, 아니면

전쟁이 있더라도 주님께 사로잡히는 사역과 교회를 선택할 지에 대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겉으로 교회가 무난하게 유지된다고 해도

속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어쩌면 더 불행할지도 모릅니다.

 

 

◑휴머니즘으로 인한 갈등


대부분의 교회 회원들이 세상을 사랑하고 편안한 삶을 사랑하며

주님에 대한 사모함도 간절함도 없이

그저 종교인, 교양인의 삶으로 만족하는..


그러한 죽어있는 심령의 상태로 표면상으로만 무난하게 교회가 유지되는 것..

그것이 더 불행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비극적인 영적 상태가 마지막 날 심판 때에 드러나고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비극적인 일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는 주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세상의 영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계에는 공백이 없으므로, 교회에 주의 영이 가득하지 않으면

자연히 주님의 영을 대치하는 다른 영들, 세상의 영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예를 들어, 휴머니즘(인간주의, 인본주의)의 영이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감동적이고 선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시중에 유행하는 베스트셀러’ .. 이런 휴먼 드라마들을 좋아하며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들은 조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사람들의 영혼을 주님과 멀어지게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주님과 상관없는 사람의 인간적인 선행은

주님의 구속의 의미를 약하게 하며 자기 의를 세우게 합니다.


그러한 인간적인 감동과 아름다움의 배후에

어떤 영들이 운행하는지, 어린 영혼들은 분별하지 못합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십시오.

베드로는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다고 했을 때 그것을 반대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누가 보아도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

그것은 따뜻하고 인간적인 이야기이며 위로였습니다. 휴머니즘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런 생각의 배후에 역사하는 영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따뜻하고 인간적인 마음과 동기로 움직이는 경향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참 인간적인데, 이상하게도 주님께 대한 그리움이 없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신앙이라는 것은, 선함 자체이지 주님이 아닙니다.


그 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 영은 빛의 영들이 아니며 속이는 영들입니다.


사람들은 마귀를 뿔이 달리고 기괴하게 생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괴기 영화에 나오는 괴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마귀는 많은 영혼들을 사로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온 세상을 꾀는 자" 입니다.


그에게 사로잡힌 많은 이들이 주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하면서

자신은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평소에 어둠에게 속아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계속 속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자칫 많은 갈등과 혼동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압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실제를 좀 더 많이 경험하고

영적으로 성장해서 분별이 증가되는 것입니다.


영이 자라면 자랄수록 우리는 주님의 영과 사람의 영을 분별하게 됩니다.

외적인 열심의 배후에 있는 사람의 동기, 육신적인 동기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주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온갖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주님께 깊이 사로잡힌 이들은

기존 종교의 세력들에 의하여, 투옥되거나, 공격을 받거나

죽임을 당한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그 배후에 있는 악한 영들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종교 안에 세력을 잡고 있는 가라지는 뿌리가 깊으며 권세를 잡고 있어서

교회에 세상의 기운을 심으며 영적 공기를 혼탁하게 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 나타나면 공격하고 제거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은 온유하고 부드러운 것입니다.

그 영의 흐름에는 진정한 아름다움과 거룩함과 사랑스러움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영, 휴머니즘의 영은 아름다운 것 같으나 속에는 차가움이 있습니다.

그 차가움은 주님의 영과 생명의 영이 나타날 때 거부하고 대적합니다.


세상의 영들은 주님의 영과 세상의 영들을 묘하게 혼합시켜서 사람들을 혼동시킵니다.

그들은 주님도 인정하는 듯하면서, 결국은 복음의 진리를 뒤섞어 버립니다.


지금은 종교다원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세대입니다.

그들은 진리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착하게 사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옳아 보이지만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을 주님께로 이끌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많은 속이는 영들과 세상의 영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건물이 커지는 것을 부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온갖 세상의 방식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교회에는 혼미한 기운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교회 안에서 자꾸 줄어들며

주님과 생명에 대한 갈망은 점점 더 식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역사, 성령의 능력이 나타날 때에

정화가 있게 될 것이며 갈등과, 전쟁, 분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할 과정일 것입니다.


교회에 있는 세상적인 요소는

오직 성령의 권능이 교회에 임하게 될 때 소멸될 것입니다.


이 전쟁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무난하지만 비참하게 살아있는 것보다

전쟁이 있더라도 영적 갈망과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땅에, 이 나라의 교회에 참다운 부흥의 기운이 와야 합니다.

교회는 눈이 열려서, 보이지 않는 미혹의 세계를 분별하고, 그것을 깨뜨려야 합니다.


순진한 백성들이 미혹의 영들에게 속아서 눌려있는 것들을 드러내고

자유케 해야 합니다.


주님의 거룩한 빛이 오게 될 때, 성령의 충만을 받을 때

우리는 그 영과, 세상의 영들을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영은 너무나 거룩한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 영은 너무나 아름답고 신실한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 영은 우리를 순수하게 해주고 우리의 자아적인 동기를 정화시켜

주님께 온전히 나아가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지 않은 영들을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영이 오실 때, 우리는 모두 다 그 거룩한 열망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더욱 간절한 사모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오셔서

모든 이들을 사로잡게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속에 있는 어두움들을 드러내고 정화시켜서

모두가 온전한 주의 사람들이 되도록 역사 하실 것을.. 간절히 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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