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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선교사 마인드 - 존 파이퍼

LNCK 2011. 5. 12. 19:03

◈바울의 선교사 마인드            롬15:19~23              출처보기 7'~12' 풀어 씀


Sermon Excerpt "The Reality of Hell and the Work of Christ"




저 John Piper 는 이미 소천 했지만, 생전의 랄프 윈터 박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소중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중요한 내용이므로, 천천히 읽어보십시다.



◑바울의 프런티어 개척 정신 (=선교사 마인드)


사도바울이 자신의 선교에 대해 생각한 방식은 상당히 놀랍습니다.

롬15:19~23절을 읽어보면, 선교에 대한 그의 사고방식은 매우 독특합니다.


바울이 자신의 소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번 들어보십시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본문의 바울처럼 소명을 받지는 않지만,

일부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바울이 받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소명을 받을 것이고,

모든 교회에, 이렇게 바울처럼 선교회 횃불을 드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롬15:19,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 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일루리곤’은, 현재는 알바니아입니다. 그리스의 북부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찬찬히 읽어보면, 사도바울이 허풍이 심한 얘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착각을 하는 것인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


‘예루살렘부터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I have fulfilled gospel


아니, 예루살렘부터 일루리곤(알바니아)까지 그 광대한 지역을

자기가 얼마나 위대하게, 그것도 단시일 안에 사역을 했는지..

‘내가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어지는 23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이 지방에 더 이상 일할 곳이 없고’ .. 롬15:23


‘이 지방’은 문맥이 19절부터 연결된다고 볼 때

‘예루살렘부터 일루리곤까지’를 뜻합니다.

19절에는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다’고 하더니

23절에는 ‘이제는 이 지방에 더 이상 일할 곳이 없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는, 바울의 말이 납득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지역교회 목회최전방 선교가 개념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선교사입니다.

그는 지금 지역교회 목회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서신서를 읽어보아서 압니다.

에베소, 빌립보 등 자기가 개척한 교회가 서 있던 지역에도,

아직 불신자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신자들은 사실 수적으로 극소수였습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은 ‘이 지역에 일할 곳이 아직 많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 지역에 일할 곳이 이제 없다라고 말합니다.


상식적으로는  ‘이 지역에 일할 곳이 아직 많다라고 말해야 하지만,

사도바울이 ‘이 지역에 일할 곳이 이제 없다라고 말한 이유는,


이제 그 지역에, 작더라도 어떤 교회들이 세워져 있어서,

그 교회들이 아직 전도 못 받은 그 지역 사람들을 담당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니까,

‘이 지역에 일할 곳이 이제 없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19절, ‘예루살렘부터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라는 말씀도 바로 그런 뜻입니다.


이미 주요 도시들에 자신이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고,

이미 교회들이 세워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 지역에 복음의 교두보(그 거점을 통해서 확산이 되는 시발점)가 마련되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의 염두에는 항상 프론티어(최전방)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 그 프론티어로 나아가는 것

- 그것이 바로 선교사의 마인드입니다.


지역교회 목회자의 마인드는..

지역교회를 든든히 지키면서, 그 지역복음화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교사의 마인드’와, ‘지역교회 목회자의 마인드’가 다릅니다.


그런 바울의 ‘선교사적 마인드’ 즉 ‘프런티어(변방) 개척정신’은

이어지는 구절에도 명백히 나타나 있습니다. 


롬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대도시들, 필라델피아, L.A. 워싱턴, 뉴욕 등

이런 도시들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미未신자들이 살고 있지만,

사도바울은.. 그것은 ‘지역교회 목회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선교사의 마인드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입니다.


선교사의 마인드는 이어지는 구절에도 계속됩니다.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들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즉, 이미 교두보가 마련된 지역은 뒤로 두고, 지역교회 목회자들에게 맡기고,

아직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들으리라!’

하는 것이 바로 선교사의 마인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도 건너뛰려고 합니다.


롬15:22~23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 줌을 바람이라

 

로마에 주저앉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로마는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짧은 기간 로마에 머물며 교제한 후에는)

너희가 서바나(스페인)로 보내 줌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에는, 로마서만 보내고 건너 뛰려고 하는 이유는,

거기에 이미 교회가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원칙(선교사 마인드)은 바로 이것입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15:20


그러니까 이미 교회가 서 있던 로마도,

바울 자신이 들어가서 굳이 또 무슨 교회를 세울 필요가 없고,

로마를 건너뛰고, 너희의 보내줌을 받아서, 스페인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사 마인드’입니다.


▲선교사 마인드는, 목회자 마인드와 다릅니다.

서두에서, 제 John Piper 가

모든 사람이 이런 ‘선교사 마인드’를 하나님께 받은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이런 바울과 같은 ‘선교사 마인드’를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져 있는 곳은 제쳐 두고

아직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 교회가 없는 곳으로 무모하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 방식이, 가장 옳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지역교회 목회자 마인드’도 필요합니다.


미국의 도시들에는, 이미 교회들이 세워져 있지만,

여전히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모르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성실히, 꾸준히 전하는 ‘지역교회 목회자’도 반드시 필요하고,

아시다시피 또한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러나 일부이지만, ‘선교사 마인드’ 즉 ‘프런티어 개척정신’을 가진 

바울과 같은 사람도, 오늘날 절실하게 필요하며,

우리는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후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국내에도 불신자가 수두룩한데, 왜 복음을 반기지도 않는 나라에 가느냐?

거기는 죽도록 수고해도, 열매도 별로 없는데..’ 라면서

애써서 가는 선교사들에게, 답답한 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선교사 마인드는.. 바울처럼..

지금 본국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졌다’ 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지금 본국에는 ‘더 이상 일할 곳이 없다’고 여기고는,

(‘여긴다’는 말은.. 나머지 할 일은, 지역교회 목회자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

즉 중국의 변방 산악지대, 인도 북부, 회교국가, 힌두교국가 등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나라들의 특징은,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위험하니까요.

-아무도 선교사를 환영하지 않는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회교국가, 힌두교국가에서는,

(오늘날 남아있는 미전도종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들입니다.)

선교사가 오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런 원치 않는 지역으로 들어가다 보니까,

-돌에 맞았고,

-채찍질을 다섯 번이나 당했고,

-큰 막대기(태장)로 맞는 형을 세 번 당했으며,

-셀 수 없이 감옥에 갇혔고,

-길에서, 도시에서, 시골에서.. 어디를 가든지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변방(프런티어)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교는.. 초청 받아 가는 곳이 아닙니다.

만약 당신의 입국을 환영하는 나라가 있다면.. 거기는 선교지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바울처럼 ‘선교적 사명’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비록 소수라도

좀 래디컬radical한 바울 타입의 사람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서 나타날 때에도.. 그들을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목회자적 마인드’로 

늘 변방을 향하는 ‘선교사적 마인드’ (본문의 바울의 마인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무모하다’는 식으로 비판하면 안 될 것입니다.           ▣ 해외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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