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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졸업이 낫다 / 정원

LNCK 2011. 4. 20. 15:56

◈조기 졸업이 낫다             신18:13            설교스크랩, 정리, 출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신18:13  

 

 

제/편집자가 정리를 매끈하게 못 했지만,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신앙인격훈련은 평생 지속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끝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그런 것이 있는지, 파악도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관심

사람들은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운명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아무 어려움이 없이, 평안한 삶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평안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 문제를 안고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평안함을 간구해보지만,

문제해결, 평안함이 쉽게 응답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힘들어 지는데요...

 

주님은 ‘우리 삶의 평탄한 삶’에 대해 일차적 관심이 없으십니다.

주님의 관심은.. 우리 믿음의 성장, 영적 성숙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켜.. 천국에 데려가시기 원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문제도 겪고, 연단도 받습니다.

 

만일 우리의 삶이 단순히 평안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이 진행된다면

우리의 영혼은 전혀 성장 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낮은 차원의 영혼,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수준의 사람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의 성장과 믿음의 성숙은

우리가 살아가고 존재하는 이유 자체입니다.

 

그 목적을 향하여,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깎이고 다듬어지는지..

같이 한 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형성될까요? (주어질까요, 나타날까요?)

 

   내 영혼의 성숙, 내 믿음의 성장을 향하여.. 내 미래가 항해를 하게 됩니다.

   그런 방향으로 우리 각자의 인생이 펼쳐지게 됩니다.

 

   잘 살든지, 못살든지..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그게 뭐든지 <내 영혼의 성숙, 내 믿음이 성장>에 유익한 방향으로

   성공도 하고, 실패도 겪고...

 

   하나님이 그 방향에

   성공이 내게 유리하면.. 내게 성공을 주실 것이요,

   실패가 내게 유리하면.. 내게 실패를 주실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과 방향은.. 채찍과 당근을 섞어서..

   결국 우리의 구원(믿음)을 완성시켜... 천국에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훈련하시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계심을 압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어떠한 일들도

주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에게 오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의 성숙을 위하여, 필요한 환경으로 나를 인도하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요소가, 미래와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들을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 우리 운명의 열쇠는

각자의 영혼의 상태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나의 미래에 대하여

하나님의 주권, 예정.. 이런 큰 틀이 있지만, 그 큰 틀 속에서,

반응하는 나의 삶의 태도(자유의지)에도.. 나의 미래는 영향을 받습니다.

 

내게 물질훈련이 필요하면.. ‘물질훈련(가난)’의 환경을..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십니다.

똑같은 상황을, 내 편에서 보면, 내가 그 ‘물질훈련(가난)’을.. 그 미래를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리의 영(혼)이 그것들을 끌어당겼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석이 철을 끌어당기듯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필요한 사건들을 끌어당깁니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가, 내가 끌어당기는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이 그런 방향으로 허락/섭리하십니다.)

 

    주님은 내 부족한 부분들을.. 내 미래 환경으로 끌어 당겨 주십니다.

    그래서 훈련시켜 주십니다.

 

    이것을 아래에서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매사에 분명하고 철저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항상 맡겨진 일을 정확하게 하며, 사람들과의 약속도 정확하게 지킵니다.

그는 시간 사용에 있어서도 철저합니다.

 

자,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입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그럴 때마다 속이 상하고, 그러한 일들의 뒷수습을 하느라고 고생합니다.

그는 그를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꾸 화가 납니다.

 

자, 이러한 일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그의 영혼의 성숙>을 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확하고 분명한 부분은 있지만

반면에 관용적이고 너그러운 면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니,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비난하며

자신을 항상 올바른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는 비슷한 훈련을 계속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성숙될 때까지.. 자꾸 그런 사람과 환경을 끌어당겨 주십니다.

그의 인격과 영혼이 한 단계 더 성숙하라는.. 섭리입니다.

 

그는, 이러한 삶의 경험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기질에

균형과 조화와 정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집착이나 인색함을 많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경우는 어떨까요?

때가 되면 그는 영의 성장과 정화를 위하여

그가 집착하던 사람이나 대상에게 버림을 받거나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가 베풀기 싫어하며 인색함으로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돈이든, 아끼는 물건이든.. 말입니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집착이나 인색함이

영혼의 발전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며

그러한 요소가 소멸되어야

그의 영혼이 좀 더 높은 신앙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활함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사람이 정죄가 많으며 남의 틀린 견해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어떤 사람이 남에게 오해를 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며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며

남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도저히 할 수 없다면?

 

역시 앞의 경우와 비슷하게 그가 싫어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그러한 ‘미성숙한 신앙인격’

자기의 성장과 정화를 위해서.. 고통스런 환경, 미래를 스스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런 환경을 자꾸 허락하십니다. 극복 할 때까지요.)

 

결국 분명한 사실은

모든 훈련과 재앙을 일으키는 요소는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 미숙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신앙인격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지금 내가 겪는 인생의 갈등과 문제는.. 적게 겪게 됩니다. 초월되고, 극복됩니다.

 

▲그 모든 것들이 정화되기 전까지는, 결코 이 땅에 안식이란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처럼 100% 완벽한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 말씀대로 우리가 ‘온전해지면’ 마5:48

인생의 갈등,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극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환경이 변화되기를 바라고,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 신앙인격의 성숙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냉혹하리만큼,

철저히 우리를, 환경의 변화/문제 해결이 아니라,

내 신앙인격의 성숙으로 몰고 가십니다.

결국 우리의 믿음을 완성시켜, 천국에 데려가기 위함입니다.  빌2:12

 

▲이런 현실을.. 아직 눈치도 못 채고, 교회를 10년 이상 다니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인지하든/못 하든

내 영혼의 성장과 정화를 위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헌신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좀 더 빠르고 분명하게 자기 현실의 삶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자기가 빨리 눈치 챕니다.

 

영혼이 어린 사람이나 불신자들은

악한 행동을 하거나 범죄할 때

그 결과로 오는 고통의 열매가, 시간이 오랜 후에 나타나지만,

 

헌신되고 주님께 가까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악의 결과를 곧 빠른 시간에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빨리 회개하고, 빨리 돌이키며.. 성숙의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바꾸어 말하면, 신앙이 아직 어린 사람들은,

이런 크리스천 삶의 패턴, 하나님의 섭리의 패턴을 빨리 눈치 채지 못합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자기 삶에 고난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성숙을 위해 허락하신 환경임을 눈치 못 채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자기 환경만 개선되기를 목 놓아 부르짖습니다. 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이킬 때까지, 계속 때리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론이 아닙니다.

이것은 앞서서 믿음의 여정을 걸어갔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경험으로써 증거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삶에서도 항상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우리에게 부딪치는 시련과 훈련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을 깨닫고, 돌이키면 곧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됩니다.

 

 

아직도 자기 삶에

불안이나 혼란스러움이 늘 지배적으로 자기 삶을 주관하고 있다면,

우리가 삶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들을 훈련과 정화의 각도에서 보게 되면

우리는 곧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경험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삶의 모든 문제를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이상 완벽하게 해결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대부분은 극복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서 운행되고 있는 영적인 법칙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든 말든.. 그 법칙은 

우리의 안에 있는 낮은 차원의 영혼을 성숙시키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오랜 시간을 그 법칙과 싸우며 항의하다가

비슷하게 반복되는 고통의 문제들을

10년, 20년, 계속해서 겪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용서를 배우지 못해서

평생 동안 어떤 대상을 미워하면서 삽니다.

 

어떤 이들은 관용을 배우지 못해서

가는 곳마다 무례한 사람을 만납니다.

 

어떤 이들은 물질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해서

평생을 가난한 영들에게 시달리면서 삽니다.

 

어떤 이들은 영의 경직됨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평생 동안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삽니다.

 

이러한 예들은 그들이 현실의 삶과 훈련에서

통과한 것이 별로 많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빨리 깨닫고 순응할 수 있다면

그들은 많은 세월을 아낄 수 있으며

인생의 여정에서, 별로 많은 고통을 겪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계속 경험하며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신앙적으로 어린 영혼들은 항상 환경을 바라봅니다.

그리하여 평탄한 환경을 찾아서 도주합니다.

 

그것은 요나가 하나님을 피해서

다시스로 가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과 승리를 위해서

우리는 환경을 살피지 말고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자신의 안을 살펴야 합니다.

 

부디 당신의 안에 잇는 정화되어야 할 부분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의탁하십시오.

 

그러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서

우리가 조금씩 정화되고 육성이 소멸되어 가면

환경의 문제들도 하나 둘 사라지게 될 것이며

점점 더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의 평탄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보다

우리의 성숙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됩니다.

 

문제와 관련된 고통과 훈련이 필요 없기 때문에

환경의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훈련과 문제들은 그 사람의 영적 수준과 상태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갑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을에게는 별로 상처가 되지 않으며

그에게는 도리어 상대방(갑)이 측은하게 보입니다.

 

그러한 상태라면, 을에게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더 이상 훈련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비슷한 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즉,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이 더 이상 출현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런 사람들을 끌어당기지도 않으며,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그에게 붙여주시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그가 용서에 대한 부분을 이미 통과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배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측면의 발전을 위해서 훈련이 있겠지만

‘원수의 용서’에 대한 훈련은, 앞으로 그리 많이 받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물질이나 환경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몹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것을 그리 힘들게 느끼지 않으며, 잘 극복하고 있으며

두려움이나 원망이나 불평이 없이, 자연스럽게 주님을 바라보고 의뢰합니다.

 

이런 상태라면 그는 이제 그리 많은 훈련이 남아있지 않으며

지금의 어려움의 환경은 곧 끝이 나게 될 것입니다.

 

훈련을 다 받았으니까,

하나님이 그 분야로는, 더 이상 그를 훈련하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더 높은 차원의 고난은 있습니다.

 

 

영적으로 많이 발전한 사람들은 고난이 더 이상 없는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훈련은 계속하여 다가옵니다.

성장한 이들도 고난을 여전히 겪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더 다른 종류의 고난을 겪게 됩니다.

 

(어린 영혼의 고난은 대부분이 자기 정화를 위한 훈련 차원의 고난이지만)

성장한 사람의 고난은

남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남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피를 흘리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기 위한 고난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진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만

십자가는 자기의 죄와 약점으로 겪는 고통이 아닙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이 그분의 죄 때문이 아니었듯이

우리도 성장한 부분만큼 주님이 허락하신 십자가를 짊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분량만큼 영광의 상급도, 주님과의 연합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생명의 진전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는 대부분의 고난은

십자가의 차원보다는, 자기 영적 성장의 차원이 많은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마치는 말

 

그러므로 평탄한 미래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성질을 버려야 합니다.

 

미래에 끊임없이 다가올, 훈련과/연단과/환란과/고통이 싫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악한 속성을 주께 맡겨야 합니다.

 

모든 고통과 재앙의 원인이 내 안에 있고

나의 성질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인내하지 못하는 성질,

주님의 통제 없이 분노하는 성질,

아주 작은 질투, 험담...

그 모든 것들이 자기의 미래에 재앙을 쌓고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좀 더 조심할 것입니다.

 

그러한 훈련을 받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훈련 때문에 주님의 시간과 우리의 인생을 지나치게 낭비하게 되면

주님의 사역과 주의 나라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시간이 부족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주 비극적인 일입니다.

 

주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과 십자가의 영광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안다면

우리는 그러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자격을,

기회를 조금이라도 달라고 주님께 애원할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욕먹고 버림받고 오해받고 멸시받게 해달라고

우리는 탄원할 것입니다.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게 해달라고 우리는 간구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기도로 구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진정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에, 사람들은 그리 신경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어려서, 보화와 쓰레기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적 상태, 신앙인격을 바로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의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영적 상태, 신앙인격과 수준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겪을 훈련의 내용과 질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훈련을 빨리 끝마치기 위해서

불필요한 원망과 불평, 도피, 책임전가, 비난들을 피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훈련과 고통의 기간을 확장시키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 각자는 이런 의미에서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

정화와 십자가를 위해서, 주님의 뜻을 위해서

부디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뻐하며 이 길을 걸어가십시오.

 

주님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환경을 통한 그분의 가르치심을 거스리지 마십시오.

오직 주를 바라보고 구하십시오.

 

그리고 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

우리의 영혼이 성숙되고 새롭게 되어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구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며, 오늘 우리가 살아 존재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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