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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예배 / 찰스 프라이스

LNCK 2011. 5. 13. 23:44

 

◈기도, 예배                         창22:5                                       출처보기

                                                                          찰스 프라이스 목사님 설교 중 13~20분 녹취



◑기도란.. 하나님 중심적이 되어야


주기도문의 전반부는, 하나님에 관한 기도이다.

즉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까지는, 기도의 내용이 모두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 


성도의 생활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듯이,

성도의 생활 중의 하나인 기도도.. 그 무게중심이 먼저 하나님께 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천동설과 지동설의 예를 들어보자.

오래 동안 사람들은 자연히 천동설을 믿어 왔다.

천동설이란, 지구가 고정되어 있고,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믿는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등이 천문학 연구를 통해서, 그 이론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했다.

반대로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에 있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소위 지동설을 주장했다.

(갈릴레오는 이러한 믿음 때문에 이교도라 불리고, 교회에서 추방당했던 적이 있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와 같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전환

오늘날 우리 크리스천에게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크리스천들은, 마치 ‘천동설’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우주의 중심에 자신이 있으며,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돌거나, 존재하시는 분처럼 여긴다.

그가 기도를 하더라도.. 자기 문제, 자기 소원 등 온통 자기중심적으로 기도 드린다.


이런 ‘천동설 신자’가 ‘지동설 신자’로 바뀌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지동설 신자’란, 우주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자기가 돈다. 자기가 움직인다.

기도를 드릴 때에도..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드린다.


주기도문을 살펴보더라도,

그 전반부는 온통 ‘하나님 중심의 기도’라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모두가 ‘하나님 중심의 기도’이며

우리가 주기도문 말고, 개인기도를 드릴 때에도

이렇게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뭘 이루기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은 내가 뭘 기도하기를 원하시는지..

-그 하나님이 이루기 원하시는 일에, 내가 동참하겠다는..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 중심,

내 소원 중심,

내 야망/정욕 중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천동설처럼!


이것이 아직까지도 몇몇 분들에게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될 수도 있겠다.

‘목사님, 너무 호들갑떠시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자신도 모르게 ‘천동설적인’ 즉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오래 동안 해 오면서도,

심지어는 그것이 틀렸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중세 때 천동설을 믿었던 것처럼


그래서 호들갑 떠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우리 신앙과, 우리 기도생활에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적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 worship’ 란 무엇인가?


오늘날 예배(워십)를.. 성도들은 단지 경배찬양을 부르는 것으로 생각한다.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유명한 신약학자 F. F. 부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의 어떤 단어나 개념의 정의를 더욱 더 명확하게 알기 원한다면,

그 단어나 개념이 성경에 가장 먼저 어디에 나오는지 찾아보면 유용하다.

왜냐하면 그 단어가 성경에 첫 번째로 출현하는 곳에,

가장 정확한 뜻definition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주장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맞는 말이다.


지금 우리는 ‘예배’를 공부하고 있다.

그럼 ‘예배’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F. F. 부루스의 말대로 성경에서 ‘예배’가 가장 먼저 나오는 곳을 찾아보자.


성경에서 ‘예배’가 가장 처음 나오는 곳은, 창22:5절이다.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 worship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여기서 아브라함이 ‘예배’라는 말을 제일 처음 썼는데,   *히, 샤하, 엎드리다. 절하다.

그것은 하나님께 자기 아들 이삭을 제사로 드릴 때 사용한 말이었다.


이때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물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22:7


이 대화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예배’라고 하면, 그 개념으로 기타, 드럼, 경배찬양을 생각하겠지만,


‘예배’라는 말이 최초로 쓰인 창22장이 말하는 ‘예배’는, 그 개념은,

-불, 나무, 번제할 제물 등이었다. 함축해서 한 마디로 말하면 ‘번제할 제물’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한 자녀, 이삭’이

번제할 제물이었다.


정리하면,

성경이 말하는 최초의 ‘예배’란,

자기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의미했다.


‘예배’(히. 샤하)라는 말이 문자적으로 ‘엎드려 절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그것은 형식이고, 그 형식 속의 내용은,

‘자기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또는 자기 자신을 제물로 아낌없이 바치는 것’이 

바로 ‘엎드려 절하는’ 예배 형식의 실질적 내용이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지만,

그 이삭을 바치는 것은, 아버지인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좀 더 확장해서 보면,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바치는 ‘순종’ .. 그것이 예배의 실제 내용이다.

다른 말로 ‘제물’이나 ‘제물을 바치는 순종’이 없는 예배는 .. 예배가 아닌 것이다.


▲이런 ‘예배’ 개념은, 롬12:1절에 더욱 확실히 나타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리는 영적 예배니라


사도바울이 가르치는 ‘예배’ 개념은

(역시 오늘 우리가 말하는 예배 개념, 즉 노래하고 드럼치고 기타 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자기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린다는 각오이며,

-하나님의 뜻이라면, 뭐든지 순종해서 드림을.. 의미했다.


신약성경에서 ‘예배 worship’라는 말이 최초로 쓰인 곳은, 마2장이다.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헬, 프로스쿠네오, 완전히 엎드리다. 입 맞추며 경외를 표하다.

마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신약성경에서 최초로 설명하는 ‘예배’란,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예물을 드리니라’ .. 이렇게 설명이 나와 있다.


그러니까 앞서 설명한 창22:5, 롬12:1, 마2:11절이

일맥상통한 맥이 흐르고 있다.


정리하면, 예배 worship 란..

그 형식은 ‘엎드려 절하는 것’이지만,

그 내용은 ‘자신을 바친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바친다.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한다.’

라는 의미가 된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을 바치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것을 바치지 않는 예배는..

예배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경배와 찬양을 부르고, 기타와 음악을 연주하는 것도.. 

그것도 하나님께..

자신과, 자신의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이 되겠지만,


더 소중한 것은 따로 감추어 놓고, 입술의 찬양의 열매만 드리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경배worship가 아닌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처럼,

동방박사들이 보배합을 열어놓고 말했던 것처럼,

사도바울이 자기 몸을 드리라고 말했던 것처럼,


‘주님, 제 자신과, 제가 가진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예배worship인 것이다.


※이 짧은 설교가 ‘예배’의 모든 것을 정의,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원론적인 ‘예배’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 되겠다.